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67)화 (67/167)

67.

“얘 뭐냐……?”

자하가 자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래 님의 하인이자, 반란군의 수장이셨던 자타 님입니다.”

여노가 친절하게 자하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그녀의 답에, 자하가 인상을 구기고 소리쳤다.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니라고! 왜 이 자식이 우리 어여쁜 아리 님 방에 있는 거야!”

넌 왜 있는데……?

나는 맹세코 자하를 부른 적이 없건만, 아침부터 내 방에 달려와서 하는 소리가, 바로 저 소리다.

자하가 그를 안 좋게 바라보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그를 경계할 줄은 몰랐던 터라,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아리 님, 그냥 미호 님께 말해서 이 자를 멀리 쫓아버리는 건 어때요? 아니,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나 됩니까?”

자하가 자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자하의 그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자타는 아무런 말도, 반응도 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내 방으로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아루가 들어왔다. 그의 눈은 퀭했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자하의 시끄러운 목소리 때문에 거슬려서 온 것 같다.

자하가 막 들어온 아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아루. 잘 들어봐. 이게 말이 돼? 우리 아리 님을 해치려 했던 이 자식이 뻔뻔하게 아리 님 방에 있는 게 말이나 되냐고!”

흥분에 찬 그의 고함에 여노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귀를 막았다.

“일단 진정해, 자하.”

“뭐? 진정? 넌 이 상황에 진정이 되냐?”

침착한 아루의 말에도 자하의 흥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아루가 그런 자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끝난 얘기, 붙잡고 있어 봤자 변하는 건 없어.”

“아니, 아루!”

“미호 님이 결정하신 일이라며. 우리가 여기서 왈가왈부한다고 해결이 돼?”

냉정한 아루의 말에, 자하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단 지금은 같이 아리 님을 보좌하는 입장이니까.”

“…….”

“싸워봐야 득 될 것도 없어.”

아루의 말에 자하가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그는 납득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 없어?”

“무슨 자신?”

자하의 표정이 굳힌 채로 되물었다. 그에, 아루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리 님을 곁에서 지킬 자신. 저런 새 한 마리도 겁나?”

“누가 저런 새를 겁내?”

그래. 상성 상 고양이가 우위이긴 해.

아루의 말에 발끈한 자하가 다시 한번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럼 네가 앞으로 꼭 붙어서 지켜드리면 되잖아?”

맞아, 앞으로 꼭 붙……. 잠깐만, 뭐라고? 아루야?

아루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 두 귀를 붙잡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방금 끔찍한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의 청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자하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그의 귀와 꼬리가 쫑긋, 세워졌다.

“듣고 보니 그렇네. 네 말대로 앞으로 자나 깨나 아리 님의 곁에 꼭 붙어 있으면 되니까.”

……? 아니, 왜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건데?

이거 맞아, 아루야?

아루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냈지만, 아루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래, 앞으로 그러면 된다고.”

“아루, 이번만은 인정할게. 넌 대단한 녀석이야.”

자하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눈빛으로 아루를 바라보았다. 아루는 여전히 뚫어져라, 노려보는 내 눈빛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지?

아루, 네가 날 이렇게 배신을 해?

아까 길길이 날뛰던 모습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자하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리 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앞으로 눈 떴을 때부터 감을 때까지 아리 님 곁에서 떨어지지 않겠습니다.”

“응……?”

난 다른 그 무엇보다 그게 제일 걱정인데?

왜 내 진짜 걱정은 몰라주는 거니, 자하야…….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짜하, 그럴 필요 없…….”

“불안했던 아리 님의 마음, 저, 자하는 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미호 님이 저를 아리 님 곁에 붙여서 떨어트려 놓지 않겠다는 뜻이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니…….”

“아리 님은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미호의 숭고한 뜻을 네 맘대로 곡해하지 말라고, 이 바보야!

자하는 나의 말을 들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밝아진 자하를 보며 여노가 조심스레 아루에게 엄지를 척, 추켜세웠다.

그에 아루도 여노에게 엄지를 추켜세우고는 미소 지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이거 또 너희끼리 짠 거지……? 그런 거지?

