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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19화 (19/205)

<019화 모범생의 삶>

찬바람이 불고 학력고사가 눈앞에 다가온 요즘. 아이들은 점차 조용해지고 서로 느낄 만큼 서늘한 기운이 교실에 넘쳐나고 있었다.

아침부터 굳은 표정으로 앉아서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경수를 보면서 나와 종혁이는 말 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따뜻한 난로에 최대한 붙어서 손을 녹이고 있었다. 종혁이와 나는 서로 눈치를 보면서 차라리 학력고사가 빨리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녀석 시험 전만 되면 저렇게 예민하다니깐.”

“1등이 인생의 전부인가?”

“행복은 성적순이니깐. 어쩔 수 없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순간. 익숙해지지 않는 두통과 함께 아찔한 괴리를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속 장면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과 멀리서 들리는 듯한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회귀하기 전 40대의 나이 먹은 모습과 종혁이도 나와 같은 나이로 보이는 이미지였다.

대화가 지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혹시라도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익숙해지지 않은 혼란스러운 감각을 억지로 내리누르면서 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주먹을 꽉 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후회된다···경수 잘못도 아닌데 원망하고 말았어.’

‘그날 술 마시다가 한 말이잖아. 실수인데 뭐···. 정말 경수를 원망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

‘······글쎄.’

‘너 설마···??’

‘너하고는 중학교 때부터 친해서 모르겠지. 사실 국민···아니 초등학교 때 나 경수랑 싸운 적 있어.’

‘그거야 나도 소문 들어서 알지. 너희 아버지 대단하신 분이더라. 자기 아들 잘못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간식까지 돌리고 말이야. 보통 부모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잖아?’

‘그래···아버지 대단하시지. 그래서 난······.’

‘종혁아?’

‘그냥 평범한 부모님이었으면···좀···숨 쉴 수 있었을까?’

‘너희 아버지가 평범하지 않기는 하지만 종혁이 너를 사랑하는 건 옆에서 본 나도 알 수 있는걸?’

‘그저 어리광도 피우고 좀 그러고 싶었어. 평범하게 내가 떼를 쓰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해도 바라봐 주길 바랐거든. 그런데 아버지는 항상···뭐, 푸념이기는 하지. 이유 없이 맞으면서 크는 애들도 있었으니깐. 물론 너 아니었다면 몰랐겠지만···. 배부른 투정이기는 해 그렇지만···그래도 그 당시에는 그랬어. 그래서 일부러 공부도 안 하고.’

‘공부를 안 했다고? 반에서 항상 상위권이었잖아.’

‘나 머리 좋아.’

‘경수가 항상 너한테 머리 좋다고 하기는 했지.’

‘경수보다.’

‘뭐? 아니···그럼 왜?’

‘초등학생까지는 항상 1등은 내 차지였어. 그러다가 한번은 충격을 받았던 날 경수가 한번 나를 이겼고 그걸로 치기 어린 마음에 경수에게 반지하에서 산다고 말한 거지. 그걸 안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와 경수에게 직접 사과하고 반 친구들에게 간식을 돌렸어.’

‘그렇다고 나를 혼내거나 하지는 않았지. 그런데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하고 넘어가니깐. 나도 그때까지 몰랐던 반항심이 생기더라고 그래서 공부에서 손을 놓았거든. 그래도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니깐.’

‘아버지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나에게 뭐라고 안 하시더라고. 근데 그게 또 서운한 거야. 악순환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힌 것처럼 끝없이 마음속에 가시처럼 무언가 열심히 열정적으로 한 적이 없는 것 같아. 결국···내 인생 후회하는 건 나인데···괜히 경수하고 아버지만 계속 원망스럽고···.’

‘난 전혀 몰랐는데···.’

‘너 곰탱이잖아. 덩치는 산만한 게 눈치도 없어서···크큭···.’

‘그런데 충격을 받았다는 게 무슨? 사고라도 나서 시험을 못 친 거야?’

‘아니···이런 말 하면···괜찮을까?’

‘못해도 40년은 지난 일인데···계속 가슴에 담아둘 거면 나한테 말이라도 해.’

’그래···계속 가슴속에 남아 있던 건가? 그래서 속이 답답하고 화가 나는 걸지도···.’

경수는 앞에 놓인 술잔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더니 기억을 더듬듯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맞은편의 나도 조용히 술잔만 기울이고 있는 채 시간만 흐르고 느리게 하지만 깊은 심장에 놓인 감정을 올올히 풀어내듯 깊어진 목소리로 종혁이 말했다.

’나는 당시에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매번 아버지한테 내가 먼저 다가가서 질문했어. 그날도 그래서 서재로 향했어. 아버지한테 숙제에 대해서 물어보려고···그런데···.’

‘그런데?’

‘아버지가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라.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었어.’

‘···?’

‘부채감을 느낀다고···경수 같은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고 평가받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고···.’

‘통화내용을 전부 들은 거야? 너는 그걸 어떻게 생각한 건데?’

