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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39화 (39/205)

<39화 유산5>

잘 정돈된 시가지를 걷고 있는 학생의 모습은 이상할 게 없었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파트 벽면에 붙은 아파트 분양합니다. 라는 벽보를 힐끗 보고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미분양된 아파트가 있어서 사람이 적었지만, 학생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걸 눈여겨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이상하게 볼 사람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나는 흥분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내리누르듯 가슴에 손을 올리고 심호흡을 했다. 벌써 이곳까지 세 번째 방문이지만 긴장으로 손이 떨리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띠리릭.’

도어록이 열리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걸 살핀 나는 재빠르게 문을 열고 누가 볼까 빠르게 문을 닫았다. 30평대 아파트 특유의 인테리어와 아무도 살지 않는 걸 말해주듯 냉랭한 한기가 도는 거실을 지나서 안방 문을 열자. 특유의 톡 쏘는 냄새와 함께 눈앞에는 돈다발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급해서 돈을 세는 시간도 없이 금고에 밀어 넣었네.’

나는 마지막 장소라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자리에 주저앉듯 앉아서 만 원권 다발을 10개 단위로 나눠서 세 보기 시작했다. 억 단위가 넘어가면서 돈 세는 게 힘겨워진 나는 대충 허공에 손장난하듯 왼쪽 손으로 검지와 중지를 접은 상태에서 허공에 개(開) 자를 적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공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일렁거림이 느껴지자 나는 지체 없이 바닥에 쌓여있는 돈뭉치를 던져 넣기 시작했다. 한 시간가량 중노동에 가까운 일어였지만 나는 흥분으로 숨이 거칠어질 뿐 중간에 멈추거나 쉬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했다.

만 원권 다발 중 몇 개만 준비해온 가방에 따로 담은 나는 방에 빠진 물건이 없는지 살펴보고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시 검지와 중지를 접은 상태에서 허공에 폐(閉) 자를 적어 허공이 아지랑이가 일어나는지 살피고는 방문을 나왔다.

‘이제까지 얻은 능력 중 이게 가장 좋은 것 같은데?’

이런 나의 생각을 알면 대백공이 실망하겠지만 나는 게임에서만 사용하던 인벤토리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대백공은 이 술법이 만능이 아니며 자신 소유의 물건이 아닌 경우에는 넣을 수 없다고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게임에서 편하게 쓰던 인벤토리의 현실판 같은 느낌 이외에는 느끼지 못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기신 재산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둔당 주변의 산이나 논, 밭의 대부분이 외할아버지의 소유였고 병원부지를 포함해서 둔당 신도시의 대부분의 땅이 외할아버지의 땅이었다.

현물의 재산은 대부분 고모가 이미 처분하거나 받아갔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둔당 신도시를 만들 때 풀린 토지보상금을 자신이 분양받은 아파트에 분산해서 현금으로 넣어둔 건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덕분에 내가 생각했던 계획을 더 확실하게 구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돈은 정확하게는 어머니가 찾아주길 바랐던 게 아닐까?’

외할아버지가 분양받은 아파트는 지금 시기에 보기 힘든 전자 도어록으로 되어 있는데 그 비밀번호가 전부 어머니 생일로 통일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돈을 보면서 흥분하고 기뻐했던 게 거짓말처럼 착잡해지는 심정을 뒤로하고 휴대폰을 들어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엄마 저에요.”

“주인이니? 그래 집 보니까. 어때?”

“저는 세 군데 중에서 처음 갔던 신설 초등학교 옆에 있던 곳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그래? 엄마도 주신이가 다닐 학교 근처가 좋을 것 같긴 해. 그런데 네 고등학교하고 멀어지는 것 같아서···.”

“괜찮아요. 집 앞이 바로 버스정류장이던데요?”

“신도시라서 다 좋은데 고등학교가 아직 개교 전이라니 그게 좀 그렇다.”

“아직 분양이 완료된 곳이 많지 않아서 그렇겠죠. 그렇지만 전 이사 하는 게 주신이한테 좋을 것 같아요. 차라리 초등학교 때 이사해서 중고등학교 같은 곳에서 다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전학 자주 가면 친구 만들기 힘들잖아요.”

“그건···.”

“전 종혁이랑 경수하고도 친해졌고 저보다는 주신이가 걱정이죠. 벌써 친해진 친구들 있을 텐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건 엄마가 잘 말할게. 그럼 집은 거기로 알아보고 나머지 두 곳은 전세라도 내야겠다.”

“전세 말고 월세는 어떠세요?”

“응?”

“그리고 엄마 마트 그만두고 아파트 상가에 가게 하나 내는 게 어때요?”

“내가?”

“미니 스탑이라고 재고관리하기 편하게 되어 있는 편의점이라고 옆 단지에 있던데 신설 초등학교 있는 단지에는 없더라고요.”

“미니 스탑?”

“네.”

“들어보기는 했는데···.”

“엄마가 마트에서 일하셨으니깐 잘하실 거에요.”

“내가 혼자서 그런 사업을 할 수 있을까?”

