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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인생 다시 산다-9화 (9/205)

<009화 훈육이 가지는 의미>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한 건 아니구나.’

나는 경수를 통해서 알게 된 정보를 정리하면서 토지신에 대해서 좀 더 찾아보려고 했다.

“너랑 주신이 너무 늦은 거 아니야?”

“뭐?”

“벌써 해지고 있는데? 집에 도착하면 깜깜하겠다. 나야 토요일 날 늦게 오는 거 알고 있어서 괜찮은데 부모님한테 말하고 나온 거 아니잖아?”

“늦었다. 걱정하시겠는데. 주신이는 특히나 이 시간에···.”

나는 경수한테 일별하고 주신이를 데리고 집까지 걸음을 독촉해야 했다.

주신이의 칭얼거림에 등에 업고 거의 도착한 집 앞 골목길을 돌진하듯 뛰었다.

‘걱정하실 텐데···.’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몰길은 어둡고 어두워서 꼭 어딘가 동굴을 헤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런 골목길을 둘러싼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집 밖에서 서성이는 그림자가 저 멀리서 보였다.

그 그림자의 흔들림에 목이 메면서 죄송함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주인이니? 주신이는 어···주신이는···어···어···.”

어머니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주신이에 대해 묻자···. 등 뒤에서 피곤했는지 한참 자고 있던 주신이 깨어나서 어머니의 슬픈 목소리에 동조돼 울기 시작했다.

“엄마···엄마···.”

어머니는 주신이가 내 등에 업혀있을 줄 생각 못 했는지 내 등 뒤로 달려가 주신이를 안아 들면서 울고 있는 동생을 달래주었다. 그러면서 내 등을 원망스럽다는 듯 내리치시는데 맞아서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너무 쓰라렸다.

반지하 방에 도착해서야 진정이 된 동생에게 늦은 저녁을 챙겨주면서 나를 따로 불러내 혼내셨다.

“공부도 좋지만 어린 동생이랑 있는데 어디로 간다고 미리 말이라도 해야지.”

“···.”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당연히 나의 잘 못이고 혼나는 게 당연한데도 서러우면서 감정이 올라와 무언가 내 목을 조르는 느낌이었다.

“우선 저녁 먹고 말하자.”

입맛이 없었지만 억지로 입안으로 밥을 밀어 넣듯이 먹고는 피곤하다고 말하고 먼저 이부자리에 누웠다. 주신이가 없이 방안에 혼자 눕자 물밀 듯이 여러 상념에 생각만 산만해지고 있을 때

삐용삐용.

‘구급차? 이 시간에 이 근처에 올 일이 있나?’

“저 잠깐 밖에 나갔다 올게요.”

“이 시간에 주인아? 주인아!”

뒤에서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지만, 구급차와 사이렌 소리가 꼭 나를 지금의 기분에서 벗어나게 해줄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몸이 어려지니 생각도 어려진 건가?’

스스로 자조 어린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지금의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발걸음을 옮겨야지라는 생각에 골목 밖으로 나가자 골목 안 집들과 분위기가 다른 붉은색 벽돌의 거대한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으로 많은 구경꾼이 모여있었고 그 앞을 젊은 순경이 막아서면서 사람들이 몰리는 걸 막고 있었다.

‘저 사람은?’

파출소에서 본 젊은 순경이었다. 그 순경과 같은 계급으로 보이는 사람 2명이 더 있었는데 사람들이 몰리는 걸 막아서고 있었다.

“허 순경? 무슨 일이야? 이런 난리는 이 동네에서 처음이네.”

사람 좋아 보이던 낮의 모습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굳은 표정으로 동네 주민들의 질문에 한마디 답도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허 순경의 옆에서 사람들을 설렁설렁 밀어내고 있는 붉은 얼굴의 순경이 가볍게 말하면서 사람들을 물러나라고 하고 있었다.

“조금 뒤로 나가주세요. 안 그러면 공무집행 방해입니다. 그리고 뒤로 조금만 물러나시면 곧 알게 되요.”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다들 자리를 내주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붉은 벽돌 집에 대문이 열리면서 어린아이가 급하게 이송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뛰어나오는 젊은 여자가 울면서 외치고 있었다.

“은수야!! 은수야. 이럴 순 없어. 이 개××, ×××가 어떻게···은수를 죽일 거야. 죽일 거라고.”

미친 것처럼 보이는 여자의 모습에 구경꾼들은 저절로 뒷걸음치고 순경 두 명이 간신히 젊은 여자를 붙잡고 있었다. 그 여자 뒤로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 부부가 무표정한 얼굴로 간신히 제지하고 있는 젊은 여자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뭘 잘했다고.”

