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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30)화 (130/167)

130.

수많은 고민 끝에,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인간을 먼저 돌려보내기로.

그렇게 결정하게 된 데는, 하원의 공이 가장 컸다.

“뭐? 야,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당장 인간부터 내보내야지.”

그렇게 하원은 그 후로 나만 보면 인간부터 내보내라며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그래, 저 정도 정성을 쏟는데, 내보내야지…….

자타를 불러 미호에게 보낼 서한을 건네주었다. 물론, 포포의 발 도장도 잊지 않은 채.

“자타, 잘 부탁해.”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리 님.”

자타가 짧은 인사와 함께 물러났다.

그럼 이 일은 이제 결정했으니…….

문제는 내가 구슬의 힘을 다룰 수 있냐인데.

솔직히 자신 있는 편은 아니었다. 구슬의 힘을 쓴 건 오로지 성인식 때뿐이었고, 그 외에는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인간세계와 신국의 사이를 연결하는 게 가능할까?

미호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했지만,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흐음…….”

“뭘 그렇게 고민해, 아리야?”

포포가 과자를 먹으며 크고 붉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과자부스러기가 묻어 있었다.

손수건으로 그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그러자 그가 부르르, 하며 머리를 털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누님이 크게 신경 쓰지 말랬잖아.”

“그건 그렇지만…….”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잖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리 님, 손님이 오셨어요.”

응? 나한테 손님이 왔다고?

누구……?

나를 찾아오는 손님은 굉장히 드물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열었다.

의외의 인물이 내 방문 앞에 서 있었다.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카락, 밝은 황금빛 눈동자, 그리고 오색빛깔의 날개까지.

나는 헛것을 봤나 싶어서 다시 문을 닫았다.

“야, 왜 닫아!”

저 앙칼진 목소리는 나래가 맞았다. 목소리를 확인한 나는, 다시 문을 열었다.

“네가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있으면 안 되냐?”

“당연히 안되지. 그걸 말이라고…….”

나래는 외출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천강의 취임식 같은 경우는 예외겠지만.

그녀가 귀찮다는 듯이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당당하게 내밀었다.

“자.”

이건…….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나래와 그녀가 내민 종이 쪼가리를 번갈아 보았다.

이거 뭐 어쩌라고……?

“이게 뭔데?”

“외출증! 보면 몰라?”

“너 그런 거도 써?”

“…….”

나의 질문에 그녀는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쭈뼛쭈뼛 종이 쪼가리를 그대로 소매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것보다 날 찾아온 이유가 뭔데?”

“누가 널 찾아와! 은월 만나러 온 거야!”

은월……?

네가 은월을 대체 왜?

절로 내 미간이 좁혀졌다. 안 그래도 탐탁지 않던 그녀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청화관에 있겠지, 은월은.”

나의 대답에 나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어 앙칼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몰라서 물어? 난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

“나보고 불러와 달라?”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그에 나래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난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싫어.”

“뭐?”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녀는 크게 당황한 것 같았다.

“명령조로 말하지 마, 난 은월한테 전해줄 의향 없어. 정 급하면 네가 알아서 잘 들어가 보던가.”

차가운 어조로 뱉어낸 나의 말에, 나래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안 돼, 나 꼭 은월 만나야 해.”

“뭐?”

그녀가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좀처럼 그녀에게 느껴본 적 없던 기운이 느껴졌다.

“나, 꼭 은월을 만나야 해, 아리야.”

나래에게서 여태 보지 못했던 절실함이 보였다. 나래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를, 끝까지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땐, 부탁하는 거야, 나래야.”

나의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부탁할게, 아리야.”

어쩔 수 없이 나는 청화관으로 향했다. 청화관에 들어서자, 일하고 있는 은월을 볼 수 있었다.

잠시간 그가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쌓인 두루마리 양이 어마어마하네.

“은월.”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곧장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신비로운 회색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났다.

“무슨 일이야?”

“나래가 만나고 싶대. 할 얘기가 있나 봐.”

“나래가?”

은월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다. 그는 곧장 하던 일을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있어?”

“……내 방에.”

“별채로 오라고 전해줘.”

“별채?”

나래를 왜 별채에서 만나?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으며 떨쳐버렸다. 나래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나는 곧장 돌아가 나래에게 전해줬고, 그녀는 기뻐하며 곧장 별채로 향했다.

“별채? 싸부 지금 별채에 있어? 그럼 나도 갈…….”

나래를 따라 별채로 향하려는 포포의 꼬리를 잡았다. 포포는 허공에 발을 내디뎠다.

“왜!”

“어딜 가. 가지 마.”

나는 겨우 포포를 만류하고 그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밖이 조금 어수선했다.

“여어, 아리야.”

