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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23화 (23/205)

<023화 모범생의 삶5>

이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 지혜의 표정을 무시하고 경수를 향해 말했다. 짐작이 가는 일이 있었지만 나는 굳이 입을 열어서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이건 경수가 직접 풀어야 할 일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난 거짓말했어.”

종혁이 지혜마저도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말했다.

“거짓말하고 성적하고 무슨 상관인데?”

“내 거짓말 때문에 종혁이 성적이 나오지 않은 거니깐 난 진짜 강한 게 아니야.”

갑작스러운 경수의 고백에 놀란 표정이 된 종혁이의 얼굴을 살폈다.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빠하고 약속했거든.”

“뭐?”

“국민···아니 이제는 초등학교지 그때 처음 이사 와서 아무것도 모를 때 종혁이가 공부 도와줘서 운이 좋게 한번 1등 한 적 있거든.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시는 거야. 일하러 새벽같이 나가서 평소에는 무뚝뚝한 얼굴마저 보기 힘든데 그날은 일도 안 나가고 너무 자랑스럽다고 자기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맙다고 나를 안고 말씀하시는데···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어.”

“그 후로 미친 듯이 공부만 했지. 딱히 집에서 할 것도 없기도 했고···그런데 정작 종혁이한테 미안했거든 이렇게 옆에서 도와주고 종혁이 어머니는 항상 맛있는 음식도 전해주고 하는데 내가 계속 1등을 해도 되는지. 그런데 종혁이 아버지가 학교까지 와서 나한테 말씀하시더라.”

“종혁이 라이벌이 되어서 서로에게 향상심을 가지게 되는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게 어떻게 와전되었는지 나한테 직접 사과한 것처럼 되어버렸더라고···잘못된 소문을 바로잡고 싶어도 어떻게 떠도는 말을 잡을 방법은 없더라고.”

경수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처럼 종혁이가 아직도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어린 시절의 의문을 반사적인 것처럼 질문했다.

“그날 반 아이들한테 간식 두고 가신 건?”

“그건 종혁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반 아이들한테 선물하고 가신 거지.”

종혁이의 굳은 얼굴 뒤로 경수가 단단히 결심한 듯 말했다.

“네가 오해하는 것 같아서 사실을 말해야 했지만 나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어. 그냥 다음에··· 아니, 지금이 아닌 다음에···라는 비겁한 변명으로 하루···하루···미루다가 결국 어느새 소문이 진실처럼 굳어져 버린 거야. 그렇게 소문이 와전되고 나니깐 더 종혁이한테 말하기 어려워지고 악순환이 계속되었어. 한번은 용기를 내본 적이 있지만, 종혁이의 얼굴을 보면서 말하려고 하니 도저히···못하겠더라고 그래서 그 이후로 언급한 적 없어.”

“그게···그렇게 된 거라고?”

종혁이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나는 짐작으로 종혁이 아버지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종혁이가 오해한 부분을 설명을 하더라도 경수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종혁이 아버지라면 종혁이와 경수의 일은 둘이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테니까···꼭 그게 정답은 아닐 텐데···. 그래도 종혁이가 학력고사 전에 한번 아버지하고 대화를 가진 시간이 있으니깐. 잘 해결될 거야.’

“사실 종혁이가 나한테 반지하 산다고 말한 것도 내가 종혁이하고 같이 하교하니깐 내 짝이 같은 집에 사는 거냐고 물어봐서 종혁이가 대답해준 것뿐이야.”

“그런데 소문이 어떻게 그렇게 난 거야?”

“그게···우리 아빠 건설 관련 일한다고 했지만 사실 일용직 노동자야. 새벽에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고 항상 술 마시고···그러다 내가 반지하 산다고 자존심 상한다고 아버지한테 원망한 적 있거든. 그 날···종혁이 아버지 아니었으면 큰 사고 났을지도 몰라.”

머리가 지끈거리는 순간. 익숙해지지 않는 두통과 함께 아찔한 괴리를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속 장면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과 멀리서 들리는 듯한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수의 모습은 주신이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대화가 지나가기 시작한다.

‘이건 경수의 시점이 아닌데?’라는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대화를 놓치지 않도록 우선 지금의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빠 싫어. 나도 종혁이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 아빠였으면 좋겠어.’

‘이놈의 애새끼가?’

경수를 때릴 것처럼 올린 손은 공사장에서 오랜 시간 일한 만큼 굳게 굳어버린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 손은 거칠고 손때가 굳은살과 같이 굳어버려서 보기 싫고 거칠기만 했지만, 그 손은 자신의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하면서 생긴 상처였다.