“어떻게 부모한테···어디서 욕지거리를 배운 거냐? 집 나가더니 예의도 나가버린 거냐?”

“너···너 같은 놈이 부모라고? 너 같은 게? 아하하핫.”

미친것처럼 웃는 여자를 보더니 중년 부부는 사람들 보기 민망하다는 듯 바로 경찰차를 타고 사라졌다. 구경꾼들도 미친 듯이 웃고 울고 있는 여자를 피해서 뿔뿔이 흩어지자. 나만 남아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저히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두려움. 공포.

퍽.

쿠당당탕.

찌익.

‘으아아악!’

평소와 다른 강도의 머리 통증에 나는 머리를 잡고 웅크리듯이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나는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말을 걸 용기가 생기지도 않았다.

너무나 두려워서 공포에 질린 나머지 입도 발도 손도 꽁꽁 묶인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의 기억을 아주 잠깐 들여다본 것에 불과했지만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어둡고 어두운 천 길 낭떠러지로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 같은 그런 공포와 고통을 한 번에 느껴야 했다.

허억허억.

나는 내가 과호흡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뒤에서 나를 안아주는 따뜻한 체온이 없었다면 말이다.

“주인아? 괜찮아? 숨 쉬어 천천히 어떻하지···어떻해.”

불타듯 붉은 색이 선명한 벽돌집을 향했던 시야를 막아서듯 내 앞에 선 사람에게 시선을 준다.

‘어···머···니?’

어머니는 양손으로 내 뺨을 잡아 부드럽게 시선을 맞추고 진정하라는 듯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괜찮을 거야. 다 괜찮아. 주인아. 주신이는 집에 있어. 미안 엄마가 아무것도 모르고 화내서 너무 걱정되서 그랬어. 많이 속상해서 그런가야? 엄마가 잘못했다. 괜찮아? 엄마는···.”

호흡은 진정되었지만 격해진 감정은 진정되지 않았다.

‘아니야. 난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소리가 듣고 싶은 게 아니라고. 나는···.’

“아···.”

회귀 첫날 모든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로 울었던 그 날처럼 난 어머니 품 안에서 그저 속에 담긴 어두운 찌꺼기가 빠지길 바라는 것처럼 울고 말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감정이 진정되자 민망함에 어머니 품을 벗어나기 위해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울고 웃던 여자는 갑작스럽게 자신처럼 울던 나를 보더니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면서 눈을 피했다. 그러다 자신이 피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번에는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매서운 눈초리에 내가 움찔하자 그런 나를 꼭 안아주던 어머니가 느끼셨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살펴보더니 진정되었다고 느낀 건지 등을 한번 두드려주고 뒤돌아 그 젊은 여자를 향했다.

“저기 괜찮아요?”

“···.”

날카롭게 뜬 눈초리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계속 말을 걸었다.

“바닥이 찬데 일어날 수 있겠어요? 방금 집에서 나온 것 같은데 집으로 들어갈래요?”

“···.”

말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밤에 보면 무서울 비주얼이 되었는데 지금은 밤이니깐 무섭다고 느끼는 나는 정상인 거다.

“저녁은 먹었어요?”

“...”

“그럼 우리 집에 가서 저녁 먹을래요? 나도 아직 저녁을 못 먹었거든.”

‘나 때문에 저녁을 아직 못 드셨구나.’

고개를 숙여서 여자의 얼굴을 못 봤지만, 긍정을 표했는지 어머니가 여자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힘겨워 보이는 모습이어서 나도 다가가 부축하려고 하자 흠칫하더니 나를 죽을 듯이 노려봤다.

나는 그 모습이 꿈에 나올까 무서워서 후다닥 소리가 날 정도로 골목길 벽에 붙었다.

“아···주인이는 집에 먼저 들어가서 상이나 펴고 있을래?”

나는 어머니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집에 들어가서 상을 피고 주신이를 안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주신이가 의아하다는 듯 벗어나려고 했지만 나는 힘주어 꼭 안고 있었다.

“형?”

“이대로 잠깐만 있자.”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런데 꼭 뒤에서 귀신이 쫓아오는 것처럼 그래?”

“아니야.”

“뭐가 아닌데?”

실랑이가 끝날 때쯤 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나타난 여자의 모습에 주신이의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헉.

방금 전까지 자신을 안고 있던 내 품에서 벗어나려고 용을 쓰던 주신이는 몸을 움츠리더니 내 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너도 그런 거지? 내가 이상한 게 아니지?’

