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드디어 성인식 당일이 되었다. 궁 안은 평소와 달리 들뜬 분위기였고, 밖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방 안에 앉아 여노에게 치장을 받고 있었다. 오늘은 날이 날인지라, 치장하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었다.
“여노,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무슨 소리예요, 아리 님! 아직 멀었어요.”
오랜 시간 치장하며 나는 점점 지쳐갔지만, 오랜만에 불타는 그녀의 열의를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얼마 후, 여노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내게서 물러났다.
“헤헤, 완벽해요!”
다, 다 된 건가?
경대 앞으로 가 여노가 치장해준 모습을 확인했다.
세상에.
오늘 여노가 평소보다 더 열심히 치장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거울에 비친 화려한 내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름다운 푸른 보석이 박힌 머리 장식들은 마치 푸른 장미와도 같았다. 귀에는 은월이 내게 선물한 귀 장식품에, 화장 또한 완벽했다.
여노가 선별해놓은 저고리들을 하나씩 입어보았다. 저고리와 치마들 또한 가장 화려한 것들로 선별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니, 괴로워한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았다.
“아, 다 너무 예뻐서 못 고르겠어요! 아리 님 눈엔 뭐가 가장 예쁜가요?”
“나?”
“네!”
“나는, 음…….”
가장 눈길이 가는 저고리를 집었다. 아름다운 금빛 자수가 수놓아진 연한 푸른색 저고리를.
“역시! 아리 님 안목은 탁월하세요!”
여노는 아마 내가 지나가는 포포를 집었어도 저 반응이었을 거다.
“치마는 이게 좋겠어요.”
여노가 내게 건네준 건 내가 고른 저고리와 잘 어울릴 듯한 화려한 수가 놓인 연한 분홍색의 치마였다.
얼마 후, 정말 나는 나갈 준비를 완벽히 했다.
이 방을 나가면 정말 성인식이구나.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노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밖에는 하인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모두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저희 동쪽 땅의 작은 주인, 아리 님의 성인식을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고마워, 모두.”
하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들을 지나쳐 천천히 걸어갔다. 복도의 끝에는, 아루와 자하가 서 있었다.
“아루, 오랜만이야!”
정말 오랜만에 보는 아루의 모습에 반색하며 그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내 그가 내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리 님, 성인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오늘 그 어떤 신수보다 아리 님이 가장 아름다우십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아리 님! 오늘이 아니라도 제 눈엔 아리 님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자하가 질세라 아루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급하게 내게 축하 말을 전했다.
“여노도 고생했다.”
아루가 내 뒤를 조용히 따라오는 여노의 등을 토닥였다. 이내 여노의 눈에는 커다란 눈물방울이 맺혔다.
“아리 님이…… 벌써 성인식을, 훌쩍.”
눈물에 젖은 그녀의 목소리에 한순간에 분위기가 울적해졌다.
“여, 여노…….”
“죄송해요, 아리 님. 갑자기 눈물이 멈추질 않네요.”
여노는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누구보다도 행복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내 눈가에도 눈물이 조금 맺혔다.
“항상 고마워, 여노. 그리고 아루. 자하도.”
나의 감사 인사에 셋은 어쩔 바를 모르는 듯했다. 자하는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 훌쩍거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루가 크게 당황했다.
“야, 야, 넌 왜 우냐? 너 털갈이 시기도 아니잖아.”
“시끄러, 이 가짜 호랑이 녀석아.”
나는 그들과 함께 밖으로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강한 햇빛 탓에 눈이 부셨다. 날씨는 너무나도 좋았고, 바람 또한 적당히 불고 있었다.
궁은 푸른 꽃들로 장식돼있어 상당히 아름다웠다. 먹고 마실 것이 넘쳐났으며, 듣기 좋은 곡조가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또한, 평소와 달리 궁은 나의 성인식을 축하하고자 방문한 많은 신수로 인해 북적이고 있었다.
“백령 님께서 여태까지 준비한 축제보다도 훨씬 더 크고 화려하게 준비하라 명하셨어요.”
궁의 풍경을 보며 놀란 내게 여노가 귀띔해주었다.
“아무래도 아리 님은 구슬의 주인이시니까요.”
아루가 여노의 설명에 덧붙였다.
흑기에 대한 경고도 있지 않을까……. 내가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흑기들은 날 함부로 건들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그런지 궁의 경비는 삼엄했다. 아루를 부른 이유도 내 성인식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는 의미가 클 것 같다.
“아, 각지에서 선물도 도착했는데, 그건 아마 성인식을 마친 후에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여노는 이제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말했다. 그녀의 초록색 눈이 예쁘게 반짝였다.
