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아침부터 궁 안은 매우 시끄러웠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있는 이곳이 시끄러운 것이지만.
그 원흉인 신수 두 마리를 번갈아 보며 원치 않는 구경을 했다.
“야, 아루. 이번만 아리 님을 보좌하는 영광을 네게 넘기는 거다. 다음부턴 어림도 없어.”
“그래, 그래…….”
“만에 하나 아리 님한테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널 용서하지 않는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그만 좀 얘기해! 이 고양이야!”
고양이라는 말에 자하의 짧고 뭉툭한 꼬리가 바짝 섰다.
“뭐? 너 방금 뭐라 그랬냐?”
여태껏 관찰한 바에 의하면, 자하가 고양이 소리를 듣는 것은 빈번한 일이었지만, 자하는 매번 고양이 소리에 귀와 꼬리를 바짝 세웠다.
이제 그 단어에 타격이 없을 때도 된 것 같은데…….
아니, 그것보다 둘이 그런 얘기할 거면 다른 데 가서 해! 왜 내 앞에서 이러는 거야!
“아루, 짜하. 둘 다 그만해.”
그리고 두 신수의 사이에서 둘을 중재하는 건 어느샌가 내 몫이 되어 있었다.
“네, 아리 님…….”
아루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수긍했다.
아루가 억울할 만도 하긴 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찰 일을 하던 아루가 하원을 만나러 가는 데에 합류하게 됨으로써, 궁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자꾸 자하가 그런 아루를 건드린 것이었다.
하긴, 하원의 위치를 알고 있는 이는 아루 뿐이라고 그랬으니까.
“아루, 이번에 잘 부탁해!”
기죽은 아루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자, 그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자하는 뾰로통해졌다. 누가 봐도 자하가 삐진 것 같았지만, 나는 그를 달래줄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자하는 할 말 없어, 오늘은.
아니, 생각해보면 항상 할 말이 없긴 한데…….
“아리 님. 이제 출발하실 시간이에요!”
여노가 방문을 열고 아루와 나를 향해 말했다.
드디어 하원을 만나러 가는 거구나…….
이제 정말 그를 만나러 가야 한다니, 살짝 긴장되었다.
평소 다른 곳을 가는 것과는 달리, 하원을 만나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암암.
겨우 마음을 가다듬은 후, 아루와 함께 백령이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향했다.
백령이 대문 앞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향해 있던 시선이 아루에게로 옮겨갔다.
“늦었군, 아루.”
“죄송합니다, 백령 님. 정찰 일을 마무리하고 오느라…….”
“하원이 있는 곳은?”
“동쪽 땅과 중앙 숲 경계에 흐르는 강에 계십니다.”
강에 사는 신수인가? 그러고 보니 저번에 자하도 하원의 이야기를 하면서 강에 대해서 많이 말했던 거 같은데…….
“가지.”
백령의 말에 아루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내가 타고 갈 청마를 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름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황한 아루가 두어 번 정도 더 휘파람을 불었지만, 청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 청마가 왜 안 오는 거죠?”
이런 상황이 처음인 듯, 아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루가 당황하며 백령을 바라보았다.
“어, 어떡하죠, 백령 님?”
잠시간 나를 바라보던 백령이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뒤를 돌아앉았다.
왜 이래, 갑자기?
“업혀라.”
어, 업히라고?
“배, 백령 님, 아리 님은 제가 모시겠…….”
“됐다.”
백령의 말에 아루가 기겁하며 나섰지만, 백령이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 안긴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업히는 건 처음인걸?
내가 그렇게 백령의 뒤에 업히려던 찰나.
“아, 혹시 아리 님이 청마를 부른다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루가 한쪽 검지를 추켜세우며 말했다. 그러자, 백령이 한번 해보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바라보았다.
……꼭 해야 해?
목소리를 가다듬고, 작게 입을 열었다.
“청마야아…….”
