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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45화 (45/205)

<45화 기주 납치사건 5>

그렇게 오열하는 아주머니의 부축한 큰 그림자가 나를 내려보았다. 나와 눈높이가 맞지 않아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기주 아버지가 아닐까 싶었다.

“기주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아니어도 누구나···.”

“성주야, 엄마 모시고 잠깐 매점에 다녀와 아무래도 진정도 좀 하게 병실에 빈손으로 오면 안 된다고 가르쳐줬지?”

성주라고 불린 아이는 빤히 자신의 아버지 눈을 보더니 이내 활짝 웃고는 힘들어하는 어머니에게 일부러 애교를 부리면서 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이제야 할 말이 하겠다는 듯 병상 옆의 간이 의자를 빼내 앉아 시선을 맞추며 말하기 시작했다.

“누구나가 할 행동이 아니죠.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아니 이목이 끌리지 않았을 겁니다.”

“네?”

“임산부가 어린아이와 둘이 움직이는데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그건···.”

“저는···첫째가 아들이길 바랐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많이 바라셨죠. 그렇기 때문에 기주에게 작은 미움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기주만큼 용감하고 똑똑한 아이는 못 봤는데요.”

기주는 모텔에 사지가 묶여서 움직이지 못한 상태였다. 울고는 있었지만, 비명을 지르거나 반항한 흔적은 없었다. 범인들이 흉악범이라면 부지불식간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해코지할 수 있는데 기주는 그 어린 나이에도 침착하게 어른들을 기다린 것이다.

“저도 아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에 몰리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기주를 아끼고 기주에게 의지하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 말씀은···.”

“전에는 그런 철든 기주의 행동이 그저 편했고 아들이 아닌 딸인데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요. 기주가 얼마나···그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지. 이런 절박한 상황에 처하고 나서야 알게 되다니 저는 한심한 아버지입니다.”

“그럴 리가요. 그런데 그런 말씀을 왜···.”

“왜 기주를 구해주고 병실에 누워있는 학생에게 이야기하냐고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병실에 누워서 삐질삐질 땀만 흘려야 했다. 이제까지는 그저 당사자들의 속사정과 속셈을 대백공의 술법을 통해서 보았던 게 전부였지만 지금 갑작스러운 기주 아버지의 고백은 당혹스러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기주에게 이런 속마음을 이야기해본 적 있나요?”

“잘 모르는 학생을 붙잡고라도 말하고 싶은 본심이라면 본인한테 말해보는 게 어떨까요. 그리고···.”

“그리고···?”

“저는 잘 모르지만 아마 기주 어머니도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요? 첫째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저씨가 힘들 정도면 기주 어머니는 더 힘들었을 것 같아서요.”

왜인지 충격을 먹은 듯 가만히 내 침상을 집은 손에 핏줄이 돋을 정도로 힘을 주어 잡던 손이 갑작스럽게 힘이 빠진 듯 물먹은 솜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정말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아들로서도 부족하네요.”

“완벽한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뭔가 내가 원하던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후련해진 듯한 아저씨가 일어나더니 잊었다는 듯 툭하니 내가 쥐여주고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게 뭐지?’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안남시 지방경찰청 부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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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을 들고 멍하니 있다 보니 내 차례가 왔는지 간호사가 침대를 통째로 옮기려고 했다.

“괜찮아요. 일어날 수 있어요.”

“괜찮다고? 김 선생님 말로는 갈비뼈 골절로 움직이지 못할 거라던데···무리하면 더 심해질 수도 있어.”

“침대에서 일으키는 것만 좀 도와주시면 괜찮을 것 같아요.”

반신반의하면서도 환자인 내가 억지로라도 움직이려 하자. 간호사는 나를 부축하고 일으켜 줬다.

‘역시···재생의 힘인가?’

