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화 모범생의 삶7>
다음날 학교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적당히 소란스럽고 적당히 조용한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교실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오늘 무슨 일이냐?”
“그러니까.”
경수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다른 반 친구와 이야기 하는 걸 보면서 나와 종혁이가 인사했다.
“뭐야? 뭔데 이렇게 아침부터 난리야?”
“아니, 이렇게 소식이 느려서야.”
“뭐?”
“7반에 사이고라는 애가 경찰서에 잡혀가서 그 반 담임이 아침부터 경찰서 갔다더라.”
“개가 누군데? 7반이면 여자반 아니야?”
“그걸 모르···주인이 너라면 모를 수 있지.”
“그래서 무슨 일인데?”
“사이고가 좀 논다는 애들 모아다가 반에서 따 시키는 애들···.”
“애들을?”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다. 쫌. 그래 어쨌든 그래서 경찰 갔다고 하던데?”
‘내가 신고하긴 했지만, 속도가 너무 빠른데? 증거가 어디 있어서 바로 경찰서부터 데려간 거지? 현장에서 잡힌 건가?’
내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자 우리 반 담임이 들어와서 소란스러운 교실을 조용히 시켰다. 학력고사가 끝나고 자율학습이라고 적어놓고 바로 나가던 어제와 달리 출석체크를 하고는 조용히 반 아이들을 둘러보더니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에 이상한 소문에 휘둘려서 소란스럽게 하지 말고 다들 학력고사가 끝났다고 너무 풀리면 안 돼. 내년에 들어갈 고등학교를 생각해서 학업에 집중하면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
작게 야유소리가 교실에 잠깐 퍼졌지만, 담임도 아이들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작게는 교실이 소란스럽고 크게는 학교가 웅성거리면서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3학년 교실은 평소처럼 영화를 틀어놓고 끼리끼리 뭉쳐서 작게 대화를 나누기 바빴다.
“그래서 도대체 왜? 경찰이 잡아간 거야?”
“그걸 알면 다들 기웃거리면서 뭐라도 하나 잡으려고 하겠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는 한데···.”
“응? 주인이 너 촉이 온 거야?”
“뭐든 말해봐 답답하네.”
“어제 너희랑 PC방 갈 때 재민이하고 만난 거 알지?”
“어.”
“그런데 PC방 가는 길에 잠깐 내가 뒤처졌을 때 들은 대화 때문에···.”
나는 재민이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걱정돼서 허 순경에게 신고한 것까지 말했다.
“아무리 신고를 했다지만 너무 빠른데?”
“내 말이···오히려 이렇게 어설프게 잡으면 나중에 보복한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인데···.”
“왜? 지혜가 걱정돼?”
“아닌 것처럼 극구 부정하더니 아주···.”
“그런 거 아니거든. 그걸 떠나서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냥 손 놓고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이번에도 17대1인 거냐?”
“아니라고. 걱정되니깐 신고까지만 할 거야. 내 일도 아니고 폭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확실히 여자 일진들이 끼면 폭력으로만 해결하기는 좀 어렵지.”
“그런 거 아니거든? 내가 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주변을 살피는 거지.”
“그거 우리 엄마 레퍼토리인데 오지랖이 아주.”
나는 머리에 손을 얹고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종혁이와 경수를 밀어내면서 말했다.
“어쨌든 이왕 잡혀간 거 제대로 처리되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재하 일도 그렇게 넘어갔는데.”
“아니 퇴학까지 당했는데 뭐가 조용히 넘어갔다는 거야?”
“재하 사람 죽였어.”
“뭐?”
“그런데 퇴학 아니야. 자퇴한 거지.”
“자퇴도 전학 가면 백신중학교에서 멀어지니깐 그게 싫어서 자퇴해서 검정고시로 중등 학력 취득해서 고등학교는 백신고등학교 지원하기 위해서라던데?”
“그럼 고등학교 가면 만나는 거야?”
“아니, 사람을 죽였는데 처벌이 없어? 소년법 적용받는다고 해도 소년원은 가야 하는 것 아냐?”
“나도 자세한 건 담탱이나 선생들이 말을 안 하니깐 모르겠는데. 뭐, 이래저래 어리고 이전에 이런 범죄 이력이 없으니깐 감형해서 무슨 교육인가만 받고 소년원도 안 간 걸로 아는데···.”
“소년법으로 처벌받은 거라서 어떤 처벌이 내려졌는지 알 수 없어. 그리고 우리야 같은 학교니깐 그런 일로 자퇴했다는 걸 알지만 소년법 취지에 따라서 기록도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걸.”
“그래서 다들 재하 하면 피하는 거야. 살인을 해도 별다른 일없이 풀려나는데 괜히 엮어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재하가 영악한 게 꼭 문제가 안 될 만한 애들만 괴롭혔거든.”
“그런데 살인을 해도 풀려나니깐. 다들 슬슬 피하는 거지.”
“그런데도 제대로 처벌도 이뤄지지 않은 건가.”
“다른 일진 애들도 재하 사건을 보고서 더 과격해졌지. 이번에 잡혀간 이고는 처음에는 따 시키는 여자애들이 입던 속옷을 강제로 벗겨서 돈 받고 팔고 그랬는데 재하 사건 이후에는 더 과해져서 여자애들 잡아다가 포주 노릇 했다고 하더라.”
“뭐?”
“영상도 찍어서 협박하고 때리고”
“그건 뉴스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잔혹하잖아.”
“뭐, 어른들은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하지.”
“그 싸움 끝이 살인이나 자살이 될 건 생각하지 않는 거지.”
“아니면 생각하고 싶지 않던가.”
“그럼 사이고도 금방 풀려나겠네.”
