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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32)화 (132/167)

132.

“아리 님, 어서요!”

정말 자하가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정자에서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는 내게 자하가 수줍게 시간을 내달라 했다. 그렇게 자하를 따라간 나는, 별관에 나열된 오색 빛의 음식들을 보며 입이 벌어졌다.

“제가 직접 만들었다고요!”

자하가 자랑스레 눈을 반짝였다.

어쩐지, 음식도 자하를 닮아 요란하게도 생겼다.

나는 자하가 들고 온 음식들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리 니임! 아- 하시라니까요!”

자하가 내게 준비한 음식을 먹여주려 숟가락을 들었다. 나는 이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내가 어린애야? 왜 어릴 때도 안 하던 짓을 지금 하는 거야? 자하.”

“헉, 예전에 못 했으니 지금이라도 잔뜩 해드릴게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잖…….”

자하가 음식을 푼 숟가락을 내 입안에 집어넣었다. 곧이어 입안에 들어온 음식의 맛이 느껴졌다.

엥? 이게 왜 맛있지?

놀랍게도 자하가 만든 요란해 보이는 음식들은 여노가 만든 음식보다 맛있었다.

“자하, 여기다가 뭐 탔어?”

“뭘 타다뇨! 제가 손수 만든 음식인걸요!”

내 반응에 자하의 콧대가 높아졌다. 자하와 나의 대화에 포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 경악했다.

“저 고양이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고? 믿을 수 없어…….”

“너도 먹어보던가.”

“저, 저리 가!”

포포의 의심 가득한 말에 자하가 입안에 강제로 음식을 쑤셔 넣었다.

발악하던 포포는 결국 입안으로 들어온 음식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어……? 진짜 맛있잖아?”

놀란듯한 포포의 붉은 눈동자가 커졌다. 자하에게서 벗어난 포포는, 내 앞에 자리 잡고 자하가 가져온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다니…… 여기 뭐 탄 거 아니야?”

“야, 야! 넌 먹지 마, 아리 님 거야!”

둘이 유치하게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나는 입가를 닦은 뒤, 포포의 꼬리를 잡은 자하를 불렀다.

“그래서, 자하.”

나의 목소리에 꼬리를 잡고 흔드는 자하도, 꼬리를 잡혀 공중에 뜬 채로 음식을 먹고 있는 포포도, 그대로 멈춘 채 나를 바라보았다.

“뭘 원하길래, 아침부터 이런 진수성찬을 대접하는 거야?”

자하의 수줍은 행동과 표정을 보아하니 무언가를 부탁하려 하는 듯했다. 그렇기에, 눈앞의 음식을 먹는 것보다 그것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했다.

“그, 그게…….”

나의 물음에 당황한 자하가 포포의 꼬리를 놓쳤다. 안전하게 착지한 포포는 편하게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뭔데 저렇게 뜸을 들여……?

“아리 님, 있잖아요…….”

“빨리 말해, 자하.”

자하가 눈을 한번 질끔, 감았다가 뜨더니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호위요, 호위…….”

“호위?”

호위라면……. 설마 이연을 인간세계로 돌려보내러 갈 때를 말하는 건가?

“그게 왜?”

“저, 아리 님 호위로 따라가고 싶어요!”

“뭐?”

자하는 당연히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

자하에게 그건 당연한 것 아니냐며 물으려던 찰나, 스치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잠깐만, 이거 자하 두고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가?

하늘 아래 두 번 이런 기회를 내려줄 리 없다.

“아리 님………?”

“자하, 호위는 미호가 정하는 거라서…….”

나의 대답을 들은 자하의 귀가 축, 처졌다. 나는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도 자하랑 가고 싶지만…… 내가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호위로 데려갈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서.”

“그, 그런 건가요?”

그럼, 그렇고말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리 님은 저랑 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는 거군요.”

그래, 바로 그거야.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하든 자하는 저리 해석했을 테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럼 선택권이 있다면 아리 님은 저를 데리고 가시겠죠?”

“당연하지, 내 호위는 자하인걸?”

나의 말에 깊은 감동을 한 자하가 훌쩍이며 눈을 반짝였다. 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자하를 토닥였다.

후, 이 정도면 자하한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떼어냈다.

설마 미호가 나한테 선택권을 주겠어? 정예 호위를 꾸린댔는데, 미호가 전적으로 알아서 하겠지?

***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설마가 신수 잡는다는 것을.

“뭐라고, 미호?”

손에 쥔 찻잔이 떨렸다. 미호의 말에 나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한테 호위 선택권을 주겠다는 거야? 왜?

“아, 물론 나머지 인원은 내가 알아서 배치할 거야. 그런데, 내 하인인 신수들로만 채우면 가는 길이 적적할까 봐.”

아니, 그럴 리가. 난 평탄하게 가고 싶어, 적적한 거 환영이라고!

미호에게 반박하려던 찰나, 무언의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눈을 돌리니, 문틈에 보이는 짙은 황색 눈동자가 보였다.

저건 분명히…… 자하의 눈동자일 것이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나는 하늘을 원망하며 하는 수 없이 떨리는 눈동자로 미호를 바라보았다.

“자하……. 자하를 데려갈래…….”

미호, 빨리 안된다고 해줘. 다른 신수를 추천해줘.

