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생명의 무게>
바비큐 파티의 여파로 속이 더부룩했지만 나는 소화제를 하나 먹고 그대로 머리를 베개에 뉘었다.
어두워진 반지하 방의 불이 꺼졌다.
‘대백공.’
나는 대백공을 만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체육이 살인을 당하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내가 원하는 결과는 아니지만···
‘아니···사실은 체육이 죽기를 바랐을지도 몰라.’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억지로 눈을 붙이고 잠이 들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나는 새벽녘까지 잠을 설치다가 나도 모르게 설핏 눈이 감겼다고 느낀 순간.
“허어···시간이 부족하구나.”
익숙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대백공과 만나자 듣는 첫마디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어린 친구 자네에게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지. 참으로 선재라···.”
그런 말씀 하실 시간에 설명해달라는 말이 목구멍 밑까지 올라왔지만, 다행히 참을 수 있었다.
급한 마음에 나는 걱정되는 일을 가장 먼저 꺼냈다.
“오늘 저 때문에 죽지 않았을지도 모를 사람이 한 명 죽었습니다.”
대백공은 만남 때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나의 눈을 직시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 만남에서는 다가오지도 눈을 직시하지도 않고 그저 오두막 앞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대백공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봤지만 대백공의 공간에서 보이는 하늘을 뿌옇게 무언가 가린 듯 내 시선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백공은 그런 하늘을 한참 보고 서 있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전에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고 있나?”
“일전이라면···?”
“제물을 바치면 내가 인과를 벗어나 큰 보상을 줄 수 있다고 했던 말. 즉, 인신 공양에 대한 것을 말일세···.”
나는 당혹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인신 공양이나 제물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런···전···.”
“물론 자네가 원하고 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 말씀은···.”
“이것 또한 하늘이 뜻한 바가 있겠지. 선재라···자네가 이번에 얻게 된 특이점 아니 공양을 통해서 자네의 육체 강화 술법은 나의 지기가 닫지 않는 곳에서도 발동될걸세.”
“그럼 어르신의 지기가 닫지 않는 곳에서는 술법이 발동 안 되는 건가요?”
“당연한 것을···어린 친구가 이해할만한 언어로 표현하자면 음···휴대폰이 있더라도 충전을 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의 술법이 풀리지 않더라도 지기가 부족하다면 사용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네.”
“그럼 지기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크게 다치게 되면 재생할 틈도 없이 죽을 수도 있다는···.”
“그렇지.”
“그런···.”
“서로의 이해가 부족했던 건 아쉽지만 그것도 어떻게 보면 하늘의 뜻이겠지. 이렇듯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술법을 강화하게 되었으니 말일세.”
“육체 강화는 말고 다른 술법을 강화하는 건 안 되는 겁니까?”
“그러기에는 자네가 이번에 공양해온 생명력이 쉽게 말해서 품질이 좋지 않다네.”
“네?”
“왜 인신 공양이 무섭고 추악한지 아는가?”
“···.”
“죄 없고 어린 양일수록 인신 공양을 통해 얻는 생명력이 더욱 깨끗하고 강하지. 이번에 들어온 한영철의 생명력은 더럽고 추악하게 얼룩진 폐품이나 마찬가지야.”
“그럼 어떻게 육체 강화 술법을 강화하는데···쓰일 수 있는 거죠?”
“생명력이란 아무리 더럽고 추악하게 얼룩지더라도 그 근원이 순수한 생이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작지 않다네. 결국, 한영철의 죽음으로 더 피해자가 늘지 않게 됨으로써 그 피해자들의 삶이 밝아짐에 따른 특이점도 생겼을 정도로 말일세.”
“결국···아무리 더럽혀진 사람이라도 그 생명력의 영향이 적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것일세.”
“그건 무슨 말씀인가요?”
“쉽게 힘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되는 인간들의 행태를 나는 오랜 세월 봐왔다네. 그렇기에 어린 친구 자네에게 진정 충고하지. 쉽게 얻게 되는 것은 타락하기 쉽다네.”
“타락이요?”
“인신 공양을 즐기던 강력했던 존재들이 왜 현재에 자취를 감췄다고 생각하나?”
“제물. 즉 인신 공양을 받은 대가를 생각 없이 뿌린 존재들은···. 그 대가로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잠들어버렸다고···.”
“잠들었다는 건 깨어날 수도 있다는 걸세.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어떻게 변했을지는···짐작조차 할 수 없다네.”
“타락했다는 말씀인가요?”
“···허어···선재라···.”
“언급하기 곤란하시면 다른 궁금한 점을 물어봐도 될까요?”
“허허···그래 질문하게.”
“재생이라는 술법은 다른 이의 생을 살림으로써 그 능력의 폭이 커지는 술법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 체육 아니 한영철이 살인 당하게 됨으로써 그 능력치가 작아지게 되는 건가요?”
“선재라···.”
말하기 곤란해하는 대백공의 모습에서도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대답을 듣기 위해 기다렸다.
“자네가 살해한 게 아닌 이상 재생의 술법은···오히려 더 강해졌다네.”
“네? 유지가 아닌 술법이 강화되었다고요?”
