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용감한 시민상 1>
그날 밤 골목길은 어두워진 반지하 방의 불이 꺼지고 고요해진 골목길 전부 잠이 들었다. 그러자.
잠이 들어 정신이 흐릿해진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익숙한 공간에 서 있었다.
‘대백공.’
대백공이 멀리 있다고 느꼈던 순간 내 눈앞으로 순간 나타났다.
나는 갑작스러움에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고 생각했지만 대백공이 다시 한걸음 다가오면서 그 거리감조차 좁혀졌다.
“어린 친구 훌륭해···벌써 재생의 힘을 이렇게 키우다니 내 예상을 벗어나는 구만. 그것도 아주 기쁘게 예상을 벗어나고 있어.”
“덕분에 갈비뼈는 잘 붙었습니다만···전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이해하려고 하지 말게. 그저 받아들이면 그게 이해라네. 나도 일이 이렇게 풀릴지 생각도 못 했군.”
“네?”
“재생과 특이점을 둘 다 얻었다는 걸세.”
“그 말씀은···.”
“자네가 살린 생명은 끊어지지 않고 살 것이고 그에 미치는 모든 영향이 특이점으로 돌아온 거지.”
“혹시···제가 구하지 않았다면 기주가 죽을 운명이었나요?”
“자네가 아니었다면 세 명이 죽을 목숨이었지.”
“네? 기주라면 이해가 가지만 세 명이라니···혹시 기주 부모님이 잘못되는 건가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주라는 소녀와 거기 있던 젊은 여성 그리고 태어나지도 못했을 생명일세.”
“어···그··여성분···.”
“전 씨라고만 알고 있게. 그 전 씨가 기구한 운명을 이겨냈음이니···어찌 인연이 이렇게 흐르는지.”
“아이는 괜찮나요?”
“무사하네. 병원이 바빴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지.”
“그렇구나.”
“형사들이 못 찾아온 것도 전 씨 때문이기도 하고.”
“네?”
“내가 알려주면 인과의 흐름에 개입하게 되는 것이니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도록 하게나.”
“그럼···오늘 제가 몸이 빨리 낫은 게 재생 덕분인가요?”
“그렇다네. 세 명 아니 그와 이어진 인연을 생각한다면 10명의 삶을 밝혔으니 부러진 뼈는 금방 나을 수준이지.”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상처가 빨리 낫게 되는 건가요?”
“자네가 구해준 생명들이 계속 살아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수록 더 커질걸세.”
“이렇게 좋기만 한 힘도 있나요? 어르신이 저한테 과한 건 모자람만 못하다고 강조하셨잖아요.”
“그렇지.”
“···.”
“그만큼 타인의 삶을 해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무슨 짓 이든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세.”
“···.?”
“제물을 바치면 내가 인과를 벗어나 큰 보상을 줄 수 있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나?”
“···네.”
“그런 자들이 판을 치니 자네에게 보상을 몰아준들 저울이 흔들릴 리가 있겠나.”
“대백공 같은 힘을 가진 이들 중에 제물로 인간의 생명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건가요?”
“인간의 기준으로는 오래전이지만 우리 같은 존재들에게는 찰나의 시간 전에 대부분이 제물을 받았다네.”
“그럼 대백공도···?”
“땅의 신은 보통 제물을 받지 않지. 흐름을 관장하기에 줄 수 있는 보상도 눈에 띠지 않거든.”
“이런 보상이 눈에 뜨지 않는다고요?”
‘내가 받은 재물이나 육체 강화, 재생, 금고 등의 힘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내 보상은 어디까지나 흐름에서 떨어져나온 작은 힘의 파편 중에 인연이 닿는 것을 건네는 거라네. 자네가 운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 세상이 한쪽으로 편중되어 흐르기에 그 힘의 파편이 점차 커진 거지.”
“아···그럼 당시에 제물의 대가를 생각 없이 뿌린 존재들은···.”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잠들어버렸지. 그 대가는 인간만이 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존재들도 대가 없는 힘은 없다는 건가요?”
“대가 없는 힘이 없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힘 있는 자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아니네···세상은 사라진다네.”
“네?”
“대가 없는 힘을 뿌리고 그 순간을 즐길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건 찰나의 순간일 뿐. 결과는 멸망일세.”
“찰나의 순간이라고 해도 인간에게는 긴 시간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끝이 멸망이라는 걸 알면서 대가 없는 힘을 쓰려는 존재가 있겠는가? 인간도 어쨌든 영생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종족이 번영하고 번성하길 바랄 텐데.”
“어르신 같은 존재의 생각과 저희 같은 필멸자의 근시안적인 부분을 잘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설마···.”
“무슨···.”
“아닐세. 한동안 내가 현몽하지 못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가 계획하는 재물에 대한 욕망은 이미 자네가 얻은 특이점으로 인과를 상쇄해두었으니 말일세. 이것이 이번 자네 보상이 될 거야.”
“어르신···?”
“미래의 정보를 가지고 현재에 투자를 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인과가 뒤틀릴지 아는가?”
“그건···.”
“그렇기 때문에 그에 상당한 영향력이 필요하고 자네는 이번에 얻게 된 특이점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 거지.”
