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아침이 밝았다. 요즘 너무나도 조용했던 백령의 궁이 아침부터 떠들썩했다.
나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노와 자하, 그리고 아루가 열심히 준비한 열매가 결실을 보았다는 것을.
그래서 아침부터 나는 그 셋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흐음……, 아리 님. 아리 님이 보시기에는 어느 쪽이 좋을 거 같으세요?”
여노의 물음에 아루와 자하가 서로를 노려보며 외쳤다.
“당연히 나지!”
“뭔 소리야, 당연히 나지.”
두 신수가 싸우는 이유는 기가 막힐 만큼 황당한 이유였다.
오늘은 둘 중에 내게 선택받는 한 명만 나랑 꼭 붙어 다니기로 내기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너희 자꾸 왜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결정하는 건데!
“아리 님, 저번에 저랑 불꽃놀이 하시기로 하셨던 거 기억하시죠……?”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미호가 갑자기 나타나서 날 데려가는 바람에 자하는 사흘 밤낮을 울었다고 들었다.
그,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단 말이야?
징하다…….
자하의 말에 아루가 혀를 내둘렀다. 그의 흑색 눈동자가 자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쯧, 지나간 일에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기는.”
아루의 말에 자하가 발끈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뭐? 구질구질?”
“그래, 구질구질. 아리 님, 저랑 가시죠.”
“이 야비한 가짜 범이 뭐라는 거야?”
“뭐, 이 고양이가.”
둘의 말싸움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둘의 싸움에 화병이 나서 죽을지도 모를 일 같았다.
이놈들. 이거, 안 되겠어.
“자하, 아루.”
“예, 아리 님.”
그들을 부르자, 둘이 동시에 으르렁대던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둘이 조용히 나랑 같이 있을래, 아니면 둘 다 저리로 갈래?”
나의 물음에 둘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듯했다. 곧바로 둘이 입을 모아 말했다.
“조용히 아리 님과 있겠습니다.”
둘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러자 여노가 미소를 띤 채로 둘을 내 방에서 내쫓았다.
“아리 님은 이제 준비해야 하니, 두 분은 나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계세요.”
곱게 쫓겨난 자하와 아루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리 님, 아리 님.”
여노가 나를 불렀다. 그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거, 꼭 하고 계셔야겠어요?”
그녀가 내 머리 위에 얹어진 천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왜요?”
“귀를 가리고 싶어서.”
“예?”
여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예쁘고, 백령 님과 똑 닮은 귀를 왜…….”
그게 아니라서 그렇단다…….
하지만 여노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갑자기 생겨서 적응이 안 되는걸…….”
“흐음……. 아, 그럼 이건 어때요?”
여노가 잠시간 내 머리를 보고 고민하더니, 이어 천을 집어 들어 예쁘게 접었다. 그리고는 머리띠처럼 만들어서 내 머리 위에 씌웠다.
“예쁘죠?”
“신기해!”
이건 정말 신기했다. 새삼 여노의 솜씨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 어제 미호 님께 머리끈을 선물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한번 보여 주시겠어요?”
“여기.”
여노에게 푸른 머리끈을 내밀자, 그녀가 집어 들었다. 이내 그녀가 나의 머리를 예쁘게 묶었다.
“어때요?”
“여노, 이런 건 어떻게 알아? 대단한데?”
“헤헤. 앞으로도 이렇게 묶어 드릴게요. 훨씬 덜 답답하시죠?”
여노가 뿌듯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미소에 자하와 아루를 보며 혼미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이제 가볼까요?”
“응!”
여노를 따라 방을 나갔다. 티격태격하고 있던 아루와 자하가 나의 등장에 곧바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어휴, 하여간.
“어? 아리, 나왔네.”
어느새 포포가 내 옆으로 와서 걸었다. 우리가 자주 가던 정자로 향했다.
정자는 정말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평소에도 아름답던 정자였지만, 꾸며놓은 푸른 꽃들로 장식된 정자는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신수들도, 백령의 궁 하인들도 여럿 있었다. 풍악이 울리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도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너희가 다 한 거야?”
“그럼요! 저희가 힘내서 꾸몄습니다.”
나의 물음에 그들이 답했다.
“고마워, 모두들.”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정자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있었다. 바로, 영아와 수하였다.
“어? 영아 님, 수하 님!”
자하와 아루, 여노가 그들을 반겼다. 그들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아리 님.”
