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화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알고 싶은 것과 모르고 싶은 것.>
“아니, 시대가 어느 땐데 이런 게 뉴스라고 신문에 나다니. 어, 다 너희 잘되라고 훈육하고 그런 건데 그런 가장을 죽이는 아내라니.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어, 훈육 좀 했다고 가장을 죽여버리면 아이를 누가 키워?”
나는 손을 들어서 말했다.
“선생님, 수업시간인데요.”
“너희가 배워야 할 게 이거야. 이런 기본적인 도리도 모르면서 어떤 교육이 의미가 있겠냐? 도덕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이거라고. 어? 여자는 말이야. 자고로 결혼 잘해서 애만 잘 키우면 되는 거야. 그런데 그런 기본적인 걸 못 하니깐 남편이 말이야···.”
대놓고 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도덕 선생 특유의 신경을 거슬리는 억양에 잠조차 오질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종혁이가 바로 뒷자리의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도덕 뒤 끝 장난 아닌데···그렇게 개덕이 말하는데 중간에 끼어들면 어떡해?”
“듣기 너무 신경 거슬려서.”
“듣기 좋은 소리를 개덕이 하겠냐? 그럼 개덕 소리 안 듣지···크크큭···.”
“개가 무슨 죄냐? 개는 귀엽기라도 하지.”
종혁이는 나의 말에 배를 잡고 웃더니 이내 정색하고 말했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니깐, 개덕 다시 안 볼 거라고 막 대들지 마. 고등학교하고 같은 재단이라서 진학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냥···대단한 것 같아.”
“뭐가?”
종혁의 뒤로 필기를 정리하고 나타난 경수가 내 책상에 걸터앉으면서 말했다.
“이런 개떡 같은 교육을 받고도 학력이 좋으면서 생각도 깨어있는 너희가 대단하다고.”
“나는 가끔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네가 병신같기는 한데. 싫지가 않으니깐 미스터리 한 것 같아.”
“너도 그러냐? 나도 그런데. 행동하는 게 이해는 안 가는데 신경 거슬리지 않아. 신기하다니깐.”
“은영 누나 괜찮을까?”
“괜찮겠냐? 저번에 동신 일보 보니깐. 은영 누나 완전 강남 텐프로라고 써놨더만.”
“그런데 없는 사실을 신문에서 적었을까? 그 누나 가출한 건 사실이잖아.”
“강남 텐프로가 잘못한 거냐? 미성년자인 텐프로 좋다고 부르는 놈들이 미친 거지.”
“어쨌든 은영 누나가 가출했었는지도 몰랐었는데 난 충격이었다고.”
“내가 더 충격적으로 만들어 줄까?”
“뭐?”
“공중 3회전쯤 하면 정신이 충격적으로 돌아올 건데?”
“혼자서 열폭하고 있는데 이거 왜 이러냐?”
“붉은 벽돌 집 담벼락에 살인자 자식이라고 페인트칠하고 창문도 누가 깨고 도망가서 난리도 아니거든. 저 녀석 밤새 그거 담벼락에 페인트 지우다가 와서 눈에 핏발 선거 보이냐? 이런 상태니깐 개덕···지 말에 딴지 걸어도 넘어갔지. 개덕이 겁은 많잖아? 때려도 학주 시켜서 패고.”
“그 새끼도 돌 아이야. 그런데 지금 너도 만만치 않다. 다음 국어니깐 수업 중에 잠이라도 좀 자.”
“너무 억울하잖아.”
“뭐가?”
“지···자식하고 아내 폭행 아니지. 살인미수 한 놈한테서 살아보겠다고. 정당방위인 건데···그 아줌마를 사악한 마녀라도 되는 것처럼 마녀사냥 중이잖아.”
“뭐, 언론이 일방적이긴 하지.”
“그래도 살인은 살인이잖아?”
“가정폭력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공포는···.”
그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공포는···맞고 있을 때가 차라리 안정감이 느껴질 정도의 무력감은 겪어보지 못하면 알 수 없다.
나도 간접적으로 본 것뿐 이지만 그때의 공포는 정말 일상생활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 표정이 안 좋아졌다고 느꼈는지 종혁이와 경수가 이내 정신 차리라는 듯 말했다.
“나도 일방적으로 떠드는 뉴스는 안 좋아해. 그리고 이건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되는데···.”
“뭔데?”
“이번에 정부에서 뭔가 큰일이 터질 것 같아서 국민 시선을 다른 데 돌리기 위해서 자극적인 기사만 올린다고 하더라고.”