‘통화를 전부 들은 건 아니었어. 나는···지금은 아버지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짐작으로 알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그저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지.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했구나···경수가 제대로 공부하고 성적이 나오길 바라는구나. 나는 그런 아버지의 기대를 방해하는 이물질인가? 그런 생각?’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좀 결이 다르다고 봐. 아마 내가 오해했겠지. 아버지의 삶은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어떻게 보면 수도승과 같은 구도의 삶을 살아오셨는데 그런 아버지가 아들인 나를 밀쳐내거나 미워하거나 배척한다고 생각하기 힘들어. 단지, 너무 맑은 물에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것처럼 어린 나한테는 가혹했다는 거겠지.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야. 단지 내가 너무···.’

‘미친···그게 왜 아버지 잘못이 아니야? 넌 당시에 어렸고 부모님의 따뜻한 애정을 바라는 게 뭐가 이상하다고. 너희 아버지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꼭 훌륭한 양육자라는 게 보장되는 건 아니야.’

‘이상하다. 다들 칭찬만 하는 아버지를 내 친한 친구가 욕하는데 왜···웃음이 나오지?’

‘너나 너희 아버지나 너무 답답하다 답답해.’

‘그래도 난 아버지를 존경해.’

‘답답할까 봐. 술친구 해주러 온 사람인데 답답함이 나한테 옮겨온 것 같다···그럼 헛똑똑이 너는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뭐가 하고 싶었는데.’

‘글쎄···아마도······.’

아찔한 감각과 함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들리던 대화가 엿가락처럼 느려지면서 감각이 점차 교실 난로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종혁이가 표정이 안 좋은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난 어리석었다. 회귀 전에도 일과 관련된 사람들과 가벼운 인간관계만 가져본 나는 친구를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질시에 대해서 헤아릴 수 없었다.

난 단순히 ‘경수가 공부를 잘한다. 종혁이가 집안이 힘든 경수를 지원해 준다.’라고만 알고 있었어.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 올 미래에도 거의 볼 수 없는 그런 친구 사이로 유명했던 종혁이와 경수인데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굴곡 있는 인생 이야기와 고통과 인내가 있었을까?

나는 그저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에 대해서도 겉으로 벌어진 일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렸을 때 일은 그만큼 더 큰 트라우마가 될 텐데. 분명 훌륭한 어른이라고 해서 항상 좋은 아버지인 건 아니다.

그 사건으로 종혁이가 생각이 깊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그 당시 사건이 있었을 때 종혁이는 주신이와 같은 어린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자신의 가장 든든한 보호자가 자신을 혼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를 공개적으로 두둔한 걸 봤다면 나 같으면 어땠을까?

난 동생에게 어머니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동생이 미워서 보육원에 버리고 도망까지 갔다.

물론 내 행동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어렸을 때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본능이고 에고가 형성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형상이다.

그런데 그 시절 종혁이는 당연하다는 듯 철이 들고 어른이 되기를 강요받았다.

그런 종혁이가 엇나가지 않고 오히려 경수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저 학업에 조금 소홀할 뿐이라면 종혁이는 그 자체로 대단한 인내심과 심지가 있는 그런 친구라고 본다.

‘하지만···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에 학업에 손을 놓게 돼서 자신이 하고 싶던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건 종혁이에게 행복한 결말이 될 수 있을까?’

걱정스럽게 나를 보는 종혁이를 보면서 나는 아프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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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종혁이가 심부름으로 자리를 비운 걸 확인하고 나는 종혁이네 초인종을 눌렀다. 종혁이 어머니가 나와서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밝게 인사를 건네왔다.

“주인이니? 종혁이 방금 간장 사 오라고 심부름 보냈는데. 같이 간 거 아니었어?”

“주신이하고 같이 나갔어요.”

“너는···?”

“잠깐···저번에 일로 종혁이 아버님하고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요.”

“아···그래? 종혁이 아빠 서재에 있을 거야. 아줌마는 갈비양념 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들어가 봐. 갈 때 갈비 다 되면 조금 나눠줄게.”

“감사합니다.”

‘조금이 아니라 한 솥 나눠주실 것 같지만 어쨌든 감사합니다.’

종혁이 어머니 덕분에 나는 이전 삶과 다르게 단백질을 충분히 공급받아서 훨씬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종혁이 아버지 서재 앞에 서자 나는 어려움이 느껴졌지만 이대로 뒤로 물러서면 후회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에 두터운 문 앞에서 긴장감을 가지고 노크했다.

똑똑똑.

“들어와.”

평소와 같은 목소리지만 서재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권위감이 느껴졌다.

‘이래서 종혁이가 어렸을 때 아버지 그림자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걸까?’

“안녕하세요. 종혁이 아버지 저 종혁이 친구 주인이에요.”

“그래. 그런데 내 서재까지는···?”

“다른 게 아니라 종혁이 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음?”

“종혁이가 경수를 성적으로 이기는 게 불편하고 싫으신가요?”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지?”

만약, 기존에 내가 무형의 투자로 복권당첨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친구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 투자하고 좋은 일에 사용하길 원한다는 행위를 해놓지 않았다면 종혁이 아버지의 굳어진 말투에서 바로 일어나서 자리를 벗어났을 거다.

