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55)화 (155/167)

155.

‘일단 그 닭이 말하는 대로 나오기는 했는데…….’

포포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온통 어두컴컴한 이곳은, 생전 처음 보는 곳이었다.

“……여기서 대체 어떻게 찾아가라는 거야!”

포포가 물빛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이내 포포가 고개를 두어 번 흔들더니,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안 돼, 아리랑 닭이 위험해. 얼른 가서 싸부랑 형님을 불러와야 해.”

그리 다짐하며 심호흡을 한 포포는 앞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스스스-

“히익.”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포포는 기겁하며 웅크려 앉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시, 싫어, 오지 마!”

점점 커지는 소리에 포포는 겨우 정신을 붙잡고 안 보이게 숨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어? 너는…….”

포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이, 이 목소린……. 네가 대체 왜 여기 있어?”

포포의 물음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내 그는 포포의 입을 막은 채로 어딘가로 데려갔다.

포포가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그의 힘을 이겨내기에 포포는 너무나도 약했다.

***

캄캄한 방 안으로 들어서자, 스산한 바람이 불더니 촛불에 불이 켜졌다.

어둠에 가려진 사내가 나와 나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배짱 한번 두둑하군. 신력도 거의 바닥난 주제에 날 찾아오다니.”

내 신력을…… 저자는 느낄 수 있는 건가.

그에게서 어두운 기운이 풍겼다. 그 기운은 참을 수 없이 지독했다.

썩은 냄새……. 썩은 기운.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자란 느낌이 들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로 점점 다가왔다. 나는 긴장을 놓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가오자 음침한 기운이 몸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넌……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니구나.”

내가 그를 노려보며 말하자, 그가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죽은 생명도 아니지.”

그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나는 굳은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한가?”

그가 비웃음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곧 있으면 월식이겠군.”

“월식……?”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일 년에 딱 한 번, 신국에 찾아오는 월식.

다른 말로는…… 백호제.

은월은 내게 ‘백호가 울부짖는 날’이라고 말했었지.

“그날, 모든 게 돌아갈 것이다.”

그가 그리 말한 후, 내게 손짓을 하자 검은 파편들이 날 포박하기 시작했다.

“읏.”

“아리야!”

나래가 황급히 내게로 다가왔지만, 이내 나래까지 검은 파편에 포박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너와, 네가 가진 구슬이 필요하지.”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어둠이 흐려졌다. 그의 얼굴을 본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며칠 전 꿈에서 본, 그 검은 머리의 남자야.

날 나락으로 떨어트린, 그 남자.

나는 어째서인지 이 남자를 알고 있다.

“네가…… 모든 걸 망쳤구나.”

그를 노려보며 말하자,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망쳤다니. 네가 망친 거지. 이곳에 다시 나타나서는, 내 일을 이렇게나 번거롭게 만들다니.”

그가 증오가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내 진정한 그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럼에도 난 널 사랑하지. 사랑해서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그런 건 사랑이 아니잖아. 증오라고 하지.

모순적인 그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내 감정이 잘못됐다는 표정이군.”

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내 얼굴을 놓았다. 그가 내 얼굴을 놓자, 검은 파편은 더욱 내 몸을 옥죄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가휘도 분명 이것과 비슷한 공격을 했는데, 둘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지?

이 검은 파편은 대체…….

내가 검은 파편을 유심히 관찰하자, 그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모르나 보군. 시호보다 멍청할 줄이야. 그러니 넌 자격이 없는 거다.”

그가 다시 한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호랑이들이 눈치챈 것 같다, 사현.”

그때,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익숙한 목소리에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랑과 비슷한 회색 머리에 황금빛 눈동자…….

바랑이었다.

“호랑이들이?”

“흑호가 내 궁에 찾아왔더군. 그라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바랑이…… 어째서.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뭔가 달라. 바랑 같지 않아.

내가 알던 바랑이 아니야.

이내 바랑이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짚었다.

“읏.”

“왜 그러지, 바랑?”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요즘 머리가 자꾸 아프군.”

“내가 좀 편하게 해주지.”

사현이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황금빛이 흘러나오는, 신비로운 물건을.

저게 뭐지……?

“그럴 필요 없다. 지금은 괜찮으니.”

“그래? 아무튼, 호랑이들이 눈치챘다면 서둘러야겠군. 어차피 곧 월식이 시작되니.”

