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화 절벽>
‘내 삶은 잘못되었다.’
처음 사회생활을 위해 발을 내디딜 때 사회생활을 하면서 끝없이 오랜 시간에 걸쳐 생각한 결과였다.
‘사람 좋다.’는 말에 속아
24시간이 부족하다는 듯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내 몸이 부서지는 것처럼 힘들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했다.
하지만 하루를 꼬박 일해도 닿을 수 없는 어떤 기준이 나를 속박하고 쥐어짜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일했던 성과는 나의 직속 상사나 동료에게 거짓 웃음을 지으면서 빼앗기고 사람 좋다는 별칭이 나에게 붙어졌을 뿐이다.
얼마나 허무하고 이해 불가능한 단어인지. 사람이 좋으면 그 성과를 빼앗겨도 된다는 건가?
아니면 나를 지지해줄 혈연, 인맥, 학연 따위가 없으면 그저 인내하고 끝내야 하는 계급의 하나인지 어째서 제대로 분노하고 의사 표시할 수 없는 위치에서 매일같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스스로를 갈아 넣어야 하는지 가슴속에 담아 놓은 분노가 나를 좀먹어도 나는 성실히 일했다.
‘평범 하다.’는 말에 넘어가
알 수 없는 분노가 바닥에서부터 나를 내리눌렀지만 풀 곳이 없었다. 그래도 나 자신을 평범하다는 기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어서 피, 땀, 눈물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다.
내가 배워온 가치는 평범에 있었고 거기서 벗어나면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준이 나를 목 졸라 서서히 숨통이 조여올 것 같은 알 수 없는 공포가 거기에 깔려있었다.
실체도 없는 기준을 실체 없는 공포에 감화되어 특별한 목적이나 의지 없이 스스로 그 굴레 속으로 들어가 열심히 달렸다.
열심히 끝없이 탈출하지 못하고 그저 달렸다.
언젠가는 이런 현실을 극복할 극적인 순간이 올 것을 굳은 믿음을 가슴에 묻고 여행이라는 일탈을 꿈꾸며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니면 어머니에게 사고 났을 때?
어쩌면 내가 태어난 일이 불행의 시작 일인지도 모른다.
후드드!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어머니를 위해서 안남시로 이사를 와 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후드득!
아버지가 이북에 가족을 둔 이산가족이라는 점 때문에 어머니 외가에서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직장도 그만두고 도망치듯 어머니와 지방으로 내려와 가정을 이루었다.
우득!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가 임신하면서 가끔 외가와 연락했고 내가 태어난 후 온 외가 식구들이 올 때마다 내가 울면서 떼를 쓰자 사이가 점점 멀어졌다.
보통 겨우 그런 정도로 가족들 사이가 멀어질까? 라고 궁금 할 수 도 있다.
찰나의 순간.
그 표현이 딱 맞을 거다.
그저 어린아이라도 미운털이 박힌 채 첫인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부조리함.
후드득!
그런 부조리함을 나는 내 동생을 괴롭히는 것으로 풀었다.
나보다 작은 그리고 나를 너무 따랐던 어린 내 동생.
어머니는 사고로 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까지 동생을 잘 부탁한다고 했고 난 그 반발심에 동생을 보육원에 맡기고 도망갔다.
그런 나의 죗값을 받는 것일까?
후드득!
밤늦게까지 야근을 한 탓에 막차가 끊겨 택시를 타려 했고, 그런 나는 음주운전 차량과 사고로 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받을 만한 직장. 꿈꾸던 따뜻한 가정.
이걸 위해 이제까지 달려왔다고 느낀 모든 게 완벽했던 시간.
하지만 순식간에 부서졌다.
운전했던 음주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도주해 음주운전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는 소리를 보험회사 직원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내가 한 잘못은 없다. 사고를 당했고 사고 후유증으로 전과 다른 삶을 강제로 배당 당했다.
중앙분리대를 넘어 덮쳐온 음주 운전자의 잘못이었고, 그 한 사람이 저지른 잘못은 내 인생을 다시 한번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렸다.
처음 든 생각은 이랬다.
‘아, 벌 받는 건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 동생을 잘 보살피라고 한 말을 지키지 않고 동생을 버려서?
