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자타의 말에 포포가 내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배고파? 아, 아니야. 그런 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분명 은월을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말이 많던 포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말이 사라졌던 거지?
은월과 만나고 나서 그와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분명 은월과 만나서 안부를 묻다가 내 귀 얘기를……. 어?
그러고 보니, 그때 포포가 마지막으로 내게 말을 걸었었다. 은월과 내가 한창 대화를 하고 있었을 때, 그가 폴짝폴짝 뛰면서 물었었다.
“뭐야, 뭐? 무슨 영향? 구슬이 왜?”
나와 은월은 포포에게 내 상황을 알릴 수 없는 처지였으니, 그의 말에 답을 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포포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나와 은월이 뽀뽀에겐 말할 수 없는 일이 있었어. 그래서 자세히 모르는 뽀뽀는 나와 은월의 대화에서 겉돌았던 것 같아. 이것 때문일까?”
“음……. 아리 님에 관한 얘기인데, 그 여우가 몰랐던 거라면, 걱정되는 마음일 수도 있죠. 외롭기도 했을 거고요.”
그러고 보니, 남쪽 땅에서의 일 이후로 포포는 나의 안전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듯했다. 게다가 바로 옆에서 지켜본 그이니,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에 더욱 걱정했을 수도 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일순간 포포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고의가 아니어도 충분히 그의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타, 나 알았어.”
“네?”
“응, 뽀뽀한테 사과하러 가야겠다.”
“네? 사, 사과를 하신…….”
“그럼 다음에 봐.”
더 이상 자타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당장 급한 건 포포의 오해를 풀고, 그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는 것이었으니까.
“아, 아리 님, 왜 거기서 나오세요?”
마침 방을 지나가던 여노와 마주쳤다. 여노의 손에는 다과가 들려 있었다.
“그거, 나 먹으라고 가져온 거야?”
“네, 아리 님.”
여노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다과를 넘겨받았다.
“고마워, 여노.”
그녀에게 활짝 웃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자, 여노가 얼굴을 붉혔다.
“아, 아리 님. 저한테 화나신 게 있는 거 아니셨어요?”
“응? 괜찮아!”
아무렴 어때, 암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한 손으로 다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방문을 열었다.
“뽀뽀!”
나의 등장에 포포가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오자, 포포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미안해.”
“뭐가?”
“북쪽 땅에서의 일.”
나의 말에 포포가 붉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그냥, 불현듯 떠올랐어. 미안해, 뽀뽀.”
“뭐, 지, 지난 일이니까……. 이제 괜찮아, 헤헤.”
포포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의 사과에 그도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았다.
앞으로 더 신경 써야지…….
“차마 네가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외로워할 거란 생각을 못 했어. 내 잘못이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나의 말에 포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냐니?
“네가 화난 거, 내가 은월이랑 너만 모르는 얘기를 해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닌데……?”
이게 무슨 소리야?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넋 놓고 포포를 바라보았다.
이내 정신을 차린 나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뭐 때문에 화난 건데?”
“나도 싸부 오랜만에 만나는 거였는데, 네가 독차지했잖아!”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안감에 인상을 찡그리고 포포를 바라보았다.
“나도 싸부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었는데, 흐엉.”
그러니까, 나를 걱정해서가 아니고, 나랑 은월의 대화에서 겉돌아서도 아니고, 은월이랑 ‘단둘이’ 얘기를 못 한 게 서럽다는 거지?
그것 때문에 아까 그렇게 화를 냈다는 거지?
순간 머리가 핑, 하고 돌았다. 여긴 어디고, 내가 누구인지 잊을 뻔할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 그래도 네가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번만은 특별히 넘어가 줄게.”
말을 마치며, 포포가 내 손에 들린 과자를 가져가서 입에 넣었다.
이 여우, 선 넘네.
그가 과자를 오물오물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와 상반되게, 그의 미소를 본 나는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뽀뽀.”
“응?”