‘살 떨리네.’

어떻게 보면 남의 가족의 내밀한 사생활을 아무런 언질도 없이 흙 묻은 발로 뛰어들어와 무례한 질문을 한 나였지만 종혁이 아버지도 내가 생각이 짧은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무작정 화를 내기보다. 나에게 굳어진 목소리였지만 질문을 통해서 해명할 기회를 주었다.

“종혁이가 공부에 손을 놓은 건 아시나요?”

“관심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그 이유는요? 분명 국민···아니 초등학교까지는 열심히 했잖아요. 아버지 서재에 직접 찾아와서 질문을 할 정도로요. 그런데 갑자기 관심이 없어졌다면 대화해볼 생각은 해보셨나요?”

“종혁이의 선택이고 어떤 선택이든 존중해줘야 한다고 믿었다.”

“정말 종혁이는 자신을 100% 믿어주는 아버지가 있다니 부럽네요. 그런데 그런 다른 친구들이 부럽게 느껴지는 아버지의 진심을 종혁이하고 나눈 적 있으신가요?”

“그건···내 아들이라면 당연히···.”

“당연한 건 없어요!”

서재의 두터운 문이 큰소리로 열리면서 종혁이가 간장이 든 봉지를 휘두르면서 외쳤다.

한 번도 자신을 향해 큰 소리를 낸 적 없는 아들이 자신을 향해 소리치자 놀란 듯 종혁이 아버지가 소파에서 일어나 종혁이를 바라봤다.

“종혁아···.”

충격을 받은 한 아버지의 얼굴을 한 종혁이 아버지의 모습에서 일별하고 화가 난 듯 당혹스러운 듯 서 있는 종혁이 뒤로 종혁이 어머니가 서 있었다.

“난···난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는 줄 알았어요. 경수가 나를 이기길 바란다고 생각했다고요.”

“무슨···난 네 아들이고 그런 아들을 내가 왜 미워하겠니. 그리고 경수가 여기서 왜 나오는 거지?”

당혹스러워하는 종혁이 어머니를 부축해서 나는 거실로 나왔다. 종혁이와 종혁이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는 서재의 문이 열려있어서인지 거실에서도 작게나마 들려왔다.

“갑자기 찾아와서 소란 피우게 만들데···죄송합니다.”

“너는···뭔가 알고 있니? 나는 도무지···.”

“그저 종혁이 아버지하고 종혁이가 너무 대화가 없어서 그런 거예요. 너무 오랜 시간 서로 속마음을 나누지 못했으니깐 대화할 시간을 좀 주면 될 거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종혁이 어머니 손을 부드럽게 잡고 종혁이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마음을 최대한 좋게 풀어서 이야기했다.

‘그걸 좋게 받아드리는 것 같지는 않지만···종혁이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니···이이가 정말···아무리 그래도 그렇지···그런···.”

“물론 이건 오해가 쌓여서 인걸로 생각되지만,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있을 수 있고요. 하지만 종혁이가 하고 싶은 꿈을 이런 말도 안 되는 오해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꺾어버리면 너무 아깝잖아요. 종혁이는 분명···.”

서재에서 나오는 종혁이와 종혁이 아버지의 모습은 어색하지만, 그럭저럭 화해한 분위기의 친구처럼 보였다. 그 어색한 분위기와 표정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웃음이 올라오는 걸 참기 위해서 허벅지를 꾹 눌러야 했다.

“허···어음···그게 우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었는데···대화해서 잘 해결했어.”

“아니···당신···내가 당신이 어떤 일을 해도 아무 말 안 하고 조용히 지지해줬잖아요. 말도 안 되는 연대보증서를 들고 와도요.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종혁이한테 그런···흐··읍···그··런···.”

“아니···그게···.”

쩔쩔매는 종혁이 아버지 모습에 종혁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랍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종혁이의 손을 잡고 당황했는지 계속 들고 다니는 간장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우리 집으로 같이 데리고 왔다. 아직도 멍한 표정의 종혁이를 작지만 따뜻한 작은 상에 숟가락을 하나 더 올리는 것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간단하지만 정갈한 상에서 식사를 끝내고 바닥만 보고 있는 종혁이를 끌 듯이 골목길로 나왔다.

“나···.”

“말하기 어려우면 말하지 마. 그리고 미안하다.”

“뭐?”

“어쨌든 내가 너희 집 불란 만들었잖아.”

“그건···.”

“난 친구 부모님보다는 내 친구가 더 중요해. 닭살 돋아서 닭이 될 것 같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미친 앞으로 1m 거리 두고 말해라.”

종혁이는 부축하던 내 손을 내리치면서 한걸음 멀어지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들리지도 않게 말했다.

“어쨌든···고···고맙다···.”

“뭐? 뭐라고? 안 들리는데?”

“미친 두 번 말할 것 같냐?”

다시 말해보라면서 매달리는 나를 거칠게 떼어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골목길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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