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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48)화 (148/167)

148.

오늘은 사화의 재판 당일이었다. 예정대로 우리는 미호의 궁 연회장으로 모였고, 궁 안은 참석자들과 하인들의 소리로 떠들썩했다.

“정말 사화 님이 흑기와……? 에이, 설마.”

“이렇게 재판까지 열린 이상, 사실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하지만 아직 재판이니까……. 기다려보는 게…….”

“아니, 신국에서 재판이 정녕 무슨 뜻이 모르는 것인가, 자네? 여태껏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신수는 없었다고. 그 ‘사현’ 님도 유죄였으니 말이네.”

사현……. 사화의 아버지.

이내 다른 참석자들 또한 여러 의견이 분분하여 떠들어대기 바빴다. 대부분은 사화와 사현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백령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런데, 사현 님은…… 어휴. 백령 님이 나서서 처리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아, 그 소문 나도 들어봤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소문이지 않은가.”

하인들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말했지만, 연회장 안에 있는 신수중 못 들을 이는 없었다.

“오늘이 어떤 자리인지 모르는 신수가 많은 것 같은데…….”

“그러게. 말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해. 오늘 생을 끝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그런 그들을 만류한 건, 다름 아닌 청아와 산이었다. 청아와 산의 대화에 하인들은 헛기침하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확실히, 나래 때보다 규모가 더 커.

단순히 중앙 회의 정도로 생각하고 왔지만, 실상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나래의 죄를 묻는 회의에서는 네 땅의 주인들과 미호만이 참석했지만, 지금은 다른 신수들도 있으니까.

산과 청아, 그리고 영아와 오랜만에 보는 수하, 그리고 하원까지.

그 외에도 적은 숫자지만 모르는 얼굴이 몇 있었다.

미호가 연회장에 들어서자 수군거리던 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순간에 정숙해졌다.

“다들 제시간에 도착했네.”

그리 말하는 미호의 말에 위엄이 묻어나왔다. 그녀가 단상에 올라, 자신의 자리 앞에 서서 모두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지켜보는 모두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재판은 참 오랜만이지.”

미호가 온화한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이내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굳은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죄인을 데려와라.”

미호의 말에, 누군가가 연회장 안으로 우아하게 걸어 들어왔다.

또각또각.

당당히 고개를 들고 들어오는 자는, 죄인의 신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의 사화였다.

그녀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 모습에 연회장은 다시 한번 떠들썩해졌다.

“사화.”

미호 또한 그런 그녀의 태도에 당황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사화를 데리고 온 하인이 황급히 미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미호 님. 사화 님이 자신의 발로 갈 테니 손끝 하나 대지 말라 하셔서…….”

하인의 보고에 미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사화를 응시했다.

“사화, 네가 지금 죄인의 신분이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냐.”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았으니, 전 아직 죄인의 신분이 아닙니다. 미호 님. 제 잘잘못을 가리고자 여는 것이, 재판이 아닌가요?”

분개한 미호에도 사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아한 투로 대답했다.

사화가 뭔가…… 변했어.

전의 그녀는, 미호의 눈 밖에 날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빌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미호의 화를 돋웠다.

어떻게 저리 당당할 수가 있는 거지?

“재판을 시작하지.”

그리 말하며 미호가 자리에 앉았다. 이내 재판이 시작되고, 사화가 흑기와 내통했다는 증거들이 속속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사화는 동요는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치 남의 일을 구경하듯이.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아주 잠시 그녀를 동정했을지 모를 미호가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화를, 오늘 저녁 사형에 처하겠다.”

사형 선고가 떨어졌음에도 사화는 조금도 놀라지도, 떨지도, 동요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사화의 모습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사화를 다시 별채에 가두어라. 그리고 백령, 은월. 둘은 나와 함께 가지.”

미호의 명에 하인들은 사화를 붙들었고, 사화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여우가 귀찮게 부르는군.”

백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날 바라보았다.

“괜찮아. 다녀와, 백령.”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은월과 백령이 미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뒤로, 사화가 하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연회장을 나섰다.

연회장을 완전히 나서기 직전, 사화는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잠시간 날 바라보던 사화는, 이내 연회장을 나갔다.

웃었어……?

감이 좋지 않아…….

나는 재판이 끝나고 혼잡한 틈을 타, 사화의 뒤를 쫓았다.

