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드디어 길고 길었던 신국의 가장 큰 축제, 신국제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번 신국제는 미호의 부상으로 조금 간소하게 치러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수는 이번 신국제에 만족했고, 나 또한 그랬다.
“이제 정말 끝나가네요. 뭔가 아쉽기도 하고요.”
자하의 표정엔 아쉬움이 녹아 있었다.
“다사다난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끝나가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러게.”
여노의 말대로 신국제는 무사히 막바지에 이르렀고, 곧 있으면 끝날 것이다.
무탈하게 신국제를 보낼 있어 다행이었다. 혹시 몰라 각 땅에서는 흑기에 대비하고 있었으니.
“이제 곧 아리 님의 성인식도 다시 일정을 잡아야겠네요.”
“아…….”
다시 성인식을 치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져 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거 말인데…… 그냥 미호의 축복만 받고 끝내면 안 될까?”
“예에에에?”
나의 물음에 여노와 자하가 동시에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한 번뿐인 성인식이에요, 아리 님!”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요!”
내 성인식인데 왜 너희들이 더 난리야?
내가 여전히 자하와 여노를 이해하지 못하자, 그들은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리 님, 생일은 올해가 지나면 내년이 있지만, 성인식은 성인이 지나면 돌아오지 않아요!”
“옳소, 옳소!”
그렇게 나는 귀에 딱지 앉도록 둘의 설득을 듣다 못 해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그래, 뭘 해도 저걸 온종일 듣고 있는 것보단 낫겠지…….
그렇게 무사히 신국제가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사화가 방문하기 전까진.
“안녕하십니까, 백령 님, 아리 님.”
백령은 사화의 방문에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사화 혼자서만 방문해도 쫓겨날 판국에, 그녀는 옆에 인간인 이연을 낀 채로 백령의 궁을 방문했다.
“사화.”
백령이 잔뜩 화려하게 꾸민 사화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우아한 자태로 백령의 앞으로 다가왔다,
“신국제에는, 모든 땅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죠, 백령 님. 안 그런가요?”
사화가 우아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 어쩔 수 없이 사화와 이연을 궁 안으로 들였다.
“모처럼 신국제이니, 인간에게 다른 땅들도 소개해 줄까 해서 들린 것이니, 그리 노려보진 말아요, 백령 님.”
사화가 아양 섞인 목소리로 백령에게 말했지만, 백령이 그런 사화의 아양에 넘어갈 리 만무했다.
“악의를 가지고 방문한 게 아니랍니다, 정말로요.”
사화는 항변하기 바빴고, 이연은 백령의 궁이 신기하다는 듯 둘러보기 바빴다.
“아리 님, 제게 궁 소개를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가 날 보며 물었다. 그에 포포가 짧은 다리로 내게 달려왔다.
나의 어깨로 올라온 포포가, 나의 귓가에 귓속말을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리야, 저 인간, 왠지 느낌이 안 좋아.”
“왜?”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포포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아무런 물증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포포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다른 하인들이 많으니 그쪽에 부탁하도록 할게.”
이연은 살짝 실망한 듯했다. 그의 눈은 한참을 날 바라보며 미련을 떨치지 못했으니까.
“그럼, 저와 잠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안 되나요?”
그의 선한 눈망울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 버렸다. 결국, 나는 그와 함께 궁 근처를 걷고 있었다.
포포 또한 우리와 함께 걷고 있었는데,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들이 튀어나오자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저번에 제가 실례를 한 것 같아,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그는 저번에 내가 그를 두고 이랑과 함께 간 것이 그 말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저는 아리 님이 왠지 모르게 저와 가깝다 느껴져서……. 신국에 사시는 아리 님에게는 충분히 실례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의 사과에서 진정성이 느껴졌기에, 나는 그의 사과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미리 아리 님의 성인식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아마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그가 해맑게 웃으며 내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에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마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사화와 이연은 금방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령은 사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만 계속하고 있었고, 이연은 잠시간의 산책 이후 하인들에게 궁에 관한 몇 가지 소개를 받은 게 다였다.
하지만 백령은 그들의 방문 자체가 기분이 나빴던 거겠지. 특히, 이연의 방문이.
만약 사화의 이번 방문 목표가 백령을 화나게 만든 것이라면 가히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만간 다시…….”
“동쪽 땅에 발 디딜 생각, 추호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군.”
어찌 사화는 저리 밉상인 짓만 골라 하는지, 이쯤 되면 궁금할 지경이었다.
사화와 이연이 떠나고, 궁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사화가 조용히 물러갔다는 게 석연찮았다.