나의 부름에 포포가 ‘헤헤’ 하며 답했다. 나는 재빨리 그의 꼬리를 낚아챘다.
“진짜, 죽을래, 뽀뽀?”
“아, 아악! 아리야, 왜 그래!”
그를 매서운 표정으로 노려보자, 상황을 파악한 포포가 내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소용없어, 오늘이야말로 기필코 네 꼬리털을 다 뽑아버릴 테다.
나의 무서운 표정에 포포가 사색으로 질렸다.
***
날씨도 좋고 하니, 오랜만에 정자에 나와 앉아있었다.
며칠을 따라다니던 자하는,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힘들어하는 나를 보던 여노가 백령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백령이 그에게 일을 산더미처럼 몰아주었다고 한다.
흥. 여노, 이번만은 괘씸죄 취소다.
“힝, 내 꼬리털……. 아직도 꼬리가 아파.”
포포가 정자에 앉아 자신의 꼬리를 매만지며 볼멘소리를 내었다.
하여간 요망한 여우 녀석, 엄살은. 한두 가닥밖에 안 뽑혔구만.
“아리 님, 여기 계셨군요!”
여노가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방에 없으셔서 찾아다녔답니다.”
“왜?”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어요.”
“응? 회의라면 저번에 했잖아.”
“아니, 중앙 회의 말고요. 헤헤, 일단 따라와 보세요.”
여노가 해맑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우씨, 나도 같이 가!”
꼬리를 매만지고 있던 포포도 나를 따라 달렸다.
여노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백령의 집무실이었다. 집무실 안에는 나와 포포, 그리고 여노와 아루, 자하와 백령이 있었다.
……전보다 많이 복잡해지긴 했구나.
늘어난 인원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해야 합니다.”
“저도 아루와 같은 생각입니다.”
아루와 자하가 근엄한 표정으로 백령을 바라보았다.
뭘 한다는 거야?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 그걸 그냥 건너뛸 수 있겠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옳소, 옳소.”
아루와 자하가 저렇게까지 단합하는 모습은 똥개를 내쫓을 때뿐이었는데…….
낯선 그들의 모습에 여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내 시선을 못 느낀 여노는 그저 말을 보탤 뿐이었다.
“저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령 님. 이건 무척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 중요한 날이 뭐냐고!
나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아루와 자하, 여노가 셋이서 비슷한 말로 계속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제 그만하고 제발 말해주지 않겠어, 얘들아?
결국, 참다못한 내가 그들을 향해 묻는 수밖에 없었다.
“뭘 한다는 거야……?”
나의 물음에 셋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아리 님의 생일 축제요!”
……응?
내가 아는 생일이, 그 생일이 맞나……? 나도 모르는 생일 너희들이 어떻게 알아?
눈만 껌뻑이고 있자, 여노가 친절히 내게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예전에 백령 님께 저희가 아리 님의 생일을 여쭤보자, 정확한 생일을 모르신다고 하셨거든요.”
응. 그건 나도 모르는 건데, 백령이 알 리가 없지.
여노가 계속해서 내 이해를 돕기 위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동쪽 땅에 아리 님이 오신 날을 생일로 대신하기로 했어요!”
아아, 그러니까, 백령에게 물려온 날을 말하는 거지?
그리고 그날을 기념하자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노의 맑은 목소리가 집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그래서! 우리는 소중한 아리 님의 생일에 대한 회의를 위해 이곳에 모인 거랍니다.”
자하와 아루가 여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 님, 어떠세요?”
“어때요?”
“네, 네?”
셋이 눈을 반짝이며 번갈아 가며 내 의견을 물어보는 탓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거, 안 해도 되는데?”
나의 단호한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두가 움직이질 못했다.
응? 내가 뭐 잘못 말한 건가?
“……예?”
자하가 멍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굳이 챙길 필요 없는걸……?”
축제고 뭐고, 그런 것보다 나는 내가 벌써 이곳에 온 지 1년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역시, 구슬의 힘 덕분인가……. 성장도 엄청 빠르고.