“재생이란 술법은 다른 이의 삶에 영향을 미쳤을 때 그 영향력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것일세. 그런데 한영철은 타인의 삶을 지옥을 만드는 이었지.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낸 생령의 숫자만해도···거기다 그가 이번 사건만으로 멈췄을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요. 성범죄는 재범률이 높다고 들었어요. 특히나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범죄는···.”
“그렇기에 한영철이 죽음으로 앞으로 피어날 삶들이 더 많다네.”
“네?”
“성범죄를 당한 이들이 평범한 이들처럼 일상적인 삶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기인하가 학교에서 은근히 따돌림당했다는 사실을 분통을 터트리며 말하던 경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요.”
“일상적인 삶이 불가능하지. 생령이 되어버리고 만다네.”
“그 말씀은···.”
“한 명의 범죄자가 만들어내는 삶의 파괴가 도를 넘었으니 그 범죄자가 죽음으로 얻게 되는 삶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재생의 술법은 오히려 강화되었다네. 자네의 외할아버지 덕분에 지기가 강화된 둔방 서운 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받는다면 가히 불사나 다름없을 정도지.”
“···.”
놀란 표정으로 멍한 나를 지긋이 보던 대백공이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고 싶지 않았다네. 자네 입장에서는 인간사 쓰레기만 만들어내는 범죄자들을 직접 처단하지 않아도 죽음의 위기로 밀어 넣기만 해도 얻게 되는 술법 강화와 더불어 쌓이는 특이점만 제대로 활용해도 평생을 영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을···.”
“그 말씀은 체육 아니 한영철 같은 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술법은 더 강화되고 쌓게 되는 특이점을 통해서 제 삶은 더 평안해진다는 건가요?”
대백공은 내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언급했다.
“죄인들이 제대로 된 형벌을 받지 못한다면 그 또한 기울어진 흐름이라네. 그렇기에 이번 자네의 행동으로 자네 입장에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일세. 하지만, 죄인의 형벌의 기준은 인간의 잣대로 평하기 어려운 법.”
“그럼 이번 일은 제가 운이 좋게 체육 아니 한영철의 형벌의 기준에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셀 수 없는 어린아이들을 유린하고 그 가족을 깨뜨리고 빛나게 밝을 미래를 짓밟혔는데 인간의 기준으로 형의 집행이 되지 않았으니. 그 죄악에 따른 울부짖음이 땅을 울리고 하늘에 닫게 되면 심판받아야 마땅하지.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으로 자네에게 불이익이 없는 거라네.”
“운이 좋았다는 말씀인가요?”
”인간은···살인자가 되면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네.”
“그럼 제가 살인자가 된 건가요?”
“흐음···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인간들 모두를 예비 살인마라고 하지는 않지 않나? 죄인들이 제대로 된 형벌을 받지 못한다면 그 또한 기울어진 흐름이라네. 그렇기에 죄인에게 제대로 된 징벌을 받도록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것뿐이니···.”
“그럼 무엇을···그렇게 고심하시는 건가요?”
“어린 친구 자네를 걱정하는 것일세. 쉽게 얻은 힘은 타락하기 쉽다네.”
“제가 여기서 ‘전 타락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해봐야 의미가 없겠죠?”
“인간의 입은 화를 부르지. 말로 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걸세.”
대백공이 이렇게 걱정하는 걸 보면 술법을 걸어주는 건 대백공이 할 수 있지만 이미 발동된 술법은 술법을 건 대백공조차 임의적으로 약화시키거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하는 건 불가능한 거다. 그렇기에 내가 힘에 취해서 타락하는 걸 걱정 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 표정의 대백공을 뒤로하고 나는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가장 묻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 하지만 결국 물어볼 수밖에 없는 질문.
“저와 같은···계약자들이 또 있습니까?”
“없다네.”
이제까지 물어보기를 주저하면서 걱정했던 게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나의 안도가 채 식기도 전에 대백공이 말을 이어갔다.
“나에게 계약자는 자네 밖에 없지.”
나는 대백공의 말을 곱씹다가 결국 다시 질문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이 땅의 행복지수가 낮은 것 그리고 자살률이 세계에서 수위로 높은 이유가 있겠지···. 그 죄의 원성이 땅을 짓밟고 하늘을 떨치며 모든 이의 원망을 받아도 잘 먹고 잘 사는 이들이 있는 이유도 있겠지···. 대가 없는 힘에 취해 세상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도 힘을 취한 자들은 결코 힘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아.”
“설마···.”
“어린 친구···시간이 부족하다고 한 건 이 때문이네. 인신 공양을 받는 자들 대가 없는 힘을 편취 하는 자들의 끝은 세상이 사라진다는 즉, 멸망이라고 했던 말 기억하나?”
“네···.”
“자네가 말해준 인간의 필멸자의 근시안적인 부분을 잘 보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에 세상을 좀 둘러봤다네.”
“그 말씀은···.”
“시간이 부족하구먼···허허···태풍이 몰아치고 끝을 알 수 없는 산불이 올라오고 매캐한 화산재가 날아다니는 시간을 둘러보고 왔지···.”
“설마···.”
“대가 없는 힘을 사용으로 찰나는 기쁠지 몰라도 결국 그 끝은 멸망으로 향하는 것이니···다만, 죄 없는 자들도 같이 가는 것에 측은지심이 드는구나···.”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