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용감한 시민상 3>
우리는 한참 서로 마음을 정리하듯 말이 없다가 경수가 꺼낸 말 한마디에 이전까지의 사건을 잊은 듯 말했다.
“오늘 주신이 데리러 안 가니까···느낌이 이상하다.”
“그렇지. 나도 그래. 그런데 기주가 납치될뻔했는데 어떻게 학교가 정상운영하겠어. 방학을 좀 일찍 했다가 일찍 개강하는 게 낫지.”
“그건 그래. 방학 늘린다고 해봐야 일주일 정도 더 늘어난 거잖아?”
“일주일이면 어디냐?”
“우리도 이번 겨울방학만 끝나면 고등학생인가?”
“방학 때 무슨 계획 세웠어?”
“계획은 무슨 떨어진 성적이나 올려야지.”
“아···너 이번 성적 엉망이지?”
경수의 얄미운 답변에 차갑게 내린 눈덩이를 꼭꼭 뭉쳐서 경수의 얼굴에 던져줬다.
“야, 너?”
나는 사실 적시에 의한 마음 상처의 대가로 경수에게 눈 뭉치를 선물해 줬다.
“크큭, 그렇게 얼빠진 얼굴이 너한테 잘 어울린다고.”
“너 잡히면 가만 안 둔다? 이건?”
나를 쫓아오는 경수의 손에 눈 뭉치를 쥐여준 건 종혁이었다.
“이 배신자.”
“배신이라니? 우리의 동맹을 위해서! 주인이를 잡기 위해! 눈덩이를 만들었지.”
“역시 종혁이가 최고야. 동맹.”
“우리의 적 남자들의 적. 솔로 천국.”
“야, 여기서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야? 개랑 나랑 관계없다고.”
“그게 관계없는 거면 우리 엄마랑 아빠는 그냥 남남인 거거든?”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냐?”
우리는 제대로 눈 뭉치를 뭉치지도 못하고 이곳저곳에 쌓인 눈더미를 잡아채 서로에서 던지면서 뛰기 시작했다.
제대로 뭉치지 못한 눈 뭉치에서 비산하듯 펼쳐지는 눈들이 아름답게 펼쳐졌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아름답지 못하고 치열하게 서로에서 눈을 던지면서 달렸다.
도서관 앞에 있는 중장동 파출소를 앞에 두고 우리는 서로의 몰골에 배를 잡고 낄낄거리면서 웃어 재끼고 있었다.
그런 큰 웃음소리가 주변에 펴졌는지 우리를 힐끔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걸어가는 사람들 모습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머리부터 털기 시작했다.
‘종혁이 머리를 보아하니 내 머리도 눈사람이 친구 하자고 하겠네.’
머리부터 시작해서 옷에 붙은 눈 싸래기를 털어내는 모습에 정신을 차렸는지 서로 안 보이는 곳을 털어준다면서 주먹다짐까지 가는 경수와 종혁이를 붙잡고 말리면서 말했다.
“야, 여기 경찰서 앞이거든?”
내 말이 씨가 된 것처럼 파출소에서 허 순경이 나와서 우리에게 반갑게 말을 건넸다.
“정확히는 파출소 앞이다만.”
“어, 허 순경님?”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야, 야, 그만해 경찰 아저씨 앞이다.”
“그래, 놀다 보면 투닥거릴 일 많겠지만 경찰 앞에서는 자재해주면 좋겠다. 알겠지?”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는지 윙크를 하는 허 순경이었지만 나는 뒤에서 구토가 올라온다는 경수의 표정을 잘 가릴 수 있는 위치에 서서 말했다.
“네, 형 그런데 이번에 용감한 시민상 관련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내가 용감한 시민상 관련해서 질문하자 기다렸다는 듯 저장된 안내 멘트가 튀어나오듯 허 순경의 말이 튀어나왔다.
