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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15)화 (115/167)

115.

“미, 미호. 이것 좀 놔줘. 숨 막혀.”

나는 그녀를 애써 떼어 놓으려 발버둥 쳤지만, 이내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미호가…… 울고 있다.

내 저고리가 그녀의 눈물로 젖고 있었다. 눈물 탓인지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의 눈물에 크게 당황한 나는 이도 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미호.”

그런 내게서 미호를 떼어낸 건, 다름 아닌 백령이었다.

“……백령.”

백령이 나를 자신의 뒤로 보냈다. 마치 미호에게서 보호하는 듯이.

미호는 원망 가득한 표정으로 백령을 노려보았다. 백령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넌 알고 있었지, 백령?”

한기 어린 그녀의 물음에도 백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긍정도, 부정도 어떠한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어? 왜!”

그녀가 갑자기 백령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주위 모든 신수의 시선이 느껴졌다.

“정신 차려라, 미호.”

백령이 차갑게 내뱉은 말에, 미호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녀의 고운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너 스스로 돌아봐라, 미호. 네가 이러니 알리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아리의 귀는 그저 구슬의 영향일 뿐이니 착각하지 마라.”

백령을 노려보던 미호의 한쪽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백령은 그런 미호에게 조금의 미련도 없이 차갑게 고개를 돌렸다.

미호와 나의 눈이 아주 잠깐 마주쳤다.

“아리야…….”

그녀가 애절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백령이 날 강하게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미호는…… 역시나 날 시호로 보고 있었구나, 언제나.

내게 잘해준 것도, 날 슬프게 바라보던 것도, 모두 날 보며 시호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진실이었지만, 어딘가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백령이 미호에게 내 귀를 보여주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랬으면, 지금과 비슷한 광경이었겠지.

“조금 진정하면 그때 성인식을 시작하지.”

백령이 나를 끌고 자리를 떠났다. 미호는 하염없이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령과 함께 그의 집무실에 당도했다. 그는 저고리에 묻은 미호의 눈물 자국을 닦아주었다.

“괜찮은가.”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닮았어?”

내 저고리를 닦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다.”

백령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지만, 과연 그것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백령을 한참을 바라보다 아름다운 푸른 눈과 마주쳤다.

“넌, 너일 뿐이다, 아리야.”

나는, 나…….

“그런 생각이 널 어지럽힌다면, 그건 그것대로 힘들 것이다.”

그가 다시 저고리를 닦았다. 흐트러진 나의 머리 또한 그가 정리해주었다.

문득, 그에게 너무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백령.”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난 너에게, 어떤 존재야?”

서로 마주 본 푸른 두 눈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렇기에, 백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그가 저고리에 묶은 눈물 자국을 다 닦아내었다.

“지켜야 할 존재라고.”

저번과 같은 대답에 나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언제나 똑같은 그의 대답.

신국에 있는 이상 난…… 시호에게 가려진 존재인 걸까?

앞으로도 미호는 계속해서 내게서 시호를 찾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시호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다 그에게 물었다.

“백령, 너는 날 다른 신수로 착각한 적이 있어?”

날 시호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

네게도 난, 시호에 가려진 사람일 뿐인 거야?

그런 물음이었다. 그리고 백령 또한 그 저의를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두려웠다. 물어보지 말 걸 그랬다.

후회와 괴로움에 눈앞이 흐려졌다.

의외로 백령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분하게 나의 물음에 대답했다.

“착각한 적 없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푸른 눈이 슬프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일말의 거짓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난 너를, 단 한 번도 다른 이로 착각한 적이 없다, 아리야.”

나는 홀린 듯 멍하니, 그렇게 계속 백령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었다. 백령으로 인해 마음이 채워진다는 것을 느낀 것은.

***

밖의 상황이 조금 진정된 것처럼 보이자, 나와 백령은 집무실에서 나왔다.

연회장으로 돌아온 나와 백령에게 다가온 이는 다름 아닌 미호였다. 그녀가 우물쭈물하며 나와 백령을 번갈아 보았다.

“미안해, 아리야. 그리고 미안해, 백령.”

미호가 조심스레 내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녀는 아까와는 달리 많이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내가 경솔했어. 아까의 일은 부디 잊어주겠니?”

그녀의 자색 눈동자에 한기가 어려 있었다. 나는 절대로 잊히지 않겠지만, 그녀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게 나는 미호와 함께 궁을 걸었다. 그리고 그때, 사화와 바랑이 나타났다.

“미호 님, 안녕하십니까.”