각지에서 온 선물이라…….
그때, 우리에게 누군가가 저벅저벅 다가왔다. 우리는 한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기에, 자하와 아루가 그를 경계했다.
“아리야, 성인식 축하해.”
이랑이 꽃다발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가 내민 꽃다발을 받으며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리 님 근처로는 얼씬도 마세요, 이랑 님.”
자하가 으르렁거리며 이랑을 노려보자, 이랑은 자하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아, 바랑 님은요? 아직 안 오신 것 같던데…….”
“그러게, 삼촌이 늦네. 웬일이지.”
똥개는 안 와도 돼.
“아리 님, 저도 드릴 게 있어요!”
“성인식 축하드립니다, 아리 님!”
이랑의 선물을 시작으로, 신수들이 차례차례 내게 선물과 축하 인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없이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만 했고, 결국 혼란스러운 틈을 타 여노와 아루, 그리고 자하와 떨어지게 되었다.
선물은 하인들이 대부분 옮겨주었기에 선물에 치여 죽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아리야, 여기 있었네.”
포포가 한참 찾았다는 듯 내게로 달려왔다. 그가 폴짝 뛰어서 내가 양손으로 받아주었다. 내 품에 들어온 그가 내게 다과를 하나 내밀었다.
그의 표정이 약간 시무룩해져 있었다.
“……미안해. 난 줄 수 있는 게 없어.”
“안 줘도 돼, 이 바보야.”
“하지만…… 아리의 성인식인걸.”
그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아마 자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뽀뽀, 난 네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정말? 성인식 진심으로 축하해, 아리야!”
포포가 환히 웃으며 내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의 피처럼 붉은 눈이 예쁘게 빛났다.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이젠 선물도, 축하 인사도 더 이상 받을 힘이 없어.”
몸을 축, 늘어뜨리며 말하자, 포포가 내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그때, 익숙하고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알 수 있었다.
“벌써? 그럼 내 것도 필요 없는 건가?”
“은월!”
은월이 눈을 휘며 고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예쁜 보조개가 쏙, 들어가고 오묘한 회색 눈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성인식 축하해, 아리야.”
그가 내게 다가오더니 부드럽게 나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나와 그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자, 그가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은월.”
나도 모르게 그의 눈을 회피했다. 이상하게 이럴 때면 은월의 눈을 마주할 수가 없다.
“있잖아, 은월…….”
은월과 좀 더 대화를 나누려 그를 불렀다.
“아리야!”
그때였다. 미호가 들뜬 표정으로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해 보였다.
“좀 있다 봐.”
은월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싸부, 나도 같이 가!”
저, 저, 요망한 여우 녀석. 은월이 가니까 날 버리는 거 봐!
한순간에 포포에 관한 호감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은월이 자리를 떠나고, 미호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리야, 정말 이제 성인식을 하는구나.”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내 성인식을 축하했다. 그런 그녀는 나를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정말 잘된 일이야. 고마워, 아리야. 이렇게 무사히 성인식을 치를 수 있어서 난 누구보다 기뻐. 나는…….”
그녀는 너무 기쁜 나머지,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날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일까, 항상 그녀의 시선은 슬프게만 다가왔다. 분명히 날 바라보며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어여쁜 자색 눈동자에는 슬픔이 어려 있었다.
“선물은 하인을 통해 전달해 놨어.”
“고마워, 미호.”
“당연한 일인걸. 네게 주는 건데. 그러고 보니 오늘 내가 준 리본으로 예쁜 머리띠도 했네.”
미호가 뿌듯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리본을 가리켰다.
“응, 예쁜 선물 고마웠어.”
“아, 근데 머리띠가 느슨해졌는데? 내가 묶어줄게.”
아, 아까 정신이 없는 틈에 느슨해졌나 보다.
어? 그런데 난 아직 미호한테 내 귀를 보인 적이 없는데.
“미, 미호, 잠시만…….”
“괜찮아, 금방 해. 나도 이런 건 할 줄 알아.”
아니, 그게 문제가…….
내가 어떻게 막기도 전에 그녀는 부드러운 손길로 나의 머리띠를 풀어버렸다.
생각해보니 미호는 어차피 내가 인간인 거 아는데, 호랑이 귀가 아니라고 해서 뭐라 할까?
미, 미호니까, 괜찮겠지?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반응과 전혀 달랐다.
그녀는 굳은 채로 내 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망한, 아니, 공허한 느낌이었다. 하나만은 알겠다. 백령이 미호에게서 내 귀를 숨긴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시호…….”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시……호? 지금 나한테 시호라고 한 거야, 미호?
나는 화들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미호가 나를 부러질 듯 세게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