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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27화 (27/205)

<027화 아픈 현실1>

종혁이가 집 앞 골목길에서 나를 기다리는 인기척 소리를 들으며 서둘렀다. 밤새 잠을 설친 덕분에 눈 밑에 다크서클이 흘러내린 채로 난 힘없이 대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섰다.

“오늘 좀 늦었네?”

“주신이가 늦잠을 자서 아침부터 정신이 없네. 엄마도 방금 나갔어.”

“지각하는 거 아냐?”

“평소엔 아침에 여유 있는 게 좋아서 일찍 준비하고 나가신 거라서 늦지는 않을 거야. 좀 서둘러야겠지만.”

“주신이가 늦잠을 자고 웬일이래?”

‘설마 나 때문에 중간에 잠을 설친 게 아닐까?’

“글쎄 악몽이라도 꾼거 아닐까?”

“우리도 서두르자 정작 우리가 지각하겠네.”

서두른 보람이 있어서 교문을 지나서 교실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자 평소와 같은 시간이었다.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경수에게 잡혀서 자리에 앉아야 했다. 책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경수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너희 이 동작 따라 할 수 있겠어?”

팔뚝을 들어 올리더니 팔꿈치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에 질색을 하면서 상체를 뒤로 밀 듯이 멀어지자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듯 여유롭게 웃더니 말했다.

“이 동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이큐가 150이 넘는데?”

“뭐? 설마.”

“하버드에서 임상 실험까지 마친 검증된 방법이라고.”

경수는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듯 당당한 표정으로 우리 뒤를 손짓했다. 그러자 반아이들이 너도나도 서로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경수가 시범으로 보인 자세를 따라하거나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서 ‘끙끙’거리면서 팔을 스트레칭하고 있었다.

“정말?”

종혁이까지 가세해서 같은 동작을 시도하자 나는 황당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주변에서 반아이들의 기대 섞인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보면서 의아한 마음이지만 따라하기 시작했다.

‘설마···그런데 진짜인가?’

혹해서 나도 같은 동작을 따라하자 경수가 일어나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봐봐. 종혁이하고 주인이도 따라하지?”

“헐···너네는 믿고 있었는데.”

“뭐야?”

나와 종혁이가 어리둥절하자 주변에 반아이들이 방언 터지듯 말하기 시작했다. 경수가 교실에 들어와서 처음 당하고 오늘 등교시간이 늦은 나와 종혁이도 같은 방법에 당할 건지 내기가 있었다는 거였다.

“무슨 소리야?”

경수가 평소의 깐죽거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오랜만에 한방 먹였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하버드에서 이런 쓸데없는 연구를 왜 하냐?”

종혁이가 아직도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거긴 별의 별거를 연구하지 않나?”

“그렇기는 하지만 유연한 동작 잘 한다고 머리가 천재면 체조선수들은 전부 MIT 공대 가게?”

“어···.”

너무나 허점이 많은 장난이었지만 나와 종혁이는 반 분위기와 하버드라는 권위에 눌려서 당연히 믿었던 것이다.

나와 종혁이 허탈하게 서로를 보는 걸 보면서 짇굿게 웃던 경수가 우리 어깨에 손을 탁 얻으면서 화룡점정의 말을 했다.

“덕분에 오늘 간식 굳었다. 샌드위치 얻어 먹고 올테니 두 얼간이들은 자리나 지키고 계셔.”

경수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사이에 담임이 조례를 끝내고 자율이라고 적힌 글자가 칠판 한가운데를 자리잡고 있었다.

운동장에서는 ‘삑’, ‘삑’하는 호루라기 소리에 달리는 아이들 앞에서 지시만 하지 않고 직접 아이들 앞에서 선행하면서 달리는 체육선생이 보였다.

“뭐하냐?”

“눈 뜨고 잠자기···.”

“경수는 뭐해?”

“자습···.”

“진짜?”

사이고 사건으로 선생들은 아이들이 너무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평소와 다르게 영화 보기가 금지되면서 침실 같은 잠자기 모드를 발동한 반아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내년에 들어갈 고등학교 과정이 나와 있는 참고서를 펼치고 공부하고 있는 경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참고서는 또 어디서 난 거야?”

“담임이 너무 놀지만 말고 공부하라고 줬어. 나도 한 권 받았는데 너 줄까?”

“됐다. 내년에 보지 뭐,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몇몇 줬나보네.”

“그렇지 뭐.”

“이런 걸 보면 저기 체육선생이 참 애들한테 공평하게 친절한데 말이야.”

“뭐가 공평하게 친절이냐? 난 가끔 체육보면 좀 소름끼치던데.”

“체육이? 왜?”

“모르겠어. 좀 뱀 같은 느낌?”

“그런가···.”

난 운동장을 돌고 있는 체육선생과 후배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고 준비했던 교과서를 펼쳐들었다.

“너···정말? 이걸 전부 본다고?”

내가 펼친 중학고 1학년 과정의 국영수 책자를 보고는 놀라서 종혁이가 나를 쳐다본다. 종혁이의 놀란 표정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지나갔지만, 피식 웃고는 책자 중 영어책을 꺼내서 펼쳤다.

“기초부터 봐야지”

“어느 세월에?”

