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기주 납치사건 2>
기주가 다닌다는 영어학원은 건물 한 층을 통째로 쓰는 전문 학원으로 보였다. 영어학원을 보면서 ‘주신이도 학원을 보낼까?’라는 생각을 했다. 왜인지 주신이가 움찔하고 하는 모습에 경수가 물어봤다.
“꼬맹아, 추워? 우선 햄버거집에 먼저 들어가 있을래?”
“아뇨, 괜찮아요. 여기가 기주가 다니는 학원이에요.”
영어학원에 들어가자 접객하는 위치로 보이는 사무공간과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룸이 뒤로 보였다.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등록하려고 온 학생들인 줄 알고 젊어 보이는 아르바이트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우리에게 말했다.
“등록하려고 오셨어요? 여긴 초등부까지만 수업이 있는데요. 혹시 동생 등록하시려는 건가요?”
“한 달에 학원 수업료가 얼마에요?”라는 내 대답에 나를 앞세우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구경하던 경수와 종혁이가 이마를 부여잡고 외치는 말을 무시하고 물어봤다.
“한 달에 10만 원이에요. 수업시간은···.”
“그런데 제 동생 친구가 여기 다닌다고 해서 와본 건데요. 박기주라고.”
“아···기주요? 지금 수업 들어갔는데···. 한 시간 지나서 나올 거에요. 급한 일인가요?”
“아니요. 이왕이면 친구하고 같이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물어본 거예요. 그럼 한 시간 후에 볼 수 있겠네요?”
“네···그런데 이상하네요. 오늘따라 기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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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서 앉는 걸 확인한 후 각자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매대에서 추가로 따뜻한 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햄버거와 탄산음료를 양손에 들고 열심히 먹던 경수가 말했다.
“너 벌써···커피 마시면 잠 못 잔다.”
“난 괜찮아.”
“그러다 꼬맹이도 커피 마시면 어쩌려고···.”
“카페인 중독이 이렇게 무섭다니깐.”
나와 자주 붙어 다니는 경수와 종혁이는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사실을 알았지만, 주신이 앞에서는 철저하게 마시는 모습을 안 보인 걸 알았다. 그런데 내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맞은편 영어학원 입구만 뚫어지게 쳐다보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 촉이 온 거야?”
“글쎄···.”
“그런데 오늘 우리 말고도 기주 학원 끝나는 시간 물어본 사람 있다고 했을 때 좀 섬찟했어.”
“어, 너도? 나도 좀 그렇더라. 아무리 우연이라지만 그렇게 우연이 겹치기 쉽지 않잖아?”
“아무리 주신이가 기주가 걱정된다고 해도 이렇게 발 벗고 나서는 건 뭔가 촉이 서서 그런 거 아니야?”
“그냥 혹시나 해서 그런 거지 종혁이 너도 그렇게 말했잖아. 요즘 너무 세상이 어수선 하니깐 조심하는 게 좋다고.”
“그거야, 내가 말한 건가? 아빠가 말한 거지. 뭐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서 너네한테도 말한 것뿐이지만.”
햄버거를 야무지게 먹던 주신이는 우리의 대화에 걱정이 되었는지 영어학원 입구를 보면서 따뜻한 코코아를 양손에 꼭 잡고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아직 끝나려면 멀었으니깐 쉬엄쉬엄 살펴. 우리는 서로 돌아가면서 시간 정해서 보자.”
불만을 말하려는 경수와 종혁이를 한 손으로 제압하고 나는 걱정스럽게 학원 입구를 보는 주신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기주가 왜 그렇게 걱정되는 거야? 같이 가던 누나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면서.”
“응···그런데 그 누나 옆에 있던 아저씨는 좀 험상궂게 생겼어. 기주가 좀 용감하거든. 그 누나가 겁에 질려있으니깐 더 도와주려고 말 걸어도 무시하지 않은 걸 거야.”
“음? 말 걸어도 무시하지 않는다고? 그럼 평소에는 무시해?”
“아니, 친구들한테 무시한다는 게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말 걸어오면 대답하지 말고 집으로 오라고 엄마가 그랬데. 우리한테도 그러라고 가르쳐준 게 기주거든.”
“똑똑하네.”
“꼬마가 강단 있네.”
“기주네 아빠가 아들을 많이 원했나 봐. 그래서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거의 남자처럼 컸다고 들었어. 기주가 말해준 건 아니고 같은 반 친구였던 애들이 말해줬어. 머리 기른 것도 이번이 처음이래.”
“기주가 어디가 좋은데?”
싫다고 말하지 않는 주신이의 모습에 마음속에 몽글몽글한 솜사탕 같은 곳이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나나 경수 종혁이 전부 주신이의 입만 주시하면서 서로 미소 짓고 말았다.
“기주는 멋있어.”
우리는 당황스러워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황당해하고 있을 때였다. 주신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기주다.”
“뭐?”
나는 주신이를 거의 매듯이 안아 들고 경수와 종혁이와 나와 주신이의 가방을 나눠 들었다. 우리는 급하게 햄버거 가게를 나와서 기주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주신이가 말했던 인상착의로 보이는 젊은 아줌마. 임산부가 초췌한 표정으로 기주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빨간불인 신호등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그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다.
