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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35화 (35/205)

<35화 유산>

병원지하에 마련된 장례식장으로 시신운구가 시작되면서 어머니는 실신하듯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병원에서 마련해둔 침상에서 링거를 맞고 잠든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드르륵’

외삼촌이 어머니가 있는 병실에 들어왔다. 외할아버지가 있던 병실은 1인실로 가족에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진 침상에 어머니가 누워있었다.

어머니의 상태를 살피는 외삼촌을 보면서 질문했다.

“어머니는 괜찮으신가요?”

“어제 밤새 큰아버지 옆에서 간호하느라 지금 잠든 걸 거야. 큰할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깐 긴장 상태기도 했고···.”

“마지막에 그건···.”

“죽기 직전에 환각을 본 거겠지. 아니면 네가 큰아버지가 보기엔 아버지하고 꼭 닮았다고 생각했거나.”

“제가···.”

“유전자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깐.”

“···.”

침묵이 버거운 듯 외삼촌이 말했다.

“그리고 이건 연미한테 말하면 반발할 것 같아서 너한테 말하는 건데 유산상속 받아라.”

“네?”

“큰아버지가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 상속 포기해서 놀랐거든. 그런데 난 연미라면 큰아버지처럼 상속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노파심에 너한테 이야기하는 거야.”

“그게···무슨···.”

“큰아버지가 집안일에 발 벗고 나설 때 재산 욕심이 나서라는 소리를 친척들한테 듣고 살아오셔서 그런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상속 시작되자마자 바로 포기하셨어. 그러니깐 지금 큰아버지가 스스로 이룬 재산은 연미에게 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법상 당연한 거기도 하고.”

“···!”

“고모가 호시탐탐 큰아버지 재산을 노리고 있어서 걱정했는데 연미가 너무 늦지 않게 나타나줘서 다행인 거지. 큰아버지는 다른 건 몰라도 땅은 절대 넘기지 않았거든. 사연이 있다면서. 나야 그 사연을 모르지만 작은 일은 아닐 거야. 고모 말이라면 뭐든 사주던 큰아버지가 땅만큼은 손대지 못하게 호통치셨으니까.”

“땅이요?”

“여기 둔당 서운 대학교병원이 설립되어 있는 이 땅도 큰아버지가 가진 땅 중 일부에 불과해. 물론 재산상 가치가 없는 임야나, 논, 밭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둔당에 신도시 개발 들어갈 때 보상도 많이 받으셨을 거야. 정부에서 수용하니까 넘긴 거지 아니면 어림도 없었을 거다. 큰아버지가 땅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그때야 알았지.”

“전혀 몰랐어요.”

“알고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인연이 거의 끊긴 상태였는데.”

“만약에 저희가 외할아버지를 찾지 못했다면···.”

“그럼 우리 가족 중에 큰아버지한테 마음에 빚이 없는 사람은 없거든 다들 욕심내지 않고 공탁을 했겠지. 하지만 고모는···고모는 아마도 욕심냈을 거야.”

“고모라는 분은···.”

“어쨌든 가족 중 어른인 사람을 뒤에서 말하기도 그러니깐 이번에 장례식장에 오게 되면 네가 직접 판단하렴. 그게 좋겠다.”

‘이렇게 궁금하게 만들고 직접 확인하라뇨.’

반발심이 들었지만 동시에 아직 고등학생도 안된 나에게 선입견을 주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배울 게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장은 어머니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결정되어서 성대하게 준비가 끝나있었다. 내가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자 어깨를 한번 흔든 외삼촌이 내 뒤에 서 있었다.

‘어른이 내 뒤에서 등 뒤를 받쳐준 일이 있던가?’

회귀 전에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는 겪어보지 못한 외할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이 끝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같은 소리를 했다.

“딸내미 찾은 거여? 다행이네 다행이야.”

“평생을 그날 하루를 후회하면서 지내더니. 오해가 풀린 가벼.”

“그렇게 좋은 일을 많이 했음께 죽기 전에 하늘에서 돌본 것이 제.”

갖은 고생을 한듯한 풍파를 겪은 노인무리가 지나가자 이번에는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천오뇌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니 안타깝습니다만, 이런 훌륭한 손자가 자기 옆을 지켜 봐줬다니 다행입니다. 여기 명함입니다.”

나는 양복쟁이들이 넘기는 명함을 허투루 하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놨다. 방명록은 오전만에 가득 차서 다른 방명록을 꺼내야 했다.

‘방명록이 왜 이렇게 많나 했더니.’

외삼촌이 다가와 내 옆에서 작게 말해줬다.

“저쪽 연세 있고 사투리 쓰시는 분들이 큰아버지가 외국에서 고생하면서 일하실 때 알고 지내던 동료분들이고 방금 지나간 양복 입은 사람들이 큰아버지가 후원한 사람이야.”

“후원이요?”

“지금이야 살만하지만, 당시에는 먹고살기 힘들었으니깐. 그런데 남다른 학생들을 보고는 도움을 주고 나중에···.”

“나중에?”

“크흠···.”

“뭔데요? 외삼촌?”

외삼촌이라는 소리를 처음 듣는 것처럼 좋아하면서 입꼬리가 광대까지 가려는 걸 간신히 붙잡아 내리는 듯하더니 다시 작게 말하기 시작했다.

“연미 배우자로 괜찮은 사람 찾는다고···.”

“네?”

내가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펄쩍 뛰듯이 뒤를 돌아보자 진정하라는 듯 내 등을 치면서 앞을 살펴보게끔 주의를 줬다. 나도 장례식장 상주로 너무 소란스럽게 했다는 생각에 아무 일 아니라는 손짓을 하고는 다시 외삼촌의 말에 집중했다.

