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평범한 삶의 무게4>
병원에 도착하자 우리는 비상계단을 통해서 병원의 옥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외삼촌이 말했다.
“원래는 외부인이 병원 옥상 공원에 오는 건 안되지만···."
“어···외삼촌 곤란해지시면···.”
“나 만나기 위해서 온 조카 친구들을 옥상에 공원처럼 조성된 휴식공간에서 만나는 건 되니까. 나만 아니라 다른 병원 관계자들도 친인척 오면 여기서 이야기 나누거든.”
“아···그럼 저희가 올라와도 괜찮은 거예요?”
“그렇지 나하고 동행한다는 전제하에서”
“병원관계자만 와서 잠깐 쉬는 곳이니까. 동행해서는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 내가 너희 온다고 해서 간식거리를 좀 사 왔는데 올라가서 먹자.”
외삼촌이 한 손에 묵직한 봉지를 들고 있어서 뭔가 했더니 전부 우리에게 줄 간식이었나보다. 그 말에 우리는 삼촌의 손에 들린 봉지를 하나씩 나눠 들고는 옥상 문을 열었다.
끼익.
묵직한 방화문 특유의 소리와 함께 열린 공간은.
“와아···예상하지 못한 광경인데요?”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힘든 광경을 보기 마련이거든. 그래서 이런 휴식공간을 강하게 주장했지.”
“네?”
“너희는 모르겠지만 주인이 외할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이런 좋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거란다.”
“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종혁이와 경수의 놀란 표정을 보면서 나는 묘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들고 있는 봉지 중 가장 무거운 음료가 든 봉지를 외삼촌이 들더니 옥상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간호사들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내 조카가 친구가 걱정돼서 좀 무례하게 군 것 같은데 이거 먹고 기분 풀었으면 좋겠네.”
“아···아니에요. 과장님 그···화를 내거나 그런 게 아니라 몇 번 묻고 만 건데요.”
“그래도 일이 바쁠 때 같은 이야기 몇 번씩이나 하는 게 힘든 일인 건 내가 모르겠나? 하지만 친구가 걱정돼서 잘 모르고 한일이니까 작은 해프닝으로 잊어주게나. 이거 나눠마시고.”
나는 외삼촌의 모습에 나도 뒤따라가서 크게 말했다.
“소란 피워서 죄송했습니다. 친구가 어제 응급실 통해서 입원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해서요.”
“그렇구나···.”
그러자 간호사들이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나와 외삼촌이 있는 곳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그거 기인하환자 아니야? 부모도 안 찾아오는데···.”
“병원비는? 피해자 구제 재단인가? 어디 비영리재단인가라던데?”
“어머···부모도 안 오는데 친구들이 신경 쓰는 거야?”
“그 재단에 연락한 것도 친구들이라는데 오늘 병원에 온 아이들인가보다.”
“아직 어려 보이던데···.”
외삼촌은 뒤돌아서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말했다.
“잘했다.”
“제가 잘못한 건데요. 간호사 누나들이 되는 걸 안 된다고 한 것도 아니고요.”
이런 말을 하는 내 모습이 기특했는지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내 뒤에서 같이 사과 인사를 한 종혁이와 경수를 따뜻한 눈초리로 보던 외삼촌이 말했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샀는데 다 먹지 못하면 챙겨가고···.”
“올라올 때 보니까 묵직하던데요? 뭘 이렇게 사셨어요?”
“한창 클 때는 뭐든지 많이 먹어야지. 영양소 생각해서 종류별로 샀어.”
이런 나와 외삼촌의 모습에 경수가 뒤따라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그런데 인하는···.”
“지금 비밀작전 중이니까. 결과는 조금 후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네?”
어리둥절하는 경수를 놓고 외삼촌은 장난스럽게 웃더니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더니 봉지를 올리고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분명 점심을 방금 전에 먹었는데도 외삼촌의 따뜻한 배려 때문이었을까. 맛있게 간식을 흡입하던 우리는 어어 거리면서 멍청하게 우리가 들어왔던 방화문과 다르게 유리문으로 깔끔하게 열리는 정문을 쳐다봐야 했다.