나는 내 몸 상태가 처음 깨어났을 때와 다르게 움직일만하다고 생각되었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처음부터 보이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간호사가 올 때까지 무료해도 꾹 참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간호사의 부축을 받아서 방사선과에서 X-레이를 찍고 나오면서 잠든 주신이를 엎고 내 병실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이는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

“주인아?”

“주신이는 자요? 경수하고 종혁이하고 같이 있었는데···만났어요? 엄마도 주인이 데리고 집에 가서 편하게 쉬어요. 저는 괜찮아요.”

“괜찮기는 오면서 종혁이한테 들었어. 골절상까지 입으면서 무리했다며. 몸은 괜찮은 거니?”

멀쩡하게 걸어오는 나를 본 어머니였지만 경찰과 병원에서 동시에 연락이 간 것 같았다. 일하다가 갑작스러운 소식에 충격을 받으신 듯 힘겨워 보였다. 나는 자고 있는 주신이를 내가 누워있던 침대에 눕히고 말했다.

“저 정말 괜찮아요. 멀쩡하게 걸어 다니잖아요.”

“종혁이가 의사 선생님이 한 달은 몸 보전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는데···.”

“그건 간단하게 촉진만 하고 간 거라서 자세한 건 X-레이 나와봐야 안다고.”

어머니의 걱정 어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진을 돌던 의사무리가 나와 어머니에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충격받아서 초췌한 모습 그대로 의사 선생님에게 달려가 매달리듯 질문했다.

“주인이···제 아들 주인이는 괜찮나요?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하는데···.”

회진을 돌던 의사무리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의사 선생은 당황하지 않고 어머니를 달래면서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환자 차트가···X-레이 결과 나왔나?”

앞에선 의사가 질문하자 뒤에서 레지던트로 보이던 가운 무리 중 한 명이 바로 내 검사 결과지를 앞선 의사에게 건넸다. 한차례 스캔하듯 내 검사 결과지를 살펴본 의사가 이내 얼굴에 안심하라는 듯한 웃음을 걸면서 말했다.

“환자분 검사결과지를 보면 아무 이상 없습니다. 큰 충격이었는데 아직 어린 친구여서 그런지 골절이나 큰 외상이 없네요.”

“선생님 정말···정말 괜찮은 건가요?”

“자동차 사고 충격이 어떻게 몸에 반영되어서 영향이 나올지는 입원한 후 지켜보는 게 좋지만 젊고 건강한 환자분이어서 굳이 입원보다는 통원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정말···엄청 큰 사고였다고 하던데···.”

“저도 전해 들었지만 아주 용감하고 훌륭한 젊은이에요. 그래서인지 검사결과가 아주 좋네요. 훌륭해요. 제가 오랫동안 X-레이 검사결과지를 봤지만, 이 환자분처럼 깨끗하고 좌우 대칭조차 우수한···좀 더 자세히 지켜보고 싶군요.”

방금까지는 훌륭한 의사의 표본을 보여주던 의사가 내 결과지를 계속 쳐다보면 볼수록 처음에는 어머니를 향했던 시선이 나를 향하면서 의욕에 불타는 눈빛으로 변해갔다.

‘안경이 번쩍한 느낌과 함께 의사가 갑자기 변한 것 같은 느낌은 나만 받은 건가?’

“혹시 모르니 병원에 입원해서 추후 이상 상황이 있는지 살펴보는 건 어떠십니까?”

“네? 방금 통원치료로 해도 괜찮다고···.”

어머니도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다급하고 힘들어했던 표정이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교통사고 후유증은 이후에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병원비가 걱정이시라면 병원에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병원에서 병원비를 안 받겠다고 하니 더욱 의심스럽네···.’

듣기 좋았던 목소리에서 감정이 섞이자 목소리 톤이 올라가면서 꼭 귀를 괴롭히는 듯한 억센 발음에 어머니의 표정은 경직되어 가기만 했다.

"그···어쨌든 지금은 괜찮다는 거죠?”

“그렇습니다만···.”