“응, 영아. 잘 지냈어?”
“많이 성장하셨군요. 눈에 띄게 달라지셨습니다. 어여쁘신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요.”
영아의 칭찬에 미소로 화답했다. 이내, 영아가 무언가를 내게 건넸다.
“선물입니다, 아리 님.”
영아가 내게 건넨 건 약 같은 것들이었다.
“귀한 재료로 만든 약입니다. 힘드실 때, 혈압이 오르는 상황에 드시면 도움이 많이 되실 겁니다.”
……이거, 좀 많이 먹겠는데?
효과가 좋으면 영아에게 부탁해서 더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서화원을 오래 비울 수는 없는 터라 저흰 곧 가야 하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리 님.”
“고, 고마워.”
영아와 수하가 내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금세 시간이 흘러갔다.
그 사이, 처음 보는 다른 신수들도, 백령의 궁 하인들도 내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내게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는 신수도 조금 있었지만, 아루와 자하가 내 옆을 지키고 있었기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 후, 영아와 수하는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인지,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아! 맞다, 아리 님. 이실직고할 것이 있습니다만…….”
영아가 떠나기 전, 내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이실직고?
영아에게 무슨 뜻이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그녀가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어, 그게, 실은…….”
그녀가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바랑 님께 들켜버렸답니다.”
응?
……뭐라고?
영아의 말에 모두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틈을 타, 영아와 수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평소에 느릿느릿 움직이던 거북이 영아라도, 도망갈 땐 미친 듯이 빨랐다.
자하와 아루가 넋을 놓은 듯이 멍하니 있었다. 우리를 정신 차리게 만든 것은, 얼마 후에 들려 온 달갑지 않은 목소리였다.
“아리야아, 삼촌 왔다.”
……어째 예감이 좋지 않다, 했어.
왜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는 것일까…….
진짜 신이 존재한다면, 내게 이러면 안 됐다. 다른 건 몰라도, 똥개를 보내는 건 진짜 극악무도한 짓이었다.
이제야 영아가 내게 준 약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곧, 똥개를 만날 테니, 혈압 오르는 일이 있으면 먹으라는 거였어.
바랑이 내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언제나 그 뒤를 졸졸 따르던 이랑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바랑 님, 정말 반갑지 않습니다.”
“왜 나한테만 초대장을 안 보낸 거냐? 너희는 진짜 나빴다.”
바랑이 인상을 찌푸리며 자하와 아루에게 말했다.
네가 더 나빠, 이 똥개야.
아니, 너한테만 안 보낸 거 알면 그냥 눈치껏 빠져주면 안 되겠니……?
그가 찌푸렸던 인상을 피며 활짝 웃어 보였다. 오랜만에 자유를 찾은 것처럼 백령의 궁을 방방 뛰어다녔다.
그러더니 다시 돌아와서 아까의 말을 이어 했다.
“아, 혹시 날 잊고 있었던 건가……. 하긴, 나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찾아올 거라 믿은 걸 수도 있지.”
“아뇨, 아예 안 왔으면 했습니다만……. 그것보다 이랑 님은 어디에 버려두고 오신 겁니까?”
아루의 물음에 바랑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하하, 그게, 이랑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나온 거라서.”
“……이랑 님을 미끼로 쓰시고 나온 거군요.”
……불쌍한 작은 똥개.
모두가 이랑을 안타깝게 여기는 듯했다. 단, 똥개만 빼고.
“그게 그거지.”
“후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지금쯤이면 이랑 님이랑 하운이 이를 갈고 있을 텐데요.”
바랑이 숨을 한 번 들이키더니, 무언가 큰일을 결심한 것처럼 목소리를 깔았다.
“쓰읍.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확 도피를…….”
“꿈도 꾸지 마십시오, 바랑 님. 바랑 님이 그렇게 사라지시면 그걸 찾는 건 또 저나 마루가 맡게 될 거 아닙니까?”
“안 찾으면 되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아루가 당장이라도 바랑을 한 대 칠 것처럼 표정을 구겼다.
나였으면 이미 때리고도 남았다.
영아가 준 약을 하나 꺼내, 아루에게 넘겼다. 약을 받아든 아루는 바로 입안에 넣었다.
“너무 그러지 마. 선물도 준비해 왔다고.”
“선물 필요 없으니, 꺼져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자하의 말에 바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마나 고심해서 준비했는데.”