“그럼 이제까지 제가 행동해서 가족에게 영향을 미친 건···.”
“그건 나와의 계약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쇄가 어느 정도 된다네. 그렇기에 특별한 힘, 영향력이지. 하지만 그 이상 행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특별한 힘. 영향력이 필요하다네.”
“특별한 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게 특이점이라는 거군요.”
“그래. 이 땅 위에 큰 사건 중 하나에 발을 담그기 위해서 특이점이 필요한데 당시 자네는 너무 보잘것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지. 이제 막 현세로 돌아왔는데 당연한 것이지만 말일세.”
“그렇다면 지금은 충분하다는 건가요? 만약에 제가 충분한 특이점을 얻지 못한 상태로 금융위기에 발을 담그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정해진 운명을 따라 흐르겠지. 결코, 자네가 원하는 흐름은 아니겠지만.”
“그럼 어르신은 일정규모 이상의 특이점이 모이기만 기다리신 건가요?”
“그래, 미리 언급하는 것 자체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이니. 그저 기다릴 수밖에 만약에 자네의 영향력이 지금과 같이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면 나는 자네의 계획을 말렸을 걸세.”
“그렇다는 말씀은.”
“지금은 자네가 원하는 데로······.”
대백공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에 나는 다급하게 몸을 움직이며 외쳤다.
“무슨 뜻인가요? 어르신? 어르신?”
나의 외침과 동시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주신이의 고른 숨소리가 내가 일어난 곳이 나와 주신이가 자는 작은 단칸방이란 걸 알게 해주었다. 나의 외침에 주신이나 어머니가 깨어났을까 봐 잠시 이부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누워있었다.
작은 단칸방 밖 주방에 간단하게 이부자리를 깔고 주무시던 어머니의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어제 너무 늦어서 간단하게 배를 채웠던 나와 주신이의 식사가 걱정되었는지 아침부터 상차림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끼익.
오래된 문 특유의 소음에 어머니가 나를 돌아본다.
혹시라도 주신이가 잠이 깰까 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따뜻하게 불렀다.
“주인아 일어났니? 배고팠지. 어제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 챙겼으니깐 아침이라도 든든하게 먹으렴.”
“네,”
“우선 씻고 나와.”
나는 아무 말 없이 욕실 겸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얼음장 같은 물에 손을 담그면서 생각했다.
‘원하는 데로라···.’
‘대백공이 뭐라고 하든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어차피 이대로 고민만 해서 해결될 것 아무것도 없잖아?’
나 스스로에게 정신 차리라는 듯 ‘착’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뺨을 때리듯 세수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오자 어머니의 따뜻한 밥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아 먼저 먹어. 주신이는 방학이라고 연락받아서 늦게까지 자게 놔두려고···.”
“방학이요? 일주일 정도 남지 않았어요?”
“아마 이번 납치 사건 때문에 학교에서도 말이 많은가 봐. 학부모들이 무섭다고 애들 수업도 거의 끝났으니깐 안 보낸다고···그래서 학교에서 방학 일자를 당기기로 결정했다고 아침 일찍 연락 오지 뭐니?”
“하긴 저라도 불안해서 못 보낼 것 같아요.”
“그렇지? 아무래도 전학 가는 거 주신이를 설득해야 할 것 같아.”
“전학이요?”
“이번 일 겪은 아이가 주신이하고 같은 반이라면서···그런데 학교에서 하는 대응이···.”
“무슨···별도로 연락이라도 왔어요?”
“학교에서 조용히 넘어가자고 학교 이미지에 안 좋으니깐 인터뷰나 그런 거 없이 지나가면 주신이 학업에 좀 더 신경 쓰겠다고 말하는데···.”
“아니···뭐 그런···.”
화가 나서 일어서려는 나를 붙잡은 어머니가 말했다.
“나도 일 크게 키우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이번에 학교에서 하는 대응을 보니까 이런 반응을 보이는 학교에 주신이가 계속 다니다가 이번에야 운이 좋게 큰일 생기기 전에 해결이 되었다지만···해결책이나 방안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쉬쉬하고 넘어가려는 모습이···주신이 전학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주신이가 반 친구들을 좋아하니까 당장 결정을 강요하기도 그래서 학교에서 온 연락에 엄마도 화가 났지만, 우선은 별말 없이 전화 끊었어.”
어제 기주가 납치된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주신이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서 나도 흥분하려던 감정을 내리눌러야 했다.
‘그래도 그런 식의 대응이라니 정말 마음에 안 드는데···.’
“오늘은 점장님한테 말해서 좀 늦게 출근하겠다고 말했어. 아무래도 주신이가 어제 많이 놀라기도 한 것 같고···.”
“잘하셨어요. 제가 말한 미니 스탑 점포 내는 것도 고민해보세요. 이사 가면서 주신이가 전학가 게 되면 엄마도 주신이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서 일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지 않겠어요?”
“좀 생각해봐야지···늦겠다.”
나는 그제야 어머니가 출근 시간도 늦추고 정성껏 준비한 아침상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콩나물국과 계란 프라이, 진미채 평소에 내가 전부 좋아하던 반찬들이었다. 나는 소소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크게 한입 먹었다.
‘역시 어머니가 해주신 콩나물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