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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46)화 (146/167)

146.

“우음…….”

오랜만에 달콤한 꿈을 꾸며 푹 잔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이는 풍경은, 익숙한 천장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나, 어제 청화관에 갔었는데……. 어째서 내 방에 있는 거지?

분명 탁자에 엎어져 있다가…… 잠들었는데.

“아리 님, 깨어나셨군요.”

여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나는, 하품하며 여노에게 치장을 받았다.

뭐지, 어제 일은 꿈이었던 건가?

“여노, 있잖아. 나 어젯밤에 계속 잤어?”

“네?”

“어디 안 가고?”

여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 가득 담긴 연둣빛 눈동자로 날 응시했다.

“네, 그럼요. 게다가 어제 폭우가 내렸는데, 아리 님이 어딜 가셨겠어요. 아리 님은 푹 주무셨답니다.”

뭐지, 진짜 꿈인가……? 꿈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생생한데.

꿈이라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노가 치장을 마친 후 방에서 나갔다. 나는 한숨 돌리며 어제 일에 관해 차근차근 되짚어 보았다.

분명 청화관에 갔었던 것 같은데…….

“하암.”

“깜짝이야.”

그때, 방구석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자던 포포가 하품을 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네가 왜 여기 있어?

“포포?”

이내 포포가 위로 한번 튀어 오르더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으응, 아리야.”

포포가 하품을 하곤 눈을 비볐다.

그 모습이 가히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나는 포포의 말랑말랑한 볼을 늘여 뜰이며 쏘아보았다.

“네 방 가서 자.”

자꾸 은근슬쩍 내 방에 침입하지 말라고, 이 요망한 여우 녀석아!

“그치마안…… 아리 너 때문에 중간에 깨서 피곤하단 말이야아.”

포포가 볼멘소리를 하며 침대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불 속에 몸을 묻었다.

“나 때문에 깼다고? 왜?”

“그야, 싸부가 널 데리고 와서 깼었지.”

싸부라면…… 은월?

은월이 날 여기로 데려왔단 말이야?

그럼 어제 나는 정말로…… 탁자에서 잠들어 버렸었던 거라고?

그런데 탁자에서 잠들었던 것치고는 목이 뻐근하거나 아픈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잠들자마자 바로 날 데려다준 건가…….

“포포, 헛것 본 거 아니지? 은월이 언제쯤 날 데리고 왔는데?”

“몰라아……. 비가 좀 그치고 나서인 것 같은데. 자세한 건 기억 안 나. 새벽이었단 말이야.”

빨리 기억해내 봐!

잠 오는데 내가 자꾸 말을 시키니, 포포의 심기가 불편한 듯 꼬리가 바짝 섰다.

“그러고 보니 가기 전에 싸부가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몰라, 기억 안 나.”

이, 이 기억력 안 좋은 여우 같으니라고.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걸 보게 된 거야?”

“그야, 내가 너 오기 전부터 네 방에서 자고 있었으니까.”

잠이 쏟아지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말하는 포포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몽유병도 아니고, 왜 남의 방에 멋대로 들어와서 자냔 말이야, 이 요망한 여우야!

“포포, 자꾸 남의 방에 들어와서 자면 나쁜 여우야.”

그에 포포의 귀가 팔랑였다.

“아리, 너야말로 나빠. 나 몰래 혼자 싸부 만나러 가고…… 실망이야.”

잠이나 깨고 말해, 이 작은 여우 녀석.

뒤척이며 ‘실망이야.’를 내뱉는 포포를 보며 혀를 찼다.

어떻게 잠버릇마저 저리 요망할 수가 있지, 쯧쯧.

포포를 잠시 자도록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억수같이 쏟아지던 폭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했다. 화창한 날씨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비 갠 하늘도 나쁘지 않았다.

새삼 궁의 풍경을 보며 기지개를 켜고 있을 때, 자하가 이쪽으로 황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아리 님, 아리 님!”

“으, 응?”

설마, 자하가 날 데려다주던 은월을 목격했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자하에게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벌써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만은 절대 싫어.

“엄청난 소식이에요!”

눈을 빛내며 달려오면서 소리를 지르는 자하의 모습으로 최악의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자하가 나의 앞에 당도하자 숨을 헐떡이며 흐르는 땀을 닦았다. 한동안 자하는 숨을 고르며 입을 열지 않았고, 나는 그에 답답함이 느껴졌다.

“왜 그래, 자하? 대체 무슨 일이길래…….”

“대박 사건이에요, 대박 사건!”

그러니까 그 대박 사건이 뭐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자하가 한 번 더 숨을 고르더니,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채로 입을 열었다.

“사화 님이 권능을 박탈당한 것에 그치지 않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대요.”

