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용감한 시민상 4>
“김 씨 아저씨?”
“아네···제가 일이 있어서 김 씨 아저씨 연락을 못 받았네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큰일이기 한데 다행히 잘 해결돼서···.”
“무슨 일이냐고요? 그게···.”
“말하기 곤란한 건 아니고요. 꼭 제 자랑하는 것 같아서 음···눈앞에서 동생 친구가 납치돼서 저도 경황이 없었어요. 네? 동생이 몇 살이냐고요? 이제 초등학교 다녀요. 그런 일 있으면 연락부터 하라고요?”
“그래야죠. 저도 어머니 걱정시켜 드리는 건 싫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라···아무래도 그 일 때문에 당분간 발이 묶을 것 같아요. 제가 말로만 설명한 곳인데 찾을 수 있겠어요?”
“아···기다리고 있을게요. 아무래도 그 일로 피해자들이 너무 많이 상처받는 것 같아서···.”
“네.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추가로 필요한 보수가 발생하면 바로 이야기해주세요.”
“네? 하핫···김 씨 아저씨가 말수가 너무 없으시니까 덕분에 제가 말이 많아지는 것 같네요. 이만 끊겠습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등지고 통화가 끝나자 나는 검은 봉지에 넣어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자연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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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자 따뜻한 훈기와 함께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일 없이 어머니와 동생이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저녁이었다.
“주인이니?”
“네.”
“갑자기 간장이 떨어져서···이건···?”
“나간 김에 간식도 좀 샀어요. 주신아 여기 메론바···.”
“우와. 역시 형이야.”
좋아하는 주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내 등짝을 스매싱하는 어머니 손길을 피해서 냉장고에 간식을 넣기 시작했다. 정갈한 냉장고 위에 검은 봉지가 올라갔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내가 주신이 단 거 주지 말라고 했지?”
“가끔은 괜찮아요. 안 그럼 더 스트레스 받는다니까요?”
이런 나의 항변을 무시하듯 등짝을 몇 번 때린 어머니의 손맛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약해서 마음이 아파 왔다.
오랜만에 힘쓴 어머니가 준비한 돼지 갈비찜에 주신이가 눈을 크게 뜨면서 기뻐했다.
“이거 완전 맛있어.”
“많이 먹어.”
어머니는 맛있게 갈비를 뜯는 나와 주신이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식사가 끝나가자 그제야 힘겹게 한마디를 꺼내기 시작했다.
“주신아 전학 안 갈래?”
“전학?”
저녁 먹은 후에 먹으라고 냉장고에 넣어뒀던 아이스크림을 먹던 주신이가 어머니 말에 큰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더니 말했다.
“어디로?”
나와 어머니는 주신이의 반응에 깜짝 놀라서 말했다.
“전학 생각 있어? 어제까지만 해도 절대 싫다고 했잖아.”
“그게···이번에 기주도 전학 간다고 하고···내년에는 반 친구들 대부분 전학 가고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 들었어.”
“오늘 학교 쉬었는데 어떻게 연락한 거야?”
주신이가 내 눈치를 보더니 쭈뼛거리면서 어머니한테 이실직고하고 말았다. 주신이의 손에 들린건 휴대폰이었다.
“이거···.”
주신이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깜짝 놀란 어머니의 표정에 나는 급하게 주신이의 뒷말을 이어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휴대폰 제가 줬어요. 삼촌이 중학교 올라가면 사주겠다고 말했는데···이번 일 겪고 나니까 주신이가 휴대폰 들고 다니는 게 더 마음 편할 것 같아서요.”
“기주도 휴대폰 생겼데···이번에 아빠가 사줬다고 목에 걸고 다니라고 했다더라고. 반 친구 중에 나만 휴대폰 생겨서 나하고 먼저 연락한 거야.”
당혹스럽고 화난 표정에서 어머니도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말씀하셨다.
“주신이는 어디서 돈이 나서 산 거니?”
‘다행히 주신이한테 휴대폰 사준 건 넘어가시는 건가?’
“외삼촌이 용돈 챙겨준 걸로 샀어요.”
“요금은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그 정도 여유는 된다고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그렇게 말하면 등짝 맞겠지?’
“용돈으로 안되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마. 엄마가 낼 테니까. 형이 동생 걱정돼서 사준 건데 엄마가 요금은 내줘야지. 그럼 주신이는 기주랑 통화한 거야?”
혼날까 봐 걱정하던 주신이는 이내 밝은 모습으로 기주와 나눈 대화를 말하면서 기대 섞인 표정으로 크게 대답했다.
“응 이번에 둔방에 생긴 학교가 시설도 좋고 아이들도 근처에 사는 애들만 와서 서로 금방 친해진다고···.”
“기주도 둔방에 생긴 초등학교로 전학 간데?”
“응.”
‘이거 기주가 전학 가는 데로 가고 싶은 거로 구만?’
나와 어머니는 눈을 마주하고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알았는지 웃음을 입가에 달고는 말했다.
“둔방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거기 학교로 전학하면 주신이도 등하교 편하고 좋을 거 같은데 괜찮아?”
“둔방에 있는 초등학교?”
“응.”
“이름 정확하게 알아봐죠. 기주도 그쪽이라고만 해서.”
“그래.”
