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피해자의 하루>
끼이익.
거친 철문 소리와 함께 어두운 시야 사이로 작은 몸집의 학생으로 모이는 인형이 조심스럽게 대문 밖을 살피고 한 발자국씩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오래된 철문 특유의 시끄러운 마찰음이 최대한 귀에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닫는다고 닫지만 이 소리에도 깜짝 놀란 듯 작은 몸집의 학생으로 보이는 인형은 다시 한번 대문을 살핀다.
‘괜찮아···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어.’
인적없는 다세대 골목길을 희미한 샛별에 의지한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첫차도 다니지 않을 시간 아무도 없는 길이 다행이라는 듯 최대한 천천히 걸어가지만, 학교 정문에 도착해도 아직 교문은 열리지 않은 상태이다.
똑똑.
작고 작은 소리에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되지만 익숙하다는 듯 경비초소의 문이 열리고 초로의 경비아저씨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학생 너무 일찍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쯧쯧.
혀를 몇 번 찬 경비 아저씨가 교문 옆의 작은 문을 열어주자 그제야 교실로 향한 작은 형체가 교실문이 열리고 전등이 몇 번 깜빡이고 밝아진 후에야 확인 가능했다. 작고 너무 작아서 곧 세상에서 사라질듯한 어린 소녀의 눈망울은 빛 한 점 없이 어두울 뿐이었다.
무언가 그녀의 마음을 옥죄고 갈가리 찢어버린 듯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소녀가 바라보는 곳은 칠판 어제 당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번 활동을 하던 소녀가 마지막까지 남아서 지웠다고 생각했던 칠판에는 가슴에 새겨질듯한 문구가 잔인하게 적혀있다.
꺼져!
더럽다.
체육선생님 사랑해요.
기인하 ××년.
어디서 역겨운 냄새 나지 않니?
익숙한 손길로 칠판에 진하게 새겨진 분필 자국을 지우지만 마음에 새겨진 글자들은 지워지지 않고 작은 소녀의 발걸음을 점점 무겁게 한다.
교실정리가 끝나고 그제야 앉은 자신의 자리는 칠판에 적힌 문구가 우습게 느껴지는 문구가 새겨져 있지만, 며칠 전부터 지우는 걸 포기하고 그 위를 덮을 천을 가져왔다. 서랍에 손을 넣어 천을 꺼내려고 하지만···
“앗!”
급하게 손을 뺀 소녀의 검지는 이미 할퀴듯 베어져 붉은색 피를 뿌리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손가락을 입에 물고 다시는 올라오는 울음을 삼키는 작은 소녀는 붉은 피가 떨어진 책상을 등지고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간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어.’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난 더러운 거야?’
‘아빠가 너무 무서워서···아파서 상담한 건데···.’
‘나도 체육 선생님 좋아했어···.’
‘내가 선생님 좋아했으니깐···그런 일이 생긴 게 내 잘못인 걸까?’
‘집에 가고 싶지 않아서···집은 무서워···.’
‘학교에 일찍 오고 늦게 간다고 다른 선생님들은 날 싫어했는데 유일하게 날 도와준 선생님이 체육 선생님이었는데···그랬는데···.’
‘역시 내가 잘못한 걸까?’
‘난 싫다고 했는데···.’
‘나만 없으면 다 해결된다고···.’
‘나만 없으면······.’
수업 종이 울리고 교실에 학생들이 들어와 온기가 느껴질 때까지 그리고 출석을 체크 하면서도 아무도 작은 소녀의 부재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저 학교를 떠도는 망령처럼 걸어 다녀도 아무도 작은 소녀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눈물이 앞을 가릴 때 따뜻한 손 하나가 나타나 그녀를 부축해 줬다.
“너···괜찮아?”
“···?”
“손에서 피나잖아.”
“······.”
“피 계속 나는데···지혈해야 하는 거 아냐?”
마음이 너무 아파서였을까? 그녀는 베인 손가락에서 계속 출혈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내가 지금 대일밴드 밖에 없어서.”
서툰 손놀림으로 따뜻한 손이 그녀의 차가운 손을 감싸자 그녀는 아릿한 마음과 함께 타인의 따뜻한 체온을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기묘한 울렁거림을 느껴야만 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오해한 걸까?
“아?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그런데 피가 멈추질 않아서. 급한 대로 붙였는데···제대로 한 건지 모르겠다. 양호실 가봐야지 않아?”
그녀는 입이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을 도와준 소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시선이 소년의 명찰로 향했다.
“ㅂ···박···경수?”
“아?”
소년이 당황한 듯 갑작스러운 그녀의 목소리에 시선을 따라가다 명찰을 보곤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응 경수야 내 이름. 너하고 같은 동네 사는데 어떻게 한 번도 마주치질 못했네. 여기는 남자반 있는 복도인데 교무실 가려고 한 거야?”
“···.”
아무런 말도 못 하는 그녀를 보던 소년은 당혹스럽다는 듯 머리를 극적이더니 이내 자신이 생각해도 맥락 없는 말을 하면서 주머니에서 꺼낸 사탕을 그녀의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소년의 따뜻한 체온이 전달된 듯 약간 끈적이는 듯한 사탕은 그녀의 손마저 따뜻하게 만들겠다는 듯 달콤한 끈적거림을 전해줬다.
