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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62)화 (62/167)

62.

그들의 신경은 온통 나의 ‘성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렇기에 난감했던 나는 일단 흥분한 그들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얘, 얘들아…….”

“네, 아리 님!”

일제히 답하는 그들에게는 조금의 의심도 보이지 않았다.

“잘 봐봐.”

손가락으로 내 귀를 가리켰다. 그러자 자하와 아루, 여노가 일제히 나의 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어……?”

여노가 이상함을 눈치챈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해했다.

거봐, 잘 좀 봐보라니까. 나 호랑이 귀가 아니라, 여우 귀라고!

그런데, 정작 여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관이었다.

“모양이 참 예쁘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여노는 ‘아리 님이라 그런지, 귀 모양도 너무 예쁘셔요.’라는 말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게, 모양도 어쩜 이렇게 곱지?”

“아리 님이라 그래.”

아까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던 아루와 자하는 서로 맞장구치기 시작했다.

……이 바보들을 어찌 하면 좋을까.

여노마저 못 알아챘다면, 내가 말해주는 게 맞겠지…….

“아니, 얘들아! 나 귀가 여우 귀야!”

나의 외침에 그들의 동작이 일시 정지되었다.

그들이 다시 한번 일제히 나의 귀를 들여다보았다.

“헐……?”

“진짜네요?”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제야 내가 생각했던 반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동자가 각기 다른 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일단 우리 백령 님한테 가볼까?”

“그, 그래요. 백령 님한테 먼저 가서 전후사정을 파악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당장 백령 님한테 가죠.”

그들의 손에 이끌려 백령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백령은 여전히 업무를 보고 있는 듯하였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들어온 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조금 긴장이 되었다. 나의 정체가 그들에게 탄로 난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일지 너무 불안했다.

그들의 호의는 내가 백령의 아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냥 주워 온 인간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궁금하면서도 걱정되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공간이 숨이 막힐 듯이 조여왔다. 나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뛰는 심장 소리에 더욱 긴장이 고조되었다. 진정하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자하와 아루, 여노, 셋은 백령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자하가 옆에 서 있는 아루의 팔을 툭, 툭, 건드렸다.

“야, 네가 말해.”

“그걸 왜 날 시켜, 네가 말해.”

“네가 나보다 꼬리 길잖아.”

“그게 뭔 상관이야?”

아루가 자하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여노가 한심한 말다툼을 시작한 두 신수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보다 못한 여노가 입을 열었다.

하여간, 여노보다 못해, 너희!

“저어……, 백령 님.”

“무슨 일이지?”

“아리 님의 귀가, 여우……의 귀인 것 같아요.”

여노의 말에 백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두루마리에서 시선조차 떼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백령의 반응이 매우 의아한 듯했다. 태연한 걸 넘어서,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지 않은가.

물론, 나도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는 거지?

자하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백령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리 님의 귀가, 호랑이 귀가 아닌, 여우 귀라니까요, 백령 님!”

자하의 말에 백령이 그를 쳐다보았다. 백령의 푸른 눈이 무미건조했다.

“너희가 잘못 본 것 같군.”

응……?

이게 무슨 소리지?

그에게서 나온 대답은 그의 반응보다 더 기가 막혔다. 셋이 일제히 나의 여우 귀를 보았는데, 그걸 잘못 보았다고 하다니.

“아, 아니. 아리 님의 귀가……!”

백령에게서 돌아서서 나를 본 자하가, 그대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자하뿐만 아니라 아루와 여노도 마찬가지였다.

얘들 반응이 왜 이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멍하니 있는 세 신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세 신수는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백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백령 님, 저희가 잘못 본 게 맞습니다.”

뭐?

이게 무슨 상황이야, 대체?

포포도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포포에게 다가가, 그의 귀를 잡아당겨, 귓속말을 시도했다.

“뽀뽀, 왜 그래?”

“으응. 있잖아, 아리야. 네 귀, 지금은 호랑이 귀야.”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하지만, 포포까지 합쳐 네 신수의 반응이 저러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하와 아루, 여노는 아까의 그 혼란스럽던 표정은 어디 가고, 안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왜 너희의 눈을 믿지 못하니, 얘들아?

뭐, 나로서는 다행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찝찝했다.

왜 갑자기 저들의 눈에 내 귀가 달리 보인 거지?

“헤헤, 예쁜 호랑이 귀네요, 아리 님.”

“아까 우린 다 함께 헛것이라도 봤나 봐.”

“그러게. 저렇게 예쁜 호랑이 귀인데.”

……그래, 그러면 됐지, 뭐.

어쨌든, 그들의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으니, 그걸로 된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멋쩍게 웃는 세 신수를 보던 백령이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백령의 집무실 안에 그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오랜만에 아리와 둘이 얘기를 나눠보고 싶군.”

백령의 푸른빛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났다. 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뒤늦게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뭐? 나랑 단둘이 얘기를 해?

난 좋아. 물어볼 것도 있고.

“아, 예, 백령 님. 저흰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세 신수가 백령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나가기 위해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눈치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선택적 눈치 장애 우리의 포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난 여기 있을래.”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좋은 말할 때 따라와라, 새끼 여우야.”

“우씨, 누가 새끼 여우래?”

발끈하는 포포를 보며 자하가 혀를 찼다. 그의 혀에 포포의 꼬리가 바짝 섰다.

오히려 자하가 잡기 좋아진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자하가 포포의 꼬리를 잡고 그를 데려갔다.

“야, 놔! 안 놔? 이 고양이가!”

“시끄러, 이 새끼 여우야.”

