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화 대백공>
토요일 단축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종혁이는 통원치료 중이신 종혁이 아버지와 함께 가족 전부가 병원에 들렸다가 외식을 한다고 먼저 하교해서 경수와 함께 주신이를 데리러 가고 있었다.
“백과사전?”
“응 궁금한 게 있는데 찾아보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싶은데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말이야.”
“하긴 우리 학교에는 아직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용 PC 설치가 안 되어 있으니깐. 고등학교 가면 사용할 수 있다던데···.”
“그래서 백과사전에서 찾아볼까 해서···.”
“그럴 거면 차라리 도서관에서 검색해 보는 게 어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안 나오면 바로 도서관 PC로 관련 도서 찾아볼 수도 있으니깐.”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도서관에 주신이도 데려갈 수 있을까?”
“어린이 도서실도 따로 있어서 오히려 친구들도 만들고 더 좋을걸?”
“그런 것도 있어?”
“너 도서관 한 번도 안 가봤지. 나하고 종혁이가 왜 자주 가겠어. 안남시 도서관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오는걸?”
“몰랐어···.”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도서관 근처도 가본 적 없어서···할 말이 없네.’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된 거지. 오늘 갈래? 원래 토요일 날 단축 수업하면 종혁이랑 자주 가거든.”
“나야 좋지. 마침 주신이 온다.”
초등학교 입구에서 경수와 대화를 하는 사이에 주신이가 달려 나왔다. 그러자 주신이 옆에 긴 머리를 양쪽으로 묶어 내린 작은 아이가 천천히 교문으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어린아이 특유의 활발한 웃음이 보이지 않아서 저절로 시선이 갔다.
그러다 자신의 손을 잡아당기는 주신이의 행동에 고개를 돌리자 동생이 학교 앞 떡볶이집으로 나와 경수를 밀고 있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두워 보이던 작은 아이가 내 옆을 지나치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두려움. 공포. 움직이는 사진처럼 보이던 영상은 고장 난 것처럼 찢긴 사진의 한 조각씩 장면을 토해낸다. 몸을 마음데로 움직이지 못하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고장 난 것처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아픔조차 느낄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잡아먹는다.
퍽.
쿠당당탕.
찌익.
평소와 다른 강도의 머리 통증에 나는 머리를 잡고 거리 위를 구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떡볶이집 앞에서 메뉴를 고르는 주신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뭐지?’
이제까지 봤던 사진 같은 영상과 대화 소리와 완전 달랐다. 어둡고 두려움 공포에 둘러싸인 채 괴로워하는 신음 소리 그리고 폭행 소리?
“뭐하냐? 떡볶이 앞에 두고 제사 지내는 거야?”
“아니, 먹어. 주신아, 형 것도 먹어. 오늘따라 입맛이 없네.”
“진짜?”
“요 꼬맹이···너무 급하게 먹으면 배탈 난다. 여기 오뎅 국물도 먹어가면서 먹어.”
경수와 주신이가 내 앞에 놓인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잠시 보면서 가슴을 무겁게 했던 어두운 공포심을 몰아낼 수 있었다.
“주신아, 그런데 교문 앞에서 나올 때 본 여자아이 너랑 같은 반이야?”
“응? 아니 옆 반인가 그럴걸? 이름이···은수였나?”
“이야, 꼬맹이가 옆 반 여자아이 이름까지 능력잔데?”
“은수는 유명해서 나만 아니라 전교에서 다 아는데······.”
“왜?”
“귀엽게 생기긴 했는데 그렇게 유명할 정도라고?”
“그게 아니라 자주 학교를 안 나와. 그런데 은수는 학교랑 선생님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은수가 학교랑 선생님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아?”
“나도 매일 나머지 수업 듣잖아. 엄마 아니 이젠 형이 오지만 어쨌든 일부러 선생님들이 나머지 수업할 때 불러서 같이 듣게 해주신다고. 싫으면 굳이 안 들어도 되는데 은수도 항상 듣거든 학교 오는 날은.”
떡볶이 소스가 가득 묻은 입가를 휴지로 닦아 주면서 물었다.
“학교 오는 날은 늦게까지 수업을 다 듣는다는 거지?”
“응”
내 표정에서 뭔갈 느낀 건지 경수는 조용히 도서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이 없다. 주신이를 어린이 도서실에 맡기자 바로 질문했다.
“뭔가 알아낸 거지?”
“뭐?”
“종혁이랑 이야기했는데 너 감이 좋다면서.”
아무래도 종혁이 부모님 구할 때 신비한 힘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하지 못해서 종혁이와 경수는 내가 감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힘들게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행이다 싶었다.
“아무래도 그 아이 집에서···매 맞는 것 같아서.”
“역시···.”
“너도 뭔가 알아챈 거야?”
“나야 뭐, 학교 때 친구 중에 어두운 표정을 항상 하는 애가 있었거든. 그 애랑 비슷한 표정이어서.”
“어떻게 표정만으로 안 건데?”
“개가 좀 아침잠이 많아서···학기 초에 학주한테 찍혔거든. 그래서 처음에는 지각을 이유로 맞다가 그 다음부터는 이유 없이 개만 보면 때리더라고. 반 애들끼리 학주가 미쳤다고 했지 뭐. 처음에는 밝고 나랑 비슷한 성격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되게 어두워지더라고. 그러다 전학 가면서 연락을 안 하니깐 지금이야 뭐.”