“넌 뭔데 그런 걸 알아?”
“내가 알겠냐? 정말 싫은데···아빠가 신문 여러 개 펼쳐놓고 꼭 한소리 하거든. 그냥 아빠가 하는 말 들은 거지. 정부에서 뭔가 숨길 게 있으니깐 이런 자극적인 사건을 크게 다루는 거라고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안목을 키우라고···뭔 소리 진 모르겠는데. 그냥 알겠다고 하고 말았지.”
“그래서···.”
IMF 사태가 발생할 걸 정부에서 알고 있었군. 그래서 시선 돌리기로 더욱 마녀사냥에 열을 올리는 건가?
“뭐야? 난 옆에서 말해도 모르겠는데. 넌 뭔가 알겠어?”
“너 같으면 인생 두 번 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아?”
“미쳤나? 입시를 두 번이나 치루게? 아직 고등학교 들어가지 않았는데 엄마가 난리야.”
“중학생 끝. 고등학생 시작은 죽을 때까지 학교에 못 박히라는 거다. 지금을 즐겨.”
도덕 시간 이후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한 건지 내리 잠들고 말았다.
하교 시간이 되어서야 깨어난 나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몸짓을 해 보인 종혁이와 경수였지만 걱정되었는지 가방을 들어주겠다는 걸 괜찮다고 하면서 주신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 걷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버스정류장마다 내가 멈춰 서서 복권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자. 그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종혁이가 말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왜 갑자기 복권이야?”
“좋은 꿈 꿔서.”
“학교에서 수업시간 땡땡이로 자고 나서 좋은 꿈 꿨다고 복권 사려는 놈은 네가 최초일 거다.”
“내가 당첨되면 나눠주게.”
“당첨금?”
“나 쓸 것도 부족한데 무슨···.”
“그럼 당첨되면 한번 크게 쏜다는 거네.”
“그것도 아냐.”
“까다롭기는 뭔데?”
“당첨되면···지금 말해봤자. 헛소리지.”
“살 거면 사고 아니면 빨리 가자. 꼬맹이가 기다리겠다.”
“나보다 네가 더 잘 챙기는 것 같아.”
“넌 형제가 있으니깐 모르는 거야. 내가 얼마나 동생이 있었으면 했는데.”
“당해봐야 알지.”
“그러는 너도 외동이잖아?”
“외동이라면···외동 이지.”
“뭔데?”
“나도 몰라. 말을 안 해주는데 모르지. 그런데···.”
“그런데 뭐?”
“몰라 빨리사. 안 살 거면 가고.”
“여기 이 번호로 주세요. 앞번호하고 뒷번호까지 주세요.”
“낯 장으로는 안 팔아. 사려면 1줄 10장으로 사.”
“그럼 여기 이 번호 포함된 걸로 각 조로 1줄씩 주세요.”
미친놈 보듯 하는 종혁이와 경수의 시선을 뒤로하고 나는 주신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형, 종혁이 형이 요즘 형 괜찮냐고 물어보던데?”
“종혁이가?”
“응, 집에서만 아니라 밖에서도 이상하게 행동하는 것 아냐?”
“그래서 넌 어때? 형이 이상해?”
“뭐, 아빠 돌아가시고 형이 많이 변한 것 같긴 해.”
“너···어떻게 아버지 돌아가신 걸···.”
“아무리 초등학생이라도 알건 알거든. 뭐, 선생님이 입이 좀 가볍기도 하고···엄마하고 형이 말 안 해서 나도 말 안 한 것뿐이야.”
“난 변한 형이 더 좋아. 아빠가 돌아가신 건 슬프지만···그 전에는 형이 날 미워하는 줄 알았거든.”
“그건···.”
내가 동생을 미워했던걸···동생도 알고 있었구나. 이유 없이 미움받는 게 얼마나 아픈 건지 알면서도 나는 철 없이···회귀 전 동생을 보육원에 버리고 비겁하게 도망쳤던 기억에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날 못 본 것처럼 동생은 밝은 어조로 빠르게 이어서 말했다.
“형이 날 미워하는 게 아니었구나. 그냥 형도 나랑 같구나.”
“뭐가 너랑 같냐? 커도 내가 훨씬 크구만···.”
나는 일부러 짓궂게 동생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는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형, 너무 무리 하지마.”
난 못 들은 척 씻고 나와 동생에게 씻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못 이기는 척 화장실에 들어가는 걸 보면서 어린 동생이 너무 일찍 철이 드는 게 마음이 아팠다.