멀리서도 보이는 기주의 상냥한 웃음과 함께 자연스럽게 젊은 여자와 함께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눈에 밟히자. 우리는 서로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저 여자 이상해. 아무리 그래도 한 겨울에 슬리퍼라니. 임산부면서 옷도 너무 얇잖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주신이를 종혁이에게 떠넘기듯 넘기고 빨간불인 도로를 질주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상대를 자극하지 말라는 경수의 경고에 신호가 바뀌기만 기다리기 시작했다.
‘끼익.’
학원 앞에 불법으로 주정차한 어두운 녹색 차량으로 향하는 기주의 모습에 주신이가 저도 모르게 외쳤다.
“기주야.”
기주는 젊은 여성의 인도에 따라서 차량에 근접했다가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주신 이의 목소리에 이상한 걸 느낀 건지 불법 주정차된 차량에서 한발 멀어졌다. 그러자 차량에 타고 있었던 덩치 큰 남성 두 명이 젊은 여성과 기주를 밀쳐 넣다시피 해서 차량 뒷좌석에 태우고 급하게 출발했다.
나와 종혁이 급한 마음에 신호를 무시하고 뛰어들었지만 급하게 서는 차량에 욕만 먹고 눈앞에서 기주가 납치되는 걸 지켜봐야 했다.
“허···헉···.”
“하아···.”
뒤늦게 경수가 주신이를 데리고 기주를 놓친 곳에 도착해서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제 어쩌지?”
“어쩌긴 신고해야지.”
“뭐?”
“아무리 좋게 봐도 납치잖아.”
“우리 말을 믿어줄까?”
“중장동 파출소 허순경한테 전화하자.”
“전화번호 알아?”
“모르지만 중장동 파출소 번호는 물어보면 알 수 있잖아?”
우리는 다급하게 뛰쳐나가느라 뒤집어 놓고 나온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생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우리 자리를 치우고 전화를 빌렸다.
“안남시 중장동 파출소입니다.”
“허 순경님, 신고할 게 있는데요.”
“누구···? 설마 주인이니?”
“네. 급한 일이에요.”
“급한 일?”
“어린아이가 납치됐어요.”
“납치!!”
허 순경 뒤로 조용하게 코 골던 소리가 허 순경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크게 일어난 소음에 엎어지고 깨지는 소리와 함께 ‘뭐야!’라는 고함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허 순경은 우선 우리에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한 뒤 경찰차를 타고 다급하게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왔다.
허 순경이 우리를 만나러 왔을 때 우리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었다.
“흐엉···나···나 때문에 기주가··.”
기주가 모르는 차에 태워질 때 급한 마음에 주신이가 외친 목소리에 납치범들이 강제로 태운 걸 보고 놀라서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야, 주신아 뚝. 너 때문에 잡혀간거 아니야. 너 덕분에 오히려 기주가 위험한걸 빨리 알게 된걸···.”
나는 주신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주신이를 안아주면서 달래는데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그러니깐 신고내용 말인데 좀 더 정확한 내용은 서에 가서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다 같이 목격했으니깐 경수하고 종혁이와 먼저 가시겠어요? 전 주신이를 좀 달래고 어머니 올 때까지 보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그럴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많이 놀랐나 보구나.”
허 순경은 무릎을 낮춰 주신이와 시선을 맞추면서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주신이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런 범죄장면을 보게 만들어서 경찰로서 정말 미안하구나. 그렇지만 용감하게 이렇게 빨리 신고를 해줬으니깐 금방 잡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형하고 집에서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으렴.”
나는 주신이를 품에 안고 허 순경에게 고맙다는 목례를 했다. 허 순경은 우리를 집에 데려다주지 못해서 미안해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혹시라도 집에 데려다주는 잠깐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다면 저만 아니라 주신이도 버티지 못할 거에요. 최대한 빨리 기주를 구해주세요.”
그 말을 들은 허 순경은 경수와 종혁이를 데리고 바로 담당 경찰서로 향했다. 나는 경수와 종혁이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말했다.
“고생해라. 난 나중에 합류할게.”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주신이가 많이 놀랐겠다.”
“엄마 오실 때까지는 옆에 있어야지.”
“너희도 경찰서에서 너무 강압적으로 말하면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부모님 옆에서 진술해. 그게 권리니까.”
“알았어. 뭐, 목격 진술인데 별일 있으려고 조심해서 가.”
“너희도.”
“그래.”
다들 시야에서 멀리 멀어지자 나는 주신이에게 말했다.
“주신아, 기주 구하고 싶어?”
“훌쩍···응···.”
“그럼 오늘만 집에서 혼자 엄마 기다릴 수 있겠어?”
“훌쩍···형은?”
“형은 기주 찾아보려고.”
“훌···응?? 그 사람들 누군지 알아?”
“아니, 몰라. 그런데 찾는 방법은 알아.”
“응. 그럼 집에서 혼자 있어도 괜찮아. 그 전에도 혼자 있었는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집에서 나와 밖에서 헤매고 다니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내 업보지.’
나는 다시 한번 주신이에게 문단속을 단단히 하라고 주의하면서 집에서 나와 점점 어두워져 가는 골목길을 바라봤다.
‘이제 어머니 오실 시간이야. 그렇지만 마주치면 경찰서에서 진술하느라 움직이지 못할 거야.’
경찰서에서 자세한 목격담을 진술하는 게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