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화 친구들>
와아아아.
운동장에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였다. 축구공 하나를 두고 우르르 몰려가는 아이들 덕분에 오랜만의 등굣길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되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학교에 다시 간다는 추억과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나와 발맞추어 걷고 있는 종혁이 덕분이었다.
“나 어제 진짜 놀랐잖아. 너랑 나랑 친했냐?”
‘친하다라는 정의가 뭘까?’
“너 우리 부모님 다 알지.”
“어, 알지···.”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언 듯 생각났는지 말을 흐린 종혁이었지만 이내 힘차게 대답했다.
“너도 우리 부모님 다 알잖아. 인사도 했고.”
“그래 그러니깐 친한 거야.”
“뭐?”
“너 안경잡이네 부모님 알아?”
“어?”
안경잡이는 종혁이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안경을 쓴 경수라는 친구였다.
이맘때 아이들이 친하게 지낸다고 해도 부모님이 바쁘게 사시면 친구들은 그 친구의 부모님을 알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모르지?”
“그리고 보니깐 경수는 한 번도 나한테 부모님 이야기한 적 없는 것 같아.”
중학생 아이들이 그렇듯 처음 이야기 시작한 화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는 종혁이에게 내가 다짐하듯 아니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 어머니하고 너희 어머니하고 친하고 서로 부모님도 다 알고 그러면 친한 거야.”
“그···그런가? 그런데 안경잡이 부모님을 왜 모르지? 오늘 가서 물어봐야겠다. 그래도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경수의 부모님은 아버지는 암으로 입원하시고 그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어머니 홀로 키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나도 학창시절에는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동창회를 통해서 그랬었더라고 전해 듣기만 했다.
그런 곤란한 질문을 다른 사람이 아닌 종혁이가 한다면 둘의 관계가 서먹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갑작스럽게 끼어들어서 화제를 바꾸었다.
“여기까지 흙먼지가 풀풀 날린다. 교실까지 빨리 가자.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매점에서 빵 쏘기. 시작!”
“야, 너 비겁하게 거기서.”
운동장을 가로지르면서 달리자 이전 삶에서 현재의 삶으로 달리는 듯한 해방감이 나를 날아오르게 했다. 한마디로 달리기에서 이겼다.
“야, 치사한 자식. 너는 이제 비범한이야.”
“비범한?”
“비겁한 범인이라고!!”
“크크큭”
나는 종혁이와 실없이 웃으며 교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종혁이는 오늘 등교하면서 경수에 대한 이야기가 맘에 걸렸는지 바로 경수에게 다가갔다.
“어이, 샌님. 오늘은 웬일로 주인이랑 들어오냐?”
그런 경수 옆으로 나도 가방을 제자리에 던져놓고 다가갔다.
“오늘부터 1일 하기로 했으니깐.”
“뭐? 뭐야? 너네. 다가오지 마라?”
양팔로 엑스자 표시를 하면서 나와 종혁이 다가오는 걸 거부하는 안경잡이에게 일부러 거친 헤드록을 한 번하고는 내 자리로 돌아가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자리에 앉았다.
‘이런 기분이 얼마 만이던가?’
학창시절 구김살 없이 웃고 떠드는 아이들과 나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덩치와 키 때문에 왕따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하게 따돌림당한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스스로 내가 아이들을 따돌리는 거라는 정신승리로 중학교 학창시절을 전부 날려 보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빛날 수 있던 추억을 내 스스로 먹칠을 한 것 같아서 항상 후회가 되었다.
인문계로 가기로 결정한 것도 어제 분위기에 취해서 결정한 게 아니라 나이가 먹어갈수록 후회가 되었던 선택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
종혁이 뒷자리였기 때문에 안경잡이와 실랑이하던 종혁이 자리로 돌아와 선생님 눈치를 보면서 나에게 쪽지를 보냈다.
‘정말 백신고등학교 갈 거야?’
‘왜? 못갈 것 같아?’
‘못가기는 어차피 뺑뺑인데 너 문명 간다며?’
‘응 안가.’
쉬는 시간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려 나를 본 종혁이 외쳤다.
“와, 답답해서.”
“뭐가?”
“너 실업계로 간다고 그렇게 말하고 다니더니 왜 바뀐 거야?”
“공부 좀 해보려고.”
“네가?”
“내가 왜?”
“수상한데···수상해.”
“뭐가 수상해?”
샌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종혁의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졌다.
“샌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산만해 내가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
맨 뒷자리에서 다리를 쭉 뻗고 수업시간 내내 잠을 자던 재민이 잘 걸렸다는 말투로 종혁이에게 시비를 걸었다.
“오늘 수업이 좀 지루했잖아? 계속 자고 있던데 그것도 책상에 엎드려서.”
나는 재민의 어깨를 잡아 누르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재민은 나를 보면서 인상을 썼지만 내가 잡아 누른 어깨를 빼지는 못했다.
“지루하긴 했지.”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한 재민의 어깨를 놓아주자 이내 나와 종혁을 살짝 보더니 뒷문을 쾅소리가 나도록 열고 밖으로 나갔다.
걱정스럽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종혁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말했다.
“아침에 내기”
“야, 그건 내가 치사하게···.”
종혁은 흥분해서 말을 꺼내다가 내가 한 어깨동무를 보더니 이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어 가자. 쉬는 시간 끝나겠다.”
“안경잡이. 오늘 종혁이가 쏜데 매점 가자.”