신수들의 시선이 심히 부담스러웠던 나는, 기어들어 갈 것 같은 목소리로 청마를 불렀다.
그때였다.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디선가 ‘히이잉.’하는, 청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건 왜 쓸데없이 통하고 난리야!
……젠장.
이내 청마가 내 앞에 당도했다. 곧이어 청마가 몸을 숙여, 내가 타기 쉽도록 자세를 취했다.
“아리를 주인으로 인식하나 보군.”
도착한 청마를 보며 백령이 얼른 타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 아니, 백령……. 그냥 좀 업어주면 안 될까?
아쉬운 마음에 애처로운 눈빛을 백령에게 보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괜히 억울해지는 마음에 이 방법을 고안해낸 아루를 노려보았다. 아루는 그저 청마가 나를 주인으로 인식하는 게 신기한지, 나와 청마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는 나의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더니, 나를 친히 청마에 태워주었다.
“아리 님, 조심히 타세요. 꽉 잡으셔야 해요. 청마는 빠르니까요.”
그런 거 모른다. 지금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아루, 이 일, 길이길이 기억할 것이다.
***
나와 아루, 그리고 백령은 얼마 안 가 중앙 숲에 도착했다. 아름답고도, 웅장한 숲은 무언의 기운이 흘러넘쳤다.
이곳은, 처음 내가 버려진 그곳.
처음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은 느낄 수가 있었다.
구슬의 힘 때문인가……?
백령에게 물려오기 전까진 마냥 무섭고 외롭기만 했던 숲속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곳에 대해서 잘 듣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이곳에 있었던 걸까?
흐음……. 이건 누구에게 물어봐도 알 수가 없겠지? 백령은 그저 날 물어 온 게 다니까.
일단 해결 못 할 의문은 접어두기로 하고, 현재에 집중해야 했다. 아루와 백령을 따라온 나는, 어느새 강 앞에 도착해 있었으니까.
“아루.”
“네, 백령 님.”
“넌 이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루가 나와 백령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디, 무운을 빕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아루가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먼지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왜, 왜 도망가듯이 가 버리는 거야, 불안하게…….
마지막에 백령과 내게 한 말도 왠지 불안해지는 듯한 말이었다.
“하원.”
백령이 낮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주위는 너무나도 고요했다. 아무런 인기척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기에 누군가 있기는 한 거야……?
“네가 여기 있는 것 알고 있다.”
그때였다. 백령이 말을 마치자마자, 강물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내 소용돌이치던 강물이 나와 백령을 적셨다.
이,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물벼락이야……!
한순간에 쫄딱 젖어서 그런지, 갑자기 한기가 서렸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추, 추워.
“……인사 한번 요란하게 하는군.”
그런 나를 본 백령의 손에 푸른 기운이 모여들었다. 그 푸른 기운이 나와 백령을 감싸고, 이내 한기가 사라지고 젖었던 옷이 말랐다.
백령이 입고 있던 도포를 벗어 내 머리 위에 얹었다. 덕분에 내 몸은 금방 따뜻해졌다.
다시 한번 물이 소용돌이치며 아까와 같이 백령과 나를 뒤덮으려 했지만, 이번엔 우리 주위를 감도는 푸른 기운을 뚫지 못하는 듯했다.
한동안 거칠게 일렁이던 강이, 곧 잠잠해지고, 아까와 같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 잔잔해진 강물 위로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자는 찢어 죽일 듯이 백령을 노려보고 있었다.
짙은 남색의 눈동자와 머리칼. 그의 눈에는 한기가 어려 있었고, 그의 머리는 지금의 고요한 강물을 연상시켰다.
“백령, 다신 내 눈에 띄지 말라 했을 텐데.”
이 자가 하원이라는 신수구나…….
어째서인지 백령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경계와 혐오가 가득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지낼 거지?”
백령의 물음에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허, 그걸 네게 듣다니, 어이가 없네.”
그의 말에 백령이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 요즘 네가 변했다는 소식은 들었어.”