이런 나쁜 놈들…….

너희, 다 괘씸죄야.

***

그 이후, 자하는 정말로 자나 깨나 내 옆에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심지어, 씻으러 갈 때도…….

“아리 님. 저는 아리 님을 지키기 위해 따라가야…….”

“저리로 가! 다가오면 죽을 줄 알아!”

내 삶의 질이 뚝, 뚝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

어디서부터, 무엇이 이리도 크게 틀어져 버린 걸까……?

“자하 님이 정말로, 그날 이후로 아리 님을 졸졸 따라다니네요. 이 정도일 줄이야…….”

“여노.”

“네?”

“조용해.”

화내기 전에.

이게 다 너와 아루가 짠 판이렷다. 그런 것이렷다.

진정으로 날 생각했다면 이러면 안 됐어, 알아?

입안을 가득 부풀리고, 원망스러운 눈길을 그녀에게 보내자 그녀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인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흥.”

“아, 아리 님…….”

오랜만에 보는 뾰로통한 나의 모습에 여노가 적잖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포포와 나란히 앉아 계획을 짜고 있었다.

“뭐야? 그래서 그 초록 강아지랑 안 노는 거야?”

“뽀뽀, 목소리가 커.”

나의 주의에도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에이, 난 또 뭔가 했네. 그 고양이도 네가 걱정돼서 그런 거잖아.”

포포가 나를 어린애 취급하듯, 혀를 찼다.

어쭈? 이게 남의 일이라고 막 말하네?

“뽀뽀, 네가 한 번 자하와 온종일, 자나 깨나 붙어 있어 볼래?”

“……다시 생각해보니 그거 엄청 큰일이네.”

포포가 붉은 눈을 깜빡이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포포와의 대화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북쪽 땅에서부터 그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었기 때문이다.

“근데, 넌 요즘 뭐 하느라 코빼기도 안 보였던 거야?”

“흥, 네가 알아서 뭐하게.”

나의 말에 포포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요것 봐라?

포포의 폭신하고도 탐스러운 꼬리를 확, 잡아챘다.

“말, 안 해?”

“아악! 이거 놔, 아리야!”

“말해! 뭔 짓하고 돌아다녔어!”

“아무것도 안 했어!”

포포가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붉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히자, 당황스러움에 포포의 꼬리를 놓았다.

그러자, 포포가 자신의 꼬리를 재빨리 숨겼다.

“씨이. 아리 너, 미워.”

“으, 응?”

“몰라. 너 미워, 저리 가!”

포포가 울먹이며 내게 소리쳤다. 그의 낯선 모습에 얼떨결에 내 방에서 내가 쫓겨났다.

……거기 내 방인데, 뽀뽀야.

네 방은 옆 방이라고.

어쩔 수 없이 옆 방으로 향했다. 방에 앉아 포포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뽀뽀가 갑자기 왜 저러지?

북쪽 땅에서부터 아무 말 없던 그였다.

가만, 뽀뽀는 분명 처음에는 활기찼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기억을 차근히 돌아보았다. 하지만 내 기억 상, 포포는 항상 내 옆에 붙어있었고,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리가 만무했다.

그걸 내가 몰랐을 리 없는데.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

사화에게 한 소리 들었나? 아닌데, 이번에 자하도 그렇고, 포포도 그렇고 딱히 사화랑 말다툼한 적 없는데.

가만히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아?”

“아, 아리 님이 여기 계시는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자타였다. 그가 당황하며 문을 다시 닫으려 했다.

“들어 와.”

그러고 보니, 그가 동쪽 땅에 온 이후로 나와 말 한번 섞은 적이 없었다. 요즈음, 자하 때문에 내 상태가 말이 아니라.

자타가 군소리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명을 기다리듯, 내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앉아.”

나의 옆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에 자타가 잠시 망설이다 내 얼굴을 보고 내 옆으로 와, 앉았다.

“……아리 님은 제가 안 무서우십니까?”

“응?”

“제가 아리 님을, 흑기에게 넘기려 했잖습니까.”

“응, 맞아. 이 파렴치한아.”