“뭐?”
재민이와의 신경전 때문에 긴장으로 묶여있던 분위기가 내가 안경잡이까지 불러서 매점으로 향하자 다시 쉬는 시간 특유의 활기가 풀리는 게 느껴졌다.
매점 앞에서 나와 안경잡이에게 빵을 넘기면서 울상이 된 종혁이가 계산을 하려고 했다.
종혁이가 계산하고 있는 순간. 나는 어제와 같은 아찔한 사진과 듣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또 받을 수 있었다.
내가 회귀하기 전 40대의 나이 먹은 모습과 종혁이도 나와 같은 나이대로 보이는 이미지였다. 대화가 지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어제처럼 당혹감에 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주먹을 꽉 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종혁아 어째서 그런 일을···너하고 난 친구잖아?’
‘정말 주인이 내가 나를 친구로 생각한 건 맞냐?’
‘그게···무슨···.’
‘친하게 지내지도 않다가 내 아버지 도움이 받고 싶어서 친한 척 한 거 모를 줄 알아? 단지 너희 어머니하고 네 어린 동생이 안쓰러워서 나도 모른 척한 것뿐이었어. 그런데 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그 다음날부터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나를 빵셔틀 시키더라? 그런 사이가 언제부터 친구였지?’
난 어리석었다. 회귀 전에도 일과 관련된 사람들과 가벼운 인간관계만 가져본 나는 친구를 가진다는 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변명인 거지. 그저 나한테 편하게만 생각한 거지.’
나는 어제 종혁이와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준 용돈을 꺼내서 매점 아주머니를 불렀다.
“누나, 여기 바나나 우유 3개 주세요.”
“야, 너 빵만 내기잖아. 아줌마 괜찮아요.”
“아줌마라니 이렇게 예쁜데 누나지. 누나, 바나나 우유 3개요. 계산은 전부 이걸로 해주세요.”
“어? 너?”
“엄마가 친구들하고 간식 사 먹으라고 줬는데. 내가 그냥 매점 가자고 하면 어색할까 봐 왜?”
나는 간지러운 말을 하자 온몸이 어색해서 두드러기가 날 것 같았지만 나보다 더 어색한 표정이 된 종혁의 얼굴에 빵하고 웃음이 터졌다. 빵을 들고 매점 아줌마가 준 바나나 우유 3개를 든 내가 매점 간이 식탁에 앉자 경수가 말했다.
“너네···언제부터 친해졌는데? 매점까지 같이 가자고 하고 덕분에 내가 빵하고 우유를 얻어먹냐? 앞으로 더 친해져라. 다음엔 라면도 얻어먹게.”
종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봤냐? 나랑 친해지면 손해가 없다니깐.”
“그래···친하게 지내자 크큭.”
얼빠진 종혁의 표정을 보면서 경수가 더 친한척하며 말했다. 나는 경수의 입담에 답하면서 종혁의 자리를 빼주었다. 졸지에 내 옆에 앉게 된 종혁이 툴툴거렸다.
“아니, 비겁하게 나보다 먼저 달리기 시작하면서 내기한 건데 뭐가 이득이야?”
“내 친구되면 다 이득이라니깐···두고 봐.”
“뭐, 난 구경이나 하고 빵이나 먹을 란다.”
쉬는 시간이 짧게 남았기 때문에 우리는 빵과 우유를 한 번에 먹어치우고 교실로 돌아가야 했다. 종혁이와 경수는 초등학교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었다.
사실 우리 가족이 이사 온 반지하 집이 경수가 살던 곳이었다.
경수네 아버지는 건설 쪽 일을 하셨는데 경기가 잘 풀리면서 가족 전부가 이사를 간 것이다.
그런데 경수네 아버지가 갑자기 암에 걸리면서 형편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경수를 한 번도 편견 없이 친구로 지낸 게 종혁이었다.
종혁이 아버지는 엄하지만 자상했고 자식에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친구를 가려 사귀지 않도록 교육하셨다.
나도 나중에 알았지만, 초등학교 때 경수가 반 지하방에 산다고 친구들 있는대서 놀린 적이 있는데 종혁이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와 경수에게 직접 사과하고 반 친구들에게 간식을 돌린 일은 아직도 전설처럼 전해져오고 있다.
그렇다고 종혁이를 혼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욱 종혁이가 생각이 깊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런 경수와 종혁이가 친하게 지냈고 경수는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어머니와 친구 종혁이의 도움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다.
아쉬운 점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제때 공부를 하지 못해서 너무 늦은 나이에 합격한 게 아쉬웠다. 그런 경수를 옆에서 응원하고 믿어주었던 종혁이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사고를 당하면서 가지고 있던 가족의 재산을 삼촌에게 뺏겨서 자신도 어려운 중에 경수를 도왔다는 게 더 대단했다.
나중에 동창회에서 관포지교상이라는 친구들끼리 만든 작은 상을 받고
뒤풀이 후에 홀로 울고 있던 종혁을 보면 나는 50 평생을 살면서 이런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는지 후회했었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결국 남는 건 오래된 친구라는 생각에 동창회를 열심히 나갔지만
이미 오래전에 친하게 지내던 사이가 아니면 잠깐 추억을 돌이키게 하는 외부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과거에서 돌아온 만큼 이제는 평생 갈 친구들을 만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종혁이 부모님이 당하는 사고를 막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