그의 말에 백령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특유의 무미건조한 눈동자로 하원을 응시하고만 있을 뿐.
“그날 이후, 내 시간이 멈춘 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그날. 그 이후 하원은 계속해서 이렇게 지낸 것이다. 물속에서 모든 신수의 접촉을 거절하며.
“그런데도 날 찾아왔다라…….”
그의 손을 따라 강물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자가 강물을 날카롭게 만든 후, 백령을 가리켰다.
“날 찾아온 걸 후회하게 될 거야, 백령!”
그의 외침과 함께 칼처럼 변한 강물이 백령에게로 날아왔다. 백령은 어째서인지 별다른 방어를 하지 않았다.
“아, 안 돼…….”
황급히 백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급하게 고개를 돌린 탓인지, 머리 위에 얹어져 있던 백령의 도포가 바닥에 떨어졌다.
“백령!”
나의 외침에 백령에게 칼날이 닿기 전, 푸른 기운이 강물을 막았다.
막혔던 숨을 내뱉었다.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다행히 백령은 어디 하나 다친 곳 없이 말끔했다.
뭔진 모르지만, 되게 위험해 보였단 말이야……. 기운도 범상치 않았고.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더 공격할 것 같았던 하원이, 너무 조용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주위에 다시 하원 쪽을 바라보았다. 하원이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은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 아이는……?”
그의 동공이 커졌다. 귀신이라도 보는 듯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내 그의 강물 같은 남색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자, 백령이 나를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시호.”
역시, 날 보며 시호를 떠올려서 저랬던 거구나…….
“난 시호가 아니야.”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자, 그가 정신을 차린 건지,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백령을 바라보았다.
“이 아인 누구지, 백령?”
그가 백령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백령보다 내가 입을 여는 것이 더 빨랐다.
“난 아리야. 시호가 아니라, 아리야, 하원.”
나의 말에 그가 다시 내 쪽을 돌아보았다.
“아리……?”
그의 눈동자엔 무언가가 맺혀 있는 듯했지만, 그걸 나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든지, 내가 아닌 시호와 연관이 되어 있을 테니까.
“그래, 넌 시호가 아니야…….”
나를 보던 하원이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었다. 마치 슬픔을 죽이려 하는 것처럼.
“백령, 이 아일 굳이 내 앞에 데려온 이유가 뭐지?”
그가 원망 섞인 말투로 낮게 읊조렸다. 백령은 그런 그의 말에도 여전히 무미건조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령은 한동안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
“대답해, 백령.”
그가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추었다 했었지 않나.”
백령이 무심히 물었다. 하원은 백령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긍정의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시 흘러야 할 것 같군. 네가 좋아하는 저 강물처럼.”
백령의 시선이 강으로 향했다. 잔잔한 강은 지금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다시 흘러야 할 것 같다고?”
그의 말투는 백령의 말에 상당히 반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가 헛웃음을 흘리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반응에 절로 긴장감이 흘렀다.
“백령이 내게 그 정도로 신경을 쓰며 아량을 베푼 적이 있었나?”
그가 차갑게 말했다. 그의 표정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백령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긴 하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 온 건 맞으니까.
“시간이 흘러? 헛소리 집어치워. 그날 이후 내 시간은 흘러가지 않아, 앞으로도 영원히.”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전혀 백령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고, 들을 생각 또한 전혀 없어 보였다.
“알아들었으면 다시 한번 말해봐.”
이내 다시 그가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그의 모습은 아까와는 전혀 달랐다.
“진짜 나를 찾아온 용건이 뭐지?”
그의 눈동자가 한순간에 차갑게 식었다. 백령과 나를 보는 그의 눈엔 더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부탁할 게 있어서 왔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아까와는 달리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감정 없이 바라본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그의 눈은 이제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으니까.
강물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또한, 나와 백령, 그리고 하원의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꿀꺽.
침을 한 번 삼키고 그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나, 안 물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