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화 믿을만한 사람?>
“나는 이번 사고를 막은 게 너라고 생각해.”
“뭐? 아니 난 뉴스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깐. 그 삼촌이란 사람한테 욕도 먹고 그러니깐 한번 이야기 꺼낸 거지.”
내 변명을 차분히 듣고 있던 종혁이는 이내 뜯어낸 스케치북 한 장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얼굴에 표정을 지우고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이 스케치북 알아보겠어?”
“그거야 널린 게 스케치북 아니야?”
“너는 정말 알다가 모르겠다니깐.”
종혁이가 당황한 나를 무시하면서 펼친 스케치북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외제차를 타고 나간 종혁이 부모님을 공격할 것이라는 협박편지였다.
“어제 너 배웅하면서 현관 앞에서 본 거야. 그 편지 보고 아빠한테 바로 전화해서 조심하라고 누가 협박편지 보냈는데 불안하다고 말한 거야. 그냥 평범한 안부 전화로 천천히 오라고 했다면 분명 속도를 내서 달리다가 사고가 커졌을 거야. 그런데 협박편지를 받고 불안해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아빠도 생각을 다르게 한 거고 아니었으면 사고가 크게 나고 어쩌면···다시는 부모님을 못 봤을 수도 있어.”
“내가 협박편지를 쓸 리가 없잖아.”
“아니, 너야. 이 스케치북 내 거야.”
“뭐?”
“이거 내가 주신이 준 거야. 그러니깐 모를 수 없지.”
“···.”
내가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서 있자 종혁이가 협박 메시지가 적힌 스케치북을 내용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찢더니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위로 물을 한잔 부어버리고 나를 바라봤다.
“이제 협박편지는 없어졌어. 그러니깐 사실을 말해줘.”
나는 끝까지 진실을 함구할 생각을 가지고 종혁이의 눈을 피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순간. 나는 저번과 같은 아찔한 사진과 듣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또 받을 수 있었다. 내가 회귀하기 전 40대의 나이 먹은 모습과 종혁이도 나와 같은 나이로 보이는 이미지였다.
대화가 지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어제처럼 당혹감에 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주먹을 꽉 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종혁아 어째서···너하고 난 친구잖아?’
‘정말 주인이 내가 나를 친구로 생각한 건 맞냐?’
‘그게···무슨···.’
‘친구 사이에 비밀이 너무 많으면 믿을 수 없어. 난 너와 진짜 친구가 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데 언제나 넌 나에게 벽을 세웠지.’
난 어리석었다. 회귀 전에도 일과 관련된 사람들과 가벼운 인간관계만 가져본 나는 친구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몰랐다.
‘종혁이를 믿는다.’
내가 비록 진짜 종혁이네 부모님을 해치기 위해서 쓴 협박편지는 아니었지만,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속에서 나는 종혁이 부모님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몸을 사려야 한다는 걸 알려야 했다.
그래서 난 주인이 스케치북 한 장을 급하게 찢어서 급조한 협박문을 종혁이가 선물세트에서 김치찌개에 넣을만한 가공식품을 찾는 중에 문틈에 던져놓았다.
그리고 나갈 때 종혁이가 발견하기 쉽도록 발로 차 현관문 앞으로 밀어놓기까지 했었다. 내가 했다는 증거가 될 편지까지 찢어서 버린 종혁이를 믿지 못하고 넘어간다면 난 영원히 친구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믿지 못하겠지만 처음 너희 삼촌을 본 날.”
“삼촌이라고 말하지 마. 이제는 꼴도 보기 싫어.”
“어···그···외제차 아저씨를 처음 본 날 그 아저씨가 말하는 걸 들었어.”
“뭐?”
“너희 부모님을 외제차에 꼭 태우겠다고 나 같은 놈이 붙어있으면 값어치 떨어지니깐 꺼지라고···.”
‘물론 친구들에게 이해받을 정도로 약간의 각색은 거쳐야겠지만···.’
나는 내가 얻게 된 신비한 힘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종혁이 삼촌을 본 날 욕을 하면서 내뱉은 속마음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랬구나.”
