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자세한 금전 이야기가 오가면서 우리를 방에 들어가게 하기 전에 나는 흘리듯 한마디만 보탰다.
“외화에 투자해서 금액을 좀 키우는 게 어떨까요?”
종혁이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핸드폰을 들고 자신의 서재로 향하는 걸 확인한 후 종혁이 방에 들어왔다.
외화에 대해서 언급한 건 종혁이 아버지가 내 말을 듣고 어디까지 도와줄 정도의 신뢰를 쌓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외화?”
“갑자기 외화는 왜?”
“안전 자산이잖아.”
“안전 자산이면 금하고 외화하고 엔화도 그렇지 않나?”
“난 엔화는 별로 일본 돈이잖아?”
“돈이 나라 따지냐?”
“돈은 나라를 안 따지지 근데 빚쟁이는 따지지.”
“뭐? 지금 아시아 개발도상국 중 우리나라 수위권 아니야? 수업시간에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그게 빚으로 만들어진 거라서 그렇지. 분명 문제 생기면 다 국민 탓할걸?”
“설마···그래도 문민의 정부인데···아빠도 살만하다고 건설 경기 좋다고 하던데?”
복권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1등은 1억5천 2등은 3천이다. 세금을 제외하고 나면 지금 경기상황을 생각할 때 집을 마련하고 여유롭게 생활할 돈이 된다. 하지만.
‘난 회귀를 통해서 재산을 늘릴 기회를 손쉽게 잡을 수 있어. 미성년자여서 내가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이 복권을 통한 돈으로 경수 아버지 병원비를 해결하고 친구들 부모님과 어머니에게 신뢰를 살 수 있다면 앞으로 내가 특출나게 생각하고 행동해도 믿고 넘어가 주실 거야. 이건 무형에 대한 투자야. 그리고 경수 아버지는 치료가 늦어지면 돌아가실 수 있어. 그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어떻게 보면 돈보다 더 중요한 거니깐.’
회귀를 통해 인생을 다시 산다고 해도 눈앞에 주인 없는 돈이 있다면 욕심 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눈앞의 이익보다 앞으로 내 행보를 믿고 지지해줄 최고의 후원자들을 만들기 위해서 투자한 것이다.
‘그리고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위험을 알고도 돈 욕심에 방치 한다면···이전의 삶과 다를 바 없어지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자기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계속 되뇌는 동안 종혁이와 경수의 대화가 점차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런데 주인이 넌 욕심 안 나?”
“당연히 욕심나지. 새집도 가지고 싶고 이왕이면 좋은 차도?”
“차는 무슨 운전도 못 하는데 의미 없다.”
“집은 뭐, 이사 가고 싶은데 당연한가?”
“사실 종혁이네 근처에서 이사 가기 싫더라.”
“너도 그랬어?”
“뭐냐, 너희 이상해. 뭔데?”
나와 경수가 뭔가 통한다는 듯 음흉하게 웃자 종혁이가 질색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종혁이 어머니 음식 솜씨가···.”
“손도 엄청 커서 항상 나눠주시지.”
“솔직히 우리 엄마는 바빠서 거의 반찬이 김치뿐인데 종혁이 어머니가 밑반찬 다 해주신다. 대박이었어.”
“나도 이사 가서 반지하에서 벗어난 건 좋았는데 종혁이 어머니 밑반찬 생각나면 가끔 우울해. 중독성 있는데.”
“종혁이야 매일 먹는데 알겠냐?”
“그러니깐.”
종혁이는 벌떡 일어났던 엉덩이를 의자에 밀어 넣으면서 아쉬워하는 우리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대답한다.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니깐?”
“말이 쉽지. 나도 바빠 임마.”
하면서 종혁이가 앉아 있는 책상 의자를 제자리서 돌리는 경수와 합세해서 놀이기구를 태운 것처럼 계속 돌려버렸다.
“그만···그만, 어지럽다고”
요란스럽게 떠드는 소리에 시끄러운 건지 눈을 부비는 주신이의 모습에 너 때문에 깬 거라고 타박하면서 우리는 좁은 방에서 벗어나서 골목으로 나갔다.
“주신이 깼을까?”
“우리가 방에서 나가니깐 다시 잠든 것 같았어.”
“어렸을 때 종혁이랑 골목길에서 엄청 뛰어다니면서 놀았는데.”
“지금도 어리거든?”
“그때 종혁이가 슈퍼맨 놀이한다고 장독대에서 뛰어내린 거 말했나?”
“뭐?”
“그래서 팔에 깁스까지 했잖아 크크큭”
“네가 부채질 한 거잖아.”
“정말 뛸지는 몰랐지.”
골목길 사이로 비추는 노을은 붉은색 융탄자처럼 우리가 가는 앞길을 밝혀주는 느낌이었다.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뛰기 시작하다 덩달아 뛰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골목길을 트랙이라도 되는 것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나요?
누군가 대답해주면 좋겠다.
