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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49)화 (149/167)

149.

일순간 연회장이 술렁였다. 나와 이랑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실 확인을 위해 하인에게 다가갔다.

“그게 사실이야?”

나의 물음에 하인은 고개를 숙이며 쩔쩔맸다. 그가 아무런 대답도 못 하는 건, 면목이 없다는 뜻이었다.

“당장 사화를 찾아. 어서!”

미호의 명에 하인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안한 예감이…… 이거였나?

뒤늦게 도착한 백령과 은월이 이쪽으로 왔다. 이미 상황은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청아, 산.”

은월의 부름에 청아와 산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어디론가 향했다.

“말도 안 돼, 내 궁의 경비가 뚫리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첩자가 숨어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아, 미호?”

내가 그녀에게 묻자, 그녀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내 수하들로만 이루어져 있고, 함부로 출입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그녀가 ‘절대 그럴 일 없어.’라며 낮게 읊조렸다.

미호의 말은 일리가 있다. 미호의 궁은, 다른 궁에 비해 하인의 수가 현저히 적으니까.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던 건가…….

근데, 그렇다면 사화가 어떻게 여기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걸까?

어디로 가버린 걸까…….

“아리, 미안하지만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한참 사화의 일에 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천강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천강이 날 찾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일이기에, 나는 수긍하며 천강의 뒤를 따랐다.

“노군이 전해달라더군.”

천강이 내게 서신을 내밀었다.

“노군이?”

나는 곧바로 노군이 전해준 서신을 읽었다.

아리 님, 노군입니다. 미천한 제가 감히 아리 님의 시간을 뺏어 정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나래 님이 아리 님을 뵈러 간 뒤로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나래 님의 행방을 아시지 않을까 싶어 무례를 무릅쓰고 이리 연락드립니다.

나래가…… 사라졌다고? 날 보러 동쪽 궁에 왔다 간 후로?

분명 어제 나래의 서신을 받았었다. 그런데 나래가 사라졌다니, 한순간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럼, 어제 그 서신은 도대체 누가 보낸 거야?

“왜 그러는 건가, 아리.”

천강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이 일을 천강에게 알리지 않았다.

사화가 사라진 이 시점에, 나래가 사라진 게…… 과연 우연의 일치인 걸까?

하지만 둘 사이에 접점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여태까지 란에게 받았던 보고에 따르면, 나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일단은 궁에 돌아가서 자타에게 서신에 관해 물어야겠어.

“천강, 전해줘서 고마워.”

“아리.”

천강이 궁금해하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가차 없이 뒤돌아섰다.

하인들이 궁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사화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잡듯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미호 님.”

마루가 미호에게 보고하며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일단은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군.”

백령의 낮은 목소리가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미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 내 실책이야.”

“네 탓이 아니야, 미호.”

자책하는 그녀를 다독였다. 미호는 복잡한 표정을 하며 날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럼 이만 다들 돌아가 줘. 뒷수습은 나와 마루가 할 테니.”

미호가 힘없이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

나는 궁으로 돌아온 다음 날부터 자타를 찾았지만, 자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는, 청화관으로 향했다.

청화관에 도착하자 예상대로 업무를 보느라 바쁜 은월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최대한 살금살금 걸어서 청화관 안으로 발을 들이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못 알아챘겠지……. 은월의 일을 방해하고 싶진 않으니까, 잠시 숨 돌릴 때 물어봐야겠어.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들어와? 우리가 몰래 만나야 할 사이도 아닌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뒤돌아 있던 은월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그의 예쁜 회색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들어와. 찬 바람 맞지 말고.”

“바, 바쁘잖아, 은월.”

나의 말에 은월이 곱게 눈을 휘며 웃었다.

“네게 쓰는 시간이 내게 제일 중요하단 건, 이미 알고 있지 않아, 아리야?”

그의 부드러운 말에 나는 얼굴을 붉히며 청화관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물어볼 게 있어서.”

“사화?”

“라고도 할 수 있긴 해.”

어쩌면 이 일은 그녀와도 연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자 은월이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은월, 저번에 나래랑 만났을 때…… 무슨 얘기 했어?”

“별 얘기 안 했는데.”

“나래가 혹시…… 사화를 빼돌린 거 아닐까?”

나의 물음에 은월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

“어떻게 확신해?”

“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은월이 턱을 괴며 날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그건…….”

나는 은월에게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은월은 안 그래도 지금 사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텐데, 그에게 짐을 더 실어주기 싫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안 말해줄 거야?”