어머니 병원비를 학생이 감당하기 어려워서 결국 아버지가 안장되어 있던 선산을 팔아서?
당시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많은 일을 감당해야 했다고 스스로 변명하고는 했지만, 낙인처럼 가슴에 남은 죄인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후드득!
매달린 팔에 힘이 점점 빠진다. 간신히 붙잡은 나뭇가지도 이제 절벽에서 점점 뿌리가 뽑히고 있다.
지금 나는 절벽 뿌리를 내린 나뭇가지를 붙잡고 간신히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머리 위에서는 한때는 사랑했던 아내가 서성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정말 사랑했는데. 그녀가 아이가 있는 미혼모라는 사실조차도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내가 사랑했던 여자는 나를 한치의 미련도 없이 나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밀어냈다.
나를 절벽으로 밀어버리는 공장 사장 뒤로 그녀가 나타나자 내가 사랑했다고 믿었던 모든 것에게 배신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외딴 호숫가에서 나를 차가운 호수 속으로 밀어버리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상황처럼 느껴졌다.
숨을 쉬기 어려운 답답함과 참담함이 나를 절벽으로 밀어버린 그 남자보다 아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미움? 원망? 아니면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
나의 어린 동생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믿고 있던 형제로부터 버림받고 보육원에 버려진 느낌이 이러했다면 나는 죽어서도 지우지 못할 죄를 지었다.
살기 힘들다는 변명과 바쁘다는 미명 속에서 나 자신을 혹사한 이유가 아닐까?
잠깐이라도 숨 쉴 틈이 있으면 과거에 동생의 손을 미련 없이 놓아버렸던 바보 같은 자신의 죄가 떠오를 것이다.
그 선택이 가슴 깊은 곳에서 곪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그렇게 바쁘게 산 것이다. 그런 자신의 죄악감을 곱씹으면서도 나는.
‘이런 순간까지도 살고 싶은 건가?’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미련하다고 말해도 좋았다.
그저 살고 싶다.
사람답게.
사람답게 살고 싶다.
남은 힘을 다해 반동을 줘서 절벽의 다른 나뭇가지를 잡기 위해서 손을 뗀 순간.
힘이 다한 몸뚱이는 나의 의지를 배반하고 점점 추락하기 시작했다.
‘끝인가?’
정신이 흐릿해진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처음 보는 공간에 서 있었다.
상상 속 신선이 노닐 것 같은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그림으로 그린듯한 오두막에 그런 오두막 앞에는 허연 수염을 길게 기른 붉은 피부의 노인이 구부정한 자세로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맑은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의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죽어서 사신이 나를 데리러 온 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뒷걸음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뒷걸음질 친다고 생각만 할 뿐이었다.
이유를 모른 채 나는 손짓하는 노인의 앞으로 강제로 다가갔다.
노인과 나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고 생각했지만 단 세 걸음 만에 나는 노인의 코앞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본 노인은 무척이나 힘겨워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까운 거리였는데도 그가 하는 소리가 귀에 닿지 않았다.
수염에 덮은 입술 모양을 읽기 위해서 눈에 힘을 주었다.
노인이 하는 소리에 집중하자 조금씩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읽혔다.
“대···대···백··공?”
내가 읽어낸 입술 모양이 맞았다는 듯 지쳐 보이지만 웃음기가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알아볼 수 없는 속도로 나의 머리를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매타작하기 시작했다.
지쳐 보이는 표정과 다르게 아주 빠르고 강맹한 위력이었다.
“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머리에 손을 얻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느낌과 동시에 너무 아프면서도 파스를 입으로 씹어먹은 것처럼 싸한 느낌이 전신을 휘돌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정신을 못 차리고 울고 있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보는 내가 안타깝네.”
“그러게 아직 한창인 가장을 이렇게 사고로 보내 게 되다니 큰일이야.”
“그런데 고인이 된 사람이 이북사람이라면서?”
“이북사람이라니 누가 그래 피난민이야.”
“그래도 그게 그거지.”
‘여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장례식이 있었던 장소였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수밖에 없었다.
다들 내가 한차례 크게 울고 지쳐서 멍하니 서 있는 걸로 생각했는지 아이가 듣게 하면 안 좋을 소리를 생각 없이 내뱉고 있었다.
