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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71)화 (71/167)

71.

아루와 자하의 합심으로 바랑은 저 멀리 멀어져 갔다. 바랑이 점점 멀어지자, 소란스러웠던 주위가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이제 일 열심히 하겠지?

안 그래도 요즘 일 많은 은월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똥개 때문에 일이 더 늘어나진 않아야 할 텐데…….

미호가 일전에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비천이 은월의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

갑자기 그가 왜 은월의 일을 방해하는 거지?

그 뱀의 생각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를 만난 백령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면, 백령도 그와 그닥 사이가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은월도 마찬가지인 걸까…….

백령과 은월은 나름, 신뢰가 두터운 관계인 것 같으니, 은월 또한 그와 사이가 좋지는 않을 것 같다.

똥개는 어떠려나…….

비천은 서쪽 땅에 있는 홍화관의 주인. 그렇다면 분명 바랑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근데 뭐, 생각해 보니 똥개와의 관계는 딱히 궁금하진 않다.

혀를 차며 바랑이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여노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리 님.”

“응?”

여노를 바라보자, 여노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리 님이 바랑 님의 이름을 부르시는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어요.”

그러게, 그건 나도 몰랐다.

하여튼, 일 안 하고 놀기만 해 봐, 똥개. 국물도 없어.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바랑을 내쫓는 것을 성공한 듯한 자하와 아루가 궁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땀을 잔뜩 흘리고 있었고, 진이 쏙 빠진 것이, 상당히 지쳐 보였다.

대체 어디까지 갔다 온 거야?

“후우, 오늘도 바랑 님을 쫓아내는 건, 힘겨운 전투였습니다…….”

“제발 늑대들은 동쪽 땅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쓰러지듯 정자에 앉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렇게 힘들어해?”

나의 물음에 숨을 돌리던 자하가 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아아, 바랑 님이 절대로 이대로 서쪽 땅으로 돌아가실 수 없다며 난리를 치는 통에, 고생했어요, 진짜.”

“아오씨, 무슨 늙은 늑대가 힘이 그렇게 쎄냐.”

“내 말이. 매일 자기는 늙었다며 늙은이 대접 안 해준다고 헛소리 할 때마다 머리 한 대 때리고 싶어.”

“진짜, 서쪽 땅의 주인만 아니었어도.”

아루와 자하가 치를 떨며 바랑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저렇게까지 싫어하는 것은 나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발악하며 난리 치는 바랑을 떠올리니, 정말 악몽도 그런 악몽이 따로 없었다.

힘든 싸움을 했구나……. 자하야, 아루야.

그들에게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갔다. 궁 안에 가득 차 있던 신수들로 인해 시끌벅적하던 궁은 아침에 비해 조용해졌다.

“이제 축제가 거의 끝났나 보네?”

나의 물음에 여노가 주위를 둘러보며 답했다.

“아무래도, 최근 동쪽 땅엔 백호제도 있었으니까요. 그것보단 간추려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어요.”

여노가 내게 미안하단 투로 말했다. 그런 여노를 보며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난 이게 더 좋아.”

“아리 님 마음에 드셨다면 다행이에요.”

여노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 화답하듯, 나도 미소를 보였다.

여노와 아루는 급한 볼일이 있는 건지, 자리를 비웠고, 포포와 자하만이 내 옆을 지키고 서 있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둑어둑해진 백령의 궁은 푸른 빛으로 빛났다. 나는 그 느낌이 좋아 정자에 앉아 궁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리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포포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는 오늘 온종일 맛있는 것을 잔뜩 먹은 탓인지,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쭈, 꼬리 흔드는 거 봐라.

확, 낚아채 버릴까…….

그의 꼬리를 유심히 보자, 이상함을 느낀 건지, 그가 자신의 꼬리를 뒤로 감췄다.

뭐야, 뽀뽀. 눈치 꽤 빨라졌잖아?

“아리……. 너 내 꼬리 잡으려고 했지!”

쳇, 귀신같이 알아채기는.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맞잖아!”

“맞으면 뭐?”

맞아도 여우가 뭐 어쩔 거야?

“이제, 내 꼬리 안 잡힐 거야!”

포포가 굉장한 포부를 말하듯 꼬리를 소중히 잡고 소리쳤다.

흠, 일단 오늘은 참는 게 좋겠다.

쩝.

입맛을 다시며 포포의 탐스러운 꼬리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만, 다음엔 어림도 없다, 여우야.

“자, 이거.”

포포가 그런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그가 건넨 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탕……?

그것은 사탕이었다. 연한 푸른빛이 반짝거리는.

“선물이야. 전에 축제 때 사놓은 건데, 예뻐서 너 주려고 했어.”

아, 그때였구나. 자하와 아루가 노잣돈을 쥐여주고 날려 보낸 날.

그 당시, 자하와 아루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포포를 날려 보냈었지…….

그래도, 나 주려고 사탕을 준비했다니, 이런 기특한 녀석.

뽀뽀가 먹을 것을 양보해주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암, 그렇고말고.

미소를 머금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새빨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이구, 장해라.

“아, 맞다. 아리 님!”

자하가 갑자기 날 불렀다. 나는 포포에게서 자하로 시선을 옮겼다.

“왜?”

“백령 님께 한 번 가보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자하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말을 덧붙였다.

“백령 님께서도 아리 님이 무척 보고 싶으실 겁니다. 오늘 업무가 바빠 찾아오시지는 못하셔도요.”

자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백령이 요즘 바쁘구나…….

안 그래도 아침부터 백령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기분이 축 처져 있던 차였다.

안 오면 내가 가면 되지, 뭐.

