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화 아픈 현실2>
‘삐용삐용’
등교 후 조례전 친구들 끼리의 인사로 소란 스럽던 교실은 순간 혼란스러움이 가득찼다. 아이들의 웅성거림 뒤로 갑작스럽게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닫혀야 할 교문 앞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자리에 서 있던 경수가 가장 먼저 창문에 달라붙어서 말했다.
“무슨 일이지?”
“이거 구급차 소리 아니야?”
“누가 다쳤나?”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와 구급차가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자 전교생이 교실밖에 모습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1, 2학년은 아직 수업 전이었는지 담임으로 보이는 선생들의 고함소리에 이내 창문이 닫히고 강제로 수업이 시작된 것 같았지만, 3학년은 자율학습이었기 때문에 수업 종이 울리는 소리가 나도 소란스러워진 운동장에 다들 집중하고 있었다.
“엇, 저기 체육 선생님 아니야?”
“뭐지? 잡혀가는 건가?”
“체육 선생님이?”
“애들한테 친절하게 잘 대해주는 선생님이잖아.”
“그러게 무슨 일이지?”
반에서 입이 험하고 발이 넓다고 알려진 오현진의 말에 반아이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야, 그 새끼 이 학교 오기 전부터 소문이 이상했어. 그거 터진 걸 거야.”
“뭐?”
“무슨 소문?”
“서울에 유명한 사립여중에서 선생 하다가 애들한테 손대서 이쪽으로 강제로 전근 온 거잖아.”
“그건 그냥 질 나쁜 소문 아니었어? 체육 쌤 서운대 체육학과 나오고 수업도 재미있잖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거 같아? 거기서도 교사들 사이에서 평판은 좋은데 여학생들은 완전 싫어 했다고 하더라.”
“아니 애들한테 손대서 소문까지 날 정도면 선생을 못 하게 해야 하는 것 아냐?”
“증거가 딱히 없으니까.”
“뭐?”
“당한 애가 선생님 사랑한다고 했데.”
교실은 적막함이 넘치면서 충격적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선생이 좋아서 거짓말한 거네.”
“체육쌤이 당한 거 아냐?”
체육선생이 평소에 아이들에게 다른 선생들과 다르게 권위적이지 않고 잘 대해 줬기 때문에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말에 반발하듯 오현진이 험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속에 담고 있는 거북한 이야기를 이제야 토해내듯 빠르지만 정확하게 전달했다.
“아무리 좋아한다고해도 자기 아버지뻘 선생이랑 모텔을 가겠어? 난 아니라고 본다. 나도 학원선생님이 첫사랑이었지만 손한번 못잡아봤다고.”
“야, 그건 당연한거고. 좋아하는거랑 그런건 틀린거지.”
“너네 몰랐냐? 전근당하기 전 학교에서 십여명 넘는 학생들하고 그렇고 그랬다던데.”
“뭐? 소문인거 아냐? 그리고 좋아한다고···.”
“좋아하면 다 그렇게 돼? 그리고 체육쌤 결혼해서 아이도 있잖아. 우리한테 사진보여주면서 자랑까지 했는데.”
“그럼 체육이 인간 쓰레기인거 아니냐? 자기가 기르치는 학생이랑 불륜이면? 그리고 경찰이 할 일 없어서 여기까지 그것도 동네방네 소문내며서 오겠어?”
“그런데 학교에서는 이런 구설수 싫어해서 진짜 있는 일이면 몰래 조용히 부를 것 같은데.”
“어, 그것도 그러네.”
“어쨋든 여자애들이 유부남 만난거면 걔네 미친거 아냐?”
나는 참을 수 없어서 한마디 했다.
“학생이 선생님 좋아할 수는 있어. 그래도 그럼 안된다고 선을 그어줘야 하는 게 어른인 거 아냐? 그리고 그것도 한쪽 말만 들은 거지 모르는 거잖아. 합의해서 그렇게 한거라고 협박했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런가···?”
교실은 웅성웅성거림이 점차 커지면서 여기저기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생각이 좀 깨어 있는데···.’
다음날 교실에서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게 말이나 돼?”
“선생이?”
“그러니까. 처음에 신고자도 믿을 수가 없었다네. 그런데 자살 시도한 자기 딸 일기장을 보고는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거래. 그런데 신고를 하려고 하니깐 사람들 입이 무서워서 인적사항은 숨기고 신고한 거지.”
“아니 왜?”
“나 같아도 숨길 것 같아.”
나의 말에 종혁이와 경수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 난 그들에게 동신 일보를 보여줬다.
신문 해드라인에는 ‘십대 여학생들 이대로 괜찮은가?’, ‘순결교육이 다시 한번 재 조명 받아야 할 때’라는 내용이 전면에 실려있었다.
“이···건···너무하잖아?”
“그렇게 생각할 정도의 정신이 있다면 다행이지. 여기에 동조해서 일선 여학교 중심으로는 정말 보건수업한다고 하더라.”
“피해자가 뭘 잘못했다는건데? 나도 체육선생 아니 그 쓰레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걸 잘못판단했다고 피해자가 이런 취급이야?”
“거기에다 여기 오기 전 학교에서도 피해자가 22명이래. 그런데 기자가 조사한거니깐 실제로는 쉬쉬하면서 넘어간 사람 숫자까지하면 더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이런 분위기인데 어떻게 자기 실명을 밝히고 자기 딸이 피해자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겠어.”
