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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39)화 (139/167)

139.

비천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홍화관이 무너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내, 홍화관이!”

그가 무너지는 자재들 속으로 뛰어들려 하자, 청아와 산이 황급히 비천을 붙잡았다.

“비천 님,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제발 고정하세요, 비천 님.”

청아와 산의 만류에도 비천은 포기하지 않고 무너지는 홍화관을 보며 발버둥 쳤다.

“그냥 저대로 홍화관에 파묻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은월이 그리 말하며 청아와 산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천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비천을 끌려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홍화관을 향해 울부짖었다.

“내 이 벌레 새끼들을 기필코 용서치 않을 것이야!”

비천이 저렇게나 흥분하는 모습은 처음보는 것이었다.

그가 일단 흑기들을 싫어하는 게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리야, 저 뱀 이상해.”

“쉿, 뽀뽀, 지금은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자기 집이 무너지는데, 세상에 어느 신수가 제정신이겠니.

“우리도 나가자. 나 이제 내려줘도 돼, 은월.”

나의 말에도 은월은 나를 안은 채로 홍화관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빠져나오자, 홍화관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상황이 진정되자 은월이 날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나는 은월의 품에서 빠져나와 비천을 바라보았다.

비천은 마치 넋이 나가버린 표정으로 완전히 무너져내린 홍화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령과 은월, 그리고 포포를 제외한 모두가 비천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그러던 중, 은월이 능청스럽게 비천의 근처로 가더니,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분간은 바랑의 궁에서 지내는 게 어때?”

은월의 말에 비천이 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죽일 겁니다, 벌레들.”

그, 그걸 왜 은월을 보면서 말해, 비천.

은월은 그런 비천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더니,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백령, 은월. 앞으로 벌레에 관한 그 어떤 내용이든 상관없으니 내게도 전달해 주시지요.”

비천이 이를 갈며 백령과 은월을 향해 말했다. 백령과 은월이 시큰둥하게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그들은 비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우리는 동쪽 땅으로 돌아갔다. 동쪽 땅에 도착하자, 떠들썩하던 하인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왜 저러지?

“아리 님! 어디 계세요, 흑흑.”

우리가 온 걸 눈치 못 챈 자하만이 흐느끼며 내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맞다. 나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나왔었지.

“짜, 자하.”

그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부르자, 그가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이제 아리 님의 환청까지 들리는군요. 아리 님, 도대체 어디 계신…….”

“자하, 흑기가 도망쳤으니 아루에게 가서 알려라.”

자하의 모습을 지켜보던 백령이 그의 말을 끊고 자하에게 명하자, 그제야 자하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와 백령, 그리고 은월과 이랑을 번갈아 보던 자하는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숙였다.

“네, 네! 백령 님.”

자하가 백령의 명을 받고 곧장 궁을 나섰다. 내게 무언의 눈빛을 보냈지만, 나로서는 저게 도대체 어떤 의미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백령이 집무실로 향했다. 그에 이랑이 내 소매를 붙잡았다.

“같이 가자…….”

이랑이 간절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어차피 나 또한 백령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으니, 이랑과 함께 백령의 뒤를 따랐다.

이랑은 백령의 집무실에 당도할 때까지 죄지은 것처럼 잔뜩 긴장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백령의 집무실에 도착하고, 우리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백령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백령, ……나 할 얘기가 있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 아리야.”

백령의 다정한 눈길에 용기를 얻은 나는 빠르게 다음 말을 꺼냈다.

“그 흑기에 관한 거야, 백령.”

백령의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백령이 나와 눈을 마주한 채로 입을 열었다.

“이랑.”

“으, 응?”

“나가라.”

백령이 이랑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명하자,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직감한 이랑이 곧바로 자리를 비켰다.

“네가 흑기를 만나기 위해 지하 감옥에 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거기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이냐.”

백령의 푸른 눈에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겉으로 티는 안내지만 혹여나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노심초사했을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천천히 지하 감옥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백령에게 알렸다. 그러자, 백령이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겼다.

“그 흑기가…… 가휘였다는 것인가?”