“그렇다고 내가 지금 경수처럼 고등학교 교과서 펼친다고 알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가···.”

잠깐 생각에 잠긴듯한 종혁이 말했다.

“그럼 같이 볼까?”

“뭐? 너는 고등학교 학과목부터 시작해도 되잖아?”

“나도 수업 열심히 들은건 아니여서 좀 새롭게 보이는 부분도 있네. 같이하자. 혼자하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나는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경수의 말에 낯간지러움에 얼굴을 피하고 낮게 말했다.

“뭐, 그러던지.”

“그럼 1학년 과정은 1주일쯤이면 되려나?”

“뭐?”

내가 놀라서 쳐다보자 뭘 보냐는 듯한 경수의 표정에서 역시 애도 경수못지않는 재능충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했다.

“살려만 주세요.”

“오냐. 걱정말고 따라오도록”

“윽.”

내가 내 무덤을 스스로 판 것 같아서 두렵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굣길 주신이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평소와 다르게 무겁기만 하다.

“형, 오늘따라 표정이···똥마려?”

“아니야.”

“괜찮아. 너네 형은 책가방이 무거워서 그래.”

“무거워? 내가 들어줄까?”

“꼬맹이가 가방매면 아마 꼬꾸라질걸?”

경수는 담임이 준 참고서만 가방에 들어있고 종혁이도 필기구 정도만 들어있는 와중에 나만 중학교 전 과정의 교과서가 들어 있으니 가방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화된 육체를 가진 내가 무겁게 느껴지는 건 가방이 아니라 언제 이 책들을 다 보고 내 가방에서 치워버릴 수 있을지를 걱정하느라 무거워진것이었다.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귀신같이 알아채고 같이 표정이 어두워지는 주신이를 보자. 나는 표정을 풀고 말했다.

“가방은 안무거워. 주신이 가방은 안무거워? 형이 들어줄까?”

“괜찮아. 이제 학과수업 끝났다고 이것저것 다른 것도 배우는걸”

“뭐 배우는데?”

“오늘은 책상 다 치우고 포크댄스 배웠어. 봐봐.”

주신이가 흥얼거리면서 발걸음을 가볍게 하더니 한바퀴 돌고 손바닥을 ‘짝’치자 나는 손바닥을 쳐야하는 부분에서 같이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자 더 흥이 나는지 주신이가 한바퀴 다 돌자 이번에는 종혁이와 경수도 박수를 같이 쳐주었다.

“잘추는데? 누가 가르쳐준거야?”

“담임이 포크댄스라고 가르쳐줬어. 친구들이랑 이렇게 빙글빙글.”

주신이의 친구들 이름을 들어가면서 우리는 도서관에 도착했다. 평소처럼 어린이 도서관에 먼저들리고 도서관에 준비되어 있는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약속한 듯 도서관 정문으로 향했다.

“공부한다면서···.”

“학교에서 열심히 했다.”

이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서로 던지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파출소가 보이는 위치로 내려가자 기다렸다는 듯 허순경이 파출소 문을 열고 나왔다.

“어, 형···어떻게.”

내 말에 허 순경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이제야, 형으로 부르네. 이 시간에 나타날 녀석들이 너희밖에 더 있겠어?”

주변을 돌아보니 평일 낮시간이여서 도서관이용객도 많지 않은 한산한 거리가 눈에 보였다. 도서관이 있는 지역이 안남시에서도 외진 곳이다 보니깐 어떻게 보면 휑하다고 느껴지기까지했다.

“이번 사건 궁금해서 학교 끝나자마자 달려온거겠지.”

나와 종혁이 경수가 서로의 눈을 피하면서 아무도 없는 휑한 도서관 정문 앞에서 쭈볏거리면서 외면하고 있자 이내 큰 소리로 웃더니 우리를 도서관 밴치에 앉게 하면서 언제 챙겨왔는지 아직 따뜻한 캔음료를 하나씩 손에 쥐어주었다.

“어떻게 보면 남의 일인데 관심이 많네.”

“남이라고는 해도 같은 학교고···그리고···.”

“뭐, 너희가 가진게 단순한 호기심이라고해도 난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진행중인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사건의 중심내용은 아니더라도 말해주는 거니깐.”

“호기심이어도 괜찮다고요?”

“그래.”

“그치만 경찰은 언론에 사건이야기하는거 싫어하지 않아요?”

“무분별하게 발표하는 기사에 상처받는 피해자 가족이나 피해자 때문인거지 관심은 나쁘지 않아···.”

우리가 서로를 돌아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자. 나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하지만 단단한 손길로 툭 치면서 말했다.

“특히, 이런 사건은 좀 알려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허 순경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질문했다.

“그럼 아직도 사건 조사중이에요?”

“아니, 조사 끝나고 이미 검찰에 넘겼어. 나도 아침에 소식 듣고 놀랐지.”

“네? 벌써요? 그럼 사이고가 전부 진술 아니 자백한거에요?”

“놀랍게도 한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전부 자백하겠다고 말했어.”

“그게 뭔데요?”

“그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거야.”

“자연스럽게요?”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허 순경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자세한 건 아직 말하기 그래서. 결정은 난 것 같지만···.”

‘결정이라···? 사이고가 경찰하고 무슨 합의 같은 걸 한 건가?’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허 수경이 말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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