아무리 백령이 싫어했어도, 분명 용건이 있었을 텐데.
이연을 데려온 것도 그렇고.
사화와 이연에 관해 고민하는 사이, 여노와 자하가 날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리 님은 신국제 마지막 날 밤인데, 무얼 할 건가요?”
신국제 마지막 날 밤이라…….
그러고 보니 백령은 갈 곳이 있다고 했었지…….
역시 밤이라 하면 별이 아닐까? 청화관에서 본 밤하늘이 그렇게 예뻤는데.
……물론, 청화관을 방문하는 이유는 밤하늘을 보기 위함이다. 다른 의도는 조금도, 아주 조금도 없었다.
나는 밤이 되자마자 청화관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청화관에 도착했다.
“뭐 하는 거야?”
그런 날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은월만 빼면 정말로 완벽했다.
“청화관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이 정말 예뻐서.”
라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를 했지만, 다행히 은월은 나의 변명에 눈을 휘며 웃었다.
그의 미소가 너무나도 예뻤다.
이후, 은월과 나는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은월과 있는 시간은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물론, 기분이 이상할 때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은월과 있을 땐 뭔가 조금 달랐다.
“은월, 있잖아……. 은월?”
은월을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황급히 그를 찾은 나는, 그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번엔 진짜 자는 건가?
몇 번을 의심해본 끝에, 진짜 잠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가 자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신국제의 마지막 날 밤이 흘러갔다.
***
백령의 집무실에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날 보며 환히 웃는 그녀는, 저번 사건 이후 날 더욱 극진히 챙기는 것 같았다.
“아리야.”
“으, 응……. 미호.”
미호가 부담스러웠다. 천도를 구해온 것은 나 혼자가 아닌데, 왜 내게만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대체?
“이제 아리는 구슬을 완벽히 다룰 수 있어?”
미호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전보다 구슬을 다루는 것이 능숙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완벽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는데.”
“아리의 성인식을 정하기 전에,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
그녀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에 모두가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아리의 성인식보다 인간을 먼저 내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아, 그래서 구슬의 힘을 다룰 수 있냐 물어본 거였구나.
내가 구슬의 힘을 다뤄야만 인간을 내보낼 수 있으니까.
미호는 저번 성인식을 계기로 위험요인을 굳이 두고 거행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기에, 백령 또한 잠시간 고민하는 듯했다.
“아리,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미호가 이번에는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내 성인식을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이지 않을까? 흑기들이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는 일이잖아.”
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그렇지. 그래서 이번에 축복은 따로 내리려 해.”
“따로?”
“응, 네가 받고 싶을 때 내가 바로 내려줄 수 있도록. 그러니, 인간을 먼저 처리했으면 한 거고. 아리, 네 생각은 어때?”
그녀가 내 의견을 재차 물었다.
“지금 결정하기엔…….”
“알았어, 그럼 삼일 정도의 시간을 줄게. 그때 동안 생각해 보고 내게 알려줘.”
미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있었던 시간만큼, 밀린 업무가 많아 바쁜 것 같았다.
삼일이라…….
그 시간 동안 고민해야 할 게 하나 늘어났다.
성인식과 인간…… 양자택일이라.
왜 자꾸 이연이 어딘가 걸리는 걸까? 무언가 계속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또한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
계속해서 드는 의문들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바람이나 쐬러 가야겠어.
포포와 함께 산책하러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자하가 졸졸졸 쫓아오기 시작했다.
어……. 괜찮겠지?
“저도 같이 가요, 아리 님!”
그렇게 우리 셋은. 하원의 강으로 향했다.
하원은 우리 셋을 번갈아 보더니, 인상을 마구 찡그렸다.
“너희 뭐냐?”
하원의 물음에 우리는 차례로 대답했다.
“뭐가 말이야, 하원?”
“뭐가 말입니까, 하원 님?”
“뭐가, 수달아?”
우리의 대답에 깊은 감명을 받은 하원은 절규하며 소리쳤다.
“여기서 당장 나가! 왜 심심하면 여기로 찾아오는 거야, 대체!”
아니, 여기 동쪽 땅이라니까.
“하원 님, 여기는 백령 님의 영토…….”
“닥치고 나가.”
하원의 외침에도, 압박에도, 우리가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물속으로 들어와서 나오지 않았다.
“삐졌나 보다.”
“삐졌나 보군요.”
“삐졌어, 수달?”
또다시 깊은 감명을 받은 하원의 목소리는, 이제 물 안에서 들렸다.
“아니야, 이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