앉아 있던 정자에서 일어났다.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백령의 집무실로 가면 그가 있을 것 같다.

“그럼, 나도 오랜만에 형님을 뵈러…….”

포포가 나를 따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이 여우가, 어디서 요망한 짓을 하려고!

“짜하.”

“네?”

“이 여우 좀 막아.”

“아…… 네!”

자하가 포포의 꼬리를 잡고 그를 놔주지 않았다. 꼬리를 잡힌 포포가 양손, 양발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발버둥 쳤다.

“그, 그런 게 어딨어! 나도 형님 보러 갈 거야!”

“어허, 어딜 새끼 여우가 아리 님 가시는 길을 따라가? 어림도 없지.”

“뭐, 이 고양이가!”

“뭐? 고양이?”

항상 같은 주제로 싸우는 포포와 자하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질리지도 않나…….

반복적인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시끄러워지기 전에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유치한 싸움이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정자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혼자서 백령의 집무실로 향했다. 나 혼자 백령의 집무실로 향했던 때는 네발로 기어 다닐 때뿐이었는데…….

그 후, 백령이 오지 말라 했으니까.

익숙한 복도를 지나쳐, 백령의 집무실 앞에 당도했다. 안에서 백령의 기운이 느껴졌다.

천천히 문을 열었다. 혹여나, 문소리가 크게 들릴까, 매우 조심스럽게 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엇이 그리 심각한지,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차오른 달빛을 받아, 그의 푸른 눈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잠시간 그의 아름다운 자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내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내 기운을 느낀 것인지, 창밖으로 향해있던 그의 푸른색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그의 시선에, 집무실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잠시간 집무실 안에 정적이 일었다. 백령의 푸른 눈은 여전히 날 향하고 있었으며, 나 또한 조심스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정적을 깬 건 백령이었다.

“……축제는.”

“으, 응?”

“네 맘에 들더냐?”

백령의 물음에 아주 잠깐 넋을 놓았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나는 그의 물음에 답했다.

“……즐거웠어.”

나의 대답에 그가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다행이군.”

그가 낮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백령.”

그를 불렀다. 그러자, 그가 다시 날 바라보았다. 그에 빠르게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고마워.”

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늦었지만 그에게 전해야 했다. 그리고 많이 늦었지만, 그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무엇이 말이냐?”

백령의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나를 물어와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를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짐승들에게 잡아먹힐까, 두려워하던 그때, 커다란 백색 호랑이가 나를 덮쳤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자, 나를 물고 이곳으로 향하던 그 커다란 백색 호랑이가 눈앞에 떠올랐다.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인간이잖아. 왜 날 데려온 거야, 백령?”

고마우면서도 이유를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내 물음에 백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내 얘기를 듣고 있을 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의 모습에 절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궁금했다. 그가 나를 데려온 이유에 대해서.

미호는 내게 동생인 시호와 닮았다며 구슬을 주었고, 백령이 인간인 나를 데려온 것을 눈감아 주었다. 그렇지만 백령은?

그는 내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 거지?

그는 나를 데려와서 보호하고, 자하를 시켜서 지키게 하고, 내가 즐거워하기를, 행복해하기를 바란다.

대체 왜……?

그저 짐승에게 잡아먹힐까, 동정심에 나를 이렇게까지 극진히 대해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잖아.

구슬을 하사받았기 때문이라 하여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는 구슬의 권능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으니까.

그렇다고 백령이 나를 정말 자신의 아이로 키울 생각 또한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랬다면 그는, 내게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숨기려 했을 테니까. 하지만 은월도, 미호도, 그도, 내가 인간인 것을 내게 숨기려 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이 일에 관해 물어보지도 않았겠지.

백령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체 왜 내게 이리 잘해주는지도.

“백령.”

그를 불렀다. 그가 생각을 마친 것처럼 보였다.

“네가 인간의 삶을 살겠다, 한다면…….”

내가 바라던 답이 아니었다.

“신국을,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지.”

그의 푸른 눈에는 아무런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나는 그에게 아무런 답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백령의 집무실을 나왔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나를 잡지 않았고, 나도 그가 날 잡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여전히 짜증날 정도로 아름다운 궁이었다.

백령이 내게 한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가 날 내려다보며 아주 오래전, 한 말을.

“그래야 내 널 보내줄 수 있지 않겠느냐.”

바닥을 보며 걸었다. 그를 떠올리며 정처 없이 걸었다.

“신국을,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지.”

그는 정말 나를 보내고 싶은 걸까…….

내가 그를 떠나는 게 맞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뒤엉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후련해지고 싶어서 했던 질문이 나를 이토록 답답하게 옭아맬 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내가 완전히 성장하면, 그가 아예 날 보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되는 것보단 차라리 내가 이곳을 먼저 떠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 님?”

바닥을 보며 걸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멈춰 세웠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자타였다.

“자타?”

“아리 님, 여기 계셨군요.”

그는 나를 찾아다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온종일 자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상하긴 했다.

“무슨 일 있어?”

“일단, 동쪽 땅에 오신 지 1년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감축드리옵니다.”

그의 축하 인사에 힘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축하는 고맙지만,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전해야 할 말이 있어 아리 님을 이리 급히 찾았습니다.”

“전해야 할 말?”

그가 내게 전할 것이 뭐가 있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저 멀리 보이는 청화관을 가리켰다.

“청화관으로 가보시지요.”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려 청화관을 바라보았다.

청화관? 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타는 이 이상 전할 말이 없는 것인지, 내게 고개를 숙이고 어디론가 향했다.

이내 자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일단은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발걸음을 움직여 청화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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