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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35)화 (135/167)

135.

“넌 뭐냐?”

하원이 눈살을 찌푸리고 돌연변이 흑기를 바라보았다.

“이름 묻는 거야? 내 이름은 가…….”

“벌레 이름 같은 거엔 관심 없는데.”

하원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인상을 썼다.

“아무리 그래도 말을 끊는 건 예의가 아니지. 물의 주인, 하원.”

그가 입술을 비틀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내 말을 끊은 걸 후회할 거야.”

“곧 죽을 놈의 경고 따윈, 필요 없어.”

하원의 말을 끝으로, 둘은 능력을 쓰며 싸우기 시작했다. 돌연변이 흑기는 여유롭게 하원의 공격을 피했고, 그에 하원은 크게 당황한 것 같았다.

흑기 또한 하원에게 검은 파편을 날렸다. 하원은 가뿐히 검은 파편들을 피했다.

둘은 그렇게 서로 공격을 주고받다가 전면전으로 돌입했다. 전면전으로 돌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싸움은 결판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원과 막상막하라니…….

하원은 상급 신수중에도 강한 축에 끼는 인물이었다. 그런 하원과 비등하게 싸우는 돌연변이 흑기의 모습에 나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 수달이 온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네 녀석 때문에 자꾸 지체되잖아!”

돌연변이 흑기가 구시렁거리며 하원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흑기의 공격은 사방으로 퍼졌고, 나와 이연이 있는 곳에 검은 파편이 날아왔다. 그에 하원이 재빠르게 물의 장벽을 만들어 우리를 보호했다.

돌연변이 흑기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넌 참 복도 많아. 매번 널 지키기 위해 안달인 놈들이 있으니까.”

흑기가 고개를 저으며 비웃듯 말했다. 이내 그의 시선이 하원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그에 불안함을 느낀 나는 곧바로 하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눈 팔린 수달은 내 상대가 안 된단 말이지.”

하원의 뒤로, 검은 파편들이 날아왔다.

“하원, 피해!”

뒤늦게 뒤를 돌아본 하원은, 급히 몸을 피했지만 검은 파편이 이미 하원의 몸에 붙은 후였다.

“젠장.”

하원이 기력을 잃고 쓰러졌다. 검은 파편이 하원의 신력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파편이 하원의 신력을 다 빨아들이게 둘 순 없어……!

“하원!”

나는 곧장 하원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돌연변이 흑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 갈려고?”

흑기의 눈치를 보다 내게 안겨 있는 포포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포포, 잘 들어. 내가 시선을 끌 테니까, 하원한테 가서 그의 몸에 붙어 있는 검은 파편을 떼어내.”

“아리야, 하지만…….”

“난 괜찮아, 뽀뽀. 지금은 너만이 하원을 구할 수 있어. 내 말뜻, 알겠지?”

다독이듯 포포에게 속삭이자, 포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불안에 떨었지만 이내 확신에 찬 내 표정을 본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원하는 게 뭐야?”

흑기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흑기가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나? 난 원하는 게 없어. 그저 인간과 당신을 데려오라는 주인님의 명을 따를 뿐이지.”

인간과…… 나?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인간은 신국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 돌려보내게 해줘.”

그러자 그가 실소를 터트리며 내 말을 비웃었다.

“그건 네가 정할 게 아니라서 말이야.”

그가 이연을 바라보자, 이때다 싶어 포포가 내 품에서 벗어나 하원에게로 달려갔다.

다행히 흑기는 포포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여전히 이연에게 시선을 두고 있을 뿐.

“주인님의 지고하신 뜻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아니겠어?”

“내 주인은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

“어쨌든, 너랑 저 인간을 어서 데려가야겠네. 방해꾼이 나타나기 전에.”

그가 점점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서 천천히 물러섰다.

“걱정하지 마, 안 아프게 해줄게.”

“오지 마!”

나의 외침에 동쪽 땅의 수호석에서 푸른 빛이 일렁였다. 그 빛을 본 흑기는 살짝 주춤하며 뒤로 물러나더니 소매에서 수상해 보이는 작은 병을 꺼냈다.

그가 병뚜껑을 열어 안에 든 액체를 자신의 몸에 뿌렸다.

“네가 동쪽 땅의 수호석을 하사받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 내가 같은 수법에 또 당할 줄 알았어?”

그가 아무것도 안 남은 병을 나무로 던졌다. 병이 깨지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자, 이제 나와 함께 주인님께 갈 시간이야, 아리야.”

“내가 순순히 갈 거 같아?”

곧바로 전투태세로 돌변했다. 그러자 그가 재밌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았는데.”

그가 뛰어올라 바로 내 앞으로 당도했다. 잔뜩 긴장한 내 몸 주위로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그가 나를 향해 검은 파편을 날렸다. 나는 파편을 피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리 님!”

나와 흑기가 대적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자하가 이쪽으로 오려고 했지만, 흑기들에게 가로막혀버렸다.