“그날 욕먹고 내가 억하심정에 일방적으로 비난한다고 느낄 수도 있으니깐. 계속 돌려서 말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불안해서 그 아저씨가 말했던 내용을 기억나는 데로 스케치북에 옮겨 적은 거야. 너희 가족을 불안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내가 말하지 않아서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사고를 못 막아서 네가 가족을 잃어버린다면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서···.”
종혁이는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더니 어깨동무를 했다. 나보다 키가 작아서 옆에서 보면 웃음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난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았다.
“고맙다 정말.”
“피장파장이네.”
“뭐?”
“나한테 매번 낯 간지러운 소리 한다고 하더니. 너도 만만치 않아.”
우리는 신나게 웃어버리고는 그 소리에 궁금증이 생긴 건지 내려온 어머니와 종혁이 어머니 등쌀에 배불러서 산책한다는 핑계로 집에서 뛰어서 나왔다.
골목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뛰어가는 우리 앞을 저녁노을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비추듯 붉게 물든 카펫을 깔아주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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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등굣길 학교에 다시 간다는 추억 덕분에 학교 가는 게 그렇게 싫지 않았던 기분도 이제는 아니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내딛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걷던 종혁이 어제 이야기하다 못한 화제를 다시 꺼냈다.
“야, 그런데 너 사람 소개한다며.”
“그런데 너희 아버지도 아는 사람일걸?”
“뭐?”
“우리 아버지 합의금 관련한 일 하는데···도움 주시는 변호사님. 너희 아버지가 소개한 거잖아?”
“그 아저씨? 난 차갑고 좀 냉소적이어서 별로던데···.”
“그런 사람이 일은 깔끔하게 하는 거지. 너희 외제차 타고 다니는 그 사람 봐 완전 사람 좋게 너랑 너희 부모님 앞에서 좋은 말만 하고서는 뒤로는 완전 악의적인 일 벌인 거 아니야. 물론 아직 증거는 없지만.”
“그런가?”
“특히나 돈 문제는 좀 냉소적이고 계산이 빠른 사람이 더 깔끔한 거야.”
“아빠가 다 좋은데 마음이 약해서 말이야.”
“그러니···이번 일은 직접처리 말고 변호사 통해서 하라고 해.”
“···.”
“너도 마음에 걸리니깐 그러는 거 아니야?”
“뭐가 마음에 걸린다는 거야?”
교문 앞에 도착한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대화에 심취해 있던 우리는 안경잡이 경수가 인사를 건네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교실로 급하게 들어갔다.
“수상한데···수상해.”
나는 종혁이 가족의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말하기 껄끄러운 기분에 끝까지 진실을 함구할 생각을 가지고 안경잡이의 눈을 피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순간.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한번 경험했던 경험을 가지고 최대한 많은 내용을 듣기 위해 아찔한 정신을 붙잡았다. 흐릿한 오래된 사진과 멀리서 외치는 듯한 듣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또 받을 수 있었다.
안경을 쓴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와 친구로 보이는 한 명의 남자가 작은 실내 포차에서 조촐한 안주에 맥주를 한 잔씩 하면서 술주정을 하는 모습이었다. 대화가 지나가기 시작한다.
‘저건 경수?’
나는 어제처럼 당혹감에 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주먹을 꽉 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종혁아 너하고 나하고 진짜 친구 맞냐?’
‘무슨 헛소리야? 그럼 모르는 사람하고 술 먹냐?’
‘그럼 술친구인가······.’
‘술 먹고 술주정하는 거냐?’
‘진짜 속마음은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잖아.’
그 뒤로 경수와 종혁이로 예상되는 둘의 대화가 더 이어지지 않고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것처럼 들리더니 정신을 차리고 본 모습은 수업 중 교실이었다.
나는 종혁이가 나에게 보냈던 것처럼 쪽지를 써서 간단히 의견교환을 하고 안경잡이를 불러내 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갑자기 자신이 다가오자 대화를 끝낸 우리의 모습에 서운해하면서 수상하다는 걸 온몸으로 뿜어내는 경수를 점심시간이 되자 납치하듯 인적이 드문 소각장 뒤편으로 납치하듯 끌고 나왔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인식이 늦어져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경수였지만, 나와 종혁이의 표정을 보더니 순순히 따라와 줬다.
