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아버지의 삶>
피내음이 풍겨오는 여성의 품은 따뜻했지만, 그 와 함께 축축했다.
그녀의 손발 끝에서 나오는 고름과 곳곳에 새겨진 볼썽사나운 험한 말들이 새겨진 담장 너머로 붉게 타오르는 붉꽃이 이 모든 슬픔과 아픔을 살라먹기만을 바라는 듯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남아···, 이제 그만···가야 해. 안 그럼 들킬지도 몰라.”
중년여성의 목소리는 단아했지만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그녀의 입가에 흐르는 핏자국만이 그녀가 어떻게 발음이 제대로 안 나오게 된 건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니···.”
아직 어린 소년의 목소리는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에 끝을 맺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년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눈물이 날 만큼 곧고 다정했다.
“엄마랑 이남이···하고는 집 지키고 있어야지. 걱정하지 말고 가렴. 아니면 배를 놓칠지도 몰라.”
갑자기 모든 장면이 흐릿하고 앞이 깜깜해지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울고 있는 건가? 아니, 이건···.’
생각이 이어지기 무섭게 어린 소년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뱃전에 서 있었다. 얼굴은 찬 바닷바람에 얼어붙은 것인지 더 이상 표정이 지어지지 않는다.
“어머니하고 인사는 잘하고 온 거냐?”
덩치가 큰 뱃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양복을 입고 있던 남자가 어린 소년이 바라보는 바다 너머를 그리운 뭍을 찾듯 시선을 같이 한다.
“···.”
“어머니와 여동생은···.”
파도 소리에 어린 소년의 울분인지 울음인지를 숨겨주었다.
그런 소년의 목소리를 못 들은 것처럼 양복 입고 있는 남자는 담담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말할 뿐이었다.
“감시 눈길이 잦아들면 찾아뵐 수 있을 거다.”
“그럼 그 사이에 받는 핍박은요.”
“너도 같이 어머니와 여동생 옆에서 그 모진 고문과 핍박을 받는다고 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으냐? 차리리 외국으로 나가서 고생스럽더라도 돈을 벌어서 잠잠해지면 그때 돌아가는 게 그들에게도 너에게도 좋은 일일거다.”
“저는 아버지가 원망스럽습니다.”
아버지가 원망스럽다는 소년을 바라보면서도 남자는 여상스럽다는 듯 대답했다. 미움이나 원망 따위에 감정을 둘 여유 따위는 땅에 놓고 온 남자인 듯 소년의 마음가짐을 확인할 뿐 그저 그뿐이었다.
“그분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거다.”
“가족은요.”
뱃전에 서서 찬 바람을 맞느라 차가워진 아직 앳된 외할아버지의 어깨에 흉터가 가득한 큰 손이 얹어진다.
“나는 가족이 눈에 밟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 아부하고 손을 벌렸지. 경성에서 큰소리치면서 아이들을 유학 보냈지만, 나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외할아버지가 뱃전의 난간을 힘주어 잡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아무리 높은 고등교육을 받는다고 한들 남는 건 조센징이라는 낙인뿐이었다.”
“저는 그래도 아버지가 원망스럽습니다.”
“너는 원망할 자격이 있다. 너희 아버지이니까. 모든 걸 바쳐서라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산화한 그분의 아들이니까.”
“왜 우리 가족을 도와주는 겁니까?”
“그분의 아들이니까. 우리는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미 변하고 있다. 뼈속까지 상인인 내가 변했고 그분의 의거를 보고 많은 이들이 아직 독립의 꿈을 키울 수 있으니 의미가 있다.”
“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주저앉듯 배전에 내려앉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큰 덩치의 인형은 모포를 들어 덮어 씌어주며 멀어져갔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린 소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모르는 척하듯이.
소년 아니 강제로 청년이 된 그는 일본에서 중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의 시작이야 어찌하였든 시작되었기 때문에 목표를 향해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경주마처럼 뒤와 옆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봤다. 어쩌면 그게 현실을 잊는 좋은 수면제가 되듯 모든 감정을 죽인 채로 자존심은 바닥에 버리면서 그저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뿐이었다.
청년은 이제 중년 아저씨가 되었고 고된 삶이 얼굴에 인상으로 남기 시작할 무렵. 광복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통 한가운데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저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고향 땅이 있는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라만 볼 수밖에 없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돌아···돌아가도 될까? 아직 어머니와 이남이 호강시켜주려면 더 벌어야 하는데···그런데···.”
아무도 곁에 없는 외로움을 이겨내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속도보다 그저 그리움에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이길 수 없었다. 그를 달리게 하던 한자락의 고삐가 풀린 순간 그는 고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달음에 다가간 고향 땅은 너무 바뀌어서 알아볼 수 있는 것보다 못 알아보는 게 더 많이 졌다. 그럼에도 제가 살던 집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어머니!!”