“그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날 못 이길 텐데.”

그가 계속해서 검은 파편을 날렸다. 이번에는 피함과 동시에 구슬의 힘으로 그에게 푸른 불꽃을 날렸다.

불꽃이 퍼지고, 그가 당황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통한 건가?

가만히 번지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던 때, 불꽃 속에서 흑기가 튀어나와 나의 목을 잡았다.

숨, 숨이!

“아리 님!”

이연이 날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인간인 그는 섣불리 흑기에게 다가올 수 없었다.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노력했지만, 그의 강한 악력으로 인해 맘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그러게, 그냥 고분고분하게 가면 얼마나 좋아. 아직 성인식도 못 치른 신력으로 어떻게 날 잡겠어?”

“그 손 떼라.”

그때,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린, 백령……?

백령이 어떻게 여길…….

설마 날 마중 안 나온 이유가…… 이렇게 따라오려고?

그는 날 마중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빨리 일을 끝내고 날 따라온 것 같았다.

백령이 검을 빼 들고, 나와 흑기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천천히 걸어오는 중에도 그에게서 중압감이 풍겼다.

“이런. 백령이라니.”

백령의 칼이 곧바로 흑기의 목으로 향했다. 흑기는 어쩔 수 없이 내 목을 놓고 칼을 피해 물러났다.

푸른 기운을 풍기는 백령이 내 앞에 섰다.

“호랑이가 온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네놈들은 명을 재촉하는구나. 어리석은 것들.”

“글쎄, 정말 어리석은 건 누구일까, 백령?”

흑기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지만, 전과는 달리 여유가 없었다. 백령의 등장에 그가 크게 당황한 것 같았다.

“이건 반칙이지.”

그리 말한 흑기가 백령을 향해 검은 파편을 날렸다. 백령은 손쉽게 그의 파편들을 막아냈다..

“그러면 이쪽은 어떨까?”

흑기가 검은 파편을 이연 쪽으로 던졌다. 나는 어떻게 피할 수 있어도, 인간인 이연은 아니었다.

백령이 곧바로 이연 쪽으로 가는 파편들을 검으로 잘랐다.

이렇게 싸우면 백령에게 너무 불리해.

이연을…… 인간세계로 돌려보내야 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이연의 손을 잡고 커다란 나무로 무작정 달렸다.

“아, 아리 님?”

이연이 당황하며 날 불렀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어서 이연을 인간세계로 돌려보내야만 한다.

커다란 나무 앞에 당도한 나는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바로 나무에 손을 짚었다.

그러자, 나무에서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곧이어 느껴졌다. 인간세계로 가는 문이 열렸다는 것이.

나무를 짚은 손이 나무 안으로 통과하는 걸 확인한 나는, 이연을 돌아보았다.

“이연, 이제 인간세계로 돌아가.”

이연은 선뜻 나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내 마음만 급해졌다.

“어서!”

이연이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리 님, 같이 가요. 이곳은 너무 위험해요. 아까 저 흑기가 하는 얘기 못 들었어요? 아리 님을 데려가겠다고 하잖아요.”

그가 간절한 눈빛으로 내게 애원했다. 그의 선한 눈에 절박함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를 따라 인간세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야.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그의 손을 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나는 인간세계로 갈 수 없어.”

“아리 님…….”

그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어딜 가려고!”

시간이 없었다. 돌연변이 흑기가 점점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백령이 막고 있지만, 검은 파편을 던지는 걸 일일이 받아내다 보면 그도 지칠 것이다.

“어서 가, 이……연?”

이연이 나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전, 아리 님을 지킬 거예요.”

그가 날 끌어당기더니, 인간세계와 연결된 나무 안으로 천천히 발을 들였다.

이대로 가다간 인간세계로 넘어가고 말아!

“이연, 난 안 갈 거라니까!”

“아리 님, 여기 남으면 안 된다고요!”

그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나의 몸이 점점 나무 안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애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연, 제발 날 놔 줘! 이연!”

몇 번이고 그에게 소리쳤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철저히 무시했다.

안 돼! 제발 누가 좀…….

“아리야!”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내 반대편 손목을 잡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과 손길. 그는…….

“……은월.”

그의 회색빛 눈동자를 보자,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은월이 내 손목을 잡은 이연의 손을 강제로 떨어트렸다. 그러자, 이연이 은월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은월, 당신이……!”

이미 나무 안에 들어가 버린 이연은, 그대로 인간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날 향해 무어라 소리치려 했지만, 이미 인간세계로 건너간 뒤였다.

“이연, 잘 가.”

그에게 짧은 작별 인사를 한 후, 신국과 인간세계를 연결한 문을 닫았다.

신국과 인간세계를 연결한 문이 닫히자, 은월이 나를 품에 안았다.

“늦어서 미안해.”

그의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에 닿자, 긴장했던 몸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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