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어머니의 삶2>
따뜻한 저녁 식사 덕분인지 주신이는 이내 누가 엎어가도 모를 만큼 잠이 들었다. 종혁이네에서 가끔 잠들기는 하지만 집에서 만큼 깊은 잠을 자지는 못했다.
집이어서 집이기 때문에 편하게 모든 긴장감을 내려놓고 주신이는 잠이 들었다. 이제는 꽤 무거워진 주신이를 이불에 눕히면서 저녁 설거지를 하고있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본다.
‘어머니는 어떤 소녀였을까? 종혁이 어머니처럼 꿈많고 학구열이 넘치는 그런 소녀였을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 시절 어머니를 상상해보았다.
‘어쩌면 난 어머니에게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종혁이가 어머니가 대학을 나오고 언론 고시를 합격 한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건 아니 두지 않을 수밖에 없는 건 나와 종혁이가 그네들의 자녀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
“어머 애가 오늘따라 왜 이래?”
나는 당황스럽다는 듯한 어머니 등을 주무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냥, 오늘도 밖에서 고생했을 것 같아서.”
“괜찮아. 너하고 주신이 얼굴만 보면 아주 기운이 나는걸.”
나는 차마 어머니에게 말하지 못한 말을 가슴에 묻어둔다.
가슴 깊은 묵직한 무언가가 누르는 답답함에 깊은 잠에 빠져들자. 기다렸다는 듯 흐릿한 안개가 내방을 휘돌더니 나는 이내 대백공이 머무는 허름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오두막 앞에 서 있는 대백공을 만날 수 있었다.
‘대백공···.’
“어린 친구 반갑다네.”
“저도···.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이번에는 신고한 것도 없고 정말 특이한 일이라고는 없었는데요.”
“허허, 내가 인간의 기운을 흐름이 막히지 않게 땅으로 하늘로 흘려보내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고 말했었던 걸 기억하나?”
“네···.”
“그런데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네. 그건 균형과 조화를 끝없이 바라면서도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필멸자의 숙명과도 같지. 그래서 인간에게 차별과 다툼은 없어질 수 없는 명리와 같지. 하지만 차별과 다툼만 있어서도 안 된다네.”
“어···무슨 의미인지···.”
“쉽게 말하자면 차별과 다툼이 있다면 반대로 협력과 포용이 있어야 흐름이 원활해 진다는 걸세.”
“아···일방적으로 한쪽으로 기울면 안 된다는 거군요?”
“그렇지. 천, 지, 인이라고 언급했던 걸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군. 조화로운 땅의 기운이 흐트러져 하늘의 기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 결국 그 악영향이 인간에게 다시 돌아갈 것인데 그 조화를 깨뜨리는 인간이 또 조화를 만들어 내니 참 하늘의 섭리는 오묘하구나.”
“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네. 다른 사람이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짚어줌으로서 한 사람 그리고 한 가정에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라네.”
“그게···무슨···전 그저 상식선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시도해 본 건데요?”
“그 상식이 만들어지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나?”
“그건···.”
나는 지금의 학창시절을 제외하고도 회귀 전 지천명이 넘도록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은 사람들과의 관계, 인상, 그리고 그 수많은 변화···
“그럼 오늘 제 행동이 무언가 특이점을 발생시킨 건가요···?”
“그렇다네. 차별과 다툼이 만연한 세상에서 상생으로 향하는 희미한 빛이 나타난 것이지. 이렇게 기울어진 흐름을 보일 때 자네가 기울어진 흐름을 바꿀 작은 흐름을 만들었다네.”
“제가요?”
“자네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일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타인의 배려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니. 참 하늘의 뜻은 오묘하고 오묘하구나.”
“이번의 저의 행동에서 특이점이 생겼다고 말해주셨는데···그럼 여성한테 배려하고 권리를 나눠주고 그러면 행운을 얻는 건가요?”
“어린 친구···그런 생각이라면 앞으로는 자네가 원하는 보상을 얻기 힘들 걸세.”
“네?”
“성차별에 무조건 여성만 높인다면 남성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니. 그것 또한 잘못된 것이고 성별에 남성과 여성만으로 나뉘어 정체성에 혼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차별한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것이지.”
“···.”
“그런 이야기를 왜···저에게···.”
“그래···이해하기 싫고 귀찮기만 할 수도 있지. 하지만 자네가 얻는 보상을 얻고자 한다면 알아야 할걸세.”
“······.”
“제가 이번에 얻게 되는 보상은 무엇인가요?”
대백공은 나에게 숫자를 알려주었다.
직접 숫자를 불러주는 것도 아닌데 내 머릿속에서 떠도는 숫자들이 심어지듯 나타났다.
‘이번에도 숫자면···복권번호인가?’