바랑이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똥개가 주는 걸 받아도 될까?
의심 가득한 눈으로, 손을 내밀었다. 종이 같은 것이었다.
“……이게 뭐야?”
나의 물음에 바랑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거, 나, 바랑은 아리가 부르면 언제든지 동쪽 땅으로 오겠다는 서약.”
필요 없다.
어떻게 선물도 이런 똥 같은 걸 줄 수가 있는 거지?
멍한 눈으로 똥개를 바라보았다. 그는 뿌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리 님, 그거 그냥 찢어 버려요.”
“야, 찢으면 궁에 남잖아. 부정 타게. 그냥 태워버리자.”
아루와 자하가 바랑의 선물을 어떻게 소거할지 논의하자, 바랑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매정한 녀석들…….”
너한텐 좀 매정해도 돼, 똥개야.
“그래도 전에 우리 서쪽 땅의 수호석 덕분에 아리가 살았는데, 너무 매정한 것 아니냐, 너희?”
바랑의 말에 아루와 자하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 그게 맞긴 하지…….
이랑이 준 수호석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랑에게 그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미안해. ‘쓰지는 않아’도 버리거나 태우진 않을게.”
절대 쓸 일이 없다는 것을 그에게 강조했다. 그러자, 그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바랑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진지한 눈빛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니까, 아리야.”
“응?”
“사과의 뜻으로 ‘삼촌’이라고 한 번만 불러줘.”
뭣이?
바랑의 부탁에 자하가 펄쩍 뛰었다.
“안 돼요, 아리 님!”
“응?”
“애칭이라니, 그런 건 저한테 먼저 불러주셔야죠!”
자하야,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자하의 말에 아루가 그의 머리를 한 대 때렸다.
“아야.”
“넌 좀 맞아도 싸.”
아루야, 한 대만 더 때려줘…….
바랑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바랑의 기대에 찬 눈을 보니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열어야 했다.
“……똥개.”
“응?”
“이거, 그냥 가져가. 잘 썼어.”
목걸이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의 예상과는 달랐는지, 그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멍하니 애꿎은 목걸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퉤, 차라리 목걸이 돌려주고 말지.
똥개를 삼촌이라고 부를 바엔, 차라리 돌려주는 게 낫다.
“아, 아리야……?”
바랑의 눈이 심히 떨렸다.
“팔 아파.”
“아, 아니, 아리야…….”
“안 받아?”
나의 물음에 바랑이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의 꼬리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바랑이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이름으로 불러줘. 똥개 말고.”
그러고 보니, 일전에도 언제 한 번 나보고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는 것 같다.
흐음…….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다. 그를 바랑이라고 부른다라…….
바랑이 서글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어디로 보나, 비 맞은 똥개의 모습이었다.
“아리 님, 안 돼요. 저런 똥개를 이름으로 부르다니!”
“뭐, 인마?”
자하의 외침에 바랑이 그를 노려보았다.
“야, 네가 똥개라고 불리는 맘을 알아, 인마?”
“전 당연히 모르죠. 똥개가 아닌데.”
바랑이 자하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자하는 그런 바랑을 향해 메롱을 한번 날려주었다.
“일, 열심히 할 거야?”
“응? 일?”
“응.”
네가 일을 안 하니까 힘들어하는 신수가 한 둘이어야지.
“그럼, 아리한테 이름으로 불리면 뭐든지 할 수 있어.”
……한 번만 불러줘 볼까.
“……바랑.”
낮게 읊조렸다. 나의 한마디로 인해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의 말에 바랑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가 감격에 찬 눈으로 눈물을 글썽였다.
“후, 얘들아.”
“예?”
“동쪽 땅에 무덤 하나만 파줘라, 나 거기 묻히게.”
바랑이 자하와 아루를 향해 말했다.
“부정 타게 저희 동쪽 땅에 묻힐 생각하지 마십쇼, 바랑 님.”
“무덤 파헤쳐지고 싶으십니까? 그럼 그러시든가요.”
살벌한 아루와 자하의 말에 바랑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나가는 길은 저쪽입니다, 바랑 님.”
“이제 볼일 끝나셨으면 꺼져 주시지요.”
아루와 자하가 바랑을 끌고 나갔다. 끌려나가면서도 바랑은 발악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야, 이 악마들아!”
끌려가는 바랑을 보며 혀를 찼다.
똥개, 잘 가고 다신 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