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65)화 (165/167)

165.

드디어 성인식 당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하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나 또한 여노에게 치장을 받느라 바빴다.

“몇 번째 성인식인지…….”

“어머, 아리 님. 두 번째랍니다?”

여노가 실소를 터트리며 내 불만에 답했다. 그녀는 웃으며 정성스레 내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저번 성인식보다…… 아리 님의 표정이 훨씬 밝아졌는걸요.”

“응? 그래?”

“네, 가끔은 사랑에 빠진 소녀 같기도 하고요. 아, 물론 아리 님은 다 컸지만요.”

“응?”

여노의 말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여노는 고개를 저었다.

“별 뜻 아니랍니다. 그저 아리 님이 사랑스럽다는 뜻이에요.”

그, 그런 뜻인 거야?

뭔가 아닌 것 같지만, 여노 본인이 그렇다니 무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저, 됐어요, 아리 님. 아마 지금의 아리 님만큼 아름다운 신수는 없을 거예요.”

여노의 말에 눈을 뜨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여노의 실력은 정말…….”

“전 별로 한 게 없는걸요. 아리 님이 워낙 아름다우셔서.”

여노가 그리 말하며 내게 옷을 입혀주었다.

잔꽃 무늬가 새겨진 아름다운 푸른 저고리와 연한 분홍 치마, 저고리에는 예쁜 금빛 자수가 놓여 있었다.

“이 옷은…….”

“백령 님이 이번에 아리 님께 보내신 선물이랍니다.”

저번에 선물 받은 옷들도 정말 예뻤지만, 이번 옷은 예쁘면서도 기품이 넘쳤다.

“이제 장신구만 정하면…….”

“이걸로 해줘, 여노.”

나는 여노에게 은월에게 선물 받은 장신구를 내밀었다.

“아리 님은 이 장신구를 상당히 좋아하시나 봐요. 저번 성인식에도 이걸 하셨었는데…… 뭐, 어차피 같으니.”

“응?”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노를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오늘은 다른 장신구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 말하며 여노는 내가 내민 장신구를 원래 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 후 여노가 가져온 장신구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연한 보랏빛의 보석이 박힌 고급스러운 장신구들은, 장인이 정성스레 세공한 것이 느껴졌다.

“이것도 백령이 선물한 거야?”

나의 물음에 여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응?”

“여인의 성인식 날, 장신구를 선물한다는 건 ‘당신을 연모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속설이 있지요.”

여노의 대답에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노는 웃으며 나의 귀와 머리에 장신구를 달아줄 뿐이었다.

“이제 정말 모든 준비를 마쳤어요, 아리 님. 이제 나갈 때랍니다. 다들 아리 님을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나는 잠시간 심호흡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가자, 자하와 아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리 님, 가시죠.”

두 신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내 양옆에 섰다. 나는 그 두 신수와 함께 연회장으로 향했다.

성인식으로 인해 궁 안은 물론, 궁 밖 또한 축제 분위기였다.

저번보다 인파가 더 몰린 것 같아…….

내가 주위를 둘러보며 얼떨떨해하자, 아루가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흑기의 배후도 사라졌고, 신국에 평화가 찾아왔으니 더욱 인파가 몰린 것일 겁니다.”

“그렇구나.”

자하가 갑자기 눈을 빛내며 날 바라보았다.

“물론, 아리 님이 불편하시다면 제가 지금 당장 가서 쫓아…….”

“자하, 가만히 있어.”

나의 단호한 당부에 자하의 귀가 반으로 접혔다.

“이제 오는 것이냐.”

연회장에 거의 도착하자, 백령이 내게로 다가왔다.

“잘 어울리는구나.”

“고마워, 백령.”

백령의 칭찬에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자, 백령 또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들어가자, 아리야.”

백령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나의 성인식이 시작되었다. 성인식은 전과 같은 순서대로 진행이 되었다.

같은 행사의 반복이지만, 그 누구도 지루해하지 않았으며 모두가 눈을 빛내며 나의 성인식에 집중했다.

단상 위로 미호를 따라 올라갔다. 그러자, 궁 밖에 있는 백성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시작할까?”

미호의 다정한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호가 백령에게 눈짓을 보내자, 자하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단상 위로 올라왔다.

자하의 손에는 교지처럼 보이는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자하가 두루마리를 미호에게 내밀었다. 두루마리는 미호의 손에 건네지자 푸른 빛을 빛냈다.

이내 미호가 두루마리에 적힌 글자를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동쪽 땅의 작은 주인, 아리. 그대의 성체가 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오늘 성인식을 올리는 그대에게 나의 축복을 전하리라.”

말을 마친 미호가 내게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나는 그녀가 내민 두루마리를 받들고, 미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두루마리를 받아든 나를 보던 미호의 손에 어떤 빛이 일기 시작했다. 미호는 이내 내게 그 빛을 건넸고, 나는 그 빛을 기꺼이 받았다.