“아···그게 너 뭐라도 좀···먹어야 할 거 같아서 친구 동생 준다고 넣어두고 까먹은 건데···아···.그렇다고 막 오래되고 그런 건 아니고 조금 녹아서 껍질이 잘 안 벗겨지기는 하는데···맛있어. 땅콩 맛인데 혹시 땅콩 알레르기 있어?”
“아··아니···.”
“그···이상한 거 아니고···그러니까···.”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어내리는 소년의 모습에 왜인지 용기가 난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누군가 따뜻하게 자신을 지켜본다는 믿음에 말할 수 있었다.
“···고마워.”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했다. 그녀는 이 작은 사탕 하나가 그녀의 무거운 발걸음을 녹여주는 열쇠 같았다. 손에 꼭 쥔 상태에서 다시 한번 말했다.
“고마워.”
“···응.”
처음과 달리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소년은 이내 작게 대답하고는 숨듯이 달아나듯 사라지고 말았다. 그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던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집으로 일찍 향했다.
‘오늘은 어쩌면 다를지도 몰라.’
손에 쥔 끈적한 사탕이 그녀의 마음에 녹아들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골목길 두리번거리면서 낮에 봤던 소년의 뒷모습을 그려보지만 이내 고개를 세게 흔들고는 낡은 철문 앞에서 긴장한 듯 손을 문지르더니 단번에 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기 무섭게 대문 쪽으로 날라온 무언가를 보고 기겁한 그녀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미친년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챵.
대문에 맞아 깨진 병 조각이 그녀의 주변을 수놓았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위급한 상황에 주변이 칼날 같은 유리 조각으로 둘러싸인 그녀의 모습을 그리듯.
“아빠···.”
“아빠라고 부르지도 마···이 ×년 내 딸이 몸을 팔고 다닌다고?”
“아니야··그런 거···.”
“그런 게 아니면 왜 합의하자고 온 덩치 큰 놈이 그렇게 말하는데”
“그건 거짓····말··.”
“지 애미 닮아서···.”
“아니···아니라고 엄마는 아빠가 때려서 도망간 거잖아.”
“이년이?”
평소 같은 모습으로 술 냄새를 풍기는 아버지라는 사람의 행태를 익숙하다는 듯 몸을 말고 방어하듯 막아낸다. 하지만 주변에 떨어진 유리 조각에 평소와 다른 출혈에 그녀는 머리가 어질하고 말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의 눈에 빛이 돌았다.
‘아···이제 편해지는 건가?’
그런데 그녀의 주머니에서 굴러나온 사탕 하나가 그녀의 마음에 흔들리게 했다.
‘······내일 보답으로 초콜릿 가져다주고 싶었는데···.’
그녀가 평소와 다르게 일찍 집에 온 이유였다.
집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몰래 챙겨준 용돈이 숨겨진 다이어리가 있었다.
학교에서 늦게 오고 집에서 일찍 나오느라···한 번도 제대로 용돈을 사용해 본 적 없어서 그녀의 어머니가 미안한 마음에 두고 나간 그녀의 용돈은 어머니가 사라진 후 한 번도 줄어든 적 없었다.
‘엄마가 좋아했던 사탕···한 번도 남한테 받아본 적 없는데···.’
그녀가 붉게 물든 팔을 힘겹게 뻗어서 굴러떨어진 사탕을 움켜쥐자 그 모습에 더 흥분한 듯 분풀이를 하다가 마당을 점점이 물든 붉은색 피와 코 끝에 맴도는 피 냄새에 정신을 차린 듯 그녀의 아버지가 방에서 겨울 외투를 들고는 마당에 해당화처럼 붉게 물든 그녀를 못 본 척 급하게 집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녀는 점점 희미해지는 시야 사이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녀에게 남은 의지는 단 하나.
‘초콜릿···사야···.’
그녀의 수중에 한 푼의 돈도 없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피 흘리는 모습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골목을 흔들거리는 신형으로 맥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해가 져가는 골목길은 붉게 물들어 그녀가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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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뽀삐뽀.
그런 그녀를 발견한 듯 구급차가 그녀를 병원으로 이송한 직후 치료가 끝나기 무섭게 소란스러운 소음과 함께 의사와 마주친 경찰의 외침을 들으며 그녀는 기절하듯 눈을 감고 말았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여긴 응급실이라고요.”
“여기에 기인하라는 환자가 들어왔다고 들었는데요.”
“그 여학생이라면 방금 진료 끝나고 나온 길입니다만···무슨 일이시죠?”
“긴급체포입니다.”
“네?”
“무슨 일로 긴급체포까지 합니까? 그 여학생은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상태에요.”
“살인사건입니다.”
"살인사건이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지금 공권력 행사를 방해하시는 겁니까?”
“방해라니요. 제대로 행사해야 방해 운운하는 거죠. 지금 저 여학생은 이제까지 오래된 학대로 의심되는 폭력에 노출되어서 서 있는 것도 못 할 상태입니다. 그런데 살인이라뇨?”
“그건 언제 폭행이 행사되었는지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우선 신병부터 확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