……똥개?

바랑이 태평하게 인사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가 다가올수록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느라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하인들이 시끄러웠던 원인이 똥개였군.

“은월 못 봤냐?”

오늘따라 왜 다들 은월을 찾는 거지? 무슨 날인가?

우선 눈치 없는 여우가 뭐라 하기/도/ 전에 입을 틀어막았다.

조금 이상했다. 나래가 아까 은월을 찾을 때의 느낌도 그렇고, 은월이 갑자기 나래를 별채로 부른 것도 그렇고.

일단 똥개한테 말해서 좋은 건 없겠지. 귀찮아지기만 하고.

“청화관에 있겠지. 아니면 외출했다던가.”

“그러냐?”

바랑이 실실 웃으면서 되물었다.

“똥개는 여기 어쩐 일이야? 요즘 통 안 오더니.”

“나야 이랑 만나러 왔지.”

바랑이 기지개를 켜며 하품했다. 그는 상당히 피곤하고 지친 것 같았다.

“요즘 일을 해서 그런가, 온몸이 쑤시네.”

“다행이야, 똥개.”

“아니, 아리야. 나 아프다니까?”

바랑이 앓는 소리를 내며 꾀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와 재미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이랑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아리랑, 삼촌? 아니, 삼촌이 왜 여기 있어?”

“왜 나보다 아리를 먼저 부르는 거냐, 이랑아.”

바랑이 섭섭하다는 투로 그에게 나무랐다. 하지만 이랑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삼촌이 왜 여기 있어?”

“너 보러 왔지, 인마.”

“날?”

이랑이 눈살을 찌푸리며 바랑을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에 바랑이 삐질삐질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왜 삼촌을 그런 눈으로 보냐, 너?”

“아리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마, 삼촌.”

“이게, 삼촌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냐?”

바랑이 이랑과 투덕거리다가, 갑자기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짙어졌다.

“맞다, 아리 너, 인간 먼저 보내기로 했다며?”

“벌써 그게 퍼졌어?”

“미호가 오늘 공표했지. 자타야 워낙 빠른 소식통이니까.”

미호가 벌써……. 자타가 정말 빠르긴 하구나.

“그런데, 인간 쪽에서 바로 가는 걸 원치 않는다던데.”

“응?”

이연이 바로 가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고?

바랑이 곧이어 설명을 덧붙였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달라고 했대. 사화랑 그새 정이라도 들었나 보더라고. 아, 내가 말하는 건 그런 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알지?”

잘 알고 있다. 사화 같은 신수가 인간 남자를 좋아할 리도 만무하고.

애초에 사화가 백령을 좋아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니까.

그런데 사화와 이연이, 그 정도 관계처럼 보였었나? 정이 들어 시간을 달라할 만큼?

둘이 어딜 가나 함께이긴 했지만……. 조금 느낌이 달랐는데.

“뭐, 결정은 미호가 하는 거니까. 어련히 알아서들 하겠지.”

그런데 그가 갑자기 나를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근데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작은 몸이 이렇게 빨리 성장한 거지?”

……빠르게 성장한 거로 따지면 나보단 이랑이 더 신기할 텐데.

왜 자꾸 날 보는 거야, 똥개!

똥개의 시선을 막아선 건 작은 똥개, 이랑이었다. 이랑이 나의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바랑을 꾸짖었다.

“삼촌, 자꾸 아리 보지 마, 닳아.”

“네 거냐?”

“응.”

두 똥개의 대화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두 똥개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왜 날 두고 둘이서 난리야?

“둘 다 보지 마. 기분 나빠. 그리고 난, 이랑 거 아니야!”

나의 반응에 이랑이 헤헤, 하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에 내 속은 타들어 갔다.

그때, 은월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래는 이미 떠난 것 같았다.

“은월, 오랜만이네.”

“오랜만인데도 반갑지 않은 건, 아마 네가 유일하지 싶은데.”

은월이 눈을 휘며 바랑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그에도 바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자, 저번에 네가 부탁했던 거.”

“생각보다 빨리 구했네.”

두루마리……. 저건, 어떤 두루마리인 거지?

바랑이 건넨 두루마리는, 온통 흑색으로 뒤덮여 있는 두루마리였다. 그런데, 저 모양은 북쪽 땅의 것인데.

어째서 바랑이 은월에게 저걸 주는 거지?

“나름대로 쓸모가 있구나, 바랑.”

“나야 뭐 항상 그렇지.”

은월의 악담을 칭찬으로 받는 바랑이 신기했다. 옛날 같았으면 미치고 펄쩍 뛰었을 것 같은데.

확실히 바랑이 조금 변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변한 거지?

은월이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 크게 걱정이 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바랑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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