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화 모범생의 삶6>
“주신이 데리러 가야 하는 거 아냐?”
“아직 시간 여유 있어. 학교에 이야기해서 내일부터는 일찍 끝내고 나오기로···.”
“아. 바로는 안 되는 건가?”
“주신이 때문에 항상 늦게까지 수업해주시던 선생님에게도 양해 구해야지.”
“그럼 오늘은 한 판하고 갈까?”
하굣길에 평소와 달리 PC방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학력고사가 끝나고 수업이 일찍 끝나면서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서 달려가는 방향은 비슷했다.
“이러다가 수업 끝나고도 반 애들 전부 PC방에서 만나겠다.”
“그걸 넘어서 자리가 없겠는데?”
“그럼 학원가 쪽으로 갈까? 거리가 좀 있긴 해도 시설은 최신으로 했다더라.”
“그래 그럼 학원가로.”
“앗, 저 버스 학원가 방향인데.”
“1, 2학년 하교 시간 전이라서 버스도 한 시간에 한 대 올 텐데···어쩌지?”
“선택권이 없네.”
학원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눈앞에서 놓친 우리는 운동 삼아서 걷기로 했다.
학원가가 거의 도착했을 때, 가는 방향 골목길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종혁이와 경수는 느끼지 못했는지 먼저 앞서서 걷고 있었다.
‘잘 못 들은 건가?’
멀어진 종혁이와 경수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들린 이름에 발걸음이 멈췄다.
“야, 짜증 나지 않냐?”
“누구?”
“지혜 말이야.”
“아, ×××?”
“××, 개는 뭔데 재하 옆에서 살랑거리다가 이제는 또 본체만체야? 그것 땜에 내 친구가 ××× 먹었다더라.”
“친구가 남자친구?”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재하 옆에서 ×× 하는 애?”
“아니거든?”
“어쨌든 지혜는 왜 그런다니?”
“몰라. 걔네 아빠 죽고 나서 개도 좀···.”
“그 손동작은 뭐야?”
“미친 것 같다고.”
“뭐?”
“개가 관심도 없던 재하 쫓아다니고 하는 것 보면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아.”
“아빠 죽으니깐 그런 거지.”
“응? 무슨 소리야.”
“걔네···아빠가 그래도 안남시에서는 큰 소리 좀 내는 공무원이었잖아. 그런데 그냥 죽어버렸어.”
“그런데 뉴스에도 안 뜨던데?”
“안남시에서나 유명하지 다른 데서 관심 가지겠어?”
“뭐야, 좀 불쌍해.”
“뭐가 불쌍해? 그년은 안 그런척하다가 자기가 ×당할 것 같으니깐···. 선수 친 거지.”
“헐···진짜?”
“내가 아무래도 맘에 안 들어서 노리고 있었는데 재하네 패거리랑 노니깐 어쩔 수 없이 손 턴 거야.”
“그럼 이번에 재하네 깨졌으면···.”
“아무래도 맘에 안 들어서 손 좀 봐주려고.”
“그러다가 경찰에 걸리면···.”
“너네랑 다 말만 맞추면 지가 어쩔 건데? 개도 어차피 문제아로 학교에서 낙인 찍혔는데···그저 문제아끼리의 작은 다툼일 뿐인 거야.”
“그거 어디서 들어본 것 레퍼토리 같은데?”
“재하가 한 짓 보고 얼마나 놀랐는데···그런데 별일 아닌 사건으로 넘어 같잖아.”
“너 설마···.”
“두고 봐. 그 반반한 얼굴 못 들고 다니게 해줄 거니깐.”
나는 골목으로 들어가서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나를 부르는 경수의 목소리에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다들 뿔뿔이 흩어지듯 사라지면서 뒷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지? 우리 학교 교복 같은데···.’