“병원비는 다행히 실비보험 들어놔서요. 괜찮으면 오늘 바로 퇴원하고 싶은데요.”

“지금 바로요?”

“네.”

세상 이렇게 단호한 어머니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어어 거리는 사이에 옷을 갈아입고 동생을 엎고 어머니 뒤를 따라서 택시를 타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집에 도착해 주인이를 이부자리에 눕히고 나오자 부산하게 다시 밖으로 나가려는 어머니 모습에 내가 붙잡았다.

“엄마 피곤할 텐데 쉬지 어디 나가요?”

“그래도 주인이 너 오늘 퇴원한 건데 맛있는 거라도 해줘야지.”

“나 괜찮은데···의사 선생님도 괜찮다고 했고···.”

어머니의 표정이 괴롭게 변하더니 힘겹게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어머니 상태가 걱정되어 따라 나갔다. 그런 나의 인기척을 느낀 듯 골목길에 들어선 어머니가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물어보신다. 나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주인아 정말 괜찮아?”

“괜찮아요.”

“엄마 맘 같아서는 계속 입원해서 지켜보고 싶었는데···.”

“정말 괜찮은데···.”

“거기 의사가 너무 이상해서 덜컥 퇴원해버렸네. 꼭 그 의사가 말하는 게 너는 젊고 튼튼하니까 괜찮다고 말하는 의사가 너무 못 미더워서.”

“정말 튼튼하니까. 몰랐는데 내가 통뼈가 아닐까?”

“주인이가 아무리 튼튼하고 강해도 엄마한테는 하나뿐이 아들이거든.”

나는 분명 대백공의 축복으로 육체도 강화되고 재생의 힘으로 다친 몸도 전부 나았는데 이상하게 힘이 나보다 약할게 분명한대도 어머니의 다정하게 끌어안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어디로 사라지기라도 할 듯 불안한 듯 꼭 안아오는 손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무리 힘주어 안아줘도 내가 주먹 쥐는 것만도 못한 그런 힘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런 답답한 따뜻함은 회귀까지 한 나를 작은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리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주인이가 주변에서 훌륭한 일을 했다고 칭찬해도 엄마는 웃을 수가 없었어. 기주라는 아이처럼 주인이도 엄마한테는 아직 어린 내 자식이니깐. 엄마가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어서···주인아···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작은 사람이라서 주인이처럼 주변 사람을 생각해서 몸을 사리지 않고 덤벼들 수가 없어. 그런 엄마를 생각해서 조금만···조금만 참고 어른들한테 도움을 요청해주지 않을래? 엄마는 경찰에서 연락이 오니깐···엄마는···.”

엄마는 꼭 울고 싶을 때 나를 꼭 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울고 있는 모습을 절대 나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엄마.”

“응···.”

조금 젖어든 어머니의 목소리가 나를 무겁게 했다.

“엄마.”

“응···.”

“난 엄마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좋아.”

“응···.”

“기주라는 아이도 엄마가 보고 싶었을 거야. 만약에 기주가 주신이 또래가 아니었으면 나도 경찰에 신고하고 걱정하면서 지켜만 보고 있었을지도 몰라.”

“······응··.”

“엄마, 난 엄마가 옆에 있는 게 좋아. 주신이도 같이 있으면 더 좋지. 아빠도 있으면 더 행복했을 것 같아. 그런데 아빠가 없잖아. 그래서 그랬어. 그 상실감이 얼마나 아픈지 알아서 그래서 그랬어. 엄마 미안해요. 그런데 내가 엄마 보고 싶은 만큼 기주도 엄마가 보고 싶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랬어.”

“···응···흐··읍···주인아. 엄마 아들로 태어나 줘서 너무 고마워···.”

“나도 엄마가 엄마라서 좋아.”

그날 그렇게 한참을 별빛을 보면서 상념에 젖어 있어야 했다.

늦은 밤 방에 혼자 깨어나서 놀란 주신이가 울음을 터트릴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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