“주신아, 좀 더 천천히 커도 돼···.”
‘엄마도 이런 마음일까?’
대견스러운 한편 마음 한쪽이 아프게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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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미친놈아!!!”
“뭐야? 뭔데?”
“이 자식이···웁···읍···.”
경수의 입을 막고 의아하다는 듯 우리의 행태를 보던 반 아이들도 이내 관심이 줄어들자. 경수와 종혁이를 끌고 소각장으로 향했다.
“경수 숨 막히겠다. 이제 풀어줘.”
종혁이의 말에 얼굴이 벌게져서 발이 거의 끌려오다시피 한 경수를 얼른 풀어줬다.
“할아버지가 나 부르는 줄 알았다.”
“경수 너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아니, 멀쩡하신데?”
“야!!”
종혁이는 콜록거리는 경수를 덮치듯 부축했다.
다시 대화가 다른 곳으로 흐르기 전에 말했다.
“맞아, 당첨된 거.”
“뭐? 진짜야?”
“뭐가, 뭐가?”
“저번에 주인이가 복권 샀잖아. 그런데 이번에 당첨번호가···.”
“넌 그걸 잠깐 봤는데 기억하냐? 네가 더 놀랍다.”
“숫자 암기는 기본 중에 기본이지. 수험생의 기본.”
“난 기본의 발가락 때도 못 할 것 같다. 그런데 복권 당첨되면 이사 가는 거야? 경수가 가까이 있다가 이사 가고 좀 아쉽네.”
“아직. 가더라도 같이 가야지.”
“뭐?”
“어디까지 내 생각이지만 말이야. 나 복권 당첨된 거 말하고 다니지 마. 그럼 이상한 놈들만 꼬여서 될 것도 안돼.”
“하긴, 저번에 신문 보니깐 복권 당첨되고 야반도주한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나는 그러고 싶지 않으니깐 이번 주에 종혁이네 집에서 다 모이자. 부모님도 모셔와.”
“뭐?”
“부모님을 왜? 그리고 왜 우리 집인데?”
“밖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데 경수네도 자주 놀러 오잖아. 너네 집. 익숙하고 안전하고 좋네.”
“뭐, 엄마야 좋아하겠지만. 오랜만에 경수 엄마 본다고.”
“경수 너는 너희 어머니한테 보험 관련해서 다 준비해 오라고 해.”
“뭐? 종혁이네는 전부 엄마가 해줬을 텐데?”
“이건 아닐걸?”
“응?”
“이게 뭐야? 전해주면 잘 아실 거야. 그리고 이번 주까지는 입이 간지러워도 꾹 참고 부모님 꼭 모시고 와. 주말이면 좋지만 안되면 평일이라도.”
“나야 엄마는 될 테지만 아빠는 요즘 건설 때문에 바빠서.”
“그럼 어머니만이라도.”
“나야 아빠가 주말에는 집에서 쉬시니깐. 양해만 구하면 상관없어.”
“그런데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말했잖아. 복권 당첨금 준다고.”
“준다고는 안 했지. 너 쓸 것도 부족하다면서. 나눠준다고만 했지.”
“그래. 그런 발언도 법적으로 효력이 있어. 그러니깐 나눠 줘야 해. 그런데 방식은 내가 정한다고 했었으니깐. 그것도 효력이 있어 법적으로.”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경수가 말했다.
“법적으로야 그렇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언급은 사실상 효력이 없지.”
“셋이 들었고 두 명이 증언하면 효력이 있는 거지.”
“난 모르겠다. 기억도 안 나. 그리고 너 쓸 때도 많다며 알아서 써.”
차례로 경수와 종혁이의 돈 욕심 없는 모습에 무심코 웃음이 돌고 말았다.
‘이런 게 친구인 건가?’
“내가 쓰려면 너희 도움이 필요해서 그런다. 그러니깐 도와줘.”
“넌 참 낯 간지럽고 닭살 돋는 말을 자주해.”
“그래서 싫어?”
“싫지는 않지만, 거부감이 든다. 떨어져. 어쨌든 엄마한테 말해서 일정은 이번 주에 친구들 부모님이랑 식사하자고 말해 놓을 테니깐.”
“나 한 마리 닭 된 거 보이냐? 어쨌든 나야 힘들 것 없으니깐 엄마한테 말해놓긴 할게.”
나한테서 한 발자국씩 떨어지면서 몸서리를 치는 종혁이와 경수였지만 이내 도와주겠다는 대답을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