“인하야···.”
휠체어를 탄 인하가 유리문을 통해서 들어오다가 자신의 이름에 깜짝 놀라서 우리 쪽을 보는 게 눈에 보였다.
‘설마 인하가 이 시간쯤 이곳으로 올 걸 알고 우리를 부른 건가?’
내가 외삼촌을 보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사 온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놀란 표정의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작게 속삭였다.
“면회는 안 되지만, 우연히 만나는 걸 막을 수는 없으니까.”
뛰어가는 경수를 보면서 따라가려는 종혁이를 잡아서 앉히고 질문했다.
“제가 기인하야?”
“어. 너 인하 몰라?”
“···.”
“아 맞다. 전학 와서 잘 모를 수 있겠네. 체육 일 터지고는 너도 일 생겨서 학교에 못 왔으니까.”
당연히 내가 기인하와 구면일 거라고 생각했던 외삼촌은 나와 종혁이의 대화가 흥미로운지 시선은 인하와 경수에게 가 있으면서도 귀는 우리 쪽에 열어놓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종혁이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질문했다.
“왜? 학교에서 유명해?”
“조금···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많이 없는데···.”
“그럼 유명한 게 이상한 거 아니야? 말 없고 내성적이면.”
“그런데 귀엽잖아.”
“어?”
내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제야 무언가 불편했던 마음이 풀린건 지 종혁이 말했다.
“그런 소문에 참 무감각하다 싶은 게 너답기는 하는데···.”
“예쁘다고 소문난 거야?”
“예쁘기는 지혜가 귀엽기로는 인하가?”
“뭐?”
내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외삼촌이 짓궂게 웃더니 끼어들면서 물어봤다.
“뭐지? 방금 반응을 보면···.”
“지혜가 주인이 좋다고 고백했거든요.”
“아니에요. 야, 너 어디서 그런 유언비어 퍼트리고 다니지 말아라. 그냥 관심이 좀 있다고 말한 거지.”
“그게 그거 아니야?”
“엄연히 다르거든?”
그런 우리 모습에 외삼촌이 웃어버리다가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 급하게 일어나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와 종혁이는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외삼촌의 굳은 표정에 놀라서 반사적으로 같이 향하기 시작했다.
“어···울지마···미안 내가 와서 그래?”
외삼촌이 향한 곳은 기인하와 경수가 있던 장소였다. 인하가 울기 시작하자 몸에 이상이 있는 줄 알고 급하게 향한 것 같았다. 그러다가 멈칫한 모습에 나와 종혁이도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급하게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익숙해지지 않는 두통과 함께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아찔한 괴리를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속 장면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과 멀리서 들리는 듯한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흐릿한 시야에 들리는 건 흐느끼는 듯한 음성뿐이었다.
“싫어···싫어···.”
‘이거 인하 목소리인가?’
의문을 가지기 무섭게 사무적인 음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당신을 한영철 살인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불리한 진술은 거부할 수 있습니다.”
‘철컥철컥···.’
싫다고 외치는 인하를 잡아 누르면서 침대와 인하의 손목을 얽매는 은색의 쇠고랑···
‘설마···수갑이야?’
그 뒤를 이어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다급한 의사의 말이 들렸다.
“환자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지 않습니까.”
“정신 차렸으니 체포하는 겁니다.”
“아직 환자입니다.”
“치료받을 때까지 취조는 미룰 겁니다.”
“아니···이 사람들이···.”
“정당하게 체포영장 발부받았습니다.”
“그래도 아직 어린 환자에게···.”
“그쪽이 요청한 절차 다 받고 온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냉랭하거나 강압적이지 않은 그저 사무적인 목소리와 함께 형사들이 나갔다. 병실 앞을 지키고 있는 경관에게 주의를 주더니 이내 사라졌다. 의사는 걱정스럽다는 듯 인하를 보더니 간호사를 호출했다.