소란스럽게 퇴장하는 두 신수의 모습에 절로 고개를 저었다. 백령의 푸른 눈동자는 문을 향해 있었다.

이윽고, 문이 완전히 닫혔다. 그제야 백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불안했느냐.”

그제야 알아차렸다. 내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백령의 말에 긴장이 확, 풀렸다. 백령은 아마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의 다정한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령, 어, 어떻게 한 거야?”

“눈속임일 뿐이다.”

“나는, 왜 여우 귀를 가지고 있는 거야?”

나는, 인간인데.

나의 물음에 백령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닌 듯하였다.

생각을 마친 듯한 백령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아마, 구슬의 영향일 것이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의 부드러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 손에 들려 있던 면사를 내 머리 위에 얹었다.

“대부분의 신수는 아마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미호와 은월 정도는 눈치챌 수도 있지만.”

아, 미호와 은월은 백령만큼이나 강한 신수라서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백령과 신력이 비슷한 상대를 속이는 건 쉽지 않으니까.

내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백령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혹시 모르니, 중앙 회의에서는 가리는 게 좋겠군.”

“응, 알았어.”

확실히 보여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았다. 바랑이나 사화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안전하게 가리는 게 좋겠지.

이제 내 귀에 대한 의문은 거의 풀렸다. 뭔가 더 말할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였더라…….

“그러고 보니, 자하랑 가고 싶다 하는 걸 들었다.”

아, 맞아. 자하!

자하 얘기를 했어야 했지, 참.

“그와 함께하고 싶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자하가 난 더 편하기도 하고…….”

“전엔 자하를 거부하지 않았던가.”

백령, 너의 말엔 크게 틀린 부분이 하나 있어. 지금도 거부하고 있어. ‘전엔’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소리를 입 밖에 낼 순 없었다. 난 지금 자하와 함께 하겠다고 말했으니까.

물론, 자하와 함께 가면 더 신경 쓰이고, 귀찮고, 피곤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하의 굳은 표정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표정을 보고 어떻게 그냥 궁에 있으라고 해.

곤란해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백령이, 이내 시선을 돌렸다.

“네 뜻이 그렇다면, 그리하도록 하지.”

“으응, 고마워.”

다행히 백령이 내 의견을 존중하는 듯했다. 자하가 간다면 백령 또한, 신경 써야 할 게 많을 것이다. 일단, 아루보다 고분고분하지 않고 사고뭉치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백령이 다시 두루마리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나는 이쯤에서 가는 게 낫겠지……?

그에게 방해가 될까,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의외로 그의 낮은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조금만.”

“응?”

“조금만 더 있다가 가는 것도 좋을 것 같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아름다운 푸른빛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었다. 그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짜 조그만…….

백령의 집무실 한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자 그는 다시 일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가 일하는 모습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건지 모르겠지만 꽤 오랫동안 그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내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 졸면 안 되는데…….

그의 모습을 좀 더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하지만 긴장했던 탓인지, 몸이 내 멋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곧이어 의식이 흐려졌다.

***

백령이 정신없이 일들을 처리하고 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밤이 드리웠다. 집무실 안을 보았다. 일에 정신이 팔려, 아리가 잠들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그였다.

많이 긴장했던 탓에 아리는 의자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백령은 자신의 도포를 벗어, 아리에게 덮어주었다.

그가 아리를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새근새근 잠을 자는 모습이 신기했다.

‘피곤하면 방에 가서 자도 됐거늘…….’

혹여 아리가 자신의 말 때문에 불편하게 잠든 건가 싶어, 백령의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백령이 아리를 들어 올렸다. 저번에 봤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아리가 깨기라도 할까 봐, 백령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은 아리의 방이었다.

백령이 집무실에서 나오자, 아루와 자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백령 님…….”

“아리 님이 많이 피곤하셨나 보네요. 저희가 방에…….”

다가오는 자하와 아루를 백령이 저지했다.

“그럴 필요 없다. 내가 하지.”

백령의 말에 아루와 자하가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들이 백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하.”

“네, 백령 님.”

“북쪽 땅에 갈 채비를 해라.”

백령의 말에 자하가 놀란 듯이 백령을 바라보았다. 그의 푸른 눈을 본 자하가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복받쳐 오름을 느꼈다.

“배, 백령 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다. 무엇보다, 아리가 그리하고 싶다 하니.”

백령의 말에, 아루는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평소에 말을 번복하지 않는 백령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 한마디로 그가 말을 번복할 정도라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말짱 도루묵이었다.

‘아리 님이……. 정말로 나를 위해서…….’

자하가 백령의 품에 안긴 아리를 보았다. 백령 님의 아이인 걸 처음 알았을 때와 체구도, 얼굴도, 모습도 많이 변한 그녀였지만, 그녀의 따뜻한 마음은 여전하다 느꼈다.

아리를 만나기 전, 의회에서 처음 백령 님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란 그였다. 의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백령 님의 아이를 얼른 보고 싶어 보고도 잊고 달려갔었다.

그리고 자하는 그곳에서 동그랗고 커다란, 아름다운 푸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리를 보며 자하는 그녀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남쪽 땅의 일을 들은 자하는 상심이 컸다. 다행히 그녀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돌아온 그녀는 정말로 괜찮아 보였지만, 자신이 지켜줄 수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일도 백령의 명을 납득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터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에게 아리가 베푼 것은 그에게 크게 다가왔다.

‘아리 님……. 정말, 평생을 바쳐 지켜드릴게요.’

그가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리는 잠만 자고 있을 뿐이었다.

백령이 아리의 방으로 향했다. 자하와 아루도 그를 따라,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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