“분명히 그가 그렇게 말했어.”

나의 대답에 백령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 일은 아무에게도 알려져선 안 된다, 아리야.”

“왜? 미호에게 알려야 하지 않아?”

나의 물음에 백령이 고개를 저었다.

“때가 되면, 내가 말할 터이니.”

그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일어나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조심스레 다음 말을 내뱉었다.

“……그는 내가 필요하다고 했어. 모든 걸 돌리기 위해.”

그러자, 백령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헛소리하는군. 지나간 것은 아무것도 돌릴 수 없거늘.”

“백령……?”

백령이 고개를 돌려 다시 날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널 지킬 것이다, 아리야.”

그리 말하는 백령은, 어딘가 슬프고 씁쓸해 보였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떠오른 달이 그를 아름답게 비추었다.

***

“어째서……. 어째서 그러시는 겁니까?”

어느 한 남자가 날 보며 소리쳤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는 이곳에 남고 싶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니까. 거기가 아니야.”

“저만이 당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전……!”

그가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이내 그가 내게 애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쳐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게 거부당한 그는 곧바로 강하게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로 날 끌고 가려 했다.

“전 당신을 지킬 겁니다, 아리 님. 이것만이 당신을 지키는 길입니다.”

날 끌고 가는 그의 얼굴이 이내 선명해졌다. 그는 분명 인간세계로 돌아간 이연이었다.

***

“헉.”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잠에서 깨어났다. 나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나는 황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곳은 평소의 내 방이었다.

“꿈……?”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선명했다. 이연의 목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이연이 날 끌고 가려던 게, 너무 충격적이었던 걸까?

그래서 꿈으로 나타난 걸까?

머리가 복잡해진 나는 왜인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때, 날 끌고 가던 이연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그때 그 표정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리야, 무슨 일 있어?”

그때, 내 방으로 급히 들어온 포포가 여우로 변해 내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그런 포포의 머리를 매만지며 안정을 되찾았다.

“아니야. 기분 탓인가 봐.”

“응? 뭐가?”

포포의 물음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포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복슬복슬한 꼬리를 보자 푸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포포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는 대충 단장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은월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 나타났다.

“깜짝이야. 은월, 여기서 뭐…….”

“그냥. 네게 물어볼 게 있어서.”

은월이 눈을 휘며 웃었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가 예쁘게 반짝거렸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예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어둡고 칙칙한, 얼음처럼 차가운 동굴. 가휘는 흑기 무리들을 이끌며 그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동굴 안 깊숙한 곳, 목적지에 도착한 가휘는 곧바로 무릎을 꿇으며 납작 엎드렸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호랑이 두 마리가 방해하는 바람에.”

“죄송할 것 없다. 그 호랑이 두 마리가 함께 움직일 줄 누가 알았겠느냐.”

어둠에 가려진 가휘의 주인이 그에게 자비롭게 말했다, 이내 가휘가 그에게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그런데, 흑기의 주인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다.

“그런데, 네가 아직도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더군.”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주인의 말에 크게 당황한 가휘는 황급히 그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은월이라는 신수만 없었더라면 지금쯤 아리를 주인님 앞에 데려왔을 겁니다…….”

가휘의 말에 주인은 자신이 끼고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작게 읊조렸다.

“은월이라……. 그 꼬맹이가 그리 컸단 말인가. 궁금해지는군.”

가휘의 주인이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아리보다 은월을 죽이는 게 먼저이지 않겠습니까, 주인님.”

가휘가 조심스레 흑기의 주인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가 가휘를 향해 무언가를 내던졌다. 그것은 이내 바닥에 꽂혔다.

가휘의 바로 앞에 꽂힌 것은, 단도였다.

“왜, 이번엔 네 증오가 은월에게로 향하느냐?”

주인의 말에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휘는 이번에도 훼방을 놓은 은월이 증오스러웠다.

“명심해라. 어차피 시호의 구슬 중 하나는 우리 손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니, 아리만 데려오면 그 은월이란 신수를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니.”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가휘가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그에 가휘의 주인은 만족스럽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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