나의 말에 최근 목석과도 같던 자타의 동공이 흔들렸다.

“파, 파렴치…….”

그가 나의 말에 충격이라는 듯, 말을 더듬었다.

감히 나를 흑기에게 넘기려고 했는데, 뭘 그 정도 호칭에 놀란담?

그를 나타내기에 파렴치한만큼 완벽한 단어는 없었다.

“암튼, 파렴치한아.”

“파, 파렴치……. 예, 예. 아리 님.”

“지금은 후회하지?”

나의 물음에 그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푸른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응시했다.

“……반란을, 후회하냐 물어본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말하겠습니다.”

“응, 나도 그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누군가를 이끌며 앞장서서 목소리를 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아리 님을 그들에게 넘기려 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아리 님은, 어째서 제가 후회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자타의 물음에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맹금류 눈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랬잖아.”

그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그가 멍하니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아직도 그때 일은 괘씸하다고 생각하지만…….

“아, 맞다. 자타.”

“……네?”

그를 부르자, 그가 한동안 놓고 있던 정신을 잡은 듯했다.

“뽀뽀가 화를 내.”

“……네?”

“왜일까?”

나의 물음에 자타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뽀뽀라면…….”

“내 옆에 붙어 다니는 새끼 여우.”

“아.”

그가 포포를 떠올렸는지, 나의 설명에 탄식을 내뱉었다.

“그가 화를 냅니까?”

“응. 이유를 모르겠어.”

“……제게 묻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응? 그야……. 여노와 아루는 괘씸해서 만나기 싫은데, 자하는 포포가 화낸 이유보다는 ‘화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당장 뽀뽀의 꼬리를 잡으러 갈 것이 눈에 훤했으니까.

하지만 굳이 이 설명을 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네가 마침 있으니까.”

“……아리 님은 원래 이런 사소한 것도 아랫것들에게 말하십니까?”

“응? 아랫것들……?”

“아, 나래 님이 저희를 칭하실 때 하셨던 말입니다.”

……나래는 일단 기본 예의범절부터 익혀야겠구나.

여노를 시켜 노군에게 편지라도 한 통 보내야겠다.

“사소한 얘기라 기분 나빠?”

“아니요, 나래 님은 항상 저희에게 ‘아랫것들 주제에 뭘 그리 알려 해? 말하면 들어 먹기나 하겠어?’라고 종종 말씀하셨으니까요.”

……문제가 많이 심각했구나.

그냥 사형을 내리는 편이 맞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미호한테 말해 볼까……?

아, 아니야, 아리야. 그런 생각하지 말자. 걔는 아직 어리니까……. 그래, 그래.

“자타, 너는 남쪽 땅이 좋아?”

“제 고향이니까요. 고향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그건 그렇네.”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다…….

“……전 사실 그렇게 애착이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응? 그런데 왜…….”

반란군의 수장까지 맡은 녀석이, 어째서?

“하지만, 점점 시들어가는 남쪽 땅을 보며 왠지 모를 분함을 느꼈습니다. 남쪽 땅에는 용기 있게 나설 사람이 필요했고, 제가 나선 것뿐입니다.”

“그래?”

“그렇게 되면서, 남쪽 땅에 오히려 애착이 생겼습니다.”

흐음…….

기본적으로 남쪽 땅을 사랑했던 것 같은데, 다만 본인은 그걸 늦게 깨달았을 뿐.

굳이 자타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지는 않았다.

“나래의 처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나의 물음에 자타가 잠시 눈을 감았다. 곧, 생각을 마친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남쪽 땅의 통치자가 바뀐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그래?”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가 약간 후련해 보였다.

나의 시선을 느낀 그가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흐음……. 아무튼 그 새끼 여우가 화난 이유를 모르겠다는 겁니까?”

“응. 북쪽 땅, 중간부터 계속해서 말이 없었어.”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떻습니까?”

“마지막으로 한 말?”

나의 물음에 자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란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목소리를 내는 것부터 시작하죠. 그 새끼 여우의 화도 별반 다를 것 없을 겁니다.”

어……? 그럴싸한데……?

그의 말에 무언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포포가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이 뭐였더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