“그때까지 내가 이들을 감시하지.”

바랑의 말에 사현은 흡족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럼 난, 마음 편히 준비하지.”

그가 방을 나가기 전, 날 바라보았다.

“의식을 거행할 준비를.”

이내 문이 닫히고, 그가 나갔다. 바랑은 나와 나래를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랑…….”

문득, 이랑이 내게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삼촌은…… 삼촌은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 이용당하고 있다는 건가?

갑자기 바랑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에 나는 잔뜩 움츠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 여우는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갔어. 아마 곧 백령과 은월이 오겠지.”

그가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나는 놀란 토끼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조용해. 지금 나는 사현에게 묶여 있어서 널 도와주지 못해. 아마 너라면, 무엇이 날 묶고 있는지 보았겠지.”

그의 말에 아까 사현이 손에 쥐고 있었던 황금빛 물건이 생각났다.

“설마…….”

“그게 바로 늑대의 심장이야. 그걸로 내 의식을 지배하는 거지.”

바랑은 한동안 눈치를 못 챘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흑기를 돕고 있었다고.

눈치를 챘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이제야 이랑이 내게 말했던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바랑과 사이가 안 좋았던 이유도.

“그건 원래…….”

그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다시 한번 문이 열렸다.

“뭐야, 진짜 여기 있네.”

가휘였다.

가휘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바랑이 천천히 내게서 떨어졌다.

“늦었군, 가휘.”

“아아, 이상한 기운이 있길래. 좀 다녀와 봤지.”

“그랬더니?”

“꽤 큰 수확이 있었지. 들고 와.”

가휘가 하인들에게 명령하자, 하인들이 누군가를 이곳으로 끌고 왔다.

“……하원!”

축 처져서 질질 끌려오는 하원의 모습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하, 이래서 물의 주인은 번거로워.”

“물의 주인을 너무 얕보는군, 가휘.”

바랑이 차가운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가휘가 어깨를 으쓱이며 비웃었다.

나는 그런 가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자 가휘는, 일부러 보란 듯이 날 보며 입을 열었다.

“별것 아니던데.”

하인들은 하원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나는 당장이라도 하원에게 가고 싶었지만, 여전히 검은 파편에 몸이 묶여있었다.

“바랑 님, 가휘 님, 의식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인의 보고에 바랑과 가휘는 나와 나래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제단……?

궁에서 나온 우리 눈앞에 커다란 제단이 있었다. 웅장하고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제단이.

“드디어 모든 걸 되돌릴 날이 왔구나.”

가휘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가 날 바라보았다.

“이날을 위해 난 모든 고통을 감내했어, 시호.”

가휘가 하늘을 보며 읊조렸다. 나는 그 모습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시호가 바라는 일이 아닐 거란 건 확실해.”

그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에 그가 차가운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결국, 모든 걸 되돌린다는 것조차 네 욕심이잖아.”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가휘가 내 목을 조르며 위협했다. 그에 숨이 턱 막힌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발버둥 쳤지만, 포박된 상태에서는 무리였다.

“그만둬. 일을 그르칠 셈이야?”

바랑이 황급히 그를 말렸지만, 가휘는 바랑의 말 따윈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멈추지 않았다.

“시호와 똑 닮은 그 눈, 그 얼굴, 그 목소리로…… 감히 내게!”

가휘는 완전히 이성을 놓은 듯했다. 바랑이 계속해서 그를 뜯어말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물에 손대지 말라 했을 텐데.”

사현의 목소리에 목에 가해졌던 힘이 풀렸다. 가휘는 나를 끌고 가더니 제단에 눕혔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상했다.

어째서 가휘는 이렇게나 맹목적으로 사현을 따르는 거지?

사현도 시호의 죽음에 연루돼있을 텐데……?

대체 무엇 때문에…….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영락없이 제물이 되어 버리고 말 테니까.

어떻게 해서든 이 검은 파편을 끊어내야 하는데…….

검은 파편은 좀처럼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드디어 때가 됐구나.”

“웃기지 마.”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내 주위에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아직도 저항할 힘이 남아 있다니.”

사현이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이내 제단 근처에 있던 촛불이 켜지고, 내 몸에 힘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넌 이제 제물일 뿐이다. 나의 모든 걸 되돌릴 하나뿐인 제물.”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전히 정신을 잃기 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