학원가 PC방 근처에 도착한 우리는 지하로 내려가면서 누가 더 많이 게임을 해봤는지 자잘한 이야기를 가지고 서로 더 많이 해봤다는 걸 강조하면서 도착해서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실랑이를 하면서 내려갔다.
“저거 재민이 아냐?”
“그러네···. 키보드 옆에 쌓인 거 컵라면이 몇 개야?”
우리는 초췌해 보이는 재민이의 뒷모습을 확인했지만, 굳이 아는척하지 않고 각자 자리를 잡고 게임을 시작했다. 첫판은 무난하게 나의 승리로 돌아왔다.
“아니, 어떻게 마린을 그렇게 쓸 수 있는 거야?”
‘육체가 강화되면 돼.’
“잘···.”
“뭐? 이거 사기 아니야? 너 뭐, 이상한 거 핵 깐 거 아니냐고.”
“아니거든. 다른 사람들 게임 하는데···그만 방해하고 이제 집중하지?”
승부욕의 화신 같은 경수를 힘겹게 끌어내듯 의자에 앉히고 종혁이와 경수가 하는 플레이를 옆에서 보면서 경수가 이기기를 응원했다.
‘지면 또 무슨 난리를 피울지.’
종혁이도 익숙하다는 듯 시끄러운 경수를 무시하고 적당히 상대해 주는 게 눈에 띄었다.
‘종혁이는 정말 뭐든지 잘하는구나? e-스포츠 선수 해도 되겠는데?’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슬아슬하게 전선을 유지하다가 경수가 파놓은 함정에 걸리면서 게임은 경수의 승리로 넘어갔다. 이제야 불타는 승부욕이 좀 잠잠해진 경수가 팀플로 다른 사람들과 매칭 해서 게임을 하자고 했고 나는 잠깐 쉬겠다고 하면서 둘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화장실 방향으로 향했다. 재민이가 PC 화면에 들어가는 게 아닐까 걱정돼서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오랜만이네.”
“히익···. 짜··ㅇ···?”
“인사가 너무하잖아. 그리고 난 그런 호칭은 싫어서 말이야.”
당혹스러운 듯 흔들리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인사를 하는 재민이었다.
“아하하하. 아···안녕···.”
“우리 할 말 있지 않아?”
“그게···.”
“뭐, 네가 의도해서 한 건 아닌 것 같고 추궁하려는 건 아니고 궁금한 게 있는데.”
내 질문에 저번 일에 관한 추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재민이는 순순히 나를 따라서 PC방을 나왔다.
“저기···저번 일은···.”
“괜찮아 네가 의도한 것 같지도 않고. 재하? 잘 모르지만, 개가 주도했다며?”
“응.”
“개는 도대체 누구야? 학교에서 유명한 것 같던데.”
“그게···.”
“뭐, 곤란해하는 사람 붙잡고 물어볼 정도로 궁금한 건 아니고. 오다가 들은 게 있는데···.”
내가 학원가로 걸어오면서 들었던 지혜에 관한 안 좋은 소리를 전해주자. 재민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이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거의 랩을 하는 수준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거 여자애들 무리일 거야. 거기에서 찍히면 여자애는 진짜 인생 종 치는 건데···.”
“그게 무슨···.”
“걔네···원조교제 해.”
“뭐?”
“아니 정확하게는 원조교제를 강제로 시켜”
“아니 도대체 왜?”
“나도 잘은 모르지만, 돈도 벌고 또 맘에 안 드는 애들 인생도 좀···망치고?”
“뭐, 그런 애들이 있어? 왜 남의 인생을 망치려고 하는 건데?”
“그거야···.”
“걔네···어디 있는데?”
“있을 만한 곳이야 아는데···저번에 재하 문제도 얼마 전이었는데 여기서 걔네 하고도 마찰이 생기면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가지 못할지도 몰라. 아님···, 아···이 지역을···?”
“그럴 생각은 없어. 그래도 그냥 넘어갈 소리가 아니잖아.”