곧 문 여는 소리와 함께 여자를 부축해 상 앞에 앉는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의 모습에 조금 안심한 듯했지만 더는 내가 안고 있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는 주신이와 내가 한 몸처럼 방구석에 붙어있자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어머니가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찬물밖에 안 나오지만, 화장실에서 손이라도 씻어요.”

“···.”

대답은 없었지만 수긍했는지 이내 화장실로 들어간 후 갑작스러운 비명 소리에 나와 주신이는 순간 벌떡 뛰어오르듯이 일어났다

그런 나와 동생의 모습이 웃긴지 살짝 웃던 어머니는 간단한 차림으로 상을 정리하고 여자가 나오기를 기다리셨다.

화장실을 들어갈 때와 다르게 머리를 묶고 눈가에 번진 화장을 지운 여자가 나타나자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주신이 어린이답게 궁금증이 생겼는지 질문을 던졌다.

“누나 괜찮아요?”

“응···놀랐으면 미안. 나도 내가 이런 모습 일 줄은···.”

“우선 배고플 텐데···식기 전에 식사 들어요. 무슨 일인지 몰라도 버티려면 먹어야지.”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입맛이 없어서 깨작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삼 일은 굶은 듯한 속도로 상을 비워냈다. 어머니도 놀란 표정이었지만 이내 솥에서 밥 한 공기를 더 덜어내 올려주었다.

“맛있게 먹어줘서 내가 고맙네요. 그런데···이름이···.”

“아···최은영이라고···.”

“붉은 벽돌집 사장님 큰딸? 유학 갔다고 하던데···.”

“유학 안 갔어요. 집 나간 거예요.”

“···?”

당혹스러워하는 우리 모자를 본 건지 이제 사람 몰골이 된 여자는 피식 웃더니 자조적으로 입을 열었다.

“살고 싶어서 도망쳤어요.”

다 먹은 상을 치우고 내온 따뜻한 보리차가 담긴 머그컵을 양손으로 잡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상 위로 떨어지는 투명한 물방울을 우리는 모른척할 수 없었다.

“그런데···은수가···.”

똑똑똑.

“이 시간에 누구지?”

늦은 시간에 찾아올 손님이 없었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보이는 건···

‘경찰?’

여자가 앉아 있는 방향에서는 보이지 않겠지만 내가 앉아 있는 방향에서는 보였다. 오늘 낮에 봤던 허 순경이라는 젊은 경찰이었다.

문밖에서 자초지종을 들었는지 혼란스러운 표정의 어머니가 허 순경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경찰이 아가씨를 데리고 가고 싶다는데···이게 다 무슨 일이죠?”

“그거야 망할···.”

붉은 벽돌 집 앞에서처럼 욕지거리를 하려는 듯했지만 이내 내 쪽 아니 주신이를 보더니 입을 앙다물고 아무 말 없이 허 순경을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당혹스러워하는 어머니에게 주신 이를 맡기고 나는 허 순경을 쫓아서 골목길을 뛰어나갔다.

헉헉.

“허 순경님.”

“어···너는 낮에···.”

“갑자기 설명도 없이 이 여자분을 데려가는 이유가 뭐예요?”

“···.”

말하기 곤란한 듯 여자를 순찰차에 태우더니 차에서 떨어지더니 조용히 말했다.

“지금 피의자체포 하는 거야. 그러니깐 너도 막지 말고 비켜라.”

허 순경이 나를 밀어내듯 순찰차에서 멀어지게 한 순간. 나는 저번과 같은 아찔한 사진과 듣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또 받을 수 있었다.

내가 회귀하기 전 30대의 나이 먹은 모습과 허 순경은 경찰 복장이 아닌 사복을 입고 나와 술잔을 나누는 듯한 모습의 이미지였다.

대화가 지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지난번처럼 당혹감에 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주먹을 꽉 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후으···사건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되지만 나도 너무 답답해서···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면 안 된다.”

“네?”

“너랑 처음 만난 날 기억하냐? 은영이라는 아가씨 은수라는 동생 폭행혐의로 체포했던 사건.”

“기억하죠. 잊겠어요? 형은 그 누나가 동생을 폭행했다고 생각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뭐 내 생각이 중요한 건 아니니깐.”

‘내가 허 순경을 형이라고 부른다고?’

순간 집중이 풀리면서 엿가락 늘어지듯 대화가 접히기 시작했다. 순찰차는 이미 출발했는지 저 멀리 붉은 불빛만 보이고 골목길에 나 혼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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