“아직 어린 둘째도 있지 않나?”
“글쎄, 이런 상황인데 여자 혼자 아이 둘을······수도 있지 않나?”
“말이 씨가 된다고 말조심해.”
“뭐···, 없는 말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고인이 된 사람 부인이 그래도 좀 있는 집 아니었어?”
“그러면 장례식장부터···여기는 좀.”
“자네도 소식이 느리네···그건 맞는데 거의 의절 상태라던데?”
“그래서······,”
“그래도 사람들 많이 온 거 보면 다들 바라는 게 있으니깐 온 거 아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단의 무리가 좁은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입구에서 방명록을 적고 있던 어머니 앞으로 다가가 강하게 말했다.
“잠깐, 시간 좀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때 오시면···.”
나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너무나 고운 어머니의 모습에 잠깐 넋을 놨다.
‘어머니?’
어머니라고 생각되자 나는 나도 모르게 어머니한테 달려가 매달리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꿈이라도 좋아. 어머니 죄송해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펑펑 우느라 짓무른 눈가를 시원한 무언가가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이런 나와 어머니의 일련의 행동을 보면서 양복을 입고 서류 가방에서 칼같이 각이 잡힌 서류를 꺼내던 일행은 당황한 듯 한발 물러섰다.
“제가 경향이 없어서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세요.”
“그런···오늘까지는 꼭 합의해 주셔야 합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무작정 합의하자고 하시면···.”
“저희가 사죄의 말씀을 드리면서 일부러 시간 내서···.”
‘이건?’
어릴 때 어머니가 가끔 아쉽다는 듯이 말한 기억이 났다.
장례식장에서 무례하게 합의서부터 들이미는 양복장이들에게 화가 났지만, 어린 나를 상주로 내세우고 장례식을 치르느라 지쳐서 그저 불러주는 데로 서명한 게 후회가 된다고 말했던 상황이었다.
“엄마”
계속 울기만 하다가 입을 때 엄마라는 소리를 듣자 양복 입은 사람들을 상대하던 걸 바로 멈추고 나에게 온 신경을 집중한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졌다.
이렇게 나를 사랑하셨는데.
나는 동생에게 어머니의 애정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동생을 미워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엄마, 저 아저씨들은 누군데 여기에 온 거예요?”
“그게···.”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를 죽이고 법정 책임을 줄이기 위해서 알량한 합의금을 들고 와 이렇게 서명하라고 강권한다는 걸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그저 곤란한 얼굴로 나를 쓸어내렸다.
이럴 때 나는 어린 나이를 이유로 곤란해하는 어머니의 뒤로 숨기만 했었다.
‘이번만큼은···!’
“엄마, 이 사람들 누구예요? 아빠 친구예요? 아저씨들 상갓집에 왔으면 방명록에 적고 조의금부터 내시죠?”
어머니 앞으로 한 발자국 나와 양복 입은 사람들을 향해서 방명록을 적도록 종용했다. 방명록에 기록이 남기는 게 꺼림직한 듯 이내 양복 입은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고 자기네끼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양복 입은 사람들 뒤쪽에서 행여나 눈치만 보고 있던 장례식장 주인을 콕 집어서 이야기했다.
“여기 장례식장 담당하시는 사장님 아니세요? 장례식 조문객도 아닌 이상한 외부인들이 자꾸 입구를 막고 있네요. 경찰에 전화해서 업무방해로 신고 좀 해주시겠어요?”
양복 입은 사람들은 경찰이라는 말에 이내 나를 쏘아보더니 갑작스러운 소란에 몰린 인파를 뚫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내 말에 양복 입은 사람들이 물러나자 횡포 아닌 횡포를 그저 구경만 하던 장례식장 주인으로 보이던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어머니를 따로 불러 이야기하는 걸 봤다.
처음부터 외부인인 걸 알았으면서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움직이는 것에 화가 났지만, 아직 어린아이인 상태에서 화를 낸다면 오히려 어른에게 대든다는 이유로 제대로 항의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나의 화를 풀 듯 장례식 비용으로 미쳐 준비하지 못 했던 음료를 조문객에게 서비스하는 걸 보며 어머니의 슬퍼 보이는 표정에 마음이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