“경찰에서는 재하하고 있었던 일 너하고는 관계없다고 넘어갔다고 들었어.”
내가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을 피하자 작은 한숨과 함께 재민이 말했다.
“다른 애들은 비겁하다고 했지만 난 현명하다고 생각해. 한번 엮이면 피곤하고 벗어날 길도 없으니···.”
“그럼 지혜는?”
“개는···재하가 있잖아?”
“갑자기 재하가 왜 나와?”
“개 재하가 노린ㄷ···.”
내 노려보는 눈빛이 무서웠는지 움찔하고 시선을 피한 재민이 말투를 봐꿔서 말했다.
“재하가 지혜 좋아하는 거 애들이 전부 알 텐데? 재하한테 전하기만 하면 잘 해결될 거야.”
“그 도움 지혜가 거절한다고 해도?”
“그럴 리가 없잖아? 지혜야말로 여자애들 무리가 얼마나 무서운지 더 잘 알 텐데?”
“그럼 다행인데···.”
마음이 편하지 않은 가운데 재민이 사라지고 종혁과 경수가 게임이 끝났는지 PC방에서 나왔다.
“2승 1패니깐 내 승리야.”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새로운 논리지만 네가 그래야 맘이 편하다면 그래라.”
경수가 툭툭거리고 종혁이가 그래그래···하면서 올라오는 모습에 나는 하고 있던 고민이 무색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너는 뭔데 갑자기 웃음이냐?”
의아하다는 듯한 종혁이와 경수를 뒤로하고 나는 무심결에 대답하고 말았다.
“아니 고민하던 게 있는데 부질없다 싶어서.”
“뭐?”
“뭔데? 무슨 고민?”
“있어. 그런 거.”
나는 잔잔하게 웃으면서 종혁이와 경수를 재촉해 주신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뭐지, 뭔가 음흉한 무언가가 지나간 것 같은데···.”
“그런 거 없거든?”
“혹시···지혜 관련?”
“아니야.”
“극구 부정하는 게 더 의심스럽다만 오늘은 나 먼저 간다. 내일 봐···.”
경수가 주신의 학교로 가는 길목에서 자신의 집 쪽으로 향하자 종혁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경수가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게 왠지 마음에 걸려.”
“원래 이 시간에 들어간 거 아니었어?”
“아니, 나는 일찍 와도 경수는 학교 아니면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들어갔거든. 요즘이야 학력고사 끝나서 우리 집에 놀러 오고 그러는 거지만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잤거든.”
“그래? 그럼 쉴 시간이 거의 없어서 피곤하지 않나?”
“그래서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경수야, 내가 자기 때문에 공부에서 한발 물러났다고 말하지만···경수같이 공부할 수 있는 애들이 몇 명이나 되겠냐?”
“그렇기는 하지.”
‘나는 체력은 육체 강화로 버틴다고 해도 경수는 어떻게 버티는 걸까?’
경수가 사라지고 시끌벅적한 느낌은 없지만, 주신이를 데리고 집에 도착하자 나와 종혁이는 이내 입가에 피식하는 웃음을 뿜고는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주신이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이내 씻고 저녁준비로 시간을 쓰고 어머니가 오기 직전 잠깐 남은 시각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거지.’
“안남시 중장동 파출소입니다.”
“안녕하세요. 허 순경님.”
“어? 주인이? 형이라고 부르라니깐. 그런데 무슨 일이야?”
“저···형. 신고할 게 있는데요.”
“응?”
“제가 들은 게 좀 있는데 걱정돼서···.”
난 오늘도 열심히 모범생의 모습을 보인다. 회귀 전과 같이 사람 좋다는 말에 넘어가 호구 짓을 하거나 평범함이 좋다는 말로 변명하면서 이 상황을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게 아닌 모범생이라는 주변의 사람들이 혹하는 보기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내가 원하는 걸 얻어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전과 다르게···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걸 참고 넘어가지는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