‘젊은 친구 후회 없이 잘 살기 바라네.’
그런 내 뒤로 대백공에게 들었던 말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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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명은 종혁의 친구인 주인이의 말을 곱씹으면서 휴대폰을 가지고 서재로 들어갔다. 휴대폰 통화목록에서 보이는 하나의 이름 앞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통화를 눌렀다.
뚜르르르.
신호음이 가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진명이 자네가 먼저 연락하다니? 잘 지냈나?”
“그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연락한 건가?”
“궁금한 게 있어서. 이번 모임에 자네도 나오나?”
“나야 요즘 자숙하는 중이잖아? 아무래도 자리하기 힘들지.”
“뭐? 만나서 해야 할 말이야?”
“그건 자네의 대답에 따라 다르겠지.”
“무섭구만···무서워.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
“지금 국가 외화보유금···.”
“그건!!”
“왜···말할 수 없나?”
“내일 만나서 이야기하지.”
“그래···장소는···.”
문진명은 생각했다. 이번에 자신의 아들 종혁이가 사귄 친구는 단순히 감이 좋은 건지 아니면 무엇인가 알고 있는 건지 모르지만 대단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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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고 날이 어두워지자 나와 주신이는 집으로 들어와 잠이 들었다. 그러자.
잠이 들어 정신이 흐릿해진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익숙한 공간에 서 있었다.
상상 속 신선이 노닐 것 같은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그림으로 그린듯한 오두막에 그런 오두막 앞에는 허연 수염을 길게 기른 붉은 피부의 노인이 구부정한 자세로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맑은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의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대백공?’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나는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선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나?’
이런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멀리 있다고 느꼈던 대백공이 내 눈앞으로 순간 나타났다.
“어린 친구 반갑다네.”
“대백공? 어떻게···.”
“여기는 어린 친구의 꿈속이라네. 이곳 집터의 주인이 자네에게 우호적이 되어서 이렇게 꿈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게지. 이곳 집터의 기운이 깨끗한 걸 보면 아주 의로운 선비 같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일수록 중립적인 성향이 강한데 아주 대단하구만. 어린 친구가 대단해.”
“아···그럼 종혁이 아버지가···.”
“그렇다네. 자네에게 우호적인 게지.”
“그리고 보니 목소리가···좀···.”
“아하···꿈이라서 좀 더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야. 아무래도 현세에 그대로 내 음성을 보내는 데는 휘발되는 지기가 많아서 그런 것이지. 꿈속 현몽은 그대로의 음성이 전달되고 말이야.”
“아···.”
“내가 이렇게 어린 친구 꿈에 현현하게 된 이유는 자네가 이번 보상으로 얻은 상을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특이점이 더 커졌다네. 그래서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볼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일이 발생했다네.”
“그렇다면···.”
“그래 추가 보상이 있지. 그런데 아무래도 급하게 찾다 보니 시간제한이 있다네.”
“네?”
“특이점으로 주는 상벌은 인세에 내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인과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어린 친구가 좋아할 만한 것을 찾는 것이네. 그런데 이번에는 시기가 딱 맞는 것이 하나 있어서 어떻게 보면 다급하게 자네의 꿈을 찾았다고 볼 수 있지.”
“그럼···.”
“안남산 등산로에서 좀 벗어난 곳에 이제는 버려진 밭고랑을 타고 들어가면 사용하지 않는 우물이 있다네. 그 우물에 걸린 밧줄 10개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데 시간이 내일까지일세. 그런데 어린 친구가 학생 신분이다 보니 사실상 시간이 오늘뿐이 아닌가? 시간이 다급한 만큼 특별히 어린 친구가 힘을 좀 쓸 수 있게 술법을 걸었으니. 도움이 될 게야. 다만 지금 걸어준 술법은 시간이 지나면 풀리니 감안하게.”
내 몸을 휘감아 도는 푸르게 빛나는 빛이 순간 몸에 흡수되면서 정신이 고양되고 사고가 빨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건···힘도 몇 배가 강해진 것 같은데?’
“이 술법은 시간제한 없이 사용할 수는 없나요?”
“이 술법은 기존에 있는 육신의 힘을 단번에 끌어쓰는 것이기 때문에 무한정 쓰게 되면 육신의 근원이 깨져서 몸을 망친다네. 어린 친구의 육체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아···.”
“과유불급이라···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 중 하나일세.”
“그럼 우물에 걸린 밧줄 10개 중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건가요?”
“어떤 선택을 해도 자네의 몫이네. 다만···.”
대백공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에 나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외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어르신.”
“허허···.”
대백공의 웃음과 동시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주신이의 고른 숨소리가 내가 일어난 곳이 나와 주신이가 자는 작은 단칸방이란 걸 알게 해주었다. 나는 부엌 겸 거실로 사용하고 있는 곳에 펼쳐진 어머니 이부자리를 피해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끼익.