“그, 그러시군요…….”
“그럴 수 있죠…….”
셋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니, 내가 내 생일 안 챙겨도 된다는데, 그게 저렇게 슬퍼할 일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단숨에 끝나버린 회의에, 그들은 상당히 실망한 듯하였다.
상황이 얼추 정리된 듯하자, 자타가 밖으로 나갔다. 멍하니 있는 아루와 자하, 여노를 번갈아 보다 나도 집무실에서 나왔다.
집무실 앞에는 자타가 서 있었다.
“……정말 생일을 안 챙겨도 됩니까, 아리 님?”
자타가 내게 물었다. 나보다 키가 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맹금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응, 딱히 챙길 필요가 있을까…….”
“아리 님은 그렇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저 셋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왜일까, 챙기면 쟤들이 할 일도 늘어나잖아.”
나의 물음에 자타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이 중앙 회의 이후에 상당히 지쳐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 생일까지 더해진다면 그들은 정말로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실망한 걸까…….
“그들에겐 그게 기쁨이니깐요.”
“응?”
자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축하는 받는 사람만 기쁜 일이 아닙니다. 축하해 주는 사람도 기쁜 일이죠.”
“그건 그렇지만…….”
“소중한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리 님은 아직 모르시는 것 같군요.”
……아.
자타의 말을 들은 후에야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들떠 있었는지, 그리고 내 말이 그들을 왜 실망하게 만든 것인지.
“파렴치한.”
“네?”
“고마워.”
“…….”
나의 말에 자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이제 파렴치한이라는 말에 놀라지 않네. 종종 써먹어야겠다.
뒤를 돌아 백령의 집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자타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축, 처져 있는 세 신수가 보였다. 그들의 꼬리와 귀가 바닥까지 꺼질 기세로 처져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백령의 앞으로 다가갔다.
“백령.”
그의 이름을 부르자, 백령이 업무에서 눈을 떼고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의 푸른 눈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생일 축제…… 하고 싶어.”
나의 말에 세 신수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그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네가 원한다면.”
백령의 허락에 세 신수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저, 정말요?”
“헤헤.”
“좋아요!”
세 신수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아리 님, 어떤 축제를 원하세요?”
자하가 한껏 들뜬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내 명이라면 별도 따다 줄 기세였다.
음……. 딱히 그런 것까지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그때, 간절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짜하, 축제라면 다른 땅의 신수들도 오는 거지?”
“예? 그건 그렇죠. 하지만 백령 님의 궁 안에서 할 것이라, 아무나 못 들어올 겁니다.”
“나, 간절한 부탁이 하나 있어.”
나의 말에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다들 나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똥개를 만나지 않게 해줘.”
진짜, 간절하게 빈다. 똥개를 만나지 않기를.
“예? 서쪽 땅으로는 초대장도 안 보냈는데요? 아, 서화원에는 보냈어요.”
서화원 정도는 괜찮지. 영아랑 수하도 오랜만에 볼 수 있고.
근데 잠깐만, 이미 초대장을 보냈다고?
“이미 초대장을 보냈다니?”
나의 물음에 백령을 제외한 모두가 헛기침을 했다.
……너희, 이미 일 다 벌여 놓고, 회의랍시고 내 의견 물어본 거야?
왜 항상 내 의견은 뒷전이냐고, 이 녀석들아!
“흠흠, 아무튼 아리 님. 우리 궁은 늑대 출입금지입니다.”
근데 자꾸 똥개가 쳐들어오잖아!
나의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에, 자하가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하, 하지만 바랑 님은 이번에 소식도 접하지 못할 테니, 못 올 거예요! 게다가 은월 님한테 말해서 일도 잔뜩 추가해놨어요!”
……치밀하다, 치밀해.
어째, 나보다 얘네들이 똥개를 더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자하의 말에도 자꾸만 불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나,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걸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 태평한 세 신수는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좋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