사화를 끌고 간 하인들은 별채에 던져놓다시피 그녀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 아리야……. 여긴 왜 온 거야?”

얌전히 따라오던 포포가 내 치맛자락을 당기며 물었다.

“뭔가 수상해. 느낌이 좋지 않아.”

“뭐가 수상해. 어차피 사형이라잖아, 사형. 죽으면 그만 아니야?”

“포포!”

포포, 너 언제 그런 말을 입에 담게 된 거야!

당장 포포에게 무어라 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참기로 했다.

“그러다 저 뱀 신수가 해코지하면 어떡해. 돌아가자, 응? 연회장엔 맛있는 것도 잔뜩 있었단 말이야.”

본심은 따로 있구나,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포포를 내려다보았다.

“먼저 가도 돼.”

“안돼! 내가 어떻게 먼저 가. 안 그래도 어제 싸부랑 약…….”

“응? 약?”

“크흠. 아니야. 그것보다 얼른 돌아가자. 형님이 알면 큰일이야.”

포포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결국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연회장에 돌아가자 한껏 열띤 토론을 하는 신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랑과 자하.

“이야, 미호가 이렇게 단호하게 사형이라는 말을 내뱉을 줄이야. 꼭 예전의 늙은 여우를 보는 것 같았다니까.”

“그런 말은 입에 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바랑 님.”

자하가 바랑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젓자, 바랑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뭘 그래. 여기 있는 신수중에서 가장 기쁘면서. 드디어 원수를 갚은 것 아니냐?”

“사형을 당하는 것과 제 원수를 갚은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만, 바랑 님. 그보다 그 얘긴 언급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만.”

원수라고?

정말로 사화와 자하 사이에 원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인가?

그래서 자하가 그렇게까지 사화를……….

“여기에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아, 아리는 모르겠구나. 그런데 아리 지금은 안 보이…… 어?”

바랑이 그리 말하며 연회장을 둘러보다 막 돌아온 나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습니다, 앞으론 조심해주시지요. 전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자하의 낮은 목소리는 상당히 낯설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자하의 모습에 나는 냉큼 그의 손목을 잡았다.

“자하. 나 못 들었어, 정말, 아무것도!”

“감사한 말씀이지만, 역시 바람 좀 쐬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자하가 내 손에서 자신의 손목을 빼냈다. 그의 손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자하가 연회장을 나가고, 나는 원인을 제공한 자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왜, 왜 날 그렇게 봐, 아리야.”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똥개.”

바랑을 쏘아보자, 그가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나한테 그러지 마, 대부분의 신수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너도 알 권리는 있잖아?”

“자하가 내 호위라고 해서,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까지 알 권리는 없어.”

단호한 나의 대답에 바랑이 난감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그래, 다음에 정식으로 사과할게. 그러니까 이만 나 좀 용서해주면 안 되냐?”

나는 그런 바랑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고, 바랑 또한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아리야.”

그때,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건 다름 아닌 이랑이었다.

“용서할 필요 없어. 삼촌이 잘못한 거니까.”

이랑이 나의 앞에 서서 바랑을 바라보았다. 그에 바랑이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우리 조카.”

그의 인사에 이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그는 연회장 밖으로 나와서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정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랑은 바랑이 내게 다가오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

분명 저번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으니까.

이랑이 내게 모든 걸 말해주겠다고 약조했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엔…….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랑, 이제 말해주면 안 돼?”

이랑은 내 물음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에게 질문했다.

“……대체 바랑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랑?”

“…….”

“이랑!”

나의 외침에 이랑이 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가 슬픈 눈으로 날 돌아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그의 눈빛에 잠시 망설였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나와 관련된 일인 거잖아.”

“아리야.”

“그러니까 날 데리고 나온 거 아니야?”

나의 물음에 이랑은 정곡을 찔린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좋아, 다 말해줄게. 모든 걸.”

이랑이 한참을 망설이다 내뱉은 말이었다. 이 말을 하기까지 무거운 결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난 잘 알고 있었다.

“사실은…….”

그렇게 이랑이 운을 뗄 때, 미호의 궁 하인이 급하게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사, 사화 님이, 사화 님이 사라졌습니다!”

하인의 외침에 모든 이가 하던 일을 멈추고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나와 이랑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라?”

때마침 등장한 미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하인을 바라보았다.

“미, 미호 님!”

“사화가…… 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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