“당시에 잘사는 사람들은 큰아버지 마음에 차지 않고 그렇다고 삶이 팍팍한 작자들한테는 시집을 보내기 싫으니 인품이 좀 괜찮고 그렇다 싶은 사람을 후원한 거지.”

“그럼?”

“그래서 큰아버지 눈에 매제가 눈에 차겠어? 그 사이를 고모가 파고든 거기도 하고. 고모가 맘에 둔 사람이 큰아버지의 후원을 받기도 했고···.”

“네?”

“고모라고는 하지만 막내였기 때문에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아 마침 저기 오네.”

장례식장이라는 걸 감안해서 검은색으로 통일된 옷차림이었지만 올림머리를 한 머리 한가운데 보석 장식이 장례식장의 전등 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중년 여성의 어깨에는 두툼한 모피코트가 떨어질 듯 걸쳐져 있어서 절로 시선이 모였다. 그런 시선을 즐기듯 여성이 두툼한 손가락 마디마다 걸쳐진 반지를 뽐내듯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연미 아들이니? 큰아버지를 하나도 안 닮았네. 어디 외탁한 거 아니니?”

“고모 무슨 말씀을···.”

“난 그냥 보인 대로 말한 건데 왜 이렇게 발끈이야. 혹시 찔리는 것 있어? 그렇게 열심히 연미를 찾더니만 아예 만들어 온 거 아니야?”

“무슨 소리예요?”

“흥. 사람 찾기 힘들다고 엄살은 다 떨더니 찾았다고 데려온 사람이 진짜 연미인지 알 길이 있어?”

“고모 그만 하세요.”

화려한 옷차림 뒤로 상복을 입고 곱게 머리를 빗어서 묶은 어머니가 말을 걸었다. 어머니가 뒤에 서 있을지는 생각하지 못했던지. 여성은 얼굴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살갑게 웃기 시작했다.

“어머, 연미야. 얼마 만이야.”

“제가 고모 얼굴을 잊을 정도의 시간은 아닌 것 같네요. 덕분에 작은 오빠하고도 서로 누군지 바로 알아봤어요.”

“그래? 뭐하다가 큰아버지 돌아가시니깐 뻔뻔하게 나타난 거니? 재산 욕심나서?”

“뭐라고요?”

“그런 게 아니면 병으로 고생하던 큰아버지 병수발을 다른 친척들한테 다 들게 해놓고서는 이제야 나타난 이유가 뭐냔 말이야.”

나는 이제야 외삼촌이 직접보고 판단하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모가 이런 ××이라는 걸 차마 외조카한테 말하기 힘들었겠지.

“제가 찾은 겁니다. 고모할머니.”

나는 할머니에 강조해서 말했다.

할머니라는 소리에 기분이 나빴는지 나를 돌아봤지만, 촌수 상 내가 고모할머니라고 부르는 건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에 화난 표정으로 날카롭게 쏟아 붙이려는 듯 숨을 깊게 들이신 순간.

어리다고 묻고 넘어가려는 중년여성의 말을 가로채듯 내가 이어서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변에 친척 한 명 없이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한테 친척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것도 이 지역에서 꽤나 알아주는 유지라는걸요. 그래서 제가 찾았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고생하시는 어머니 옆에 집안에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내 말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매제가 안 보이는 게···설마···.”

외삼촌은 아버지가 못 찾아오는 게 아니라 안 찾아오는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폭풍 같은 진실이 한번 펴지자 장례식장에서 대뜸 재산 욕심에 외할아버지를 찾았다고 말한 고모할머니의 말이 너무했다는 식의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물론 세상사 남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재산 욕심이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그건 소수의 말일뿐 이었다.

‘저런 사람한테 재산의 한 푼이라도 넘기느니 욕심 많다는 소리를 듣더라고 한 푼도 남김없이 상속받아야겠어.’

속으로 단단한 결심을 하고는 고모에게서 떨어트려 내실에 쉴 수 있게 자리한 곳으로 어머니를 데리고 가는 외삼촌의 뒷모습을 보고는 잠깐 자리를 비워도 되겠냐고 하고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전 상속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뭐?”

“저런 인간한테 한 푼이라도 넘어가는 걸 알게 되느니 욕먹더라고 상속 다 받자고요.”

“주인아···.”

“왜요? 못 받겠어요?”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나 아버지 재산 받을 거야. 처음부터 상속 포기할 생각 없었어.”

“네?”

당혹스러워하는 내 표정을 보면서 어머니는 살포시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너무 아팠다.

“주인이하고 주신이가 있는데 어떻게 엄마가 너희한테 가야 할 재산을 포기할 수 있겠니.”

“아···.”

만약 아버지가 살아있고 우리 가족끼리 잘살고 있었다면 어머니는 상속을 받으셨을까?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 외할아버지 손 보셨어요?”

“응···난 손가락 마디가 굽혀지지 않을 정도로 고생하셨는지는 몰랐어. 항상 나한테는 좋은 소리 좋은 일만 이야기 하셨거든. 그런데 장례식장에 찾아오신 손님들의 경험담 한마디 들을 때마다···난···.”

“그렇게 고생하신 외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잘 사시 길 바래서 자신과 다르게 편하게 살기 바래서 그렇게 고생하신 걸 거에요. 저하고 주신이를 위해서도 좋지만, 어머니 자신이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단지 돈이 아니라 같이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머니 손을 잡던 내 손을 들어서 내 뺨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주인이가 엄마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나도 엄마가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요.’

나는 말을 하는 대신에 엄마를 꼭 안아주고는 다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내실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준비된 장례식장이 너무 휑하고 크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장례식장에 빈자리를 찾기 힘들어서 방명록만 작성하고 가려는 사람까지 있어서 상주인 내가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생각했다.

아직도 난 외할아버지의 유산을 아직 다 받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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