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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65)화 (65/167)

65.

은월의 미소에 잠시 넋을 놓고 있을 때 즈음, 사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여기 계셨군요.”

사화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목소리에 다들 일제히 그녀에게로 시선이 갔다.

백령과의 얘기는 끝난 건가.

“미호 님이 도착하셨으니, 곧 회의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사화의 말에, 모두가 그녀를 따라 전각으로 들어섰다. 아까의 빈 탁자와 의자에는 미호와 백령이 앉아 있었다. 미호의 곁에는 오랜만에 보는 마루가 서 있었고, 백령의 곁에는 여노와 자하가 서 있었다.

나는 백령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근처로 가자, 앉으라는 듯, 자하가 백령 옆에 있는 의자를 빼주었다.

바랑과 이랑, 은월까지 자리에 앉자, 미호가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모두, 이번 회의가 왜 열린 건지 알고 있지?”

그녀의 물음에 신수들은 미호를 바라만 볼 뿐, 아무도 먼저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미호 또한 대답을 바라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먼저 나래의 처벌을 논의하도록 하지, 마루.”

미호의 말에 마루가 어디론가 나갔다. 얼마 안 가, 마루가 다시 돌아왔고, 그가 돌아왔을 때, 그의 옆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침울해 보이는 표정으로 천천히 마루의 옆에서 걷고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녀.

그녀는 나래였다.

나래의 등장에 모두가 무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동정을 하지도, 그녀를 비관하는 눈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매우 냉정했다.

나래는 이 자리, 자체가 굉장히 불편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또한,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은월, 나래가 무슨 죄를 지었지?”

미호는 그녀의 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었지만, 절차상 묻는 것 같았다. 은월이 무심히 대답했다.

“그녀는 동쪽 땅의 작은 주인, 아리에게 향의 냄새를 맡게 해, 의도적으로 그녀를 위험에 빠트렸다. 이는 신국의 규율을 어긴, 중죄이다.”

은월의 대답에, 전각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너희들의 생각은 어때?”

그녀가 옅은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나래가 받게 될 처벌. 어떤 게 적당하다고 생각해?”

미호가 탁자에 앉아 있는 모두를 향해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잠시간 신수들은 생각에 잠겼다.

“사화, 네 생각은 어때?”

미호가 사화에게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사화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음……. 미호 님, 제 생각엔 그녀의 죄는 충분히 중죄이지만, 초범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리’ 님은 여기 무사히 계시니, 주인 자리에서 물러나는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화의 말에 미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경미한 처벌이 아닌가?”

미호의 물음에 사화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그저, 전 제 생각을 말한 것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미호 님.”

“그래, 네 생각이라면 그럴 수 있지.”

미호가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바랑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랑, 네 생각은 어떻지?”

미호의 물음에 바랑이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나?”

그래, 너, 인마.

“아직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똥개가 생각이란 걸 한다고?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랑을 쳐다보았다. 심지어 옆에 앉은 이랑마저.

“그래? 그럼, 백령, 네 생각은 어때?”

미호가 바랑에게서 시선을 옮겨, 백령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물음에 백령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사형.”

백령이 무심히 말했다. 그의 푸른 눈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의 무심한 말투가, 오히려 무섭게 다가왔다.

절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니까.

매서운 백령의 말에, 그 누구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모두 짐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래의 표정이 사색으로 질렸다. 이 정도의 처벌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처럼 보였다.

“너, 너무 강한 처벌 아니야? 내가 그 정도로 잘못을 하지는……!”

나래의 외침에 미호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미호가 차가운 눈동자로 나래를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 네가 발언하는 것을 허락했지?”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백령과 은월을 제외한 모두가 차가운 그녀의 말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건, 나래 또한 마찬가지였다.

“……죄송합니다, 미호 님.”

나래의 사과에 미호가 그녀에게서 눈을 떼고, 다시 백령을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큰 처벌을 생각하게 된 이유가 뭐지?”

“그녀는 흑기와 내통했으니.”

백령에게서 나온 ‘흑기’라는 말에 나래가 고개를 숙였다.

……나래의 죄는 단순히 날 해치려 한 것이 끝이 아니었지, 참.

“그 정도의 처벌은 당연한 거 아닌가?”

백령의 물음에 한동안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미호가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랑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바랑, 네 발언만 남았어. 넌 어떻게 생각하지?”

미호의 물음에 바랑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새끼 새의 죄는 무거운 게 맞아. 하지만, 사형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은데.”

“왜?”

“그녀가 흑기와 내통했다 해도, 아직 흑기의 행방을 알지 못하잖아?”

그의 말에 모두가 일제히 바랑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나래가 잡혔음에도, 흑기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고. 그렇다는 건, 흑기의 행방과 나래와는 관련이 없다.

결론은, 나래는 흑기를 도운 게 이번이 처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 바랑의 말이 맞아! 나는 이전에 흑기를 도운 적이 없어, 진짜야!”

나래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렇다고, 흑기를 도운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미호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래가 울상이 되었다. 그녀의 황금색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사형은 너무한 처사 아닌가? 나래가 저리된 데에는 어느 정도 남쪽 땅의 책임도 있잖아.”

바랑의 말에 일순간 전각 안이 조용해졌다. 미호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 반박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의 상황이 안타까운 건 사실이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중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 어려운 문제였다.

사실, 그녀의 권위를 박탈시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삶은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전과 다를 테니까.

그럼, 나래의 저 못돼먹은 마음씨도 좀 괜찮아지려나…….