애석하게도 미호는 나의 속마음을 알 리 없었고, 오히려 청천벽력같은 말을 내뱉었다.

“자하? 하긴, 아리 네 원래 호위가 자하였지? 안 그래도 자하를 추천할까 했는데, 다행이다.”

그녀의 말에 무심한 하늘이 무너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자하를 떼어놓을 절호의 기회는, 이렇게 날아가는구나.

“아, 아리야? 왜 그렇게 울상이야?”

울고 싶으니까.

애써 고개를 저으며 괜찮은 척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차피 자하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견디자, 아리야.

그제야 미호가 안심하며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럼, 자하를 데려가는 거로 하고……. 백령, 너는 바빠서 같이 못 가지?”

미호의 질문에 백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미호를 노려보았다.

“……미안, 내가 쓰러져 있던 탓에 밀린 일이 동쪽 땅으로 갈 줄은 몰랐어.”

……어쩐지, 미호가 왔는데도 백령은 책상에서 꼼짝 않고 일만 하고 있다 했더니.

“나도 일이 밀려서 못 갈 텐데……. 아무리 정예 호위를 꾸렸어도, 왠지 모르게 불안하단 말이야.”

“하원이 간다더군.”

백령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미호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원이?”

그녀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답을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제 하원의 반응을 보면…… 따라올 것 같긴 하니까.

“그렇구나……. 어쩌면 하원은, 아리를 주인으로 생각할 수도…….”

“아니야.”

나는 미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부정했다. 그에 미호를 향해 무언가 말하려던 백령이 입을 다물고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리야.”

미호의 예쁜 자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의 단호한 대답에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미호를 보고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도로 삼켰다. 대신 다른 말을 내뱉었다.

“하원은, 그냥 내 부탁을 들어주는 거야.”

“부탁?”

“난 하원의 주인이 아니니까. 하원의 주인이 될 수도 없고.”

하원의 주인은 시호다. 그건 틀림없는 진실이고, 앞으로도 변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시호를 닮았다고, 시호의 환생일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미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구나. 알겠어, 아리야. 아무튼, 하원에게 고마운 일이네. 하원과 함께라면 걱정할 일도 없으니까.”

날 바라보는 그녀의 자색 눈동자가 너무나도 구슬프게 느껴졌지만, 나는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미호는, 여전히 내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했다.

***

가슴이 답답했다. 무언가 꽉 막혀버린 것처럼. 그래서 나는 서고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정자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다.

청아한 바람에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미호의 그런 표정을 보는 건 언제나 슬픈 일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상처를 준 걸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해야 옳은 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그게 정말 최선이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여기 있었느냐.”

그때, 낮은 백령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귓가에 내려앉았다.

백령이 정자에 앉은 내게 다가와, 옆에 앉았다. 청아한 바람에 그의 아름다운 은발이 흩날렸다.

“백령, 바쁘지 않아?”

“네가 그런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갔는데, 어찌 일이 눈에 들어오겠느냐.”

백령의 말에 집무실을 나올 때의 내 표정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았다.

……나, 울상으로 나온 건가?

그때 울상을 지었던 것을 후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보러 와 준 백령이 고마웠다.

“무엇 때문에 그리 마음이 복잡한 것이냐, 아리야.”

백령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걱정 어린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백령은 그런 나를 보곤,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다.

“백령, 고마워.”

갑작스러운 나의 감사 인사에 백령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다 고마워.”

환히 웃으며 백령의 물음에 대답하자, 그가 작은 실소를 터트렸다.

“모든 걸 체념한 순간에도 너는 나를 웃게 하는구나, 아리야.”

백령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잠시간 나를 바라보다 걸치고 있던 도포를 벗어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바람이 차구나.”

그가 걸쳐준 도포를 손에 꼭 쥐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령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요즘 백령의 미소가 잦네.

그런 그의 미소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백령이 정자를 떠났다. 아까보다 훨씬 좋아진 기분으로 백령이 떠난 자리를 보다, 그만 방으로 돌아가고자 몸을 일으켰다.

그가 걸쳐준 도포를 그대로 걸친 채로, 정자를 나섰다. 차가운 바람에 나의 머리칼과 함께 도포가 흩날렸다.

그가 걸쳐준 도포는, 너무나도 따뜻했다.

백령을 만난 다음 날, 뭔가를 잊은 듯한 느낌에 잠깐 서고에 들렸다.

“아리야, 여긴 또 왜 온 거야?”

포포가 킁킁거리며 인상을 쓰더니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포포는 책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찾아볼 게 있어서.”

“뭘 찾아보는데?”

나는 전에 열었던 상자를 다시 열었다.

전에 여기에 가휘의 일기가 있었지.

먼지를 털어보니 일기 뒤쪽에 무언의 종이가 붙어있는 걸 발견했다.

당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지금 보니 이건, 일기의 찢긴 부분이었다.

모양대로 종이를 맞춰보았다.

그가 날 찾아왔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두 귀를 의심했다. 이런 그녀를 두고 인간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니?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 그가 찾아왔다니? 그가 대체 누구지?

그가 누군지에 대해선 적혀 있진 않았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가휘를 찾아온 신수가 굉장히 수상하다는 것.

왜인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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