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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06)화 (106/167)

106.

마침내 사화와 인간이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인간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는 평범해 보이는 인간 남자였다. 굉장히 선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으며, 약간의 곱슬기가 있는 짧은 머리의 소유자였다.

“저어…… 사화 님이 말씀하시길, 저를 만나고 싶다 하셨다고…….”

그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지도, 그렇다고 높지도 않았다.

정말 미호의 말대로 ‘평범한 인간.’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겐 매우 반가운 상대였다.

인간, 인간이야, 정말로……!

백령과 하원은 역시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려본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진짜, 인간이군요…….”

자하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백령과 하원은 그렇다 치고, 자하 또한 어째서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치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린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저 인간은 잘 알기에, 지금 한껏 움츠러든 거겠지.

“저어,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잔뜩 겁먹은 채로 묻자, 백령이 무심히 대답했다.

하지만 날 선 백령의 표정은 누가 봐도 그가 대역죄인처럼 보일 것이다.

그가 눈을 굴려, 차례로 신수들을 뜯어보았다. 어찌나 눈치를 보는지, 나까지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낯선 곳에 흘러들어와 많이 혼잡할 텐데, 생각보다 침착하네. 이상하게.”

하원이 그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에 인간은 당황하여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 사, 사화 님이 상황설명을 잘 해주셔서……. 저도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괜찮은 거 같아요.”

그러면서 인간은 사화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사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보태주었다.

“맞아요, 하원 님. 제가 처음에 왔을 때부터…….”

“입, 열지 말라 했는데.”

그녀의 말을 하원이 단칼에 잘랐다.

사화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입을 굳게 닫았다.

“흐음……. 아리야, 왜일까?”

포포가 다 들리는 귓속말로 내게 물었다.

“뭐가, 포포? 그리고 목소리가 너무 커.”

“아.”

포포가 탄식과 함께 나의 어깨로 올라오더니, 이번엔 정말로 내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인간을 보는 게 처음인데, 왜 이렇게 낯설지가 않지?”

“예전에 저 인간이랑 만난 적이 있어?”

나의 물음에 포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야.”

혹시 다른 인간을 만난 게 아닐까?

나는 인간의 생김새를 다시 확인하려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일순간 나와 인간의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분 탓인가……?

“이만 돌아가 봐도 될까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자 인간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우리 쪽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사화가 나서 인간을 방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인간이 전각을 나가려던 그때.

“네 이름이 뭐지, 인간?”

백령의 낮은 목소리가 전각에 울려 퍼졌다.

“……연. 이연입니다.”

그에 나가려던 몸을 돌아 백령을 바라본 그가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이름을 말한 직후, 그는 전각을 나갔다. 그와 사화가 나가자, 전각에 맴돌던 긴장감이 풀렸다.

“그래서. 어땠지, 백령?”

하원이 백령을 보며 물었다. 백령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별로. 평범한 인간이더군.”

“그래, 정말 평범한 인간이야.”

하원의 남색 눈동자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것 같았다.

“그때도 아주 평범한 인간이었지. 그때도…….”

하원이 뒷말을 삼키며 쓰게 웃었다. 그에 백령이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동감이야. 하필이면 북쪽 땅에서 발견된 것도 이상한데……. 북쪽 땅 어디에서 발견된 건지가 궁금하군.”

백령의 말에 하원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눈을 빛냈다.

“그것보다 돌아가기엔 늦은 시간이군.”

백령이 어느새 해가 저물어 어둠이 깔린 창밖을 보며 읊조렸다.

“별로 늦은 시간은 아닌…… 아.”

하원이 나를 보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를 데리고 돌아가기엔 늦은 시간이긴 하지.”

밤중에 땅의 경계를 건너는 건 위험하긴 하지.

얼마 후, 사화가 전각 안으로 돌아왔다. 예의의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온 사화의 옆에는, 그녀의 직속 하인으로 보이는 자가 서 있었다.

“저희 궁에서 하룻밤을 묵고 가실 것 같으니, 묵으실 곳을 안내해 드리지요.”

사화가 손짓하자, 하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는 하원의 앞에.

“하원 님은 제가 입을 여는 것조차 마음에 안 들어 하시니, 특별히 제 직속 하인인 무영이를 붙여 드리지요.”

계속해서 하원에게 무시를 당하니, 사화는 나름 방법을 모색한 것 같았다.

하지만 하원은 물을 다스리는 신수이자. 신국 내에서의 입지가 굉장히 높은 신수.

사화가 저번 회의에서 교육자가 되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 그녀는 그저 북쪽 땅의 주인.

그 말은 즉, 사화는 지금 하원에게 버릇없이 굴고 있다는 것이다.

하원이 사화를 노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네 배려에 고마워서 눈물 날 지경이네. 그 말도 저 아이를 통해서 전달해줬으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의 시선이 제게 다가온 사화의 하인, 무영에게로 향했다.

“뱀은 다 거기서 거기지만 말이야.”

하원의 대답에 사화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 일은 잘 기억하도록 하지, 사화.”

두 신수는 마주 보며 신경전을 펼쳤다. 하원이 먼저 시선을 떼고 여유롭게 손가락을 튕겼다.

이내 사화의 시선이 나와 백령, 그리고 자하에게로 향했다.

“세 분은 절 따라오시지요.”

……포포는 대체 왜 신수 취급을 안 해주냐고.