간호사는 익숙하다는 듯 인하를 향해 다가가 진정시키게 하더니 인하는 병실에 혼자 남겨졌다.
“싫어···.”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인하를 진정시키던 간호사가 들어와 병실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인하를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인하 학생을 찾아온 친구들이 있어요. 면회 괜찮아요?”
인하는 간호사를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시선을 떨구며 자신의 손목 한쪽에 자리잡은 수갑을 한참 보더니 힘겹게 말했다.
“싫어···싫··어요.”
그런 인하를 한참 물끄러미 보던 간호사가 인하의 손을 꾹 잡더니 말했다.
“인하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해요.”
아찔한 감각과 함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들리던 대화가 엿가락처럼 느려지면서 감각이 점차 따뜻한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옥상에 조성된 공원 한가운데 차가운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표정이 안 좋은 경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종혁이가 보인다.
‘설마···인하는···.’
울고 있는 인하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경수가 자신이 무슨 말을 말하는지도 모르고 말하는 게 느껴졌다.
“어···울지마···미안 갈까? 미안해 면회도 거절했는데 내가···.”
인하가 들어왔던 유리문 밖에서 이런 소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감하게 우리를 감시하듯 보고 있는 형사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경수 너 인하가 살인자라고 의심해?”
갑작스러운 내 말에 경수가 인하 앞에서 쩔쩔매던 게 거짓말처럼 내 멱살을 잡더니 말했다.
“뭐? 미쳤어. 인하가 그럴 리가 없잖아.”
경수를 보고 나서 말 한마디 없이 눈물만 보이던 인하가 힘겹게 우리를 돌아보더니 입을 막고 작은 목소리를 냈다.
“···정말··?”
아주 작아서 정말 집중하고 있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정도의 목소리였지만 경수는 그 말을 듣더니 인하가 울음을 멈춘 걸 알고 인하를 돌아봤다. 그리고 허탈하다는 듯 말했다.
“너를 살인자로 생각할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올 이유도 없고···.”
인하는 추운 건지 부끄러운 건지 모를 표정을 짓더니 무릎을 덮어놓은 담요로 손목을 가렸다. 그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경수가 한달음에 인하에게 다가가자 놀란 듯 움찔하더니 말했다.
“다들 나한테 살인했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정·····말··?”
“그래.”
“나···사실 그날 기억이 없어···응급실도 어떻게 온 건지 모르겠어서···나도··나를···.”
“넌 절대 그럴 애가 아니야.”
인하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수는 방금 전처럼 안절부절못하기만 하고 있었다. 그제야 끼어든 외삼촌은 인하의 상태를 살피더니 말했다.
“지금 심신이 전부 지친 상태여서 탈수가 올 수도 있으니까 우선 병실로 옮기도록···.”
외삼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하의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던 간호사가 인하를 데리고 병실로 가려고 하자 외삼촌이 나를 향해 웃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병실은 면회가 허락된 사람이 아니면 갈 수가 없으니 너희는 여기에 있고···.”
외삼촌은 인하의 휠체어를 잡고 돌아가려는 간호사의 행동을 손짓으로 늦추더니 일부러 끝말을 흐렸다. 그러자 인하의 입에서 아주 작아서 집중하고 있어야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면회···아직 되면···.”
뒤에서 휠체어를 잡고 있던 간호사가 인하의 앞에 몸을 낮추면서 시선을 맞추더니 다시 한번 물어봤다.
“인하 학생을 찾아온 친구들이 있어요. 면회 괜찮아요?”
인하는 창백할 정도의 흰 피부에 연한 홍조를 띄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 인하를 한참 보던 간호사가 입가에 웃음을 띠더니 인하의 손을 꾹 잡으면서 말했다.
“인하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해요.”
그래서 우리는 원하던 목적인 인하의 병실로 면회를 갈 수 있게 되었다.
‘면회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