“그런데 이 사건의 시작은 그 신고자가 사이고가 강제로 원조교제 시켜서 인 거잖아. 체육 쓰레기랑 왜 연관이 된 건데?”
“혹시, 사이고가 체육 피해자인데 자기만 당할 수 없다고 평범하게 학교 다니는 애들이 미워져서 너도 당해봐라 이런거 아니야?”
“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기 신문 하단에 아주 작게 논평있잖아.”
“와우···이렇게 작은 기사까지 읽는 거야?”
“신문 헤드라인은 다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함정이 많고 진짜 사실을 적는건 이렇게 작고 볼품없이 구석에 박혀있기 마련이지.”
‘진실은 항상 외면받기 마련이지.’
“너 꼭 우리 아빠처럼 말한다?”
“이럴 때 보면 꼭 아저씨 마인드야. 그것도 꼰대 중에 꼰대.”
“어쨌든 내가 볼 때 이 사건의 피해자가 피해자를 양산한 거지. 내 인생 망가졌으니깐 너희도 내 아픔을 같이 겪어봐라?”
“사이고도 보통은 아니네.”
“잘했다는 건 아니지. 그런데 그런 상황까지 만들게 한 어른들도 분명 잘한 건 없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진지야.”
“화가 나서.”
“응?”
“넌 이런 나라에서 주신이가 클 걸 생각하니 화가나. 너도 내 아이와 앞으로 만날 아내가 이런 사회에서 자란다고 생각해봐 화가 안 나?”
“너, 너무 빠른 거 아니냐? 물론 열 받겠지만 그건 다른 사람 일이잖아.”
“그래···다른 사람 일이지.”
나 혼자 열폭하는 모습을 자재 시키려는 듯 중재하는 종혁이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다른 사람 일이니깐. 그저 이렇게 뉴스나 신문을 보면서 화만 내는 거지. 실제로 내가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얼마나 원통할까?’
“어, 여기에 이런 기사도 있다.”
“뭔데?”
“사○○양, 친부에게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노출되어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가정폭력을 당한거면 피해자인 건데. 그거랑 폭력적인 성향이랑 무슨 연관이냐? 이런 기사 보면 정말 화난다.”
다시 열 내는 나의 등을 툭툭 진정하라는 듯 손을 올린 종혁이 나머지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사이고가 이혼가정이었네. 어머니가 아버지 폭력에 못 이겨서 도망갔데.”
“어떻게 애들 그런 인간이 있는 집에 혼자 두고 도망가지?”
“너도 맞아서 죽겠다 싶어 봐. 도망가게 될걸?”
“뭐?”
“이번에 입법 예고된 가정폭력 특별법 알아?”
“형법 공부할 때 입법될 예정이라고만 적혀있던데.”
“아무래도 가정폭력 사건이 뉴스에서 많이 다뤄지니깐 만들려는 것 같아. 그런데 그 법의 취지를 말하는 목적부터가 이 법이 방향이 잘못된 걸 알게 해줘.”
“응?”
“가정폭력범죄의 형사 처벌 절차에 관한 특례를 정해서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는데 중점을 두는 거지. 피해자를 위한 건 없어. 나중에 개정 되서 인권이니 뭐니 붙일지는 모르겠지만 중심은 가정에 둔다는 거야.”
“그럼 때려도 형사 처벌을 안 받는다는 건가?”
법 이야기가 나오자 경수가 흥미가 돋는지 질문했다.
“그래, 가정 내에서 폭행은 피해자가 형사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거지. 정말 어이 없는게 지나가다가 행인하고 폭행 시비가 붙으면 바로 경찰이 달려오는데 가정 내에서 죽내 사내해도 그건 가정일이라는 거야.”
“그렇지만 가정사에 공권력이 너무 개입하면 그것도 좀 그렇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개입해주길 바라지 않을까? 우선 당장 죽도록 아프고 피해 당시의 공포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테니깐. 그런데 이 법은 그런 피해자들에게 가해자를 용서할 정도의 인정도 없는 가족 구성원이냐는 압박을 하는 거지.”
“그렇게 말을 들으니깐 좀 다르게 보이네.”
“우리나라만큼 가정을 중시하는 나라도 없을 거야. 이렇게 법까지 따로 만들어 두다니 말이야. 가정만 유지되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다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법이 있어.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야.”
“뭔가 이 법의 의도가 좀 무서워지는데? 이번에 붉은 벽돌집 사건 같은 게 일어나도 그냥 눈감고 살라는 거잖아. 심지어 첫 번째 부인은 어떻게 죽었는지 이제는 확인도 못 하는데.”
“피해자는 영원히 피해자로 남으라는 거지.”
“뭐야? 현대판 노예제도야?”
“여기서 더 아이러니한 건 뭔지 알아?”
“?”
“사이고가 가정폭력 때문에 상담한 교사가 체육이라는 거야.”
“헐···.”
“그럼?”
“그걸 상담해준다는 핑계로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말한 교사가 자기 믿음을 짓밟은 거야.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평탄하게 학교 잘 다니는 것 같으니깐. 더 화가 폭발한 거겠지. 난 사이고가 잘했다는 게 아니라. 이런 상황을 만든 사회 시스템이 잘못된 거라고 봐.”
“와···진짜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다고?”
“아픈 현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