원래라면 포포가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그녀를 상당히 두려워하는 그인지라, 내 다리 뒤에 붙어 치맛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사화가 안내한 곳은, 별채로 보이는 호화롭고 화려한 건물이었다. 잔뜩 힘을 들여 꾸민 듯한 내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각각 방을 하나씩 준비한 사화는, 누구의 방인지 안내를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백령 님이 저희 궁을 방문해 주셨으니, 성심성의껏 꾸며보았습니다.”

안내를 마친 사화가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백령에게 정중히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절 …….”

“필요 없다.”

백령이 단호히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럼에도 그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아니한 채, 고개를 숙였다.

“편안한 밤 되시길.”

그녀가 짧은 인사를 끝으로 물러갔다. 나와 백령, 그리고 자하는 안내받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리 따라가야…….”

“이 여우 녀석, 어딜!”

나를 따라 들어오려던 포포는 자하에게 끌려갔다.

포, 포포는 괜찮은데…….

꼬리를 잡혀 끌려가는 포포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딱히 할 것도 없는 방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시녀가 내온 차와 다과를 조금 먹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밖에 나가볼까….

잠이 오지 않는 나는 짧은 고민 끝에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상현달이 떴다. 그렇기에 밤길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간단히 복도를 산책한 후 방에 다시 들어가야겠다.

나는 사색에 잠겨 긴 복도를 걸었다.

그러던 중, 복도를 지나자 만나게 된 이외의 인물에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까 본 그 인간……?

그는 주위 풍경을 보며 저벅저벅 걷다 뒤늦게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당황한 듯하였다.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인간이,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

“저, 저어……. 그냥 이곳이 너무 신기해서…….”

그가 내게 변명하듯 자신이 돌아다니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아, 내게 그런 걸 설명할 필요는 없어.”

“아, 그런가요…….”

그는 정말로 신국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인 것 같았다. 정말 말 그대로 평범한 인간.

그렇기에 그와 만남이 이토록 신기한 걸까.

“아까 본, 그…….”

그가 날 뭐라 칭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아, 응, 맞아. 내 이름은 아리야. 그냥 아리라고 불러줘.”

“아, 네, 아리 님! 저는 이연입니다. 연이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그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는 내게 궁금한 것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백령과 하원이 그토록 경계하는 인간이니, 그와 함께 있어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았다.

일단은 멀리하는 게 좋겠지.

“그래, 좋은 밤 되길 바라.”

그에게서 인간 세상에 관해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애써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재빨리 손목을 놓았다.

“아, 죄송해요. 실은 제가 방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서…… 실례가 안 된다면, 저를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온 길을 가리켰다.

주위에 하인이 없나 둘러보았지만, 궁 안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난 궁 지리는 모르는데……?”

“아, 약도를 가지고 있어요, 잠시만요.”

그가 소매에서 주섬주섬 꾸깃한 종이를 꺼냈다.

“인간에서 쓰는 글자랑은 달라서, 알아볼 수가 없어서요.”

약도는 간단한 그림과 글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림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별채라는 사실 뿐.

……헤맬 수밖에 없긴 하네.

“이건 저쪽으로 돌아서…….”

그에게 열심히 약도를 설명했지만, 그는 눈을 끔뻑이며 대답만 열심히 했다.

“네, ……네!”

“……알아들은 거 맞아?”

나의 물음에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그와 동행하기로 했다.

“아리 님은 뭔가, 다른 신수님들과 다른 거 같아요.”

뜬금없는 그의 말에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황급히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아, 저, 나쁜 뜻이 아니고, 저를 편견 없이 봐주시는 것 같아서요.”

확실히 백령이나 하원과는 달리 나는 그를 노려보지는 않았으니까.

“특히 여우 신수님은 정말 무서웠어요. 붉은 눈으로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셔서….”

여우 신수라면, 미호를 말하는 거겠지. 그리고 미호는 이 인간을 보고 화가 난 거고.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더라고요, 하하.”

그가 머쓱하다는 듯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가 복도 끝에 있는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 방은 저기에요, 아리 님.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그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뭐야, 그냥 직진하면 되는 거잖아. 길치인가?

와중에 설명이 더럽게 복잡한 역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건 일부러 인간을 괴롭힌 건가?

고개를 든 그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흑색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아리 님은 궁금하지 않으세요? 인간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그가 진지한 투로 내게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응, 궁금해. 어떤 곳인지는. 난 가본 적이 없으니까.”

그에 그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여태까지 보았던 그의 주눅 든 표정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다음에 제가 인간 세상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다음에?”

“네.”

그가 행복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내가 여기에 올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해?”

“글쎄요.”

그가 생각에 잠시 잠긴 듯했다. 이내, 생각을 마친 그가 다시 활짝 미소를 지었다.

“모든 건 돌고 돌아, 만나게 되니까요. 운명이란 그런 거죠.”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내가 미간을 좁히자, 부끄러움을 느낀 건지,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어요. 사화 님이 절 여러 땅에 데려가 주시겠다고 약조하셨으니, 그중 언제 한 번은 만나는 것 아닐까, 하는 추측일 뿐이니까요.”

그가 말을 마친 후,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다음에 또 봐요, 아리 님.”

이상한 인간이네.

나는 그에게서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복도를 다 지날 때까지, 이연은 나를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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