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두 신수는 인간에 관해 말을 아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미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신국에 인간이 들어오면 안 돼?”
나의 물음에 미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게 아니야. 흔치 않은 상황이라는 거지. ……시기도 좀 이상하고.”
“그럼 다시 내보내면 되잖아.”
미호가 인상을 쓰며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차를 가만히 내려보던 미호는, 이내 한 모금 삼킨 후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당장은 돌려보낼 수가 없어.”
그게 무슨 소리지?
알 수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자, 미호가 뒤이어 설명해주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내가 가진 구슬로는 중앙 숲의 결계를 뚫지 못해.”
미호가 착잡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건…… 시호의 관할이었어.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어, 아리야. 구슬을 지닌 너라면 혼자 나가는 것쯤은 가능할지 몰라도, 인간이 나갈 수 있게 결계를 뚫어주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렇다는 건…….”
미호가 머리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너만이 그 인간을 인간계로 돌려보낼 수 있어.”
지금의 나는 구슬을 다루지 못한다. 그렇다는 말은, 내가 구슬을 다룰 때까지 인간은 신국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인간에게서 특별한 점은 없었나, 미호?”
백령이 미호에게 묻자, 미호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평범한 인간이야. 그때와 같은.”
그때……?
전에도 신국에 인간이 온 적이 있었다는 건가?
“인간이…… 전에 온 적이 있었어, 미호?”
나의 물음에 그녀가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응……. 딱 한 번, 이번과 같이 인간이 들어온 적이 있었지.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평범한 인간이었어.”
그 인간에 관한 얘기를 하는 미호는 어째서인지 굉장히 슬퍼 보였다.
“그 인간에 대한 기억이 좋지는 않아. 많은 걸 앗아갔거든.”
“앗아가?”
미호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앗아갔어. 그의 어리석음이었지. 그의 이름은…….”
미호가 기억하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가휘.”
이름을 말한 건 백령이었다. 백령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 이름을 내뱉었다.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그 이름을 말할 때였다. 누군가가 백령의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어쩐지 물의 흐름이 이상하더라니, 인간이 나타나서였군.”
심기가 상당히 안 좋아 보이는 하원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지금 당장 내보내.”
하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된다는 거 알잖아?”
“그럼 죽여.”
하원은 미호보다 더한 반응을 보였다. 그에 미호가 당황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우린 인간을 죽일 수 없다는 거 알잖아, 하원.”
“죽일 순 있지.”
“그래, 인간을 죽이고 흑기가 되고 싶다면 그럴 수 있겠지.”
미호가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내뱉었다. 흑기라는 말에 하원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 인간은 어디 있지?”
백령이 미호에게 물었다. 나도 궁금했던 터라, 미호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은 사화의 궁에 있어. 애초에 북쪽 땅 근처에서 발견된 자라, 사화가 맡고 있지.”
미호의 대답에 백령은 석연치 않다는 듯, 사색에 잠겼다. 나 또한 백령을 따라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
설마 전에 신국에 왔다던 인간이 시호와 관련이 있는 걸까……? 정확히는 시호의 죽음과.
왠지 인간이 사화의 궁에 있다는 게 찝찝했다. 왜 하필이면 북쪽 땅일까?
……일단 그 인간을 만나고 싶었다.
생각을 마친 나는 가감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말했다.
“나, 그 인간 만나보고 싶어.”
나의 말에 미호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백령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건 안돼.”
미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녀가 내게 저런 목소리, 저런 표정으로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난 내 의지를 굽힐 수 없었다.
“만나보고 싶어.”
물론 지금 내겐 구슬이 있으니, 신수와 다를 게 없지만, 그는 나와 같은 인간이다.
그런 인간을 만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반대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하원도 미호의 의견을 거들었다. 나는 애절한 표정으로 미호를 바라보았다.
“미호, 부탁할게.”
“……안돼.”
미호가 내 시선을 회피했다.
왜 나랑 그 인간이 만나는 걸 반대하는 걸까?
“왜?”
“아리야.”
“미호, 만나보고 싶어, 그 인간을.”
처음이었다. 미호에게 무언가를 이토록 요구하는 건. 미호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는지,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는지 몰라도, 무조건 조심할게.”
이윽고, 그녀가 고민에 잠겼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아, 그 대신 조건이 있어.”
내게 꽂혀 있던 그녀의 시선이 백령에게로 시선을 옮겨갔다.
“무조건 누군가와 동행하도록 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되도록 백령이나 은월이면 좋고.”
미호의 조건을 들은 나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하도록 할게.”