그런 상처가 가득한 손은 결코 자신의 작고 아직은 어린 아들을 향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진심을 담지 못하는 말재주를 허공에서 잡고 싶다는 듯 높게 들어 올려진 상태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을 뿐이었다.

‘저리 꺼져.’라는 외침과 함께 경수의 아버지는 처음 본 내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왜소해진 뒷모습이 방구석 그림자 뒤로 숨듯 작게 웅크리고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소주에 안주는 마른 멸치뿐. 그나마도 멸치를 찍어 먹을 고추장조차 없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싫다는 듯 주신이 또래로 보이는 경수가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렇게 뛰어나가는 경수의 뒷모습을 아프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경수 아버지의 눈은 그의 가슴속 말들을 담아내듯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술잔을 부서지도록 쥐었다.

‘흥, 아내라고 있는 게 남편 보험이나 들라고 말이야. 뭐? 공사장에서 일하니깐 꼭 있어야 한다고?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거냐!!’

아무도 없는 허공에 자신의 심정을 비토하듯 외치고는 그런 심정과 다르게 경수 아버지는 소주잔은 내버려 두고 소주병만 든 체 정처 없이 걷듯 집을 나왔다. 주변에서 바라보면 경수 아버지는 ‘저 인간 또 저런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술 취한 듯 갈지자로 걷고 있었지만 경수 아버지에게는 올곧은 목표가 있었다.

‘씨벌···멀기도 하다.’

안남 대교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자. 경수 아버지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았다. 저놈의 대교에서 나만 사고로 없어진다면···.

‘뭐, 애새끼고 그 어미고 살판나겠지.’

속으로만 되뇌던 말이 술기운에 나온 것처럼 말하면서 경수 아버지는 안남 대교를 빤히 쳐다보다가 갈지자로 걷던 것도 잊은 채 열심히 목표를 향해 나갔다.

대교 위에 도착하자 보이는 건. 평화롭게 흐르고 있는 안남천이 보였다. 지금은 평화롭지만 잠시 후에 큰 파란이 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파란도 곧 가라앉고 다시 유유히 흐르겠지. 사람이 각자 사는 삶처럼.

경수 아버지는 삶에 미련을 놓는 것처럼 소주병을 안남 대교 난간 아래에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과감히 난간에 걸터앉은 순간이었다.

‘그만하시죠.’

경수 아버지는 정신이 바짝 서는 것 같은 놀라움에 몸을 굳혔지만, 술주정 부리는 사람처럼 손을 휘저으며 거칠게 말했다.

‘저리 꺼져. 뭐 하는 놈이야? 딸꾹.’

‘종혁이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뭐?’

경수 아버지는 술주정 부리던 몸짓이 순간 멈출 정도로 놀라웠지만 아주 큰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속마음을 숨긴 채 말했다.

‘뭐 하는 놈인지는 알았네. 그런데 남의 일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 어이 갈길 가쇼.’

술주정에 몸을 맡기고 평소보다 거친 언행을 입 밖으로 내뱉었지만 다들 피하던 자신을 직시하던 종혁이 아버지는 경수 아버지의 팔에 손을 뻗어 꽉 움켜잡았다.

‘우선 위험 하니깐. 내려오시죠.’

경수 아버지는 자신의 계획을 망치려고 드는 종혁이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짜증이 일어났지만 다들 피해 다니는 자신 같은 사람을 돕기 위해 손이 더럽혀지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행동에 ‘오늘만 날은 아니지.’라는 생각에 거칠게 툭 밀면서도 욕설을 내뱉지는 않고 순순히 난간에서 멀어졌다.

‘왜? 이런 곳에서 술 마시면 안 되나?’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위험해 보여서 말렸습니다.’

‘그럼 술맛 떨어지게 만들었으니 술이나 사던지.’

당연히 제 말에 그렇게까지 할 의무는 없으니 곧 눈앞에서 사라지겠지라는 생각과 다르지 않게 종혁이 아버지가 사라졌다.

다시 눈앞에 안남천이 유유히 흐르는 게 자신을 유혹한다고 느꼈지만, 너무 친절한 목격자가 어떤 진술을 할지 모르는 이상 오늘은 이만 포기하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건 운동 부족인지 거친 숨을 내쉬면서 한 손에 쨍그랑거리는 소주병이 가득한 봉지를 든 양복 입은 남자. 종혁이 아버지였다.

‘오지랖도···.’

‘제가 아내에게 항상 하는 소리인데 제가 듣게 되니 생경하네요.’

‘부창부수인 거지.’

