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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60화 (60/205)

<60화 평범한 삶의 무게6>

“경수야.”

하루 종일 말대꾸도 안 하던 내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뭐? 오늘 무슨 일 있어?”

“그건···.”

오늘 내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 내 눈치를 보던 종혁이와 경수는 작정한 듯 날 붙잡고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등교할 때부터 그러더라니까. 난 인하 일 관련해서 인지 알았지.”

“무슨?”

난 깜짝 놀라서 종혁이를 쳐다보았다.

‘내가 인하일로 경수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알아챈 건가?’

심각한 표정에서 모의하듯 나와 경수의 어깨를 잡아서 끌어내면서 음흉하게 씩 웃더니 말했다.

“인하가 체육 때문에 용의자로 몰리니까 그거 관련해서 촉이 온 거지. 그렇지?”

“아니야 그런 거.”

“뭐야. 오늘 아침부터 이마에 주름잡고 분위기 잡더니 그거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 그럼 넌 인하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더 말도 안 되는 거고. 내가 고민한 건···.”

“고민한 건?”

나는 경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너 인하 좋아하냐?”

“뭐?”

당혹스러움의 헛숨 삼키는 소리가 종혁이에게서 들려왔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경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그걸 왜 물어보는데?”

“야, 눈치도 없냐? 어제 그렇게 난리 치면서 문병 갈 정도면 당연하지.”

“난 경수 입으로 듣고 싶어서 그런 거야.”

종혁이가 빙글빙글 웃던 표정이 굳어지며 나를 향해 외치듯 말했다.

“야? 설마 아니지? 너도 인하 좋아하냐?”

“뭐? 주인이 너 인하한테 관심 있어? 너 지혜는?”

종혁이의 다급한 외침에 표정이 굳어져가던 경수가 의자를 밀치며 뛰어오르듯 내 멱살을 잡고 외쳤다.

“너 정말?”

“무슨 아니야 그런 거···.”

“그런데 내가 인하 좋아하는지 아닌지가 왜 궁금해?”

“금단의 사랑인가?”

“넌 또 무슨 헛소리야?”

“하아···.”

난 내 멱살 잡은 경수를 바라보던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힘겹게 말했다.

“인하 많이 좋아하냐?”

“그래. 나 인하 좋아해. 그러니까 말해.”

“우선 오해하는 것 같으니까 말할 게 나 인하 좋아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야. 그저···.”

“뭐야 답답하게 하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하라고.”

“너 인하가 반에서 은근하게 따돌림당하는 것 같다고 했지.”

“응···.”

“그럼 인하가 이 상태로 학교에 돌아오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

“뭐?”

“죽어도 싼 체육이지만 인하 반 애들한테는 그저 살인 용의자라고밖에 안보일 거야.”

“···.”

내 멱살을 잡고 있던 경수의 손이 스르륵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듯 주저앉는 것처럼 자리에 앉고 말았다.

“그럼 인하의 학교생활은 어떨 것 같아? 그리고 인하를 때리고 아직도 병원에 얼굴도 내밀지 않는 인하 아빠하고 계속 생활하게 되면···그러면?”

“인하···많이 힘들어했어···그런데 난 뭘 도와야 할지도 모르겠고 인하가 반에서 괴롭힘당하는 거 아는데 내가 쉽게 나섰다가 더 피해받을까 걱정돼서···.”

“경수가 도와주고 싶어 하는 거 내가 말렸어. 아무래도 체육한테 꼬리쳤다는 둥 그런 소문이 도는데 경수가 옹호하면 더 여자 반 애들이 더 안 좋아할 것 같아서 내가 말렸어.”

힘들어하는 경수의 어깨에 손을 올린 종혁이 내 눈을 직시하면서 말했다.

“하아···나도 뭐라고 말하기 어려워서 원래는 어제 병문안 갔을 때 말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뭔데?”

“우리 외할아버지가 미국에 지인이 한 분 있어. 거기 한인타운에서는 존경받는 분이라고 알고 있어.”

“갑자기 미국하고 한인타운은···설마···.”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받는 2차 가해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일 거야. 우리야 옆에서 보이는 일부만 보는 거니까. 인하가 어떤 고통을 지금도 겪고 있는지 모르지.”

“미국으로 보낼 생각까지 한 거야?”

“전학 간다고 해도 피해자에 대한 박한 인식이 있는 이상···전학 간 학교에서도 인하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미국 지인이라는 분 믿을만한 사람이야?”

“야, 너.”

“······나 나는···.”

“···.”

“미국 지인이라는 분 나도 한 번밖에 못 본 사람이야.”

“야 넌 또 그런 사람을 믿고 인하를 보내겠다는 거야?”

“그런데 LA 폭동 사건 때 피폐해진 한인타운을 위해서 전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셨지. 그래서 미국 한인타운에서는 존경받는 대모나 같은 분이야.”