나와 어머니는 눈을 마주하고 피식 웃고는 생각보다 잘 해결돼서 인지 어머니 표정이 풀리면서 말했다.
“이번에 형 방학식 날 용감한 시민상 수여식 있는데 주신이도 같이 갈래?”
“응. 갈래. 형이 기주 구해줘서 상 받는 거잖아.”
나는 주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기주를 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주를 구하지 못했으면 주신이한테 트라우마가 됐을 뻔했네.’
나는 소소한 기쁨을 누리면서 행복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무슨 사건이 나를 기다릴지 예상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이제 방학까지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아서일까 학교에서도 굳이 3학년들에게 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벼운 가방을 들고 하교를 시작했다.
“도서관으로?”
“어제 경찰 아저씨한테 점심 얻어먹었다니까. 엄마가 답례라고 이걸 챙겨줘서.”
“뭐냐?”
“이거 윽···맛없어 보이는데?”
“홍삼이라고 몸에 좋은 거래. 경찰이면 이런 거 좋아할 거라던데?”
“홍삼 즙?”
“응 이거 가져다드리고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해서···.”
“그래서 오늘도 도서관 쪽으로 가는 거냐···.”
“그런 거지.”
“하루쯤은 우리도 PC방도 가봐야지. 이번에 나온 게임이···.”
삐용삐용.
“저거 구급차 아니야?”
“저기 안남산 쪽 아니야? 등산객 중에 누가 다친 건가?”
“경찰차도 있는데?”
평소와 다르게 안남산 등산로에 웅성거림이 멀리서 도서관 쪽으로 향하던 나와 일행에게도 들려왔다.
웅성웅성.
호기심에 다가가다 우리는 한 구경꾼 중에 외치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저거···시체 아니야?”
“맞네. 맞아. 아니 등산하다가 구른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기저기 피가 너무 많이 튄 거 아니야?”
“이게 웬일이래.”
안쪽에서 흰 천에 덮인 무언가가 들것에 실려오면서 구경꾼들보다 앞에 위치하던 기자들의 플래시 소리와 질문에 나와 종혁이 경수는 얼어붙고 말았다.
“백신중학교 체육선생 한○○씨가 맞습니까?”
“아직 수사 중인 사건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여기 진행 방향입니다. 다들 뒤로 물러서 주세요.”
“허 순경, 여기 기자들 못 들어오게 막아. 주민들도 소개하고.”
기자들이 찍고 있는 현장을 손을 들어 막으면서 형사로 보이는 사람이 외치는 고함 소리에 놀라서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뭐? 체육이라고?”
“설마 잘못 안 거겠지.”
“체육 경찰이 잡아간 거 아니야?”
“합의하고 나왔다던데?”
“뭐?”
“그래서 계속 학교 앞에서 시위하고 그랬잖아. 물론 저번에 신고한 후로는 못 오고 있지만.”
“너무 뻔뻔하다.”
“체육이 죽은 거면 당한 애들 중에 복수한 게 아닐까?”
“근데 체육이 얼마나 덩치가 좋냐? 그런데 우리보다 작은 여자애들이?”
“아니면 가족 중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는 건 아닌 것 같고···오늘 우리 허 순경 만나러 온 거잖아.”
“설마 너···.”
“물론 지금은 안되겠지만 교대는 하지 않겠어?”
“하긴···허공 보면서 하루 종일 서 있으란 건 벌 받으라는 거랑 똑같으니까”
“그렇다고 여기서 기다려?”
“여기서 기다리면 너무 눈에 띄지 벌써 교복 입은 우리부터 쫓아내려고 저쪽에서 내려오는 거 같은데?”
우리는 발걸음을 돌리면서 계속 대화했다. 우리가 발길을 돌리자 우리에게 다가오던 경찰이 제자리로 돌아가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도서관 쪽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교대하면 어차피 파출소로 올 거야. 그러니까 우린 파출소에서 기다리자.”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일까?”
“뭐, 제대로 본 게 없으니까···.”
“체육이 밉고 싫기는 하지만 죽었다고 하니까 이상해.”
“뭐가 이상해 그런 놈은 죽어도 싸.”
“그렇긴 한데···왜···영화 중에 그런 거 있잖아. 좋은 사람인데 아주 나쁜 놈한테 복수하다가 범법자가 돼서 결국 감옥 가는 거···.”
“제목이 뭐였지?”
“요즘 하도 영화를 많이 봐서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보면서 기분 별로였거든. 무슨 이야기를 표현하려는 건지는 알겠는데···어쨌든 심정적으로 동의가 안되니까.”
“그러니까 네 말은 범죄를 저지르고 제대로 처벌받지 못한 범죄자를 피해자가 직접 심판해서 피해자가 결국 가해자가 되는 이런 시스템이 싫다는 거잖아.”
“아···내 말이···그냥 처음부터 제대로 처벌하면 되는 거 아니야?”
“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아빠가 그러더라.”
“아니 왜?”
“아빠 말로는 힘 있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었다던데? 그래서 머리 좋은 나쁜 놈들이 이용해 먹는다고. 피해는 법 없이도 사는 시민들만 받는다고···.”
“아···그래서 그 영화가 맘에 안 들었구나?”
“그래서 제목은?”
“마음에 안 든 영화 제목이 기억나겠냐?”
“그것도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