자신이 쓰는 문자에 놀랐는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종혁이 아버지의 표정을 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면서 말했다.

‘여기보단 저쪽 잔디밭에서 한잔하지? 그러려고 사 온 거잖아?’

꼭 자신이 한잔하자는 약속을 한 친구를 한강공원에 불러낸 것처럼 철없이 당당하게 앞서 걸으면서도 경수 아버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랜만에 옛 생각이 난다며···.

잔디밭에 앉아 한 잔씩 마시던 술병이 이내 거의 비워져 술자리가 파해갈 무렵까지 둘은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그저 소주병의 술을 다 마시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도 되는 것처럼 경쟁하듯 잔을 비웠을 뿐이다.

‘경수 아버지. 아니, 박호광 씨.’

‘날 아나?’

‘서운대 학생회에서 일한 간부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죠.’

‘그런가···.’

‘···.’

‘왜 물어보지 않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를 수 없는 이야기니깐요.’

‘그렇군. 나를 타산지석 삼아서 다들 살았다면 그것도 나쁠 것 없군.’

‘선배님···.’

‘···.’

‘오늘 왜 대교 앞에 서 있던 겁니까?’

‘글쎄···, 안남천의 흐름이 평화로운 게 너무 보기 좋아서라고 하면 믿을 건가?’

‘선배님···.’

‘그 당시에는 젊었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이 넘쳤어.’

‘전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따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가족이 있으니깐요.’

‘그래···항상 미안하지. 부모님한테도 죄송스럽고.’

‘그렇기 때문에···오늘 안남 대교에서 만난 게 충격적입니다.’

‘미안한 가족들에게 해줄 작은 일이지. 이제까지 고생을 생각하면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면 말일세.’

‘선배님 가족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요?’

‘전과자에 빨강이 표식이 붙은 내가 가족 옆에 있다면 경수 미래는 어떻게 되겠나?’

‘바뀔 겁니다. 이미 대통령도 바뀌었고 앞으로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미 빨간 줄이 간 내 인생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럼 경수 앞길은···판·검사를 꿈꾸는 경수는?’

‘선배님이 걱정하시는 부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강줄기가 대해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당장 급한 선택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내 가족을 옆에서 지켜보는데 이제는 너무 지쳤어. 무엇이 정말 나라를 위한 행동이었다는 거지? 정작 내 가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선배님을 돕기 위한 구명운동이 있었는데도 그것조차 뿌리치신 거 압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작은 도움을 받는 게 아직도 자존심 상하십니까?’

‘젊은 날의 혈기고 오만이었지. 자네가······.’

아찔한 감각과 함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들리던 대화가 엿가락처럼 느려지면서 감각이 점차 돌아오면서 추운 겨울바람 속에서 차갑게 굳은 채 서 있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죄인 마냥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경수와 차가운 바람처럼 굳어버린 종혁이의 표정에 정신이 확 들었다.

‘술 취해서 날뻔한 사고를 도운 게 아니라 사실은 자살을 막은 거였다고?’

나는 새삼스럽게 경수를 쳐다보고 종혁이를 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그럼?”

“종혁이 아버지가 아빠한테 자신이 직접 나한테 사과했다고 진정하시라고 하면서 이사 갈 집까지 알아봐 주고 일용직이라서 이제까지는 은행에서 대출 한번 받아본 적 없는데 종혁이 아버지가 보증서서 이사 간 거야. 그래서 아빠가 종혁이 아버지 말이라면 전부 듣거든.”

‘경수는 종혁이의 부모님과 다르게 힘들게 맞벌이하는 부모님에 대해서 종혁이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게 아닐까?’

회귀를 경험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어떤 직업이 있던지 제자리에서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거나 가정에 충실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걸 알지만, 나조차도 사춘기 시절 아버지가 없는 것과 어머니가 마트에서 일한다는 걸 부끄러워하면서 친구들에게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그 시절의 나와 비교하면······

“아···그래서 이번 보험도?”

“그래. 그런데 사실 이번에 보험 이야기는 주인이가 꺼냈지만, 종혁이 아버지 아니었으면 우리 아빠 고집이 쇠심줄보다 심해서 보험가입도 안 했을 거야.”

종혁이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가라앉자 점점 차가워 보일 정도로 표정이 사라졌다. 차가워 보일 정도의 무표정에 한 자락 죄책감과 후회로 가득 찬 표정이 차오르고 그 감정을 흘려내듯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경수는 차마 종혁이를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는지 종혁이의 표정을 보지는 못 했지만, 마음속에 박힌 한마디 말이 차오르듯 터져 나오자 그런 종혁이의 마음에 한줄기 위안이 되길 바라는 것처럼 종혁이 아버지에 대해서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아 종혁이 아버지는 종혁이를 가장 믿고 있다는 걸.”