은월의 다시 한번 눈을 휘며 웃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내게 알려줘, 괜찮으니까. 너와 관련된 일이라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니까.”

심장이 요동쳤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은월을 바라보았다. 그의 회색빛 눈을 바라보자, 그 또한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째서 은월은 항상 쉽게 내 마음을 여는 걸까.

“어제 천강에게 서신을 받았는데, 나래가 사라졌대.”

“나래가?”

이야기를 들은 은월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사화가 사라지고 그런 소식을 들으니,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해서.”

“일리 있는 말이야. 그런데, 넌 나래를 굉장히 과대평가하고 있어.”

“응?”

은월이 팔짱을 끼며 날 바라보았다.

“나래는 그 정도 배짱이 있는 녀석이 아니야. 내 생각에 오히려 지금의 그녀는 반대의 처지일 것 같은데.”

“반대의 처지라니?”

“흑기한테 잡혀갔을지도.”

……뭐?

은월의 말에 놀란 토끼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런데 그런 얘기를 왜 그렇게 여유롭게 말해?

“말하자면 복잡한데…… 나래가 나 찾아왔던 거 기억나?”

“으? 응, 기억나.”

“그때 나래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단 말이지.”

누군가한테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그러고 보면, 나래가 내게 온 날.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게다가 급하게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었어.

“한참을 내게 말하기를 망설였지. 네 말대로 나래가 사라졌다는 게 흑기와 관련이 있으면, 흑기와 관련된 무언가를 봤다거나, 혹은 흑기가 접근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결국, 그녀는 내게 말하기를 포기했어.”

“왜? 쫓기는 신세였다면…….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게 정상이잖아. ……아.”

나는 그제야 나래의 심리를 이해했다.

‘남쪽 땅의 신수들은 날 싫어해. 그런 내가 무슨 염치로 천강의 즉위식을 봐…….’

나래는, 은월에게 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은월도 자신을 싫어할 거라 여겼을 테니까.

“나래는…… 그 일이 있고 은월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기가…….”

“아니야, 아리야.”

은월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단호한 부정에 고개를 기울이고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나래를 과대평가해. 그녀는 그냥 이 일에 끼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응?”

“내게 말해서 굳이 이 일에 끼어들어서 보복을 당하기도, 그렇다고 흑기와 또 손잡아서 사형당하고 싶진 않았던 거지.”

“……응?”

“그러니까, 흑기한테 잘 설명해서 비밀로 한다거나, 거절하면 될 거로 생각한 걸 거야.”

나는 눈을 깜빡이며 은월의 말을 가까스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어리석은 거지.”

그래, 그런 거구나.

발설의 여지가 있는 나래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는데.

“일을 그르치지만 않았어도.”

“일이라면…… 사화의 사형을 말하는 거야?”

그에 은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신수와 흑기 중, 누가 유리한 것 같아?”

은월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은월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네 성인식 날, 흑기는 네가 아닌 미호를 공격했어. 그건 네 성인식을 미루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도 있지.”

“다른 의미?”

“그래, 그때 미호는 하원의 물의 권능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어. 이 일이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흑기가…… 신국을 지배할 수도 있다.

“그런데 흑기의 눈 밖에 나고 싶겠어?”

“하지만 신수들은 흑기를 벌레로 취급하잖아.”

“그거야 좀 높은 신수들이나 그렇지. 백성들은 그런 거에 관심 없어. ‘통치자’가 누구냐 보다는 통치자에 의해 ‘변할 삶’이 중요한 거지.”

그래서 본보기로 사화를 사형에 처하려고 한 거였구나. 미호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미호의 궁에서 빠져나간 건지는…….”

“안 그래도 그 부분은 나도 의문이야. 사화는 재판을 받기 전부터 여유로웠어. 마치 남 일 보듯이 재판을 받았으니까.”

나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은월이 빠르게 나를 바라보았다.

왜,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은월을 바라보자, 그가 눈을 휘며 웃었다.

“이제 알겠네.”

“뭐를?”

“글쎄…….”

나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딴청을 피웠다.

“은월!”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보자, 그가 실소를 터트렸다.

“농담이야. 네가 내게 모든 걸 말해줬듯, 나도 네게 모든 걸 말할 거야, 숨김없이.”

“정말? 알려줄 거야?”

“응.”

그가 다시 한번 눈을 휘며 미소지었다. 내 눈에 담긴 그 미소는 너무나도 예뻤다.

“화를 내는 모습도 예쁘지만, 그래도 네 미소가 훨씬 예쁘니까.”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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