“뭐?”

“그리고 자녀가 없어서 미국에 혈연단신으로 도망치듯 이민 오는 이들을 도와주는 시민활동가시기도 하고.”

“지금 결정하지 않고 좀더 생각해도 돼 아직 알아보는데 시간이···.”

“아니, 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인하에게는 새로운 삶. 행복한 삶의 기회인 거잖아.”

아픈 눈으로 보는 나와 종혁이를 알아서인지 고개를 들지 않고 책상만 보면서 말하던 경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만 우선 인하에게 선택권을 줘야지. 내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잖아.”

‘그것도 그렇게’라는 표정으로 종혁이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난 다르게 생각해.”

“뭐?”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는 경수와 종혁이의 얼굴을 외면하듯 나는 등을 돌리고 교실 밖 창문으로 보이는 운동장을 바라봤다.

“어제 병문안 갔을 때 인하가 우리 면회 거절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잘 모르는 애들이 와서?”

“나하고 종혁이 너는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경수는 아니잖아. 서로 이름도 알고.”

“그렇다고 서로 이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어.”

라는 항변을 하는 경수였지만 붉어지는 볼을 숨길 수는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사람인데도 거절한 거야.”

“만나고 싶어 했다는 걸 어떻게 알아?”

“넌 어제 그 모습 보면서 모르겠냐?”

“뭐, 그것도 그렇긴 하지.”

“뭐가 그래?”

나와 종혁이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인하는 너한테 수갑 찬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야. 좋은 모습만 보이는 거지.”

“그 말은···.”

“만약에 경수 네가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렇다면 결정을 미루거나 그럴 수도 있지.”

“뭐?”

“물론 가능성이지만···인하가 지금 특수한 상황이잖아. 부모님 중에 어머니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아버지라는 사람은 가정에서 지켜주기는커녕 매번 때리기만 하고 도움 요청한 선생한테는 끔찍한 일을 당하고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유일하게 너한테 따뜻한 손길을 받은 거야. 그런데 그런 내가 이번 이민 건을 부정적으로 말하면 인하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설마 그래도 중학교 3학년인데 자기 생각이 없을까?”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데.”

“음?”

“나도 들은 말인데···.”

‘정확히는 대백공이 언급했었지.’

“지금 앉아서 우리끼리 말하는 것도 그리고 어디를 갈지도 결정할 결정권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는 거지.”

“뭐야. 조선 시대냐?”

“별로 얼마 되지 않았어. 슬픈 건 그렇게 원하던 자유를 위해서 싸우던 이들이 다 죽고 난 다음에 이뤄진다는 거야.”

“뭐?”

“아니면 변질된 다음에 이뤄지거나. 슬픈 일이지.”

“···.”

“말이 이상하게 흘러갔지만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으로 커왔지만 인하는?”

“인하는?”

“방치나 다름없었지. 그러면 주변에 도움을 줄 어른이 있으면 좋은데 아쉽게도 없었고 그래서 더 주체적이지 못하고 흘러가는 대로 이런 상황까지 온 걸 거야. 물론 내 생각 하고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

“설마···그럼?”

“그래 난 경수 네가 인하를 설득해줬으면 좋겠어.”

“난···.”

“야 너무 잔인하잖아.”

“미안···.”

“아니야. 주인이 잘못이 아니지. 난···.”

“당장 하라는 게 아니야. 아직은 체육사건 조사도 아직 안 끝났고···.”

“아니. 시간을 오래 끌수록 더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해.”

“경수야.”

“솔직히 나도 지금 내 생각이 뭔지 모르겠어. 뒤죽박죽이야.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어떤 생각?”

“인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

“인하가 귀엽다고 나도 소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체력장 할 때 수돗가에서 한번 봤어. 한눈에 인하인 걸 알았지. 달리다가 넘어졌는지 무릎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멍한 표정이더라···그때부터 눈을 못 떼겠더라···그냥 지켜주고 싶다?라는 생각에 더 자주 찾아보곤 했어. 물론 인하는 그런 날 몰랐겠지만···.”

두서없는 경수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인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지만···이번 일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알았어. 그저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 그러니까···그때 아니 종혁이가 말리더라도 조금만 빨리 내가 손을 내밀 수 있었다면···아니···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다면···”

“그래서···그저 생각만으로 인하를 위하는 것보다는 힘들더라도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주인이 너는 내가 인하를 설득하면 좋겠다고 말했지만···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인하는 강한 아이야.”

“나 같으면 부모님이 나를 버리고 때리고 원망하는 상황에서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꿋꿋이 해낸 아이거든. 그러니까 난 인하에게 이런 방법도 있다고 설명해 줄 거야. 선택은 인하가 스스로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인하는 내가 좋아하는 그런 아이니까.”

