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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34화 (34/205)

<34화 아버지의 삶 4>

“그러게 이상하게 운이 좋은 날이네.”

나는 속으로 움찔하는 느낌이었지만 이내 표정 변화 없이 김밥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이거 맛있다. 이게 뭐야?”

“샌드위치라면서 엄마가 만들던데 잘 몰라 그냥 가끔 해주시는데 오늘 기분 좋으셨나보다 김밥이랑 같이 넣어주신 거 보면.”

“무슨 날이야?”

“그건 아니고 어제 너 가고 난 다음에···.”

종혁이가 어제 있었던 일은 나하고 경수에게 간단하게 설명하자 경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우리 엄마가 보험 하잖아.”

“응? 그게 왜.”

“그것도 안 좋게 보는 사람들 많거든.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왜 나가서 일하면서 집안 망신시킨다고.”

“뭐? 같이 벌면 더 좋지 그게 왜?”

내 반응에 경수가 피식 웃더니 내가 노리던 김밥을 노렸다. 젓가락으로 검 싸움 흉내 내면서 김밥을 노리던 나와 경수의 모습을 한심한 것처럼 보던 종혁이 손으로 마지막 김밥을 먹어버렸다.

“야.”

동시에 종혁이를 향해 외친 나와 경수의 외침에 종혁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뭐?”

그리고 가방에서 도시락을 한단 더 꺼내자 우리는 종혁이를 향해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다시 김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꽉꽉 눌러 담은 3단 도시락이었지만 한참 자라고 있는 우리들의 위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양이었다.

그래도 배가 불러서 의자에 널브러지듯 틀어놓은 영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차가운 바람이 들이치면서 교실 앞문과 뒷문이 동시에 열렸다.

우르르 들어오는 반 아이들을 보자 들어오던 아이들이 교실 가득한 김밥 냄새에 배를 부여잡고 외쳤다.

“누가 교실에서 김밥 먹었냐? 나도 하나만 주지.”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장난스럽게 웃고는 교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웅성거리는 복도만 보아도 학주가 아이들을 쥐잡듯 잡고 교실로 돌려보낸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학주 갑자기 왜 뜬 거냐?”

“요번에 그 일도 있고 풀어줬다가 사고 날까 봐 한번 조이는 거 아냐?”

체육 선생과 사이고 관련해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한번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작은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한 아이가 나를 향해서 다가왔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내가 빤히 쳐다보자 시선을 피하더니 교무실에서 담임이 부른다는 소리만 하고는 교실 밖으로 사라졌다.

“누구지?”

“옆 반 반장이잖아. 아, 넌 모를 수도 있겠네.”

“교무실로 바로 갈 거야?”

“그래야지.”

난 자리에 일어나서 교무실에서 걸리지 않을 정도의 옷차림이 되는지만 살펴보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운이 좋은데. 이번에 신고한 걸로 경찰에서 시민상이라도 주려나?’

가볍게 교무실 문을 열고 담임이 있는 자리로 가자 굳은 표정의 담임선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담임이 입을 열었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외할아버지 위독한 상황이라고 당장 오라고 하던데···주인아? 주인아?”

나는 담임 입에서 외할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올 때부터 이미 교실로 달려가고 있었다. 교실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무슨 일인 듯 나를 주시했지만 그걸 신경 쓸 새도 없이 난 가방에서 지갑만 빼 챙기고 종혁이에게 부탁했다.

‘오늘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종혁아, 끝나고 주신이 데리고 집에서 잠깐 봐줄래? 오늘 나하고 엄마는 데리러 못갈 것 같아.”

“무슨 일이야.”

나를 잡는 종혁이의 말에 나도 물어보고 싶었다. 야속할 정도로 맑은 창 밖의 풍경을 보면서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말끝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째서···이제야 만난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어째서···.’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데···.”

“외할아버지? 분명 내가 알기로는···.”

종혁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교실을 박차고 달리고 있었다. 더 이상 어떤 말로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사실에서 도망치듯 달리고 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도 멈추지 못한 채로 방향도 목적도 잊은 채 그저 도망치듯.

‘사실은 어제 있었던 일들이 전부 꿈이 아닐까?’

학교 앞에서 한참 나온 큰길에 도착해서 택시를 잡은 나는 병원으로 바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한번 왔던 병실 문 앞에 도착하자 나는 직감이라도 한 듯 턱까지 올라오는 숨을 고르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사실은 그저 나 혼자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조금 행복하고 조금은 슬픈···그런 꿈을···.’

그런 나의 슬픈 감상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달렸던 나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나타난 병실문이 차갑게 가라앉혀주었다.

‘드르륵,’

차가운 병원문의 손잡이가 현실을 깨달으라는 듯 나의 뜨겁게 달아오른 손을 느끼게 해주었다.

‘단단하고 차갑다.’