“그런 일이 있었는지···몰랐어···.”

“어쨌든 종혁이 아버지가 최고의 라이벌이 되어달라고 했기도 했지만 나는···1등 하는 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깐. 옆에서 봤을 때 내가 성적에 너무 예민하다고 보일 수 있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어. 그 소문을 들을 때마다 내가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서 쉴 자격이 되는지 성적이 떨어져도 종혁이와 종혁이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겠어···.”

“처음부터 소문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

도저히 나와 종혁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경수는 종혁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오랜 시간 입안에 박힌 가시가 빠지면서 하늘을 어두워 보이도록 가린 어둡고 음침했던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면서 맑고 빛나는 하늘이 나타나는 것처럼 밝은 모습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입가에 걸리는 걸 말이다.

“······라고 말할 줄 알았냐?”

“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는지 푹 숙였던 고개를 엄청난 소리와 함께 들더니 종혁이를 본 경수였다.

“나도 당사자인데 소문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어. 그런데 원래 소문이란 게 당사자라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렇다고 교내 방송을 하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애들이 이야기하는 거에 별로 상관없기도 했고. 뭐, 지금까지는 내가 열심히 놀기는 했지···만, 이제는 고등학생 되니깐 계속 놀기는 힘들 거고···. 그러니깐 긴장하라고.”

종혁이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경수는 당황스러운 듯 표정이 울상이 되어갔다. 경수가 얼굴 표정 중 울상을 짓는 모습은 친구로 지내면서 처음 본 것 같았다.

“종혁이 너는 화나지 않아?”

“화나지.”

“뭐?”

“뭐, 화가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그냥, 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당사자가 바로 옆에 있는데 물어볼 생각도 안 했다는 거에 화가 나.”

나는 화가 난다고 말하는 종혁이의 말에서 계속 마음속에 앙금을 품고 풀어볼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과 경수의 모습이 겹쳐서 화가 난다고 말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갑작스럽게 닥치는 그 모든 상황을 국민 학생···아니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겠어?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최선을 다하면서 버티는 게 최선이었겠지. 속으로 끙끙 고민만 하면서 나한테 솔직히 말하는 게 늦어진 건 괘씸하지만···앞으로 나한테 밟히면서 만년 2등 하다 보면 해소되겠지.”

경수도 울상이던 얼굴이 어느새 밝아지더니 장난스럽게 종혁이의 말을 받았다.

“미안한 건···미안하지만 누가 맘대로 쉽게 1등 넘긴 데?”

나는 닭살이 돋는 녀석들의 대화에게 한 발자국 떨어지면서 지혜에게 다가가 작게 말했다.

“이런 게 강한 거야.”

“뭐가 강해? 그냥 오그라들기만 하네.”

엷은 웃음이 전염되듯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웃던 지혜는 내 말에 얼굴을 굳히더니 새침하게 말했다.

“뭐, 사람마다 강하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지. 그렇지만 단순히 처음 본 남자애가 싸움을 잘한다고 강하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다는 걸 말하는 거야.”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생에게 설교를 늘여놓는 꼰대가 되어버렸다. 그런 나를 새치름하니 노려보던 지혜를 이내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역시 네가 맘에 들어. 거기다가 네 얼굴 내 취향이니깐. 재하는 내 취향이 아니어서 친하게 지내기도 싫었는데 넌 아니야. 내가 관심 있다고 말한 건 진심이라고.”

그렇게 선포하듯 말하고는 벙진 나와 친구들을 두고 개선장군이 행진식을 하는 것처럼 걸어서 사라졌다.

“야···노는 애들한테 관심 있다고 찍히는 걸 봤는데 하나도 안 무섭고 부러운 적은 처음인데?”

“역시, 경수 너보다는 주인이가 공공의 적인 것 같은데 너는 어떠냐?”

“나도 역시···이제 우리의 적은 너다 이 새끼야.”

“너희끼리 싸우고···나만 갖고 그래.”

나는 나에게 달라붙는 경수와 종혁이를 떼어내고 전 대통령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교실로 달려갔다. 그 뒤를 쫓는 녀석들과 달리는 소리에 소음이 교실복도를 울리고 말았다.

우당탕탕.

시끄럽게 교실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또 너희냐?’라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아이들의 등 뒤로 겨울 해의 차갑지만 따스한 빛이 길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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