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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51화 (51/205)

<51화 김 씨 아저씨>

김 씨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천 사장의 손자를 보면서 감회를 느꼈다.

‘결국···나는 늦어 버린 건가?’

천 사장의 시선과 같은 시선을 받으면서 뒤돌아 걸어오는 동안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등허리가 뜨겁다.

‘이름이 남주인이라고 했던가?’

범죄와 관련된 의뢰는 받지 않는다고 하자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기 있는 개구진 표정으로 바뀌는 건···

‘천 사장과 닮은···건가?’

천 사장의 첫 의뢰가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지만 남을 위해 의뢰를 하는 조손의 모습에 입가에 쓴 웃음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가 목표물이 사는 곳인가?’

목표물인 백신중학교 체육 교사 한영철이 사는 집이 잘 내려다보이는 위치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20명 넘는 미성년자 유인 강간 협박 대충 그 정도인가?

이런 놈을 미성년자 강간조차도 친고죄라는 이유로

합의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로 풀어준다는 건가?

내가 지키려고 했던 대한민국이···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쓸데없는 상념만 늘어가는 것 같다.

김 씨는 천 사장의 손자를 통해서 체육 교사의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도 있었지만, 지금부터 하는 작업이 천 사장의 손자와 연관되는 게 싫었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직접 알아낼 생각이었다.

‘낚싯줄만 제대로 내려두면 굳이 내가 할 일이 없기도 하지만···.’

그는 체육 교사의 집을 내려다보다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밤하늘 어디론가 녹아들어 깊은 어둠에 스며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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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 앞은 평소와 같이 한산했다. 방금 전 우리가 겪었던 소란이 전혀 거짓말인 것처럼 나는 파출소가 잘 보이는 위치를 잡고 벤치에 앉았다.

“으아···다 좋은데 너무 추운 거 아니냐?”

“그러게 허 순경 기다리다가 동태 되겠다.”

“누구 기다리는데”

“허 순경 말이야.”

“아···그래?”

경수는 이내 무언가 잘못된 걸 깨달았는지 뒤돌아봤고 그 뒤로 허 순경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웃고 있지만 웃지 않는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미안 뒤에 오는 걸 알았는데 말하기도 전에 도착해서.’

딱딱하게 굳은 경수를 밀치고 종혁이가 허 순경 앞에 보온병을 내밀었다.

“이건?”

“어머니가 식사 대접해야 하는데 바쁘실 테니 보답이라고 홍삼즙 내린 거 제 편으로 보내셨어요.”

“이 귀한걸···.”

“어제 점심 맛있었다고 주신이도 그래요. 엄마가 자장면 같은 외식 못 하게 하거든요.”

“나도 너희 덕분에 오랜만에 즐겁게 밖에서 먹었다. 아니면 보통 파출소에서 간단하게 때우거든. 오늘도 컵라면이나 먹지 않을까 했는데 홍삼즙으로 기운이 좀 나겠는걸?”

“오다가 봤는데 안남산 둘레길에 무슨 일 생긴 거예요?”

“그게···.”

허 순경이 답하기 곤란하다는 듯한 낯을 하자 종혁이가 보온병을 꽉 잡고 내가 구원 투수하듯 질문을 던졌다.

“지나가다 들었는데 기자가 백신중학교 체육 교사가 피해자 맞냐고 묻는 거 들었는데 체육이 피해자면 내일 학교가면 다 알 걸요?”

“하아.”

허 순경이 한숨을 내쉬더니 홍삼즙이 든 보온병을 챙겨 들고는 우리를 몰아내듯 파출소 앞에서 벗어나 도서관 뒤편으로 향했다. 우리는 눈치를 보면서 우물쭈물 허 순경의 뒤를 따라갔고 도착하자 허 순경이 머리에 손을 올리고 고심하듯 말했다.

“지나가다가 다 들은 것 같으니까 말하는 건데 피해자는 백신중학교 체육 교사가 맞아 아무래도 그 교사 아니 교사라고 말하기에 그 단어가 아깝지만 어쨌든 그놈이 피해자인 건 맞는데 아무래도 나쁜 짓을 한 게 많아서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 아닐까 해. 그래서 이전에 그 남자한테 피해당한 피해자들 동선을 추적했는데 대부분 학생이어서 바로 확인됐거든.”

“그럼 금방 잡겠네요.”

‘혹시 김 씨 아저씨가? 아니지···. 불법적인 일은 안 한다고 나한테 경고까지 미리 한 사람인데?’

내가 잠시 김 씨 아저씨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동안 허 순경은 고민을 끝냈는지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오늘 취재 온 기자가 기사로 실을 것 같으니까 말하는 건데···난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서···.”

“무슨 일 있어요?”

“보통 형사들이 살인사건이 나면 금전 문제나 원한 관계 아니면 치정 문제 위주로 보거든···그런데 이 세 가지가 같이 걸린 용의자가···.”

“용의자가?”

“중학교 여학생으로 보더라고 그게 말이나 되냐? 아무리 그 세 가지가 요인이 겹친다고 해도 그렇지.”

“뭐 그런···범인 정하고 수사하는 거예요?”

“베테랑 수사관이라고 하는데 하는 게 꼭 사람 협박하는 것만 할 줄 하는 깡패 같은 사람이라서 나도 같은 경찰이지만···.”

“뭘 걱정하는지 알겠어요. 그리고 저희한테 언급하기 어려울 텐데 이렇게 말씀하는 이유도요.”

허 순경이 하늘을 보면서 딴짓을 했지만 난 경수에게 질문했다.

“너 우리 학교에 체육 피해자 한 명 안다고 했지.”

