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평범한 삶의 무게5>
정작 병실에 들어가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진이 빠지는 하루였다. 나와 종혁이는 인하가 안정된 상태가 된 다음 얼굴만 보고 병실을 나섰다.
외삼촌과 인하가 대화를 나누더니 병실 문을 열고 나왔다.
“갑자기 놀라서 그렇지 상태가 악화된 건 아니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담당의한테 연락해 놨지.”
“외삼촌이 담당 아니었어요?”
“난 외과라서 외상 치료는 돕지만 담당은 다른 의사란다.”
“그렇구나···.”
“너희는 안 들어가 봐도 되니?”
“괜찮은지 얼굴만 보러온 건데요.”
“그리고 지금 상황에 끼어들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아요.”
이런 나와 종혁이의 말에 숨죽여 웃던 외삼촌은 우리를 끌고 방금 내려왔던 옥상 공원으로 향했다.
“한 명은 바쁜 것 같으니까 나머지는 우리가 해치워 볼까?”
학교생활에 대해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뻘쭘해 보이는 표정의 경수가 뒷머리를 흐트러트리면서 우리를 향해서 다가왔다.
“그···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한 게 없는데 간식 먹자고 부른 거지. 면회는 환자가 동의한 거고 그러니까 여기 음료가···이런 다 식었네?”
놀리듯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따뜻했던 핫초코를 넘기는 외삼촌의 모습에 나와 종혁이는 숨죽여 웃음을 삼켰다. 경수는 머뭇거리더니 핫초코를 받아들고 말했다.
“식어도 맛있죠. 핫초코.”
“지금은 아이스 초코쯤 되겠다. 빨리 마시고 가자. 남은 건 외삼촌이 싸가도 된다고 해서 포장해놨어.”
나는 머뭇거리면서 어색해하는 경수에게 재촉할 때 갑작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띠띠띠.
귀에 거슬리는 호출 소리와 함께 외삼촌은 이제까지 우리에게 보여줬던 사람 좋은 웃음을 거두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출이 와서 나 먼저 내려가마. 정리하고 너희도 들어가. 다음에 보자. 주인이 너는 연락 자주 하고.”
대답도 하기 전에 날 듯이 사라지는 외삼촌의 모습에서 우리의 일상이 지켜지기 위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는 걸 다시 느꼈다.
‘결코 평범하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될 소중한 한 사람의 삶이 모여서 이런 일상을 이뤄내고 있는 거야.’
“외부인은 들어오면 안 된다니까. 우리도 빨리 일어나자.”
경수는 원샷 하듯 핫초코 아니 아이스 초코가 된 음료를 마시고는 우리가 있던 자리를 치우고 쓰레기를 정리했다. 병원을 나서면서도 나와 종혁이의 입은 쉴 새가 없었다.
“몰랐는데 경수가 그런 터프한 면이···.”
“아니 난 두서없이 말하는데 놀랐다니까?”
“응?”
“항상 조리 있게 말을 잘하던 놈이 갑자기 머리가 리셋된 놈 마냥···크크큭···.”
한참을 우리의 놀림을 당하다가 터져버린 토마토 마냥 붉어진 얼굴로 크게 외쳤다.
“아 쫌. 그만해. 나 먼저 간다.”
도망치듯 사라지는 경수의 뒷모습을 보면서 종혁이가 말했다.
“적당히 할 걸 그랬나?”
“뭘 우리 정도면 양반이지 그리고 골목길 들어서기 전에 자기 집 방향으로 간 건데 뭐.”
“그런가? 항상 우리 집 근처까지 왔다가 가서 오늘 좀 생소하기도···.”
경수의 집 방향이 우리와 달랐어도 항상 거의 종혁이 집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가는 모습을 봤었기 때문에 생소하게 느껴지기 도했다.
‘나도 이사하게 되면···.’
이사준비를 하고 있지만 내가 방학을 하고 난 다음에 움직이자고 내심 결정한 어머니 덕분에 아직은 이사를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기 위해서라도 이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묘한 아쉬움과 함께 종혁이네로 향했다.
“어머, 시간이 좀 늦었네. 저녁 먹고 들어가.”
라며 나와 주신이를 잡는 종혁이 어머니에게 감사와 함께 사양을 하고 돌아서 집으로 들어왔다.
‘여기도 이제 얼마 안 남은 건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작지만 따뜻했던 집을 바라보면서 저녁준비를 했다. 주신이에게 약속했던 볶음밥을 해주고 어머니 몫으로 남은 밥은 데워 먹을 수 있게 냉장고에 담아두면서 생각을 이어갔다.
“형? 형은 안 먹어?”
“오늘 친구 병문안 갔다가 거기서 이것저것 많이 먹었더니 배가 부르네.”
“어? 나는”
입을 삐죽이는 주신이의 모습에 뒤에 숨겨놨던 봉지를 보이면 짠하고 외쳤다.
“주신이 먹으라고 가져왔지. 그런데 밥 먹어야지 먹는 거다?”
“응.”
밥 먹는 속도가 처음보다 빨라진 것 같은 모습에 무심결에 웃음을 입가에 올리면서 말했다.
“형은 요 앞에서 쓰레기 버리고 올 테니까 밥 먹고 간식 먹고 있어.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지 말고 내일 먹어도 되니까?”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주신이의 머리를 무심결에 쓰다듬으려다 저녁을 먹는 모습에 손을 내려 휴대폰을 집고는 현관문을 열고 골목길에 들어섰다.