나의 대답을 들은 미호는 걱정 어린 눈길을 내게 보냈다.
“그래도 난 네가 그 인간과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럼, 지금 가지.”
백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백령에게로 향했다. 특히, 미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간다고?”
“그래. 나도 그 인간이 궁금한 건 마찬가지이니. 하원, 너도 갈 건가.”
백령의 푸른 눈이 하원에게로 향했다. 하원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백령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갈래요!!!”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자하가 손을 흔들었다.
대체 쟨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야……?
“에헴, 아리 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호위인 제가 빠질 수 없죠!”
나는 물론이고 백령과 하원 또한 자하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준비되는 즉시 움직이도록 하지.”
백령의 말을 끝으로, 궁 안은 출궁 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미호는 못 말리겠단 표정으로 우리 셋을 번갈아 보았다.
“너무 오래 있진 마.”
***
북쪽 땅에 도착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노와 포포 또한 나와 동행했다. 하원은 북쪽 땅으로 가는 내내 코를 막으며 투정을 부렸다.
“강으로 들어가고 싶어 죽겠네.”
아니, 그럴 거면 왜 따라온 거야, 하원!
뱀 냄새를 지독히도 싫어하면서 따라온 하원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북쪽 땅에 도착한 후, 사화의 궁으로 향했다. 사화의 궁이 외관은 전과 다름없었지만, 묘하게 분위기가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문 앞에 도착하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아마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오셨습니까, 백령 님, 하원 님, 그리고…… 아리 님.”
대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사화가 등장했다. 그녀가 걸친 검은색 저고리는 굉장히 화려했으며, 진한 붉은 색의 치마는 저고리와 상당히 잘 어우러져, 그녀의 화려한 외모를 빛내주었다.
새삼 아름다운 사화의 외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 감탄은 나 혼자만 하는 것 같지만.
사화의 시선이 백령과 하원, 다음으론 내게 머물렀다. 그녀가 날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이내 사화는 하원을 바라보았다.
“하원 님이 방문하실 거라곤 예상 못 했군요. 이랑 님 교육 때문에 상당히 바쁠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요.”
명백히 하원을 비꼬는 듯한 내용이었지만, 말투는 누구보다도 정중했다.
그러자, 하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내 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의 말이었다.
“말하지 마, 냄새가 지독하다. 그리고 저리 좀 떨어져라. 왜 이리 가까이 붙냐?”
사화와 하원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기에, 저기서 더 떨어지라면 아예 눈앞에서 꺼지라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원 님, 제 언행이 불쾌하셨다면 사과…….”
“아니, 말하지 말라니까?”
하원은 정말로 사화가 제게 입을 연 것 자체를 불쾌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화는 할 말을 잃고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여긴 제 궁이니, 제가 말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면 들어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화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사화를 보며 그녀가 좋고 싫고를 떠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하원이 인상을 잔뜩 쓰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에 사화는 예의의 미소를 지으며 백령을 바라보았다.
“제 궁에 친히 오신 이유는 말씀해주시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만……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사화가 탐탁지 않아 하며 뒤돌아, 궁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그녀를 따라 궁 안으로 향했다.
그녀의 궁에는 뱀 비린내가 났다. 이상하게 저번에 방문했을 때는 이런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다른 이들을 바라보니, 하원은 코를 막고 있었고, 백령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옆에 함께 걷던 포포는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 다리 뒤로 숨었다.
“으, 여긴 너무 무서워.”
포포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사화의 궁은 다른 땅들의 궁보다 어두우니까. 하지만 저번에도 느꼈듯이 그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포포는 아직 사화에 대한 공포심이 남아 있어,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일 뿐.
게다가 이곳은 사시사철 눈이 내리기에, 눈이 소복이 쌓인 검은 궁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자하 또한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뭐, 자하는 사화를 만나면 항상 그랬었지만.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 인간을 이쪽으로 데려오도록 하지요.”
사화가 안내한 곳은, 저번에 회의가 열렸던 전각이었다. 새삼 그녀의 궁 규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러도록 하지.”
“기다리는 동안 적막하실 것 같아, 다과와 차를 내오라 명하겠습니다. 그럼.”
백령이 대답하자, 사화는 이내 전각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향했다.
사화가 내온 차와 다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차와 다과가 거의 다 동날 때쯤엔, 전각의 하인들이 친절히 다시 갖다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사화의 뒤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 검은 눈동자. 신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충분히 수려한 외모.
그를 본 순간 모두가 알아봤다. 그자가 바로 이번에 신국으로 넘어온 그 인간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