“미니 스탑은 체인점 같은 거여서 본사에서 정해진 물품 재고만 잘 정리하면 돼요. 거기에다가 아파트 상가도 엄마가 주인인데 월세 안 나가기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지 않겠어요? 거기에다가 마트에서 일할 때 힘들게 하는 사람 있다고 했었잖아요.”

“그건···.”

“자세한 건 집에 가서 말해요. 오늘 주신이는 제가 데리러 갈게요.”

“그래. 그럼 이따가 집에서 보자.”

나는 주신이가 기다릴 백신초등학교 가는 방향을 생각하면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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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 정글짐에 올라가 있는 주신이를 보고 다급하게 다가갔다.

“주신아, 위험하니까 조심해서 내려와.”

“형.”

주신이가 정글짐 중간쯤 내려와서 내 쪽으로 팔을 벌리자 나는 성큼 다가가서 주신이의 몸을 꼭 붙잡고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며칠 안 봤다고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말했다.

“형이 늦어서 미안해. 오래 기다렸어?”

“아니, 오래 안 기다렸어.”

나에게 매달리듯 꼭 안아오는 따뜻한 체온을 느끼면서 등 뒤로 맨 가방을 툭툭 두드린 나는 말했다.

“가방 무거우면 형이 들게···.”

그런 내 모습에 반항이라도 하듯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는 주신이의 행동에 일말의 불안함을 느낀 나는 주신이를 운동장에 내려주면서 무릎을 낮추며 눈을 마주쳤다. 일렁거리는 눈동자에 공포심과 어떤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예전에 봤던 눈빛인 것 같은데···.’

“주신아···.”

“엄마하고 형은 같은 곳에 있는데 나만 다른 곳에 항상···.”

‘그래 내가 주신이를 보육원에 맡길 때의 눈빛이야.’

나는 불안해하는 주신이를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주신아···형이 잘못했어. 주신이만 다른 곳에 맡기고 움직이는 게 아니었는데···형은 주신이가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같이 힘들어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주신이가 이렇게 속상하고 싫어할 줄 알았으면 그러지 말았어야···하는데, 주신이가 잘못될까 봐···그래서 그랬어. 형이 잘못 생각한 거야. 이런 형이지만 용서해 줄래?”

“나···난···.”

“괜찮아. 화가 나는 게 당연하지 분이 풀릴 때까지 화내고 미워하고···.”

“뭐야···화도 맘대로 못나게.”

나는 화를 내려다가 풀이 죽은 주신이를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맘껏 화내 화날 게 맞으니까. 그런데 걱정돼서 그랬다는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잘 설명하고 그랬어야···하는데 일이 너무 급하게 진행돼서.”

“나도 들었어. 외할아버지 돌아가셨다고.”

“누가···.”

“다들 쉬쉬해도 나도 듣는 귀가 있다고.”

“크흠···.”

내가 무안한 마음에 헛기침을 하자 주신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리다고 해도 다 듣고 보고 느끼고 알 거 다 알거든?”

‘어리다고 해도 한 명의 인격이고 사람이라는 걸 회귀까지 한 나도 간과하게 된다.’

나는 반성 어린 어조로 말했다.

“충분히 화내고 조금 풀리면 대화할까?”

“됐어. 화낼 기운도 쭉 빠지게 하면서. 그런데 형은 괜찮은 거야?”

“응?”

“외할아버지 돌아가실 때 옆에 있었잖아.”

나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외할아버지 보고 싶었어?”

“당연하지···.”

“그런 기회마저도 가지지 못하게 해서 미안해.”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게 왜 형 탓이야. 화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상한 곳에 화풀이할 생각은 없어.”

“···,”

“그냥···내가 없는대서 엄마랑 형은 괜찮은지 그게···.”

“왜?”

“오늘 엄마가 나 데려다주는데 정신이 반쯤 다른 곳에 가 있어서···.”

“아···.”

“그냥 나도 엄마랑 형이 힘들 때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거 싫다고.”

나는 주신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거 사갈까?”

“엄마가 좋아하는 거?”

“응. 오늘 엄마가 힘들어 보였다면서.”

“그게 뭔데?”

“매콤하고 달콤한 거···?”

엄마가 돌아오시고 준비된 저녁거리에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식어서 좀 맛이 없어졌지만, 봄바람 같은 미소가 돌아온 어머니 표정에 나와 주신이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조촐하지만 푸짐했던 떡볶이와 호떡으로 이루어진 식사가 끝나자 어머니가 주신이와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우리 이사 갈까?”

“이사?”

“응···.”

“전학도 가야 돼?”

전학을 걱정하는 주신이의 대답에 표정이 흐려진 어머니가 말했다.

“글쎄···. 그럼 좀 더 생각해볼까?”

생각이 깊어지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잠든 주신이를 내려다봤다.

‘전학은 힘들려나?’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날이 어둑해지시 시작하자 나는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뒤에서 의아하다는 듯한 어머니가 나에게 말한다.

“시간이 늦은데 어디 나가려고?”

“잠깐 바람 좀 세고 운동하고 올게요. 너무 늦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너무 늦지는 말아라.”

걱정스럽지만 내 앞을 막지 않고 자리를 비켜주시면서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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