그와 동시에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오래된 사진 속 장면처럼 느끼는 것과 동시에 사진이 움직이는 듯한 이상한 부유감이 느껴진다. 이명이 섞인 듣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점차 대화 소리가 선명해진다.

경수의 뒤로 아이들이 저마다 운동장에서 크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전학 오기 전인가?’

경수의 모습이 지금보다 더 앳되어 보였다.

체육복을 입고 땀을 흘리는 모습이 한바탕 어디서 뛰다가 달려온 것처럼 보였다. 경수가 지나쳐서 걸어가는 와중에 들리는 대화가 들렸다.

“너 오늘 이어달리기한다고 한 거 아니야?”

거울을 보면서 말을 한 아이는 긴머리 때문인지 손부채질을 하면서 별일 아니라는 말투로 대꾸를 했다.

“귀찮아서 인하한테 하라고 했어.”

“뭐?”

귀찮아서 반 대항 달리기에 빠졌다는 놀란 표정을 짓던 아이를 보던 긴머리 아이가 놀란 아이의 반응에 투명스럽게 답했다.

“반대표로 달리기한다고 해도 수행평가에 반영 안 된다는데 뭐 하려 하겠어?"

“담탱이가 수행평가에 반영 안 한데?”

“그러니까. 그게 아니면 뭐하러 이 더운 날씨에 땡볕에서 달리겠어?”

“그것도 그러네. 그런데 너 아니면 누가 대신 뛰는 거야?”

“인하라고 있어.”

“어? 귀여운 애?”

“뭐가 귀엽냐? 음침한 거지. 말도 없고.”

“그런데 인하 걔 운동신청 완전 빵점 아니야? 달리기 예선 탈락하겠다.”

“예선은 무슨 완주도 못 할걸?”

“그런데 걔를 왜 추천한 거야? 그것도 너 대신?”

“당연히 나 없으면 일방적으로 진다는 걸 알려줘야지. 그래야 담탱이도 아 이러면 안 되겠구나 하지 않겠어?”

그런 경수의 옆을 지나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멀리 인하가 이어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보는 사람이 아플 정도로 크게 넘어졌지만 개의치 않고 바로 일어나 달리는 모습이었다.

대화를 나누던 무리도 인하가 달리다가 넘어진 모습을 보았다.

“앗. 넘어진 거 아니야?”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근데 그래도 꿋꿋하게 달리는데?”

“어차피 꼴등인데 재도 참 이해가 안 가.”

등 뒤로 들리는 대화 소리에 경수가 주먹을 꽉 쥐는 게 보였다. 갑자기 장소가 바뀌어서 수돗가 앞이었다.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으면서 인상을 찌푸리는 인하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려는 경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그저 인하의 주변을 서성이는 경수였다. 그런 경수를 지나쳐 같은 반인 아이들이 수돗가로 주전자를 들고 가는 게 보였다.

“인하야 괜찮아?”

작게 끄덕이는 목덜미에 식은땀이 가득했지만 괜찮다는 몸짓을 했다.

“그러게 그렇게 크게 다쳤으면 바로 양호실이나 가지 왜 달린 거야?”

“나를 믿고 계주를 시켰는데···넘어져도 그래도 완주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인하의 대답에는 관심도 없는지 주전자에 물을 따르면서 건성으로 괜찮냐고 묻던 아이들이 사라졌지만 그 작은 목소리를 들은 경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주 작은 인하의 대답이었지만 그 목소리가 들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표정이었다.

아찔한 감각과 함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들리던 대화가 엿가락처럼 느려지면서 감각이 점차 교실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경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종혁이의 시선이 나를 향하자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경수 네 말이 맞아. 내가 너무 내 기준으로 생각한 것 같아. 그리고···미안하다.”

“아니야. 난 지금 상황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넌 인하 미래까지 걱정해준 거잖아.”

“나는···.”

‘난 회귀를 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이 눈에 선하니까.’

성폭력 피해자들은 성폭력을 당하고 바로 자살하지 않는다. 주변에 알고 지냈던 이들로부터 2차 피해가 누적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비난이 계속되면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되는 걸 너무 많이 봐왔다.

‘피해자 스스로 자신의 잘못이라고 잘못 인식하면서 스스로를 벌하게 되는 거지.’

“말하기 어려웠을 텐데 말해줘서···난 오히려···.”

“경수야.”

힘겹게 말을 꺼내는 경수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자 종혁이 경수의 어깨를 잡으면 그만해도 된다는 의지를 보냈지만, 경수는 끝끝내 말했다.

“난 오히려···이런 기회가 있다고 인하에게 전할 수 있게 돼서···.”

경수는 끝내 끝까지 말을 내뱉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흔들리는 경수의 뒷모습을 우리는 한참 바라만 봐야 했다.

‘나는 옳은 선택을 하고 있는가?’

누군가 삶에 정답을 알고 있다면 질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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