미호가 생각을 마친 듯,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은월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마지막으로 은월, 네게 물을게. 넌 어떤 처벌이 좋을 거 같아?”

미호의 물음에 은월이 턱을 괬다.

“아리가 가장 마음이 편한 처벌.”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었다.

“그게 제일 중요할 거 같은데.”

“아…….”

은월의 말에 미호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린 것처럼 탄식을 내뱉었다.

미호의 아름다운 자색 눈동자가 이번엔 나를 향했다.

“어떤 처벌이 좋을 것 같아, 아리야?”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생각지 못한 질문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생각해보았다. 나래에 대해서.

그녀가 내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건 사실이다. 이렇게 일이 커질지 몰랐다고 하나, 그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아직 어린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틀어진 탓에, 이리된 것 같았다.

백령이 말한 대로, 이번 죄로 인해 그녀가 죽는다면 내 마음이 편할까?

상상해 보았다. 그녀가 사형당하게 되는 것을. 나의 마음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화가 말한 정도의 가벼운 처벌은, 그것 또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래가 너무나도 괘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가벼운 처벌이라면 과연 그녀가 자신의 죄에 대해 후회할지,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가 자신이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 누군가를 해하려 한 것을 후회하고 참회하게 만들 처벌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나래는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자신의 뜻에 반하는 것을 싫어하는 듯했다. 특히, 자신보다 아래라고 느끼는 신수에게 쓴소리를 듣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았다.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에게 어떤 처벌을 내려야 내 마음이 편해질지, 생각이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사형이라는 벌을 받는 걸 원하진 않아.”

나의 말에 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래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백령과 은월은 그저 조용히 날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화의 말대로 그런 경미한 처벌 또한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미호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녀의 모든 권위를 박탈하고, 그녀가 내가 아는 누군가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면 좋겠어.”

나의 말에 미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리가 아는 신수? 누구?”

“노군.”

“노군?”

미호가 되물었다.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노군이라면, 나래를 바른길로 인도해주지 않을까, 싶어. 물론, 그녀가 나를 위험에 빠트린 것도 맞고,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건 맞지만, 그녀가 사형당하는 건 바라지 않아.”

노군이 나래에 의해 궁에서 쫓겨난 것을 떠올렸다. 나래는 자신이 내쫓았던 상대의 말을 앞으로 따라야 한다. 그것은 그녀에게 꽤 크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확신할 순 없지만, 그녀가 참회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미호가 잠시간 생각에 빠졌다. 노군이 누구인지 기억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혹시, 나래의 궁에서 쫓겨난, 그자?”

“응응.”

“은월, 네 생각은 어때?”

나의 대답에 미호가 고개를 돌려 은월에게 물었다.

“아리가 원한다면, 괜찮을 거 같은데.”

은월이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미소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이건 너무 가볍지 않아?”

“그래서 조건이 붙잖아.”

“응?”

나의 뜻을 이해 못 하는 미호를 보고 은월이 입을 열었다.

“그냥 주인의 자격을 박탈하는 게 아니야.”

“그럼?”

“노군의 말을 무조건으로 들어야 하는 거지. 아리의 핵심은 거기에 있어.”

은월의 친절한 설명에도 미호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나래에 관해 아직 파악하지 못한 미호는, 이게 나래에게 얼마나 치명적일지 이해가 안 가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사형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가벼운 처벌이 맞다. 하지만, 사형이 너무 무거워 보여서 그렇지, 막상 나래가 이 처벌을 받는다면 굉장히 자존심 상해할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던 자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아래라 생각했던 자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는 건, 굉장히 치욕스러운 일이니까.

지금이야 나래는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지 몰라도, 막상 닥쳐보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애초에 나래의 성격이 그러니까.

“아리의 의견에 의의 있으면 말해.”

미호가 백령과 사화, 바랑을 돌아보며 말했다. 미호의 말에 모두들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내 눈을 감았다. 나의 의견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아리의 뜻을 따를게.”

미호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래.”

그녀가 차가운 눈으로 나래를 바라보았다. 나래가 미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녀의 차가운 어조가 전각에 낮게 깔렸다. 그녀의 눈빛엔 살기가 서렸다.

“그땐, 내가 친히 네 목숨을 거둘 줄 알아.”

미호의 경고에 나래가 몸을 떨었다. 그녀가 저렇게까지 떠는 건 처음 보았다.

“대답, 안 해?”

미호가 매섭게 물었다. 나래는 덜덜 떨리는 입으로 재빨리 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미호 님.”

미호가 나래의 대답에 그녀에게서 눈을 뗐다. 그제야, 나래는 떨리던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인데.”

바랑이 중얼거렸다. 그의 중얼거림에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결과인 것 같지 않아?”

바랑이 능청스레 물었다. 모두 바랑의 물음을 들은 것 같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대답을 주지 않았다.

역시 똥개의 말은 거르고 보는 게…….

“이제 다음 사안으로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미호 님.”

옆에 있던 마루가 미호에게 말하자, 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가 말하는 다음 사안은…… 아마 자타의 일이겠지.

마루가 또다시 어디론가 향했다. 곧이어, 내가 예상한 대로 마루의 옆에는 자타가 서 있었다.

……미호는 과연, 내가 말한 것을 들어줄까?

일전에 내가 미호에게 부탁했던 것.

자타를 내게 달라는 부탁.

긴장한 채로, 미호를 바라보았다. 미호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는 그대로였다.

“그럼, 이제 이 자의 처벌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지.”

미호의 목소리가 차갑게 깔렸다. 그녀의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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