“응, 오늘도 학교에서 마주쳤는데 얼굴이 창백한 게 아파 보이더라. 손에 피도 나고.”

“우리 학교 피해자는 걔뿐인 거야?”

“나도 듣기만 했는데 현진이가 소식통이잖아? 그래서 걔만 유독 체육 그렇게 싫어했잖아 다들 친구같이 친하게 대해줘서 좋아했는데···.”

“현진이가 말해준 거야?”

“이전에 여자중학교에서 피해자들 발생해서 강제 전근 온 게 우리 학교래. 아마 사이고 하고 인하하고 그렇게 둘로 알고 있어. 물론 말하지 않은 피해자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인하는 어떻게 알려진 거야? 체육 집행유예로 나온 걸 보면 다른 사람들은 다 합의한 것 같은데.”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던가 봐. 인하네 집 아버지가 좀 무서운 사람이라고 동네에 소문났거든. 아버지가 무서워서 신고도 못 한 거겠지. 그런데 사이고하고 친하게 지내던 애들이 알게 모르게 소문내서 떠들썩 해진 거지.”

“그래서···.”

“왜?”

“좀···약간 은근히 따돌리는 느낌이 들더라고.”

“학교하고 부모 영향이지. 학교에서도 쉬쉬하고 체육 집행유예로 끝났으니깐 이번에도 조용히 전근이나 시키려고 하는 거겠지. 부모야 그런 애들하고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했을 거고.”

“피해자는 인하인데···.”

“그래서 다 합의했는데 그 아이만 아직 합의가 안돼서 용의자로 몰린 거구나···.”

“그렇지만 인하는 그럴 아이가 아니에요.”

“인하 아버지가 폭력적이라면 우발적으로 그런···.”

“인하 아버지가 그 정도로 인하를 생각했다면 매일같이 때리지는 않겠죠.”

“뭐?”

“나도 중간에 이사 간 참이라 잘 몰랐는데 이번 일이 커지면서 소문나니까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거 들었는데 인하 아버지가 주변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잘해도 자기 아내하고 딸을 짐승 다루듯 패고 그랬다고 하더라. 그 말 듣는데···속에서···.”

“그런···가족의 보살핌에서 외면받은 아이를 일부러 노리고 목표한 거겠지. 주변에 어른이 없으니까 피해자가 되어도 신고하기 어렵다는 걸 노린 거야. 정말 그런 쓰레기가···.”

허 순경과 우리는 잠시 체육에 대한 분노로 말을 잇지 못했지만, 경수가 초조하게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우선 인하네 집으로 가봐야겠어.”

대답은 생각지도 못하게 허 순경이 해주었다.

“거기에 없는 건 확인돼서···.”

우리가 의아하게 생각하며 동시에 허 순경을 바라보자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집에서 벗어나서 길에서 상처투성이 상태로 지나가던 걸 시민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다고 해. 그 신고를 접수했던 기록 때문에 형사들이 더 빨리 용의자로 특정하고 바로 달려갔거든. 그래서 현장도 빨리 철수 조치했고···.”

“현장조사가 이렇게 빨리 끝나요? 산인데?”

“그래서 현장 보호조치만 해놓고 주변 경계 서던 순경들은 돌려보내더라고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지.”

그러면 안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과 아직 순경인 처지에 지시를 받으면 받는 데로 해야 한다는 직책인 상황에서 곤혹스러워하는 허 순경의 마음이 전해졌다. 동시에···

“피해자 지원 재단에 대해서 저번에 식당에서 말했던 것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언급한 거죠?”

“···후···아무래도 난 그 아이가 용의자라고 해도 그렇게···막무가내로 취조하는 건···피해자이기도 하잖니?”

“종혁아, 어머니가 진행하던 재단설립은 다 끝난 거야?”

“설립식을 크게 하겠다고 마무리 준비하는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정확한 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럼 종혁이 어머니한테 우선 연락하고 우리는 인하가 있다는 병원에 가보자.”

“병원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형이 말해준 데로 강압 수사가 진행되는 걸 최대한 막아봐야지.”

“우리가?”

“지켜보는 눈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조심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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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종혁이 어머니의 빠른 일 처리로 재단설립은 끝나있는 상태였다. 다만, 내가 언급한 것에 더해 재단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 이번 연말에 큰 규모의 기부모임을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둔방 서운 대학병원에 도착하자 응급실에 막무가내로 진입하려는 형사들 앞에서 다투고 있는 외삼촌을 만날 수 있었다.

‘허 순경에게 병원 이름을 들었을 때 외삼촌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반가움 반 당혹감 반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해 내면서 외삼촌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들리는 소리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여긴 응급실이라고요.”

“지금 공권력 행사를 방해하시는 겁니까?”

“지금 의식도 없는 환자입니다.”

“긴급체포입니다. 우리도 경찰서로 끌고 갈 생각은 없어요. 수갑만 우선 채우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외삼촌이 형사들과 대치하는 장면을 보고 발걸음을 빠르게 하는 중에 그런 대치에 끼어드는 양복 입은 남자의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형사분이시죠? 전 기인하 학생 변호사입니다. 우선 인하 학생의 상세를 생각해서 밖에서 이야기 나누시죠.”

다행히 우리가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종혁이 어머니가 빠르게 조치를 취해서 피해자 지원 재단을 통해 변호사가 도착한 것 같았다.

변호사가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자 형사들이 이제까지 강하게 몰아쳤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낯이 변하면서 조용히 대화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사건 끝낼 욕심만 넘치는 군.’

내가 속으로 비판하면서도 경찰에 대한 불신과 동시에 무언가 바꾸기 위해서는 안에서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고심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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