사화가 정중히 미호에게 인사를 한 후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리 님의 성인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화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바랑은 하품하며 내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의 눈은 굉장히 퀭했으며, 상당히 피로해 보였다.

정말 요즘 일이라도 하는 건가?

요즘 바랑의 변한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럼 다들 모였으니, 이제 교지를 내릴 때가 된 것인가.”

미호가 작게 읊조렸다. 그에 다른 신수들은 모두 동의하는 듯했다.

미호가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제단으로 보이는 계단을 하나하나 천천히 올랐다.

나와 미호가 계단을 오르자, 궁 밖에선 수많은 신수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다운 궁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 성인식 날, 미호와 함께 이런 풍경을 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럼 이제, 시작할게.”

내게 시작을 알리는 미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동쪽 땅의 작은 주인, 아리. 그대의 성체가 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뭔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미호의 자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기운을 느낀 것 같았다.

나는 알고 있어, 이 기운을. 이건…… 흑기의 기운이야.

잠시간 궁 안은 매우 고요했다. 마치 폭풍전야를 알리듯.

이윽고, 흑기의 기운이 몰려 들어왔다. 백성들은 흑기를 보고 도망치기 바빴고, 궁 안의 신수들은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아리 님!”

그때, 자하가 계단을 한 번에 올랐다. 아마 나를 지키기 위해 내 곁으로 오는 듯했다.

“아리야, 저기!”

어느새 내 옆으로 온 포포가 나의 어깨 위에 올라왔다. 포포가 손으로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자하가 내게 도착하기도 전에, 흑기들이 떼거리로 몰려왔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어리고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구슬의 힘으로 내 몸을 지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내 흑기와 신수들이 서로 부딪히며 싸우고 있었다. 신수들의 손짓 하나하나에 약한 흑기들은 쓰러져 나갔고, 강해 보이는 흑기들 또한 신수의 힘을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힘의 차이보다는 숫자의 차이가 너무 컸다.

“아리야, 괜찮아?”

“난 괜찮아, 미호.”

미호는 흑기들을 처치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내 상태를 살폈다. 내 상태를 확인한 그녀가 다시 흑기들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자색 눈동자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날 잘못 잡았어, 어리석은 것들. 어딜 감히!”

미호가 빛을 쏘아 올리자, 많은 흑기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흑기들은 또다시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었다.

주위의 신수들을 살펴보았다. 흑기들에 비하면 생채기 정도였지만, 그들도 상처를 조금씩 입고 있었다.

“아리야, 흑기들이 많으니 저쪽에 가 있어.”

미호가 날 보호하려 했지만, 나는 그녀의 보호를 거부했다.

“괜찮아.”

그때, 여노가 흑기를 상대하다 다치는 모습을 발견한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여노, 괜찮아?”

“네, 괜찮긴 한데……. 조금 이상해요.”

여노가 작게 읊조렸다. 나는 그에 그녀의 초록빛 눈을 바라보았다.

“아리 님의 성인식 때문에 강한 신수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왜 오늘 이러는 건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여노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이번 흑기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만약 내 성인식을 방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금을 노리는 게 아닌 그 전을 노렸어야 했다.

지금은 강한 신수들이 백령의 궁에 있으니까.

게다가 신수들도 날 지키려 할 텐데…… 어째서?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잠깐만, 내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지 않고 내 성인식을 중단할 방법은…….

나는 서둘러 미호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보였다. 미호의 뒤에 있는 검은 뱀 한 마리를.

“미호!”

황급히 미호에게 달려갔지만, 뱀이 미호의 목덜미를 무는 속도가 더 빨랐다.

미호에게 도착한 나는 구슬의 힘으로 미호와 뱀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뱀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뱀이 사라지고, 흑기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룬 것처럼 하나둘씩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거였어, 저들이 노린 게.

미호가 내게 축복을 하사하지 않으면, 나는 제대로 된 성인식을 치를 수 없으니까.

그들은 평소의 미호를 공격할 순 없었을 것이다. 미호는 꼼꼼하고, 철저한 신수니까.

하지만 지금의 미호는 분노로 흥분된 상황이라 주위를 잘 살피지 못했다.

그리고, 자꾸만 내게 신경을 썼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를 노린 것이다.

“미호, 괜찮아?”

미호의 몸 상태를 살폈다. 그녀의 목덜미에는 뱀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지금 미호의 몸에, 독이 퍼지고 있는 거야?

“아리, 아리야…….”

미호가 사경을 헤매며 내 이름을 불렀다.

“미호…….”

“난, 괜찮아. 아리……야.”

그녀가 힘겹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녀가 내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시호……야……. 보고 싶어.”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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