‘으아아앙’
외침에 반응하듯 갓난쟁이의 울음소리가 집안에 우렁차게 울렸다. 생각할 것 없이 대문을 박차고 집안을 살피자 옹색한 살림살이를 알려주듯 구멍 난 창호지 사이로 오래돼 보이는 이불을 덮고 있는 인형에 생각할세도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큰소리가 나도 조용한 인형의 모습에 조바심이 난 것도 잠시 시끄럽게 우는 아이 옆으로 늘어지듯 누워있는 낯선 인형에 처음에 낸 큰 소리와 다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여기 살던 노모하고 이남이라는 어린 여자아이···혹시 아십니까?”
힘들게 몸을 일으키던 비쩍 마른 여성은 이내 어디서 나오는 눈물인지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몸이 많이 상해서인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여동생 이남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눈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과 속에서 나오지 못한 언어가 눈을 통해서 전달되고 있었다.
“이···이남아···이··이게 무슨···.”
둘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아니 그저 비쩍 마른 인형을 그는 강제로 일으켜 안아 들었다. 속에서 나오는 그 어떤 말도 언어로 변하지 못하고 그저 엎고 달릴 뿐이었다.
‘으어어어’
그들은 어디를 향해서 달리고 있는 것일까.
해 질 녘 붉게 물든 노을은 그가 떠나기 전 타올랐던 화마가 다시 타오르는 듯했다.
푸른 하늘 가득 수놓는 흰 구름떼 덕분에 양 떼가 하늘에서 뛰어노는 것 같았다.
하늘하늘한 바람에 걷다 쉬기를 반복하는 길가는 사람들의 땀을 식혀주는 산들바람에 기분 좋게 나들이를 나서는 가족들 사이에 어설프게 갓난쟁이를 등에 업은 초보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가방 가득 무얼 그리 넣었는지 무거워 보이는 짐을 지고 산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묵묵히 걷기만 하던 사내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 제 아빠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걸 알기라도 한 듯 갓난쟁이가 까르륵 웃기 시작한다.
그 웃음소리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갈 만도 하건만 사내는 감정은 어디 먼 곳에 두고 온 것처럼 처음의 표정 그대로 그저 짐을 내려놓고 그가 목적지로 정한 곳을 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정하지도 정감 가지도 않은 거뭇하게 탄 살갗 갈라진 손끝과 굳은살이 험한 일을 많이 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그렇지만 표정 없이 한없이 바라보는 곳을 같이 바라볼 때면 말도 없이 눈물이 흐를 것 같은 감상이 떠오르는 남자. 파란 하늘을 달리던 산들바람마저도 그의 옆에서 지나갈 때면 흐느끼는 듯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빈 봉분 옆에 조촐한 돌무더기 거기에 더해 들꽃 하나까지 길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누가 묻혀있는지 모를 봉분 앞에 주저앉은 그의 인형이 허망하다는 듯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내가 돌아왔는데···.”
“크····흐··흑···너무···너무 늦었구나···.”
이제까지 대들보처럼 든든해 보이던 그의 어깨가 무너지듯 그저 버티고 앉아 눈에서 병이라도 난 것처럼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뜨거운 눈물이 무덤가에 피어난 들꽃위로 떨어지자 들꽃은 너무 뜨거운 눈물이 꽃잎이 지기 시작했다.
그의 등 뒤에 매인 보자기 속 아기가 그의 오열에 칭얼대다가 크게 울음을 키우는 모습을 끝으로 나는 나도 모르는 세 눈물을 흘리면서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크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에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았지만 호흡기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알아들을 방법은 없었다.
그저 가슴 먹먹한 눈빛을 받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간 영상 속 들꽃처럼 자신의 여동생을 꼭 닮은 조카가 자신을 향해서 웃음을 비춰줬을 때 그 모습만이 계속 지나갔다.
술법을 통해 본 공포스러웠던 기억보다 가슴에 사무치는 그리움에 가슴이 애끓는 이 심정이 더 큰 후유증을 남겼다. 나는 허탈했으며 동시에 충만했고···그리고 너무 슬펐다.
나는 간신히 외할아버지의 기억과 감정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면서 그의 눈을 봤다.
주름지고 고생을 많이 한 듯 갈라진 손끝. 얼마나 힘든 일을 끝없이 겪었는지 갈라진 손톱과 뭉개지듯 잘 펴지지 않는 손가락 마디를 주무르며 생각했다.
‘외가는 잘산다고 알았는데···그저 오해였던 걸까?’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의사가운을 입은 머리가 희끗거리기 시작한 의사였다. 처음에는 병실에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나중에는 내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지적여 보이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연미 아들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