나는 소각장 입구 쪽에서 건물을 등지고 인기척이 있는지 살피면서 안쪽에 서로 인상을 쓰고 있는 종혁이와 경수를 바라보았다.
“뭐?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나를 빼놓고 너희끼리만 알고 있었다고?”
“일이 급하게 주말에 일어나서 그런 거지 말하지 않거나 하려고 한 건 아니야.”
“아침에는?”
“뭐 자랑할 일이라고 교문 앞에서 떠들고 있냐? 아무리 그런 거에 신경 안 쓴다고 해도 부모님 사고를 애들이 이러쿵저러쿵 맘대로 떠드는 게 좋을 리가 없잖아.”
“아···그건 생각 못 했어. 미안.”
“아침에는 서로 갑작스러웠으니깐.”
“아···너희 부모님은 많이 다치신 거야?”
“아빠가 왼팔 골절로 입원하긴 했는데 며칠 있으면 통원치료로 퇴원해도 될 거 같데. 엄마는 퇴원해서 집에 있고.”
“그럼 우리 엄마한테 한번 병원 가보라고 할까?”
“응?”
“우리 엄마가 보험 하거든.”
“정말?”
“뭐, 외제차가 의심스럽다며.”
“그렇기는 하지.”
“외제차 정도 되면 현달 보험 아니면 보험 가입이 안 될걸?”
“뭐? 정말?”
“나도 자세한 건 몰라. 그런데 대부분 현달 보험에서 관리한다고 알고 있는데 엄마가 현달 다니니깐. 알아봐 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깐 당사자한테 동의서 받으러 병원에 가야 하는 거지.”
“나도 아빠한테 말해놓을게.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보니깐.”
종혁과 경수의 대화가 거의 끝나간다고 생각되자 나도 한마디 보탰다.
“증거라고 할 게 욕먹으면서 한마디 들은 게 전부여서. 의심만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깐.”
“주인이 너도 대단하다. 어떻게 협박편지까지 쓸 생각을 하냐?”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거든.”
“그래도 잘못되면 협박죄로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협박편지는 내가 버렸어.”
종혁이는 협박편지를 처리하다 쓰레기통에 왜 물을 부었냐고 종혁이 어머니한테 혼나기까지 했다.
“종혁이 부모님이 당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어. 다른 것도 아니고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 생각해도···. 뭐···, 상황이 꼬여서 협박편지 관련해서 입건해도 아직 중학생인데 욕만 좀 먹고 말겠지 싶기도 했고.”
종혁이가 그제야 내가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 건지 경수의 옆구리를 쳤다. 경수도 그제야 생각이 미쳤는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점심시간 끝나간다. 점심은 먹어야지.”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진다 싶을 때···가볍게 점심 먹으러 가자고 재촉하는 경수의 말에 설핏 웃고는 못 당하는 척 교실로 향했다.
수업이 끝나고 하굣길 종혁이가 의아하다는 듯 나를 보며 나에게 말했다.
“집으로 바로 안 가는 거야?”
“오늘부터 주신이 하교는 내가 살피기로 해서.”
“어머니한테 무슨 일 있어?”
“그냥 신경 쓰이신데.”
“뭐가?”
“급여는 똑같이 받는데 자신만 한창 바쁠 때 휴식시간 가지는 게 마음에 걸리나 봐.”
“아니,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아마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 점장 통해서 이야기 한 거겠지. 그렇다고 전부 휴식시간을 주면 일할 사람이 없으니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라면서 너무 인정이 박하네.”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이해가 가는걸? 같은 급여 받는데 누구는 휴식시간이 있고 나는 없다면 억울할 수 있지.”
“야, 넌 뭘 그걸 그렇게 진지하게 받고 그래?”
하굣길 주신의 초등학교로 향하는 방향은 종혁이와 경수의 집 방향과 달랐지만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 발걸음에 나는 웃음이 나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종혁이 집에서 잠든 주신이를 등에 업고 집으로 향하는 길 일을 끝내고 막 들어오신 듯 차가운 어머니 손이 내 손을 꼭 잡더니 나를 향해 웃어주는 모습에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 않구나 하는 믿음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