“뭐?”

예상치 못한 소식에 나의 여우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자하를 바라보자, 자하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홍화관은 현재 무너져 내려 사용할 수 없으니, 미호 님 궁의 지하로 이송되었을 거예요.”

사화가…… 감옥에 있다고?

사화가 감옥에 있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보았다. 우아하고 화려한 그녀와 감옥은 퍽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내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자하가 그에 따른 대답을 들려주었다.

“말만 감옥이지, 아직‘은’ 북쪽 땅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냥 별채에 갇혀 있는 정도일 거예요.”

자하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잠시만, 그렇다면…….

“북쪽 땅은 난리가 났겠네.”

“그럼요. 북쪽 땅뿐만 아니라 네 땅 모두 발칵 뒤집혔죠. 은월 님도 참…… 결단이 빠르시다니까요. 그걸 통과시킨 미호 님도 대단하시지만.”

청화관에 갔을 때, 탁자 위에 널브러져 있던 두루마리가 떠올랐다.

그때 은월은 늦은 밤까지도 일을 했었지…….

그래서 은월이 요즘 그리 바빴던 거였어. 사화를 구속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테니까.

설마, 비천과 만났던 이유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곧 재판도 열릴 거예요.”

“재판?”

“네, 사화 님의 처분을 정하는 재판이요. 보통 신수였다면 사법관에서 알아서 처리했겠지만, 사화 님은 북쪽 땅의 주인이시니까요.”

“중앙 회의라고도 할 수 있겠네.”

“네, 아마 모든 땅의 주인과 은월 님, 그리고 하원 님도 모일 거예요.”

자하의 말을 듣고 떠오른 이가 있었다.

바로 나래.

나래의 재판 때도 모두가 모였었지. 당시 하원은 없었지만.

“저번 나래 때처럼?”

“요즘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현재로선 그것보다 더 클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확한 건 백령 님께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확한 건 백령에게라…….

나는 곧바로 백령의 집무실로 향했다. 백령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자타가 눈에 들어왔다.

두 신수는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날 돌아보았다. 이후 자타가 내게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아리 님.”

“자타, 안녕.”

짧은 인사를 마친 자타는 다시 백령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만 나가보아도 좋다, 자타.”

백령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백령의 집무실을 나갔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아리야.”

그가 곧바로 책상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자타가 있던 때와는 반대로 백령의 분위기가 사뭇 부드러웠다.

“사화가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러자, 백령이 책상에 놓인 서찰 하나를 손에 들고 내게 보여주었다.

“그래, 맞다. 일주일 후 재판이 열릴 거라는 서찰이 방금 도착했지.”

아, 그래서 자타가 집무실에…….

백령이 인상을 쓰며 손에 들고 있던 서찰을 책상에 도로 내려놓았다.

“예상 못 한 것은 아니지만, 이리 빨라질 줄은 몰랐군. 그의 결단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백령이 말하는 ‘그’가 은월을 지칭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사화가 권능을 박탈당한 것만으로도 북쪽 땅은 큰 충격에 빠졌을 텐데, 그 와중에 감옥까지 들어갔다는 건…….

현재 북쪽 땅은 혼란,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은월이 그걸 생각 못 했을 리가 없는데.

“어째서 은월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바로 앞을 보는 것보단, 멀리 보는 것이 중요한 게 그의 직책이니.”

백령이 손으로 입을 가린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그가 푸른 눈으로 날 응시했다.

“바로 앞이 무서워 아무런 결단도 내리지 못하면, 상대에게 휩쓸리기 마련이지.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니.”

그리 말하는 백령의 푸른 눈에는, 잠시간 미묘한 감정이 비쳤다.

“아리야.”

백령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의 진중한 목소리에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잠은 잘 잤느냐.”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백령이 묻는 것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으, 응……. 잘 잤어.”

“다행이군.”

백령이 옅은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미소에 나는 한동안 넋 놓고 그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백령과 나눈 대화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그의 집무실에서 나와, 평소에 자주 가던 정자로 향했다.

그렇다면, 당분간 은월은 바쁘겠구나.

은월이 바빠질 것이란 사실에 섭섭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어제 일을 떠올린 나는, 은월을 피해 다니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휴, 그래도 다행이야.”

“뭐가 다행인데?”

그때, 지금 들려선 안 될 낯익은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에 들렸다.

땅을 보며 걷던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내 몸은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은……월.”

은월이 정자에 앉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리야?”

은월이 눈을 휘며 웃었다. 그의 예쁜 회색빛 눈동자에 오롯이 내 모습이 담겼다.

분명 바빠야 할 네가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틀림없다. 하늘은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순 없어.

나는 속으로 애꿎은 하늘을 탓하며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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