“응? 요번 연말 행사로 같이 진행할 거야. 식이 시작되는 날이 너희 방학식 날 하고 겹쳐서 오후에 일정 잡혀 있는데. 웬만하면 와서 사진도 찍고 상장도 받아가 이게 다 너희들한테 학적 기록부에 도움이 될 테니깐. 꼭 와야 해. 이번 사건으로 다들 이목 집중이어서 행사에 힘을 많이 주는 모양이더라고.”
그런 허 순경의 압박 아닌 압박에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감사와 당혹 사이의 대답을 하는 사이에 종혁이가 허 순경에게 질문을 했다.
“주인이야 그렇다고 해도 저하고 경수는 용감한 시민상 받을지 몰랐는데요.”
종혁이의 질문에 허 순경은 바로잡아준다는 듯 검지를 좌우로 흔들더니 말했다.
“주인이가 경수하고 종혁이 두 친구의 도움으로 용감한 시민상 받는 거지.”
“네?”
“주인이가 그놈들 다 때려잡았는데요?”
“그만큼 병원에서 진술도 못 받고 있어. 폭행치상죄로 안 잡힌 건 전부 기주 아버님 덕분이라고 보면 돼.”
“기주 아버지요?”
“너희 몰랐구나. 주인이 네 병실에는 한 번 들렀다고 하던데.”
“인사만 하고 급한 일 있으신지 바로 나가셔서요.”
“아, 일이 많기는 하지. 붉은 벽돌집일 해결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강력사건이 떡하니 터졌으니.”
“기주 아버지가 경찰 쪽에서 일하시는 거예요?"
“몰랐구나? 안남지방경찰청 부총경님이거든. 나도 이번에 사건 조사 관련해서 형사과 다니다가 듣게 된 거야.”
이내 경수가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형은 이번에 진급 안 해요?”
그런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했을까. 약간 부끄럽지만 자랑스럽다는 듯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나도 다음 심사 때 진급예정 대상이야. 그래서 너희한테 한턱내려고 생각하고 있었지. 어때 지금 갈까?”
“근무시간 아니에요?”
“경찰도 점심시간은 있단다.”
“점심시간 좀 지난 거 같은데···.”
“전부 자리를 비우면 안 되니깐 돌아가면서 먹거든. 마침 점심 먹으러 나오는 길에 너희가 보인 거고”
허 순경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방학이라고 혼자 집에 있을 주신이가 걱정돼서 나는 거절했다.
“저는 주신이 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집에 가야 돼요."
그런 나의 거부는 거부당했다.
“그럼 주신이도 데리고 먹으러 가자.”
‘뭐, 오랜만에 외식도 괜찮지?’
우리는 허 순경이 태워주는 경찰차가 아닌 자차를 얻어타고 주신이와 함께 외식장소로 향했다.
“정말로 중식당으로 가? 더 좋은 것도 사줄 수 있는데.”
허 순경은 다 큰 남자아이 세 명에 어리지만 잘 먹는 주신이까지 해서 제대로 먹일 생각이었는지 두둑한 지갑을 보여주었지만, 주신이가 처음에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 ‘자장면!’이라고 외친 이후 일사천리로 메뉴가 결정되었다.
“저는 자장면이 좋아요.”
“없어서 못 먹어요.”
“엄마가 안 사줘요. 몸에 안 좋다고.”
우리는 허 순경의 월급 주머니 사정을 아는 것처럼 다들 개구지게 웃고는 각자 먹고 싶은 걸 골랐다. 물론 자장면으로 통일되었지만 요리 메뉴인 탕수육도 시켰기 때문에 넓은 탁자가 비워 보이지는 않았다.
자장면의 검은 양념이 주신이의 얼굴을 수놓았지만, 누구보다 깨끗하게 자장면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주신이 얼굴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닦아 주었다.
“저거 또 시작이다.”
“아주···그냥 이런 건 여기 휴지로 닦아도 되거든?”