“걔네···부모님이 그걸 알고도 가만 둔 거야?”
“가만 안 두면 어쩌겠어. 학주는 학교에서 알아주잖아. 어쩌면 다음에 교감 될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우리 학교가 뭐더라 공립이 아닌 재단에서 운영하던 곳인데 입김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요 앞에 파출소에 신고하자.”
“뭐? 맞는 걸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신고해도 장난치냐고 뭐라고 할걸?”
“그래도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보단 신고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주신이한테 말하고 올 거니깐···경수 너도 도서관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주신이에게 가려는 내 팔을 잡더니 경수가 이내···씩 웃으면서 말했다.
“이참에 파출소 구경이나 하는 거지 뭐, 그리고 혼자 가서 말하는 것보다는 두 명이 말하는 게 더 신빙성 있지 않겠어?”
회귀 전에도 경찰과 만날 일이 없었던 나는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파출소 문을 열었다.
조용한 내부에 민원인을 받는 듯한 창구에 선 젊어 보이는 순경이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두 명이 들어오자 의아하다는 듯 우리를 봤다.
“학생들?”
젊은 순경이 천천히 일어나면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로 온 거니?”
문을 열 때 들리던 코 고는 소리는 우리가 파출소로 들어오면서 나는 소음에 섞이더니 이내 우당탕하는 소리로 변했다. 머리가 빨갛게 달아오른 중년 경찰이 뒤에서 험한 소리를 하는 게 들리자 젊은 순경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데리고 파출소 밖으로 나왔다.
“아, 소장님이 지금 신경이 예민해서···무슨 일로 온 거니?”
“저기 제 동생이 백신초등학교 학생인데요. 옆 반 친구가 자주 학교를 빠진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이름이···.”
“아 성은 모르고 이름이 은수라고 했어요.”
“아···심은수···.”
“아는 아이에요?”
“자세한 건 말해주기 어렵구나. 어쨌든 신고해줘서 고맙다.”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면 빨리 가서 잡으면 되는 거 아네요?”
“그게 어른들만의 사정이 있어서. 어쨌든 사소해 보이지만 잘 관찰하고 신고해줘서 고맙다. 어떻게 보면 신고가 여러 건 쌓이면 좀 더 강하게 제재할 수 있거든.”
“계속 마음에 걸려서요.”
“이건 별건 아니지만 고맙다는 의미의 음료수 하나씩 가져가라. 동생도 있다고 했지? 여기 하나 더 줄게.”
젊은 순경은 친절하게 사건접수를 해주고는 우리에게 음료수를 안겨주고 파출소 안으로 들어갔다. 문 열리는 틈 사이로 다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아내 문이 닫히면서 더는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저 경찰 아저씨 친절하다. 좋은 사람 같아.”
“그래 코 골면서 자고 있는 경찰보다는 천 배쯤?”
나와 경수는 도서관에 들어와 경찰에게서 받았던 음료수를 주신이에게 건내 주고 원래 목적했던 인터넷 검색을 시도해봤다.
‘대백공···대백공···?’
“나오는 게 없네.”
“대백공?”
“검색해봐도 하나도 나오는 게 없어서 도저히 실마리를 알 수가 없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정말?”
경수와 어울리다 보면 자주 깜박하고는 하지만 경수는 공부를 잘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국 사법고시를 통과해 검사가 된 친구였다.
경수가 잠깐이라도 봤었던 기억이 난다고 하면 진짜일 확률이 높았다.
“어디서 봤는데?”
“도서관이나 학교 그런 곳은 아니었던 것 같아. 내가 활자 중독이 조금 있어서 뭐든지 읽거든 내 기억에는 무슨 표지판 같은데 적혀있었던 것 같은데 아주 오래된···아 그래 사당은 아니었는데 아···지역 관련 자연사 안내받을 때 봤던 것 같다.”
“뭐? 우리가 지역안내를 받을 때가 있었어?”
“뭐, 학교에서 소풍을 간 곳이 지역박물관이었는데 지금은 없어 졌을 거야. 내가 국민 학생 아니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지? 어쨌든 그때 잠깐 설명회 같은 거 할 때 있어 보이는 건 이것저것 다 갖다가 붙이잖아. 그때 봤던 것 같아. 대백공.”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인데?”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안남시 토지신이야.”
“뭐? 토지신?”
“응 지역 토착신이니깐···지역마다 부르는 게 다 다르거든 안남시는 대백공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어. 쉽게 말하면 신에게 그 지역의 지신의 위치를 받아서 봉해진 명칭이라고 보면 되겠네. 뭐···내 기억이 정확하다면야.”
“토지신이었구나···.”
‘그래서 땅을 샀더니 처음 받았던 술법과 다른 능력이 더 나타난 거야. 추가로 운동신경이 좋아지고 기운이 좋아지는 것.’
그럼 새로운 능력을 얻으려면 땅을 더 사야 한다는 건가? 바로 계약하면 능력이 생기는 건가?
대백공이 토지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새로운 궁금증이 물밀 듯이 생겼지만 어쨌든 자신에게 이로운 효과가 더 커진 이유에 대해서 설명이 가능해지자 한편에서는 안심이 되었다.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한 건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