어두워진 골목은 멀리서 흘러들 듯 스며든 가로등 불빛으로 겨우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휴대폰을 켜자 푸른빛이 흐른다. 차가운 빛이 내 얼굴도 물들이고 있을까?
‘후···그래도.’
나는 누구에게 하는 변명인지도 모를 말을 대뇌이며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주인입니다.”
수화기 저편 상대방 특유의 반응에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인하사건 어떻게 되어 가나요?”
“음···.”
“잘 부탁드릴게요.”
짧은 통화를 마치고 고민하듯 휴대폰을 뚫어져라 쳐다보지만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저편 이전 통화 상대와 다른 밝고 높은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여보세요. 주신이니? 무슨 일이야?”
“···.”
“지금이라도 올라와서 저녁 같이 먹게?”
쏟아지듯 우르르 던져지는 따뜻한 말에 나는 조금 낮지만,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괜찮아요. 저는 병원에서 먹고 와서 주인이는 볶음밥 해줬어요. 오늘 해준다고 약속했거든요.”
수화기 너머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웃음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저기···옆에 종혁이 있어요?”
“아니?”
내 말에 무슨 감이 온 건지 목소리가 낮아진 종혁이 어머니가 말했다.
“혹시 재단 관련 일이니?”
“네···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재단에 출자한 네 말이라도 이상한 부탁은 안되는 거 알지?”
“아··그런 게 아니라···이번에 지원해주고 있는 인하 말이에요.”
“오···인하···너무 안타까운 일이야. 전해 듣고 깜짝 놀랐지. 그래도 재단에서 지원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런데 이번에 인하가 체육사건 용의자 된 소식은 들으셨죠?”
“그래.”
“인하가 범인이 아니니까 그 사건은 잘 해결될 것 같은데···인하가 사실 체육 때문에 구설수에 올라서 학교에서 좀 안 좋았나 봐요.”
“후···종혁이가 말하는 걸 듣고 너무 화가 나서···.”
“그래서 이번에 용의자가 되었다가 혐의가 풀려도 다시 학교 생활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전학···생각하는 거니?”
‘미안하다 경수야.’
“아니요. 이민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뭐? 네 말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재단이 아직···.”
“이건 제가 미국에 아는 분 통해서 진행해도 되는데···아무래도 제가 지원한다고 하는 것보다는 재단에서 진행했다고 하는 게 더 신빙성 있고 좋을 것 같아서요.”
“이런 이야기는 통화로 하기는···.”
“그···종혁이 없는 자리에서 잠깐 시간 내주시면.”
“굳이?”
“그것도 만나면 설명 드릴게요···경수한테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도저히 오늘은 이야기할 수 없었어요.”
‘도저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지.’
‘인하의 삶을 위해서는 최소한 전학을···인생을 위해서는 이민을 통한 유학까지 생각했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음···네가 허튼 소리하는 아이는 아니니까. 우선 가능한지부터 알아보려는 거지?”
“네. 안되는 일이라면 굳이 말을 꺼낼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부탁드리려고···.”
“그런 일은 언제든지 부탁해도 돼. 단지. 피해자가 도망치는 것 같은 상황이 마음에 안 드네.”
“후···그러네요.”
“그건 네가 한숨을 내쉴 게 아니라 내가 미안해해야지 기성세대인 우리가 잘못이지···.”
인하의 진퇴양난의 상황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하는 종혁이 어머니를 달래며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잘못되었다고 인식한다는 건 변화의 여지라도 있는 겁니다.”
내 말은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한참 울리다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피해자가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로부터 도망가는 게 아닌 피해자가 도움받고 도울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회귀 전에도 가능하지 못했던 일.
내가 변화시킬 수 있을까?
다음날 등굣길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런 내 분위기를 느낀 걸까? 아니면 종혁이조차 많은 생각이 필요한 걸까 우리는 말 없이 같이 걸어갔다.
방학이 점점 다가오면서 교실은 점점 소란스러움이 증폭되고 있었다. 얼굴에 달 꽃이 핀 것처럼 밝은 경수를 보면서 나는 하교 시간이 다 되도록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걸까?
“오늘은 오락실 갔다 갈까?”
“응?”
“이번에 새로 연 곳이 시설이 좋데 펌프도 4대씩 연결해놨다던데?”
“와우··구경이라도 갈까? 펌프 할 줄 알아?”
“음악 듣는 걸 못 봤는데 춤을 추겠냐?”
“그것도 그래?”
“그런데 오늘도 병문안 가야지.”
붉어진 경수의 얼굴을 보면서 오바이트하는 액션을 취하면서 끝에는 웃으면서 종혁이 말했다.
“그러니까 오락실 가자는 거야. 거기 근처에서 떡볶이나 먹고 가야지. 인하도 점심은 먹을 거 아니야?”
“어?”
“어제도 마찬가지잖아. 딱 시간이 점심 먹고 산책이나 휴식할 시간 아니었나? 그러니까 그때쯤 맞춰가야지. 작은 행동이 매너를 만든다 몰라?”
“···.”
이제는 완전히 익어서 볼을 쿡 누르면 터질 것 같은 경수의 주위를 돌면서 놀리는 종혁이와 경수를 보고 있으니 시간은 금방 지나가서 종례시간이 되었다.
“방학이 코 앞이라고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이상한 사람 따라가지 말고···.”
종례라기보다는 요즘 일어난 강력사건 때문에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지침을 읊어 주는 것에 가까웠던 시간이 끝나자 교실에 반 아이들이 쏜살같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