“아마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하교 시간만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자 날 듯이 주신이를 데리러 갔다. 평소와 다르게 다른 아이들 하교 시간과 겹쳐서 그런지 많은 아이 사이에서 주신이를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다들 어머니가 아이들을 마중 나온 것에 비해서 남학생 세명이 몰려서 있는 모습은 눈에 띄었는지 주신이가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달려왔다.
“형.”
“오늘부터 이제 친구들하고 하교하는 거야?”
“오늘은 학원가는 날이라서 내일 같이 가자고 했어.”
“그래? 그럼 내일 보자고 인사하고 와.”
“인사 벌써 했는걸?”
우리는 주신이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 도서관 가?”
“그래. 혹시 싫어?”
“아니, 좋아. 도서관 가면 책도 많고 친구들도 많아.”
“도서관에서 친구 만들었어?”
“응, 다음에 소개해줄게. 오늘은 아마 없을 거야.”
“그래?”
도서관에 도착하자 주신이는 가방을 나에게 던지듯 맞기고 어린이 도서관으로 뛰어가듯 들어갔다. 도서관 한쪽이 놀이기구처럼 보이는 흔들의자에 앉아 익숙하다는 듯 책을 꺼내는 주신이를 보고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파출소로 향했다.
“하하. 형이 보고 싶어서 온 거지?”
“그렇다고 해줄게요.”
“주인이가 어제 신고했는데 오늘 바로 잡았다면서요. 그게 가능해요?”
“그게···조사 중인 사건은···.”
“아···.”
실망하는 종혁이와 경수의 표정을 보더니 힐끗 나를 쳐다보면서 윙크를 날리는 허 순경의 모습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나는 모르는 척 눈을 피했다. 허 순경은 무안한 듯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주인이 이전에 신고가 들어와 있었어. 그런데 내용이 너무···.”
“너무?”
“너무···잔인해서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담당 형사가···.”
“그럼···.”
“물론 조사를 안 한다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건 먼저 조사하느라 뒤로 밀린 거지.”
“어째서요. 담당 형사가 잔인하다고 느낄 정도면 큰 범죄일 텐데. 그걸 뒤로 미뤄요?”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고 신고만 들어온 경우는 아무래도 피해자가 직접 피해신고를 하는 경우보다는 뒤로 밀리거든. 형사도 사람이라서 눈앞의 피해자에게 집중하게 되니까.”
“그럼···.”
“그런데 주인이가 어제 신고를 한 거야. 내가 그 내용을 담당 형사에게 말했고 두 번의 신고 그리고 첫 번째 신고자는 신원을 알 수 없지만, 증거를 보내왔고, 두 번째 신고자는 보다시피 주인이 이전에 붉은 벽돌집 사건도 사건 초기에 신고를 해줬던 신원 확인된 사람. 담당 형사도 그럼 조사를 시작하지 않겠어?”
‘아무래도 담당 형사라는 사람에게 허 순경이 직접 부탁한 것 같은데···.’
허 순경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공치사하고 싶지 않은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말투로 종혁이와 경수가 궁금해하는 진행된 상황에 대해서 사건에 대한 중요내용은 빼고 말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신고자는 신원을 안 밝힌 거예요?”
“아무래도 피해자 본인인 것 같은데 밝히기 힘들었던 것 같아.”
“네?”
“사건 내용은 말하기 어렵지만 피해 상황이 좀 가혹하달까?”
“설마···.”
“그럼 증거는···.”
“다행히 증거는 첫 번째 신고자가 보내준 걸로 충분했던 것 같아. 빠르게 사건처리가 되는 걸 보면. 그리고 다른 피해자들 신고도 빛발치고···.”
“네?”
“오늘 학교에서 소문 듣고 너희가 나한테 온 것처럼. 피해자들도 가해자 학생이 경찰에 잡혀갔다는 말에 용기를 내준 모양이더라.”
“그럼···.”
“처음에는 참고인 조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체포해서 제대로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거야.”
“설마, 소년법으로요?”
“아마···그렇지 않을까? 소년법 처벌 수위가 형사소송법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조사내용만 살펴도 그렇게 쉽게 나오지는 못할 거야.”
“정말요?”
“응?”
“재하는 살인하고도 바로 풀려났는데···.”
허 순경은 우리의 반응에 무언갈 생각하는 표정을 하더니 이내 수첩을 꺼내서 살펴보더니 인상이 굳어졌다.
“너희가 말한 재하 사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가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볼게.”
“허 순경님 아니 형 같은 경찰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럼 경찰 지원?”
“아 쫌···.”
나와 허 순경의 말에 종혁이와 경수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일에 더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하자 오늘 도서관에서 간단하게 먹었던 점심 때문인지 배가 고프다고 하는 주신이에게 간식으로 배 한 쪽을 잘라주고는 나머지 반쪽은 냉장고에 넣어놨다.
‘나머지는 어머니 저녁 드시고 난 다음에 꺼내야지···.’
“형, 형은 안 먹어?”
“나는 엄마랑 같이 먹을 거야.”
“으응···그럼 나도 엄마랑 같이 먹을래.”
“주신이는 먼저 먹어.”
“왜? 나도 엄마랑 먹고 싶은데.”
“이따가 엄마랑 같이 또 먹으면 되지?”
“그럼···.”
작은 머리를 갸웃하면서 먹기 좋게 잘라놓은 배를 놓고 고민하는 주신이의 부푼 볼을 꾹 누르면서 말했다.
“엄마는 주신이가 배가 고픈데도 배를 먹지 않고 기다렸다고 하면 더 슬퍼하실 거야.”
“으응···그럼 어쩔 수 없지.”
‘앙’하고 배를 크게 베어 무는 주신이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