생각보다 숫자 수가 많아서 복권번호와 한참 달랐기 때문에 들여다보니.
‘011-×××-××××? 이거 전화번호잖아?’
질문을 하기 위해서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건 익숙한 우리집 천장이었다.
“전화번호?”
어머니는 이미 출근했는지 이부자리가 있어야 할 곳은 정리되어 있고 밥상에 올려진 쪽지가 보였다.
‘피곤해 하는 것 같아서 깨우지 않았다. 주신이가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고해서 오늘은 내가 도서관에 데려다주고 가마. 아침은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서 먹고. 친구들하고 편하게 놀다가 들어오렴.’
내가 매번 주신이를 데리고 종혁이와 경수를 만나는 걸 알고 서는 주말에 신경 써서 주신이를 도서관에 데려다주시고 출근하신 것 같았다. 주말에 더 바쁜 마트 사정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무리하신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지만 대백공이 알려준 전화번호에 먼저 시선이 쏠렸다.
‘띠, 띠, 띠’
하나씩 전화번호가 눌리면서 내 마음도 긴장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누구 번호기에 보상이라면서 알려 준걸까?’
“여보세요. 천오뇌 씨 휴대폰입니다. 환자는 지금 전화를 받을 상태가 아니어서요. 전달하실 내용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어···거기 병원이 어디인가요?”
“여기는 둔방 서운 대학병원입니다.”
“혹시 일요일에도 면회가 되나요?”
“오전 면회시간은 지났고요. 오후 면회시간은 1시 이전에 접수하시면 자세한 안내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든 왼손으로 오른손을 붙잡고 주저앉듯 자리에 앉았다.
‘외할아버지가 아프다고?’
‘어머니도 알고 계실까?’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우선 알게 된 병원주소를 향해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면회시간을 놓쳐서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보다는 면회를 알아보고 난 다음 고민해봐도 늦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회귀 전에도 외할아버지에 대해서 알게 된 적은 없는데···
이게 왜 대백공이 말한 보상이라는 걸까?
나에게 외할아버지와의 접점은 없다. 친척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어머니의···
혹시 어머니의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한을 풀 수 있는 기회라는 걸까?
나는 차라리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을 찾아가 인사하는 게 편할 정도로 외면받던 가족이 아프다는 병원을 찾지도 않았는데 찾아가게 되는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병원 데스크에서 한참을 고민하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자 불안해 보였는지 경비원이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질문했다.
나는 내 모습이 충분히 의심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외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는데 면회를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경비원은 이런 나를 좋게 생각했는지 내가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나는 외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차마 열지 못한 문 너머로 희미하게 의료기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멍하니 문만 쳐다보고 있을 때 병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드르륵···.’
“어?”
누가 앞에 서 있을지 몰랐는지 병실에서 나오던 간호사가 깜짝 놀란 표정이 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방금 통화했던 사람이 학생인가요?”
“네···.”
“할아버지 만나러 오셨나 봐요. 주말인데 착한 학생이네요. 면회 신청하셨으면 들어가 봐도 괜찮아요.”
나는 간호사가 열어준 문을 차마 닫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병실에 한 발자국 발걸음을 옮겼다.
어릴 적 사물에 대해서 정확한 기억이 없던 날 큰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슬픈 울음소리만 가득했던 외가의 이미지가 병실 특유의 소독약 냄새에 사라지듯 현실은 조용히 눈을 감고 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노인과 이제 고등학생이 될 나만이 남아 있었다.
“아···.”
회귀를 했음에도 나는 아직 어렸을 적 외면받았던 그 고통스러웠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내 목소리에 반응하듯 노인이 눈을 뜨더니 이내 힘겹게 손을 뻗기 시작했다. 무언가 입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호흡기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ㅓ...아...”
동시에 화면이 전환하듯 눈앞이 빙글 돌았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순간. 익숙해지지 않는 두통과 함께 아찔한 괴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속 장면 같았던 화면이 흑백으로 하지만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가다. 붉게 타오르는 불꽃 앞에 멈췄다고 생각하는 순간. 짙은 화마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주름진 눈가는 이미 눈물로 엉망이었다. 갖은 고초를 겪은 듯 피 내음이 그녀에게서 풍겨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아 오는 손은 힘 있고 따뜻했다. 가슴 깊은 곳 알 수 없는 폭풍이 나를 목석처럼 굳게 서 있게 했다. 어려 보이는 소년의 손을 꽉 잡고 있는 세월이 주름마다 세겨진 중년여성의 말에 그제야 난 알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의 기억? 그럼 이 어린 소년이 외할아버지?’
나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외할아버지의 잡은 손을 놓치않고 익숙해지지 않은 감각을 억지로 내리누르면서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