오래된 현관문 특유의 소음에 혹시라도 가족들 잠이 깰까 봐 등골이 오싹했지만, 다행히 오늘 나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심력을 쏟으면서 생각을 하셔서 그런지 어머니는 고른 숨을 내쉬며 주무시고 있었다.
나는 교과서나 필기구를 전부 뺀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손에 힘쓸 때 쓰는 목장갑과 손전등을 들고 나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당시에는 교과서를 들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책가방이 배낭 크기였기 때문에 어떤 물건이 나와도 가져오는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안남시는 분지 지형인데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산자락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 등산로 한곳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듯 떠올랐다.
‘대백공의 능력인가?’
머릿속은 수십 년간 다녀본 길을 다니는 것처럼 익숙한데 사실 처음 온 등산로를 거침없이 걸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집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등산로까지 버스나 택시도 없이 걸어서···사실은 뛰어서 이동하다니 평소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대백공이 걸어둔 술법은 한 시간 가까이 뛰어도 숨 하나 차지 않을 정도의 성능을 보여줬다.
‘대단한데···.’
산을 뛰어 올라가듯 올라가서 대백공이 알려준 위치로 향하자 점점 인적이 드물어지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다들 자고 있는 시간이라는 걸 알려주듯 주변은 어둡고 하늘에 떠 있는 달빛만이 지금 시간은 만물이 자야 하는 시간대라는 걸 알려주었다.
바스락.
스스츠.
그런 어둡고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깨듯이 나는 거칠고 급하게 목표한 지점으로 뛰듯이 달려갔다.
‘정말···있잖아?’
대백공이 알려준 위치에 정확하게 10개의 낡은 밧줄이 걸려있었다. 10개 중 하나가 내가 받을 보상이라면 나머지에 달려 있는 것들도 다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라는 호기심에 나는 밧줄 하나하나를 들어보았다.
강화된 힘을 가진 상태에서도 혼자서 들기 버거울 정도의 무게가 걸려있었다. 그중 가장 무겁다고 느낀 밧줄을 있는 힘껏 당기기 시작했다. 밧줄과 우물 벽의 마찰에 후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힘겹게 끌어올리자.
‘이건···.’
밧줄 끝을 이제는 더 이상 쓰는 곳을 찾기 힘든 마대자루가 걸려있었다. 힘겹게 완전히 우물에서 빼내자.
쿵.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듯 땅에 떨어지는 소음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없는 가운데 나는 마대자루와 밧줄이 걸려있는 부분을 보았는데 도저히 칼이나 가위가 아니면 풀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매여있었다.
시선을 돌려 마대자루의 바닥을 보자 마찰로 많이 헤져서 힘을 좀 주면 뜯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뜯겨져 나온 실밥이 있는 곳을 꽉 잡고 좌우로 찢듯이 힘을 주자.
헉.
마대자루에서 나온 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다발이었다.
‘이게 얼마야?’
만 원권이 한 묶음씩 눈대중으로 살피면서 가방에 차곡차곡 넣기 시작했다.
‘대충 묶음으로 200개가 넘는 것 같은데?’
가방에 더 들어가지 않는 돈뭉치를 점퍼 안주머니 양쪽에 하나씩 넣었다.
우물에 걸려있는 나머지 밧줄을 보면서 고민했지만 이내 밑부분이 터진 것처럼 보이는 마대자루가 걸린 밧줄을 처음에 걸려있던 위치로 돌려놓고 이곳까지 오면서 남긴 발자국을 쓸 듯이 발을 끌면서 등산로까지 조심스럽게 나왔다.
‘등산로에는 발자국이 많으니깐. 특정하기 어려울 거야.’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마대자루에 인적 드문 우물에 현금 뭉치를 던져놓았다는 건 밝히기 싫은 자금이라는 것이고 그걸 내가 가져갔다는 게 알려지면 누군가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백공이 보상이라면서 10개 중 1개의 밧줄을 괜찮다고 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가장 무거운 게 돈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가볍지만 더 큰 자산가치를 가진 건 많다.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이나 아니면 오래된 무기명 채권도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가장 무거운 현금을 골랐고 그 현금이 들어있는 마대자루의 바닥을 힘으로 뜯어냈다. 보통의 힘이라면 불가능하지만 대백공의 술법으로 가능한 방법이었다.
오래된 우물이지만 바닥에는 아직 우물물이 남아 있고 비자금을 숨겨둔 일당이 이곳에서 다른 물건을 찾다 너무 무거운 현금이 마대자루가 터지면서 우물에 떨어졌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래서 대백공이 시간제한이 있다고 한거 구나?’
실제로 내가 끌어올린 마대자루는 우물 벽과 마찰이 생기면서 마대자루 자체의 바닥이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술법으로 강해졌다고 하지만 우악스럽게 가 아닌 자연스럽게 마대자루를 뜯어낼 수 있었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무거워진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차 붉은 빛을 보이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두른 보람이 있는지 골목길을 들어서기 전 붉은 벽돌 집을 지날 때였다.
누군가 집 앞에 처량하게 앉아 있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