신수들의 환호가 더욱 커졌다. 어떤 자는 감격에 차 눈물을 흘렸고, 어떤 자는 누구보다 기쁜 얼굴로 나의 성인식을 지켜보았다.

백령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푸른 빛을 두른 백령이, 내게 그 빛을 전달했다.

이내 그 빛은 하늘 위로 멀리 퍼져나갔고, 동쪽 땅 곳곳에 아름답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동쪽 땅의 작은 주인이신 아리 님! 성인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백성들이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의 성인식은, 그렇게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곧이어 궁의 문이 닫히고, 나의 성인식이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단상에서 내려오자, 궁 안에 축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 보는 신수도, 낯익은 신수도, 다양한 신수들이 내게 축하의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다 좋은데, 힘들어…….

새삼 아무렇지 않게 모든 이들에게 일일이 화답했던 이랑에게 존경심이 일었다.

“피곤하면 들어가도 된다, 아리야. 아무도 네게 뭐라 하지 못해.”

그래, 감히 누가 백령 앞에서 뭐라 할 수 있겠어…….

그런 나의 모습을 본 백령이 날 걱정하며 말했지만, 나는 행사를 끝까지 잘 마치고 싶었다.

“고마워, 백령.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어.”

이것 또한 신국에 남게 된 내가 해야 할 의무일 테니.

그런데…… 은월은 어디 있지?

나는 두리번거리며 은월을 찾아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전혀 달갑지 않은 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리야, 삼촌 왔다.”

그러고 보니…… 나 ‘늑대의 심장’을 활로 쏴서 파괴했었지?

뒤늦게 늑대의 심장에 대해 하원에게 들은 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뭐? 늑대의 심장을 네가 내 권능으로 쐈다고? 하하하. 잘했어, 주인. 그거, 늑대 녀석들한테 엄청 중요한 거거든. 쌤통이다. 역시 내 주인이야.”

그리 말하며 하원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뭐? 그럼 엄청 중요한 거잖아. 이럴 때만 주인이라고 하지 마, 하원!”

이걸로 바랑이 꼬투리 잡으면 어떡하지?

벌써 피로해진 나는 단 하나의 답을 내렸다.

무시하자.

나는 애써 다가오는 바랑을 무시하려 했지만, 그가 나의 손목을 잡았다.

“할 얘기가 있다, 아리야.”

바랑이 날 보며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그에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려 바랑의 황금빛 눈동자를 바라보자, 그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고맙다, 아리야.”

“으, 응?”

“늑대의 심장을 파괴해줘서.”

그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늑대의 심장은…… 중요한 거 아니야?”

“물론, 늑대 가문에 내려오는 보물과도 같은 물건이지. 괜히 ‘심장’이란 말이 붙은 거겠어?”

그런데 왜…….

나는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내 그가 웃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네게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아리야.”

그리 말하며 바랑이 뒤돌아서 떠났다. 내게 손으로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은 채.

오늘 뭔가…… 바랑이 이상해 보이는데.

그는 어딘가 해방된 듯이 후련해 보였다. 마치 자유를 되찾은 바람 같달까.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아리야?”

멍하니 바랑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뒤에서 낯익은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에 들렸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다정한 회색빛 눈동자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이는, 은월이었다.

“……은월.”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전해졌다. 성인식을 할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

“안 온 줄 알았어…….”

나의 읊조림에, 은월이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네 성인식에 참석을 안 할 리 없잖아.”

그가 부드럽게 나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가 만진 뺨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그의 손길이 너무나도 부드러웠기에,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주위에 신수들이 몰려 귀를 울릴 정도로 시끌벅적한지라, 은월이 귓가에 입을 대고 말했다.

“성인식을 축하해, 아리야.”

그의 숨결이 닿은 귓가가 뜨거웠다. 그렇기에 나는 붉어진 얼굴로 은월을 올려다보았다.

“……고마워.”

은월의 시선을 회피하며 낮게 읊조렸다. 그러자 은월은 눈을 휘며 내 귀에 달린 장신구를 만지작거렸다.

“마음에 들어?”

“응?”

“난 마음에 드는데. 잘 어울려.”

은월이 가리킨 건 내 귀에 달린 장신구였다.

설마…… 오늘 장신구를 선물해준 게 은월이었어?

“여인의 성인식 날, 장신구를 선물한다는 건 ‘당신을 연모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속설이 있지요.”

은월은…… 이 속설을 알고 내게 장신구를 선물한 걸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은월의 회색빛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의 예쁘고 고운 눈동자에 나의 모습이 비쳤다.

“어떤 걸 선물했어도, 네겐 잘 어울렸겠지만.”

은월이 곱게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