“너 같은 그저 그런 피부와 우리 주신이의 피부가 같은 줄 알아?”
“경수 피부가 별로긴 해.”
“야, 옆에서 거드는 네가 더 짜증 나 거든?”
떠들썩하게 중식당 테이블을 점령한 우리들이 맛있게 자장면을 먹고 떠드는 사이에 허 순경은 화장실을 간다고 일어나더니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런 허 순경의 뒤를 따라 일어난 내가 말했다.
“괜찮아요?”
“뭐가?”
“순경 월급으로 무리한 거 아닌지 걱정돼서요. 차까지 유지하려면 많이 들 텐데···.”
“아, 저건 소장님 차야. 오늘 점심때 잠깐 빌린다고 말한 거지.”
“그럼 어디서 생활하는데요?”
“순경이라 관사는 없고 하숙하는 거지. 뭐.”
“하숙할 때가 있어요?”
“안남대학교 근처에 가면 하숙집이 생각보다 많아.”
“아···그렇구나.”
“그런데 나한테 따로 할 말 있어서 따라 나온 거 아니야?”
“어떻게 아셨어요?”
“오늘 나 보자마자 용감한 시민상 말할 때?”
“그···태연이는 왜 용감한 시민상에서 제외된 거예요?”
“나도 정확한 건 아닌데 워낙 사안이 커서 소문이 돌더라 그래서 알았지.”
“무슨 사정인데요?”
“태연이라는 학생 아니지 이제는 성인이지만 거절했다고 하더구나.”
“네? 본인이 직접 거절이요?”
“그렇다고 들었어. 나도 참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본인이 거절했다니. 경찰 행정 처리하는 입장에서는 편해진 거지.”
“네?”
“너하고 태연이하고 기주 구출한 건 좋았지만 그날 거기 쓰레기들 몸 상태가 좀 심각한 상태였다고 하던데.”
“그건···.”
“경찰 중에 그걸 이해하지 못할 놈들은 없을 거야. 나도 현장을 보니까 속이 뒤집히던데 거기에 부총경님 따님 구한 사람한테 기소는 할 수 없고 불기소 원칙으로 가지만 상은 좀 애매해진 상태였거든. 그런데 태연이가 너는 폭행하고 상관없이 혼자서 사람을 구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상을 거절하겠다고 했다고 하더라.”
“그건 말도 안 돼요. 그 사람들은···.”
“경찰이 다 바보인 줄 알아? 당연히 거짓말인 거 알지.”
“네? 그럼 왜.”
“태연이 유명했는데···너는 잘 모를 려나?”
“유명해요?”
“태연이가 이 동네에서 유명했지. 그 사건만 아니었으면···.”
“네?”
“태연이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야. 한쪽 다리를 절거든. 그런 몸으로 그 덩치들을 걸레로 만들었다면 말이 앞뒤가 안 맞지. 그렇지만 또 경찰 행정 쪽은 태연이 말대로 처리하는 게 빠르게 처리되니까. 좋다고 그렇게 위에서 정리한 거고.”
“도대체 왜···.”
“나도 의문이다 자꾸 사건하고 엮이는 네가.”
“···?”
“아무래도 경찰이 될 운명이 아닐까?”
내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눈으로 말하자. 허 순경은 그런 나를 외면하면서 아이들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자자 점심시간 끝나가니깐 일어나자. 데려다줄게.”
“저는 괜찮아요. 그냥 종혁이네에서 내려줘요.”
경수는 종혁이네에서 놀다가 집에 갈 생각인지 목적지를 통일해줬다.
“그럴까?”
점심시간이 한정되어서 그런지 허 순경은 그런 경수의 말에 반색하면서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하게 떠들면서 식당을 나서자 거짓말처럼 찬바람이 내 뺨을 정신 차리라는 듯 매섭게 내리쳤다.
‘족제비. 아니 송태연 넌 어떤 사람인 거지?’
나의 의문은 생각보다 빨리 풀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