어제 봤던 장면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외삼촌이라는 사람은 침대 가에 서 있었고 의자에 앉아서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어머니는 나를 돌아봤다.

어머니의 얼굴 표정은···

아니, 아버지를 잃어버리는 걸 두려워하는 어린 소녀의 얼굴이었다.

원망하고 원망했지만 결국 단단하고 굳건하게 옆에서 자신의 원망을 받아줄 존재조차 잃어버리는 걸 두려워하는 그런···

“주신아···.”

“엄마, 외할아버지는요?”

나는 질문을 했지만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가 달려오면서 꿈이라고 한순간 달콤했지만, 끝은 씁쓸한 그런 나의 작은 꿈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현실이란걸 알 수 있었다.

“그게···.”

힘겨운 표정만큼이나 열기 어려운 듯 힘겹게 뗀 어머니의 첫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거짓말처럼 어머니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병실 밖에서도 들렸던 의료기기의 요란한 소음이 순간 정적이라도 되는 듯 동시에 잠잠해졌다.

동시에 나는 떨리는 손끝을 강하게 쥐고 최대한 담담해 보이려 노력하면서 어머니 뒤쪽 병실에 누워있던 외할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니야···아직은···아직은······.’

하지만 나의 우려와는 달리 외할아버지는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자신의 힘으로 벗었다. 놀라서 말리는 외삼촌의 손을 쳐내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면서도 외할아버지를 향해서 다가가 손을 잡았다. 손은 무서울 만큼 뜨거웠다.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자 하는 초인처럼···

“외···.”

내가 미쳐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생전에 거친 삶을 살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가래 낀 거친 음성이 먼저였다.

“아···ㅏ···.”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꼭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는 것 같은 외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아주 작게 하지만 분명히···

“아···아버지···.”

‘아버지?’

나는 외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당신의 외손자라고 정정하려고 했지만, 외삼촌이 그런 나를 말류 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외할아버지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손을 뻗었던 처음의 거친 숨과 달리 나의 손을 굳게 잡는 순간 병세가 완전히 나아서 건강해진 것처럼 건강했던 시절의 단단했을 목소리가 병실에 있던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병실을 울렸다.

“아버지···저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나는 외할아버지의 이 한마디에···알 수 없던 그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한마디에···무너지듯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외할아버지가 원하는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

아주 잠깐의 기억 속에 스쳐 갔던 그 많은 공장과 탄광 그리고 시장 인파 속 배달까지 외할아버지의 고단했지만, 희망에 차 있던 그 순간들이 한 장면씩 떠오르다. 눈물의 바다에 깊게 가라앉고 말았다.

최대한 외할아버지의 기억 속에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울음 섞인 말을 할 수 없어 깊고 깊은 침묵을 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런데···제가···제가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이남이라도···.”

내가 봤던 기억 속의 소년은 주름살보다 많은 굳은살을 가진 중년 아저씨가 되어서 도착한 고향의 모습은······

‘아버지들은 항상 늦는다. 한 발자국만 일찍 와도 볼 수 있을 아내의 따뜻한 한마디 아이들의 마중 인사를 듣지 못한다. 꼭 한 발자국 늦는다···.’

따뜻하고 정겨웠지만 가난했던 신념과 굳은 의지가 있었지만 차갑고 냉골이었던 낡은 초가집.

아버지가 든든하게 가족의 곁에 있을 때 만해도 따뜻했던 집은 신념은 있지만, 훈기는 없는 집이 되었다. 가산이었던 땅과 논, 밭을 정리해 신념을 지켰지만,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자신의 곁에 없던 아버지를 미워했던 게 아니었나?

나의 의문은 의문으로 남을 뿐이다.

‘한 발자국만 좀 더 가족의 곁으로 빨리 오면 볼 수 있는 웃음이 가득한 아이들과 아내의 모습을 포기하고 그네들이 늦도록 찾는 건 무엇이었을까?’

나는 내 가슴 속에 소용돌이치는 가슴 벅찬 슬픔을 누르고 담담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소리 없이 주름진 노안에서 눈물이 스며나오듯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놀라신 것 같았지만 말없이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저···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나는 후회로 눈물을 흘리는 외할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곱씹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도 놀랄 만큼 담담한 목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다.

“고생했다.”

나는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내가 아는 외할아버지의 삶은 그의 고단했던 생의 한 단편뿐이다. 그의 어머니, 동생, 그리고 밉고 그리웠을 아버지.

“아버지 대신 고생했다.”

“아···아·버···지···. 저···.”

“넌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고···자랑스럽다.”

난 내가 회귀 전 듣고 싶었던 말을 외할아버지에게 전했다. 나의 어머니, 동생, 그리고 밉고 그리웠던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듣고 싶었던 말.

‘넌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깐···.’

내가 듣고 싶은 말.

외할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는 않았지만, 입가에 미소를 띠고 조용히 숨을 멈추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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